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일정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소렌토를 거점으로 카프리섬, 그리고 포지타노와 아말피를 보고 다시 위로 올라오며 나폴리와 폼베이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원래는 좋아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었던 시칠리아 섬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시칠리아 섬에 대한 여행자들의 안좋은 이야기들을 보고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들 중에 한 가지가 되었는데 후에 스페인에서 시칠리아에 다녀온 여행자(나처럼 시네마 천국을 무척이나 좋아하는)에게 유럽 여행중 가장 좋았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본인이 가보고 느끼고 판단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 근처의 피자집

테이블이 없는 테이크 아웃 피자집이지만 사람들이 엄청 몰리는 곳이다.

피자집 앞에 방석이 수십 개 쌓여있는데 사람들은 피자집 앞에서 이 방석을 깔고 앉아 피자를 먹는다.

도우는 바삭하고 피자 위에 올려진 야채나 재료들은 무척 신선하다.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곳 피자는 무척 맛있어서 로마를 떠나는 날 아침식사도 여기서 해결했다.


로마에서 소렌토로 바로 내려가기에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먼저 나폴리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금까지는 가능한 한국 민박에서 지내지 않으려 했지만 유럽의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민박집이 저렴했기에 나폴리의 한국 민박을 찾았다. 나폴리 가리발디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나무 민박'은 50대로 보이는 부부(조선족인지 탈북자인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시는데 북한 사투리가 섞여있다)가 운영하는 곳인데 주인 부부께서는 여행자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시는데다 식사까지 훌륭하고 여행정보까지 챙겨주셨다. 하루만 묵고 소렌토에 다녀온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자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했지만 나중에 다시 갔을 때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폴리에서 버스를 타고 소렌토에 도착했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날씨는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라 눈이 부셔 뜨기 힘들만큼 햇살이 강렬했지만 그늘 아래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비슷비슷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 짐을 풀고 소렌토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소렌토는 특이하게도 해변에서 수십 미터 솟은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계단으로 수십미터를 내려가야 해변으로 갈 수 있다. 절벽 위에서 보면 소렌토 항구의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절벽 아래 해변에는 작은 백사장을 가진 유료 해변이 있었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물빛은 로도스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해수욕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편으로는 요트들과 페리가 정박하는 작은 항구가 있다. 카프리 섬에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



다시 절벽을 거슬러 올라왔다. 절벽 안쪽에 집을 짓고 살았던 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소렌토에서 특히 유명한 과일은 오렌지와 레몬이다. 지중해 국가들은 대부분 좋은 날씨 덕분에 오렌지와 레몬, 올리브를 많이 생산하는데 소렌토에는 오렌지와 레몬 나무들이 심어진 공원도 있었다.



공원 한쪽에는 오렌지와 레몬과 함께 이들로 만든 술이나 비누 등의 제품을 팔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부에는 이 레몬으로 만든 술을 파는 곳이 많은데 향은 좋으나 맛은 달고 껄쭉하다.

달지 않고 맑은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공원 전체에 새콤달콤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소렌토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다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던 대로를 벗어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해안 절벽이 내륙으로 들어온 곳을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높아서 난간을 잡고 내려다보는데 아찔한게 오금이 저렸다. 아마 난간이 부실한 듯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절벽 아래에는 옛날 사람이 살았던 듯 커다란 건물들도 아직 남아있다. 한참 내려다보며 신기해하니 지나가던 이탈리아 아저씨가 재미난듯 웃으며 바라봤다.



소렌토는 유럽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라 물가가 꽤나 비쌌다. 길가 레스토랑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은 피자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머물렀던 숙소에 작은 부엌이 있어서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해 먹을 수 있었다. 한번은 매콤한음식이 먹고 싶어서 아껴두었던 라면을 끓였는데 매운 연기가 퍼졌는지 청소하던 처자가 재채기를 계속 해댔다.


경비를 절약하게 해 준 조촐하지만 고마운 숙소부엌


이 날 저녁식사였던 엔초비 피자.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이 훌륭했다.

이탈리아 피자의 장점은 무엇보다 신선한 치즈와 토마토, 바삭한 도우인 것 같다.

토핑이 대단치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


피자로 배를 채우고 숙소 옥상에 올라가니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지중해 근방은 날씨가 맑고 공기가 좋아서인지 저녁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보지 못했던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우연찮게 소렌토의 숙소 옥상에서 볼 수 있었다. 바란다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 손해도 보고 포기도 하며 살다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보상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삶도 여행도 이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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