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엘 찰텐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왔지만 지난번에 왔던 숙소에서는 오늘은 자리가 없고 내일이 되어야 생긴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booking.com에서 급히 숙소를 검색해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자려고 누웠는데 침대 옆에서 납작하고 다리가 여럿 달린 죽은 듯한 벌레를 발견해버렸다. 배낭여행자들의 공공의 적, 베드벅(빈대)인 것 같아서 주인을 불러 이야기하니 미안하다며 방을 바꿔주었다.


고작 조그만 벌레 가지고 호들갑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빈대의 무서움은 물려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지저분한 숙소에서 묵은 여행자에게 달라붙어서 세계 각국을 옮겨 다니는 이 벌레는 사람의 피를 빠는데 물리면 무척 가렵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병원 신세를 지고서도 한달을 고생했다는 사람도 있고,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도 있겠는가. 이 벌레는 사람이 없어 양분 섭취를 못하더라도 납작해진 상태에서 몇 달을 버틴 후, 다시 사람 몸에 붙게되면 온 몸이 빨개질 정도로 피를 빨아서 빵빵하게 부푼다. 


그때까지 7,8개월을 여행하면서 베드벅을 만나지 않은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와 호주 시드니에서 2번 물려 고생하게 된다.


방을 바꾸긴 했지만 한 번 버린 숙소의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 뒷날 다시 예전 숙소로 방을 옮기고 찝찝한 기분을 만회하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홍합과 치즈가 잔뜩 올려진 피자는 그저 그랬지만 엄청나게 컸던 샌드위치는 훌륭했다. 두터운 고기패티와 풍부한 치즈도 좋았지만 으깨서 넣은 아보카도가 특히 좋았다. 아보카도는 그냥 먹으면 별 맛도 없고 기름기만 많아서 과일로서 의미가 없는데 다른 음식과 어울릴 경우에는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이것을 으깨서 샌드위치 사이에 넣으니 샌드위치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촉촉해졌다. 이후로 트레킹을 위해 점심식사를 만들어야 할 때에는 자주 샌드위치에 아보카도를 잘라서 끼우거나 으깨서 빵에 발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나게 비싸서 마흔 가까운 나이에 먹어보지도 못했던 아보카도가 남미나 호주에서는 가장 싼 과일에 속했다.


식사를 마치고 길거리로 나오니 뭔가 축제가 벌어진 듯, 사람들이 꽤 많았다. 소방서 앞에서는 어려보이는 소방관이 키가 작은 조랑말에 아이들을 태워주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내일 닥칠 어려움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구경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에 필요한 준비를 해야했다. 그 다음날이면 드디어 동절기를 끝내고 토레스 델 파이네의 산장이 오픈되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교통편을 예약하고, 등산용 지팡이와 바람막이도 대여했다. 그리고, 4박 5일간의 트레킹에 앞서 몸보신을 해두려고 이 근방에서 꽤 알려진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대낮부터 맥주와 해물요리를 시키고 기분 좋게 앉았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대개 3박 4일 일정으로 W코스를 따라 걷게 되는데 당시에는 배가 10월 초가 되어야 운항을 시작했기 때문에 코스를 마친 날 돌아오는게 불가능해서 부득이하게 1박을 더 해야했다.)

칠레의 맥주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맛도 좋은 편이다.


생선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물고기와 감자를 튀긴 것. 그럭저럭.


칠레에서 먹어 본 최고의 요리. 게살과 생선 크림소스 요리


이 레스토랑에서 칠레에서 맛 본 최고의 요리를 먹었다. 그 뒤에 세비체나 해물스프같은 칠레에서 유명하다는 해산물 요리를 먹었지만 나에겐 이 곳에서 먹은 게살과 생선이 섞인 크림소스 요리가 최고였다. 특히나 두툼한 게살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 있었는데도 가격은 만원이 될까말까했다. 칠레는 남미에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OECD 가입국이기도해서 물가가 생각보다 저렴하진 않다.(물론 브라질, 아르헨티나보다는 물가가 훨씬 싸다) 그런데도 이렇게 게살이 듬뿍 올려진 훌륭한 요리가 만원이라니... 트레킹을 하기 전에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게살을 이렇게나 많이 넣고도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나중에 푸에르토 몬트에 돌아가서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기분이 최고조였을 때 의외의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박 5일간의 트레킹을 하려면 그동안 먹을 음식물을 모두 준비해서 가지고 다녀야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식료품을 사러 나섰다.(물이야 워낙 좋은 계곡물이 있으니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게 다행이다) 그런데, 어제까지 분명히 식료품을 팔던 가게들의 문이 전부 닫혀 있었다. 이게 왠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칠레의 독립기념일이라 어제부터 이틀간 국경일이라고 했다. 어제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지고 축제분위기였던 이유를 이제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거고 나에겐 트레킹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대한 기로의 순간이었다.


이제 체면이고 염치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지나가는 현지인들 중에서 친절해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짓발짓으로 열심히 마임을 했다. 몇 명이나 물어봤을까 순박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무작정 따라갔더니 한참을 걸어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까지 이르렀다. 조금은 불안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면 내일 트레킹은 정말 포기해야 했기에 마음을 억눌렀다.


조그만 가게 앞에 와서 아주머니는 수줍게 음식을 입에 떠넣는 시늉을 하고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말이 안통하니 가게 위치를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는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아주머니에게 몇 번이나 진심을 담아 '그라시아스'를 말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매번 '기념사진이라도 한장 남겨두었더라면', '뭔가라도 작은 보답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다.


가게는 조그마했고 진열된 식료품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일뿐이었다. 빵, 소세지, 감자, 치즈 등등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사야했다. 그리고, 여행 중 한국 식료품 가게에서 사서 아껴두었던 라면과 분말카레를 총출동해서 4박 5일간의 식단을 완성할 수 있었다.


트레킹 준비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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