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하이(碧塔海, 벽탑해)는 샹그릴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호수이다. 멀긴 하지만 이 근방에서 가장 큰 호수인 루구호는 호(湖)자를 쓰는데 어째서 훨씬 작은 비타하이는 바다(海)라고 이름을 붙었는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로는 루구호가 더 끌렸지만 왕복 이틀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다가 루구호보다는 메이리설산에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비타하이로 대신하기로 했다.


야크버거로 배를 채우고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사실 10살이나 어린데다 반쯤은 산악인 같은 이들하고 자전거 하이킹을 하자니, 같은 나이대에서는 나름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혹시 민폐가 되지는 않을지 적잖게 걱정이 되었다. 숙소 주인장에게 대충 코스를 듣고 출발했지만 샹그릴라 시내를 벗어나서 비타하이로 가는 길을 찾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여러번을 물어서 겨우 비타하이로 가는 고갯길 앞에 도착했다. 완만한 고갯길이었지만 해발 3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는 이마저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멈추라는 이성의 경고를 여러번 무시하고 나서야 겨우 고개 정상에 설 수 있었다. 고개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을 신나게 내달린 끝에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호수쪽으로 다가가니 매표소가 있고 표금이 자그마치 100위안부터 6,700위안까지 붙여져 있었다. 멀리 호수를 보며 한참을 더 가도 매번 보이는 것은 입장료를 받는 건물이나 매표소만 있었지, 호수쪽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곳도, 저곳도 호수쪽으로 난 길은 모조리 사설 관광시설로 가는 길이다.


알고보니 호숫가를 차지하고 요금을 받고 있는 곳은 사설 관광시설이었다. 관광객을 말에 태워 호수를 돌아보게 한다던지, 티벳전통공연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이런 곳들이 호수를 빙둘러 차지하다보니 우리처럼 단지 호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근처에 갈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된거 한바퀴 돌아보자하고 호수를 커다랗게 두르고 있는 도로를 따라 무작정 자전거를 몰았다.


호수를 삼분의 일 정도 돌고나니 호수가 꽤나 가까워져서 들어가도 될 것 같은 곳이 나왔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가까이 가다보니 더 이상 들어가면 돈을 내야 한다며 갈 수 없다고 했다. 짜증이 팍 솟았다. 호수가 개인의 것도 아닌데 호수를 둘러싼 땅을 차지하고 앉아서 가는 길을 막고 있으니...



비타하이는 호수 자체는 작은데 도로는 호수를 한참 멀리 두고 빙 돌게 되어 있어서 도무지 호수쪽으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인장 이야기로는 요즘이 비타하이가 한창 아름다울 시기라고 했는데 아무리 주변을 봐도 그닥 아름답다고 할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차라리 호수 반대편으로 보이는 설산 풍경이 더 낫다.




비타하이에 실망하면서도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는 없으니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반쯤 돌고 나서야 호숫가에 설 수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경치는 그닥 볼게 없더라도 물은 맑아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물조차도 누런 흙빛에 쓰레기들이 잔뜩 떠 있었다. 


경치에 실망하니 몸도 힘들어지고 슬슬 다른 것들이 신경에 쓰이기 시작했다. 호숫가를 하이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쿠터를 타고 있었고, 자전거로 돌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지나는 사람들마다 '니네 정말 대단하다'는 듯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거나 박수를 치며 '짜요!'를 외쳤다.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가 그들에게 물어보니 스쿠터 대여 가격이 우리의 자전거 대여가격보다 조금 더 비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스쿠터나 알아볼걸 괜히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생각에 셋다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항상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자전거를 탄 지도 세 시간이 되어가니 엉덩이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호숫가에서 쉬고 있는데 스쿠터를 타고 오던 티벳 전통의상을 입은 아주머니 두 명이 내리더니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넉살 좋은 친구들이 가서 말을 붙이고 가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허락없이 얼굴나온 사진 써서 미안. 사진이 맘에 들어서... 불만있으면 연락하셈.


그 중 한 친구가 아주머니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웃음을 참지 못하던 아주머니는 겨우 사진기 앞에 서긴 했지만 부끄러움에 사진기를 보지도 못했다. 아주머니도 넉살 좋은 한국인 청년의 팔짱이 싫지만은 않은지 화를 내거나 팔짱을 풀려고 하지는 않고 마냥 수줍어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순박해서 그 아주머니 일행까지 모두 배꼽잡고 한참을 웃어댔다.





다시 한참을 달렸다. 이젠 안장에 닿은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였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 날도 추워졌다. 그럼에도 건조한 공기에 목은 금방 말라서 출발전에 산 물은 떨어진지 오래였다. 찬 바람과 건조한 공기에 입술마저 갈라질 지경이었다. 길가에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을 사고나니 할머니 한 분이 야크 우유를 마셔보라고 자꾸 권하기 시작했다. 리장에서도 야크 우유라면서 파는 것이 있었지만 그건 야크의 것인지 젖소의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는데 이곳이라면 보이는게 전부 야크뿐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참에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야크젖으로 만든 요쿠르트(?), 버터(?) 같은 것들을 자꾸 구경시켜 주셨다.



야크젖 세잔을 요청하니 할머니는 짜놓은 우유를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짠 우유를 끓여 소독을 하고 잔 세개에 담아주셨다. 뜨뜻하게 데워진 우유는 일반 우유보다 좀 더 고소한 맛이 강했다. 평소에 먹던 것이 아니라 혹시 배탈이 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른 할머니는 안에서 야크젖과 이런저런 것들을 섞어서 뭔가를 만들고 계셨다. 중국어를 잘 하는 친구도 티벳 할머니의 말은 알아듣기 힘든지 반쯤은 앞뒤 상황으로 추측해야 했는데, 그의 설명으로는 치즈 같은 것을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뭔가 쿰쿰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나기도 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치즈보다는 버터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 가게에 놀러 온 동네 아저씨


결국 할머니에게 치즈 같은 무언가도 조금 사서 어떻게 먹는 것인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가 냄비에 그것을 넣고 녹이자 쿰쿰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확연히 강해졌다. 거기에 곡식 가루같은 것과 설탕을 잔뜩 넣어서 섞은 다음에 먹어보라고 주었다. 달달하고 짭짤하면서도 쿰쿰한 냄새가 나는 그것에 처음에는 살짝 맛만 보는 정도에 그쳤는데 할머니 성의를 생각해서 조금씩 자꾸 먹다보니 익숙해져서 결국 거의 다 먹었다.



평소에는 저것을 무엇과 함께 먹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먹기에 색깔과 모양이 썩 훌륭하진 않다.


티벳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관광지처럼 보였다.


춥고 힘들어서 이 뒤로는 찍은 사진조차 없다. 이 뒤로도 오랫동안 자전거를 더 타야했고 며칠동안 의자에 앉을 때마다 엉덩이가 아팠다.


해는 기울어서 점점 어둡고 추워졌지만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샹그릴라 시내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쯤인지 모를 마을을 여러 개 지나고, 스쿠터를 타고 돌고 있는 중국 젊은 친구들에게 묻고 나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도 찍고, 쉬고, 할머니들의 요리를 구경하기도 했지만 여섯시간은 족히 자전거를 탔다. 태어나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먼 거리를 자전거를 탄 셈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젊은 친구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고 무사히 잘 다녀온게 뿌듯했다. (다녀온 경로를 주인장에게 말하니 본인이 알려준 경로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다녀온 길이 본인 생각으로 4,50킬로는 족히 될거라고 했다. 길을 모르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손발이 아니고 엉덩이가 엄청 고생했다.)


사실 비타하이는 볼만한 것이 없다. 호수로서도 주변 경치로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 하이킹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무척 즐거웠다. 부끄러움을 심하게 타던 티벳 아주머니와 야크젖을 정성들여 끓여주던 할머니, 우리를 보고 '짜요'를 외치던 사람들(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다), 길을 물어보면 성의껏 답해주던 사람들... 이들이 비타하이의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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