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프라하 성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는 프라하 시내 여기저기를 가로지른다음, 성이 있는 언덕을 빙 돌아 블타바 강에서 보이는 성의 뒷쪽에 내려주었다.
거대한 성답게 내부는 화려하진 않지만 잘꾸며진 정원과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했다. 오른쪽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작은 미술관이다.
이쪽은 성 외곽이라서 단체나 패키지 여행객들은 많이 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한적한 정원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무들로 빽빽한 깊은 해자 건너편으로 성 비토 대성당이 보인다.
조금 생뚱맞게도 정원내에 맹금류를 기르는 곳이 있었다. 올빼미나 부엉이부터 독수리, 매까지 10여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어떤 쓰임이 있는지 모른채 그냥 신기하게 사진만 찍었다. |
외성에서 해자를 건너 내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푸른색 경비복을 입은 군인이 지키고 있다. 옛날 체코를 지배했던 왕들의 거주지였으며 지금은 성의 일부가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적인 관광지보다 경비에 신경을 더 쓰는 것 같다. 한적했던 외성과는 다르게 내성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했지만 정원을 거닐고 미술관을 보고 하느라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프라하 성 내부에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가격은 외부 레스토랑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유럽 물가치고는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다.
체코의 가장 크고 중요한 성당이라는 성 비토 대성당 앞에 섰다. 고딕양식의 뾰족한 첨탑과 거대한 크기보다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무척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성 비토 대성당을 나와서 조금 걷다보면 '황금소로'라고 이름지어진 작고 낮은 집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집들은 16세기에 궁에서 일하는 하인, 시종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걸 알고나서 보니 성당과 궁전의 거대한 크기와 비교되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 뒤로 연금술사들이 살았다고 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지어졌는데 프란쯔 카프카가 머물며 소설을 썼던 곳이어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은 기념품점이나 그 때 여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동화같이 아담하고 예쁜 집들이 모인 거리지만 실상은 전혀 동화같은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의 거리
황금소로를 지나면 달리보르카라는 탑과 지하감옥이 나온다. 지하 몇 층으로 이뤄진 감옥에는 고문실과 햇볕이라고는 들지 않는 작은 감옥들이 빼곡하다. 정말 같은 사람들끼리 어떻게 이런 고문을 했을까 싶은 고문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학교 수학여행때 독립기념관에서 본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에게 행했던 고문이 생각나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다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는지 남은 사진도 없다.
달리보르카를 지나면 성의 후문으로 나가기 전에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구도심이 잘 보존된 유럽도시 대부분이 그러하듯 프라하의 지붕도 모두 붉은 색이다. 그리고, 프라하 주변에는 산이 없어서 지평선까지 집들 이어져있었다.
단체 관광을 왔는지, 동창들끼리 여행이라도 왔는지 비슷한 나이대에 똑같은 백팩을 맨 아주머니들 포즈도 비슷하게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해가 제법 기울었을 때에 시내쪽으로 난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성이 있는 언덕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저녁 공연을 준비하러 하나둘 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프라하 성을 내려와서 블타바 강변을 따라 카를교쪽으로 걸었다. 카를교는 14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며 체코의 왕이었던 카를 4세가 놓은 다리로 무척 멋있으면서도 독특하게 생겼다. 다리 위에는 악사나 미술가, 공연가들과 관광객들이 많아서 분위기 있게 걸을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본 안개에 쌓인 카를교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카를교에는 성인들의 상이 많은데 블로그를 하면서 찾아보니 300년 동안 30개의 성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 조각상 밑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성인상이 있었는데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는 성 요한 네포무크 성인의 상이라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다리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빠져 있는줄도 몰랐던 사진들이 블로그에 여행을 정리하면서야 알게되어서 황당하게 만든다.
체코의 지하철은 비교적 훌륭하다. 유럽의 지하철(특히 런던이나 파리, 모스크바 등등)은 만든지 오래된 경우가 많아서 지저분하거나 심하게 낡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체코의 지하철은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체코 지하철의 문제는 현지인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티켓 자판기에 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을 이용해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첫날 현지인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가장 싼 표를 사서 들어갔다. 잠시 후, 덩치 큰 경찰이 오더니 표를 보자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표를 꺼내 보여주니 경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 표는 성인용이 아니니 벌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현지인이 이거면 된다고 했는데, 미안하다 그럼 표를 다시 사서 오겠다, 억울하다 벌금을 깎아주라까지 해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정확히 생각나진 않았지만 요금의 수십배에 달하는 벌금(몇 만원 정도)을 내야했다.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경찰은 두둑한 뒷돈을 챙겼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이 쓰렸고, 며칠간 좋은 이미지였던 프라하의 인상을 갉아먹은게 더욱 속이 쓰렸다. 그 뒤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나처럼 당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 했다. 현지인들은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데 유독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검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나처럼 자판기 사용법을 몰라 잘못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판기를 바꾸거나 고치지 않는 것 같았다.
여행한지 5달째. 그동안 여행의 댓가로 현지에 내야하는 것들은 속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여행해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리 철저히 알아보지 않은 내 탓이 먼저지만 속기 좋게 함정을 판 듯한 쪽도 나쁘다. 일단 한쪽이 손해를 보기 시작하면 손해 본 쪽도 속이려 하기 마련이다. 속이려면 머리 아프게 방법을 궁리하고 편법을 찾아야 한다. 제발 나를 머리 아프게 하지 말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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