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숙소 근처에 있는 갈라타 타워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다 주위에 집들이 높지 않아서 사방이 뚫린 곳이라면 이스탄불 어디에서도 이 타워가 보인다. 14세기경 지어진 후로 여러 번의 재건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목적이 화재와 외치의 감시라고 한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현대에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수백년 전에는 이 정도로도 감시하기에 충분한 높이였나보다.


하지만 이 갈라타 타워 입장료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제 톱카프 궁전과 술탄의 할렘에서 비위가 상했던터라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기 싫었다. 여행을 가서 비용이 좀 들더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기 여행에서는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없고 좀 더 가치 있을 것이라 싶은 것을 골라가며 다녀야한다. 엄청난 여행비를 쓸 수 있는 부자 여행자가 아니라면 그러지 않고는 비용이 떨어져 금새 돌아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지나는 길에 현지인들이 무척 많은 것을 보고 들어갔던 빵집. 역시나 맛있는 빵을 팔고 있었다.


앞서가며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계속 뒤돌아보던 터키 소년


터키에서는 오렌지나 석류를 짜서 파는 행상들이 무척 많다. 오렌지 주스는 가격도 싸고 맛있는데 석류는 비싸고 맛이 굉장히 셨다.


갈라타 다리는 2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위로는 자동차, 트램이 다니고 아랫층에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이 날은 아랫층으로 다리를 건넜다. 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야 소피아에 도착했다. 아야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360년 경, 정교회의 대성당으로 지어졌으나 몇 번의 소실을 거쳐 6세기 초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져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술탄 마흐멧 2세는 성당을 모스크로 변경할 것을 명령했다. 대성당은 네 개의 미나렛을 가진 모스크로 바뀌면서 천정과 벽에 있던 이콘화에 회칠을 해서 덮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게 술탄이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변경했기 때문에 건축물뿐만 아니라 이콘화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스크도 아니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둥의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한바퀴를 완벽하게 돌릴 수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시도한다. 난 안될게 분명하기 때문에 내 차례에서는 사진만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돌린 그 부분만 깨끗한 흰 대리석으로 남아있다.





역시나 아야 소피아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기둥이 없이 건물 내부에 거대한 공간을 만든 건축 기술도 놀라웠다. 아야 소피아의 외관은 지붕이 여러개의 돔으로 되어 있는데 이 돔을 이용해서 기둥 없이도 이런 넓은 공간을 만든 것 같다. 역사적으로 아야 소피아보다 뒤에 지어진 앙코르 와트도 무척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지만 그들은 아치 구조의 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이런 넓은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회벽칠이 되어 있던 성화를 복원한 모습


아야 소피아 다음으로 예레바탄 사라이라는 동로마 제국 시대에 물을 저장했던 거대한 지하 저수지를 구경했다. 천년도 훨씬 전에 지하에 물을 저장하기 위해 이렇게나 거대한 토목 공사를 했다니 놀라웠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저수지의 끝에는 기둥의 주춧돌이 메두사의 머리로 되어 있는 기둥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메두사의 머리가 뉘여져 있다. 사진을 찍었을텐데 찾을 수가 없다.




터키의 음식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어서 첫날 먹었던 그 음식이 케밥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날 예레바탄 사라이를 갔다오면서 레스토랑이 많은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중동지방 특유의 호객행위가 심했다. 거기서 '시시(Shish)'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알고보니 첫날 먹었던 그런 케밥은 '도네르', 꼬챙이에 소고기나 양고기, 닭고기를 야채와 같이 구워서 내어놓는 '시시'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케밥이 있었다.


터키에 왔으니 제대로된 케밥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럴듯해 보이는, 호객행위가 덜 심한 레스토랑을 골라서 들어갔다.(호객행위를 무척 싫어하는데다 그러지 않는다는건 음식에 자부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음... 이젠 사진만 보고는 어떤 맛이었는지, 재료로 무엇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구운 고기를 안에 넣어서 먹거나 같이 먹는 빵, 피데(Pide)

담백하면서도 약간 짭짤한 맛이 난다.


종류별로 고기를 다 먹어볼 심산으로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가 모두 나오는 케밥을 선택했다.

괜찮기는 하지만 가격대비 감탄할만한 맛은 아니었다.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그랜드 바자르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스탄불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이 곳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가보다. 그랜드 바자르는 단지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기념품 가게였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광객이며 현지인들은 거의 없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없으며 장식품, 기념품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들과 이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났을 거대한 시장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오다보니 어느 덧 저녁 노을이 지며 날이 저물어갔다. 숙소 근처 커피숍에 앉아서 테이블을 삼각대 삼아 야경을 찍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도 감탄이 나올만큼 아름다웠고, 예레바탄 사라이도 정말 대단했지만 나에게 이스탄불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볼거리도 없는 동남아의 조그만 도시에서 느낀 흥분과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다. 큰 도시에서의 밤문화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현지인들의 문화를 경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부 현지인들의 부자연스러운 호의를 받아들이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이스탄불 시내를 보면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