퓌센에 도착한 날, 체크인을 하며 주인장에서 퓌센에서 할만한 것이 뭐가 있을지 물었었다. 주인은 자전거나 차로 호수를 보러 가라고 가는 길까지 대충 알려주었다. 남는 것은 시간과 체력이고 부족한 것은 주머니속의 돈이니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튿날 퓌센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자전거숍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허접한 기억력이지만 생각보다 대여료가 비싸지 않아서 24시간에 10유로였던 것 같다. 늦게 와서 숍의 문이 잠겨 있으면 옆에 있는 작은 빈터에 세워 놓으라고 하면서 자전거 자물쇠도 주지 않았다. 자물쇠를 주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게 왜 필요한가 하는 표정으로 없다고 했다. 여기는 자전거쯤은 열쇠를 채우지 않고 밖에 세워놔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화장실에 가거나 한눈을 팔아야 할 때 신경 쓰이는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퓌센 기차역 옆에 있는 작은 공원


어제 주인장이 알려준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근처에 호수가 여러 개인데다 표지판을 보고 대충 호수쪽으로 달렸기 때문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가는 길에 찍은 사진조차 없다.


사실 호숫물이 사진에서 보던 알프스의 푸른 물빛은 아니었지만 호수에는 작은 쓰레기조차 떠있지 않아서 이들이 얼마나 신경써서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호수 주위에는 차도 없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무척 한가로웠다.


호숫가에 오리배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뮌헨의 영국정원에서 오리배를 탈까하다가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관뒀었는데 이곳은 거기보다 훨씬 넓고 좋은 경치에 가격은 절반 정도라 선뜻 오리배를 빌렸다. 오리배를 저어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니 주위가 조용하고 가끔 물새 소리만 들렸다. 하늘에 구름도 적당해서 햇살도 따갑지 않았다. '좋구나'하는 소리를 절로 내뱉으며 배를 한가운데 멈추고 드러누웠다.









반납할 시간이 되어 오리배를 돌려주고 나오니 백조 부부가 새끼를 거느리고 물가로 나왔다. 성격 험악한 백조지만 새끼들을 살뜰히 챙겨 다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퓌센 시내로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계속 가서 호수를 빙 둘러 가기로 했다. 돌아가다 호숫가 풀밭에 앉아 사들고 온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다시 호수를 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만큼 한적했다. 너무 한적해서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퓌센 시내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으러 광장으로 나오니 무슨 일인지 전통 복장을 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닌 것으로 봐서 축제는 아닌 듯한데 특정 요일에 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춤 공연이 아닐까 싶었다.


수십명이 남녀 혼성으로 혹은 남녀 각각 여러차례 춤을 선보였다. 춤추는 사람들은 열살이나 지났을까 싶은 작은 소녀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있었는데 다들 공연을 한다기보다 즐거워서 추는 것 같았다. 한 공연이 끝나고 다음 춤을 출 차례가 되면 서둘러 짝을 찾는데 짝을 찾지 못하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퓌센에 오는 사람들은 뮌헨에서 당일치기로 와서 노이슈반슈타인 성만을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퓌센하면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는 자전거 하이킹과 호수에서 한가로이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일상의 번잡함을 피해 떠나 온 여행자라면 하루쯤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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