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가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될 때는 그 곳의 풍광이 너무나도 훌륭하거나, 역사적인 유물이나 예술품에 감동 받거나, 아니면 그 곳의 문화(음식, 음악, 춤 등)에 빠지거나 했을 때다. 그 중에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라오스에서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앓아 눕게되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 아픈 증상이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위협이 되던 사스나 열대 모기로부터 옮는 말라리아의 초기 증상인지 아니면 또 다른 풍토병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참고 낫기를 기다리다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병원에 가더라도 라오스의 의료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지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아플지경이었다.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한인들이 갔었다는 라오스의 병원을 검색해서는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몸이 아프니 이 병원에 대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로지 병원에만 데려다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시간을 끄는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마치고 '노 프러블럼'이라며 자기가 아는 병원으로 간단다. 병원비를 바가지 씌우기 위해 작전을 짜는 전화는 아니었는지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뭉글뭉글 커져갔다.


숙소차가 아닌, 자기 개인 자가용에 태우더니 시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병원 진료 수속을 대행해 주고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어가 되지 않는 의료진과 통역부터 시작해서 진료비, 주차비까지 본인이 전부 다 지불하는 거다. 여전히 '노 프러블럼'이란다. 그러고 나서 진료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쯤에야 먼저 돌아간단다.


병원에 오는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게 라오스의 의사는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인데 말이다. 혼자서 수속부터 증상을 설명하고 결과를 받고 병원비를 지불하는게 예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끝났다.


감기몸살이라는 진료 결과를 받고, 약을 사고 돌아오면서 이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선의를 악의로 의심했던 미안함에 심하게 자책을 했다. 병도 큰 병이 아니라하고 현지에서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 어떻게 이 곳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뒤에도 라오스 사람들에게 받은 좋은 인상들이 많았다. 어쩌면 처음 주인 아저씨로부터 받은 도움 덕분에 자꾸 좋은 인상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로만 들을 때는 잘 모르지만 본인이 경험하게 되었을 때는 그 위력의 대단함에 놀라게 된다.


이튿날 감기몸살이 어느 정도 진정되어 계획했던 대로 방비엥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며 환송하는 주인 아저씨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최고의 별점과 후기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뒤로 만나는 여행자나 사람들에게 라오스를 좋게 이야기하고 여행지로 추천하게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위앙짠 주차장













위앙짠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도로 사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후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버스 밖으로 펼쳐지는, 이제야 보여주는 라오스의 실제 모습에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모든 산에서는 온통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화전을 일구기 위해 일부러 불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은 황토를 드러낸 민둥산이 대부분이고 아이들은 맨발에 집들은 쓰러질 듯하다. 1달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고된 삶과 교육보다는 노동에 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이 차창 밖에 있는 것이다.


가 TV에서 인터넷에서 봤던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경치는 대부분의 라오스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버스안에서 찍은 흔들리는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이게 라오스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이다. 관광지 사진만 보고 현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다. 즐길때 즐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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