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의 첫째날은 어제의 약간 스산했던 기운은 사라지고 선선하지만 맑은 하늘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완연한 봄날씨였다. 이런 날에는 천천히 걸으면서 이 동네, 저 동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바쁜 일정에서야 가능한 빨리 목적지에 가서 구경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한다는 조급함이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장기여행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회사를 다니면서 일년에 한번 일주일 남짓한 휴가를 가더라도 한 도시에만 진득하니 붙어있는게 원래 여행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빈 속을 채울 먹거리도 찾을겸 첫번째 목적지인 귤하네 공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가 갈라타 타워가 있는 북쪽이라 귤하네 공원까지 가다보면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도 구경할 수 있고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도 지날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길거리에 있는 기름기 쫠쫠 흐르는 빵을 하나 맛보고 싶어졌다. 웃음기 띤 친절한 아저씨가 정성껏 싸주시긴 했지만 보이는대로 좀 느끼했다.


이 골목, 저 골목 걸으며 상점도 구경하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 동네 마실나온 고양이도 구경하며 다니다보니 어느새 갈라타 다리 앞까지 나왔다. 저 멀리 불이라도 났는지 맑은 하늘에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곧 꺼지겠지 했는데 그 날 해가 지도록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재가 아니라 일부러 뭔가를 태웠던건지도 모르겠다.




갈라타 다리 밑에는 어시장이 있는데 아침이어선지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한 모습이다.


드디어 갈라타 다리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고등언지 전갱인지 생선을 꽤 많이 낚아놨다. 낚는 모습을 보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정작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갈라타 다리 남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배들이 촘촘하게 정박해 있는데 이 곳이 이스탄불의 명물인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이다. 아무래도 이스탄불의 주된 생선은 고등어인가보다. 


고등어 케밥은 빵에 구운 고등어 반쪽과 약간의 야채를 끼워주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무척 비리고 맛도 없을 것 같지만 신선한 고등어를 방금 구워서 비린 맛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고등어의 기름기가 빵에 살짝 스며들어 촉촉하고 먹을만 했다. 사실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니 너무 큰 기대만 갖지 않는다면 가격대비로는 무척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고등어의 뼈 없는 반쪽을 받은 사람은 상관이 없지만 뼈 있는 쪽을 받은 사람은 먹을 때 가시에 신경을 써야한다. 무턱대고 크게 베어물었다가 그대로 뱉어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배 밖에 있는 사람에게 주문하면 배 안에서 바로 빵에 고등어를 끼워 밖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준다.



바로 위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데 고등어를 굽는 배는 작아서 잔물결에도 무척이나 심하게 흔들렸다. 그런데도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흔들림없이 고등어를 뒤집고, 빵에 끼우는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고등어와 약간의 야채뿐인데도 썩 훌륭하다.


작은 탁자에는 케밥에 뿌릴 소금이 올려져 있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그냥 먹어도 충분하다.


아침이라 한가한 편인데 붐비는 시간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어제 저녁에는 그렇게나 작았던 고깃덩이가 원래 아침에는 이렇게 컸던 것이었구나.



이스탄불의 명물, 트램. 도로의 가운데로 트램이 다니고 차들은 트램의 양쪽으로 다닌다.

옛날 고풍스러운 트램은 탁신광장쪽에서 탈 수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사진과 같은 신형 트램이 다녔다.


걷는 모습까지 우아했던 이스탄불의 고양이


봄이라 그런지 이스탄불 시내 곳곳마다 꽃들이 만발했다. 조그만 공터나 가로수 밑 화단까지 색색의 튤립들이 활짝 펴 있었다. 귤하네 공원 안쪽에는 더욱 더양한 갖가지 색깔의 꽃들이 피어있었고 공원에 나온 터키인들도 무척 많았다. 동남아에서 두 달동안 더위에 찌들었다가 하루이틀 사이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활짝 핀 꽃들을 보니 멀리 오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귤하네 공원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터키 홍차인 차이를 파는 까페가 있다. 다른 곳의 차이에 비해 가격은 약간 비쌀지 모르겠지만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차이를 마시는 호사 정도는 절약이 미덕인 배낭여행자라도 누려볼만했다.





차이를 시키면 작은 잔과 함께 고풍스런 주전자에 차이를 담아서 가져다 준다. 터키 사람들은 주전자에서 차이를 작은 잔에 부을 때마다 테이블의 커다란 그릇에 담겨있는 각설탕을 몇 개씩 넣어서 달콤하게 마신다. 따라서 그렇게 몇 잔 마셨더니 테이블에 금새 각설탕 봉지가 쌓였다.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작은 요트나 여객선부터 커다란 화물선이나 컨테이너선, 고급 크루즈선까지 많은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흑해와 에게해를 이어주는 이 곳에 천 년도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배들이 지나다녔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풍경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고 돌이켜보니 돌마바흐체 궁전이니, 아야 소피아니 하는 것들을 구경했던 것보다 여기서 차이를 마셨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여기서 보낸 짧은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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