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히 여행한 곳에서는 남긴 사진이 제법 많은데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날은 남긴 사진이 얼마되지 않는다. 더구나 힘든 트레킹 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침에는 의욕에 넘쳐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시작하지만 점점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왠만해서는 꺼내는 일이 없어진다. 사진을 정리하다 유독 남긴 사진이 없는 날은 '이 날은 무척이나 힘들었나보다'하고 회상해보면 틀림이 없다. 4박 5일간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찍은 사진 수가 꽤 많은 사진을 찍었던 어떤 날보다 작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었다는 증거인 것 같다.
이틀째 날도 하늘은 제법 맑았지만 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다. 워낙 연중 바람이 심한 곳이라 이 날이 바람이 심한 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이 심한 호숫가 언덕을 지날 때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특히, 배낭을 매고 걸을때 옆에서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는 면적이 넓어져서 생각보다 훨씬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 날이 돌아오던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날씨도 가장 좋았고, 코스도 무난한 편이었다.
바람이 꽤 불어서 호수 표면에 물보라가 일고, 때로는 소용돌이가 생겼다.
바람이 꽤 심하게 분다고 생각했었다. 다음날 제대로 된 바람을 맞기 전까지는...
둘째날은 호수를 따라 하루종일 걸었다. 약간의 오르내리막이 있긴 했지만 무난한 편이었고 힘들다고 생각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거친 산과 바로 밑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를 보면서 걷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걷다가 점심 때가 되어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식재료를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한 탓에 빵에 소세지만 끼운 차가운 샌드위치가 전부였지만, 멋진 경치가 펼쳐져 있으니 어느 고급 레스토랑도 부럽지 않은 식사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몇 시간을 더 걸어 호숫가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무척 좋았던 두번째 산장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도 산장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지만 가격이 무척 비싸기 때문에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곳은 산장 뒤편에 조립식 벽으로 바람만 간신히 막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돌을 줏어다 버너를 고정시키고 물을 끓여 카레를 만들었다. 대충 세워놓은 벽은 바람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해서 버너의 불꽃이 흔들리지 않게 몸으로 바람을 막아야했다. 물은 깨끗하지만 엄청 차가워서 재료를 다듬고, 식사 후에 설겆이를 하려면 손을 몇 번이나 불어서 녹여야 했다.
이런 트레킹이나 캠핑은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혀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훌륭한 시설을 갖춘 콘도나 호텔이 있다면 이 곳의 가치는 훨씬 떨어져버릴 것이다. 오롯하게 자연을 접하려는 방문자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을 유지하고, 자연에 손대는 일은 가능한 배제한 것이 이런 곳의 매력이다. 우리의 캠핑 문화도 편리함은 덜어내고 자연을 좀 더 가까이 접하는 방법으로, 육체적인 편안함보다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추운 자연을 접하여 밤새 뜬눈으로 지새는 것은 사양이다. 어제 묵은 산장보다는 덜 추워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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