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와하까를 출발한 버스는 이튿날 아침에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 도착했다.(구글맵에서 자동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여행을 하면서 이름이 긴 도시들, 이를테면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라던지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를 갔었지만 방문했던 도시중에서 가장 이름이 긴 도시가 이곳이었다. 게다가 아타카마나 바릴로체처럼 줄여서 부르기에도 까사(casa)라는 단어가 집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라 적당하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났던 여행자가 추천을 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여행자는 이 곳이 멕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했다. 사실, 멕시코 여행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일정도 길게 잡지 않았음에도 이 여행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났던 여러 여행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멕시코 여행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결국 멕시코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몇몇 나라중 한 곳이 되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에는 내일있을 투어를 예약하고 거리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도시는 인구가 20만명이 채 되지않는 작은 도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만명이라 하더라도 시 면적이 좁은데다가 시내 중심가를 기준으로 모여서 도시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름 번화한 도시의 면모를 보이지만, 국토가 넓은 나라들은 일단 도시의 면적이 넓고 주민들이 그 외곽까지 퍼져서 살기 때문에 인구 규모보다 시가지가 생각보다 작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곳도 그랬다. 광장을 중심으로 오래된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가지는 무척 작았다.


저녁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다가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무척 별점이 높은 타이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멕시코에서 태국음식이라니... 동남아 여행중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태국음식을 그 후로는 7,8개월 동안 구경도 못했는데, 이 작은 멕시코의 도시에서 맛볼 수 있다니 기대가 생겼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보다 태국 음식과 비슷한 것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타이 레스토랑을 찾아가며 본 거리의 개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해발 2200미터의 고지대에 있다. 멕시코에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원에 있는 도시들이 꽤 많지만 난방시설이 되어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고지대이며 위도가 낮은 지역의 특성상 낮에는 강렬한 햇살로 기온이 꽤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뚝 떨어졌다. 게다가 습도도 높은지 공기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길가에 나와있는 개들도 밤에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리웠던 오리엔탈 음식맛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타이 레스토랑

입구에 'Very Very Slow Food'라고 적고 달팽이 그림을 그려넣은게 재미있었다.


타이 레스토랑은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다. 그래서 오히려 꺼리낌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큰 규모에 비싸보이는 곳이었다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팟타이를 비롯해 타이 음식을 먹으니 그동안 그리웠던 동양의 짭조름하고 매콤한 음식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태국에서 먹은 음식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먹는 국적불명의 타이(혹은 베트남) 음식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가격까지 배낭여행자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외국 음식들이 현지화 혹은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국적불명의 음식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업이니 수익을 많이 내는게 중요하지만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현지의 맛이 그리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기존의 음식과 현지화한 음식을 따로 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동남아와 거의 비슷한 음식맛에 만든 사람이 궁금해 주방을 힐끗 살펴보니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음식값을 치루며 알아보니 멕시코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태국여자였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음식을 맛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리고, 즐거워진 기분을 더 오래 만끽하기 위해 카페에서 카푸치노까지 마셨다.



이튿날 아침 일찍 예약해둔 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강가에 도착했다. 사실, 이 투어도 이전에 만난 여행자의 추천으로 하게 되었다. 이 강의 이름이 무엇인지, 투어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보트를 타고 계곡을 돌아보는 투어가 좋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예약했다. 이렇게 직접 알아본 것, 공부한게 아닌 것은 쉽게 머리에서 잊혀지나보다.




강가에는 여행자 대상의 보트 투어를 업으로하는 곳들이 많이 있었다. 전날 사용한 구명조끼를 빨아 널어놓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사람들은 투어 준비에 한창이었다.



배의 구조는 독특했다. 가이드는 배 뒤에 설치된 구조물에 올라가 배를 조종하면서 여러가지 설명을 했다. 굳이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잠시 뒤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는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저 간단히 만들어진 배 구조물에 좁은 좌석이 놓여있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배 크기에 비해 달린 모터의 성능은 꽤나 좋은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조금 가다보니 멀리 까만 무언가가 물위에 잔뜩 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이것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 위를 까맣게 뒤덮은 것들은 온 몸이 새카만 가마우지와 비슷하게 생긴 새들이었다. 정말 많은 수였는데 그 모습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는게 아쉽다.



잠시 후에 가이드의 목소리가 빨라지고 손은 물가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엔 바로 찾을 수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물가에 악어가 나와 볕을 쬐고 있었다. 가이드가 배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유는 이런 것들을 쉽게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여튼, 배에 탄 여행자들은 웅성거리고, 사진을 찍고 바빠졌다. 나도 야생 악어는 처음 보는 것이라 꽤 흥분되었다. 악어가 먹이 사냥을 할 때 외에는 움직임이 많은 동물이 아닌데다 일광욕 중이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게 아쉬웠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이 강에 악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강이 두려워졌다.



조금 더 가다보니 한마리가 더 있었다.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게 혹시 모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처음에 넓었던 강폭이 좁아지면서 옆으로는 바위산이 우뚝 솟은 협곡이 드러났다. 북유럽이나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깎아놓은 협곡만큼 거대하다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보트를 타고 협곡을 지날때마다 충분히 멋진 풍경이 계속되었다.





이 사진은 북유럽의 협곡과 조금은 비슷한 것 같다.







배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멈춘 곳은 바위 절벽에 있는 움푹들어간 곳이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절벽 가운데 있는 좁은 장소에 성모 마리아상과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밧줄과 부실하게 설치된 사다리가 전부였다.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밧줄과 사다리로 올라가 성모에게 기도하고 꽃을 바치고 오는 이들의 신앙심은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봤던 빡우동굴이 생각났다. 물론 크기가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몇 시간동안 배를 타고 가서 동굴에 놓인 크고작은 수많은 불상에 기도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종교는 다르지만 정확히 겹치는 것 같았다.


특정 종교를 믿지않는 내가 보기에는 종교에 믿음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서로 비슷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점은 서로가 믿는 신이 다르다는 것 밖에 없다. 게다가 종교가 무엇이건 신앙심이 깊은 일반인들이 종교가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가건, 카톨릭 성당에 들어가건, 혹은 모스크에 들어가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성스러운 공간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나가라고 하지도,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많은 분쟁들은 오히려 가르침을 잘못 전하는 지도자들이나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꾼'들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보트는 다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거대한 절벽 중간부터 아래로 진한 녹색으로 덮여 있는, 마치 나무 둥치에서 자라난 버섯 모양을 하고 있는 곳에 보트가 멈췄다.



절벽 아래에 투어중인 보트와 비교해보면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어째서 이곳만 이렇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하를 흐르던 물이 절벽 중간에서 지표면을 뚫고나와 절벽을 타고 흐르거나 공중에 뿌려지고 있었다. 이 물로 인해서 그 주변만 이끼나 풀같은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데다 물이 석회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서 버섯모양의 거대한 바위껍질(?)을 형성하게 된 것 같았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임에는 분명했다. 나중에 세계의 절경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크로아티아에 있는 이와 유사한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종류의 새인지 모르겠지만 알바트로스처럼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보트가 한동안 더 나아가자 갑자기 강폭이 넓어지며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그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댐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협곡은 댐을 건설하면서 수위가 높아져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댐을 보게되자 조금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줄 알았던 거대한 협곡이 사실은 반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 생각해보니 댐으로 수위가 높아지긴 했지만 협곡 양쪽에 있던 거대한 바위산과 훌륭한 경치, 새들과 동식물들의 서식지를 그것만으로 폄하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수질 보호를 위해서일까? 더 이상은 갈 수 없다.





보트는 왔던 물길을 거슬러 다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시작된 투어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끝이났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 점심식사는 투어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서 여행자들마다 마을에서 알아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과실주일까, 과일절임일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던...




마을 광장 한쪽에는 푸드코트처럼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대부분은 바베큐요리를 팔고 있었다. 먹음직한 고기들이 구워지는 냄새에 혹해서 샀지만 기름기가 거의 빠진 닭고기는 퍽퍽해서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몸에는 안좋지만 고기맛은 기름이 적당히 있어서 좋다는 것은 진리다.


바베큐보다 좋았던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와하까에서도 과일을 그대로 얼린 아이스크림에 감탄했는데 여기도 그런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이번에는 딸기가 그대로 박혀있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투어에서 돌아온 후에 오후 느지막하게 찾아간 곳은 이곳에서 평생 멕시코 인디오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려 애썼던 인물이 살았던 저택이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굳게 잡은 손이 인상적이다.




이 사진은 마치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방문한 시간이 늦었던대다 서투른 영어로 설명을 일일이 읽기도 귀찮아서 이들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대강 둘러보고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빗방울마저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해야할텐데 새로운 식당을 찾기도 귀찮은데다 내일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타이음식을 먹어보겠나 싶어서 자연스레 메뉴가 결정되었다.






타이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이곳에서의 마지막은 모히또를 마시며 마무리했다. 나에게 이곳은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머무른 이틀은 이곳의 매력을 평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11월말의 이곳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춥고 습해서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정에 따뜻한 카리브해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집트 후루가다 이후 처음으로 다이빙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너무나 좋은 느낌을 받아서 생각지 못하게 한달이상 머물렀다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내일은 빨렌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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