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옮기고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일정상 호주 여행은 시드니에서 마치게 되었지만 아름답다는 이곳 해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뉴질랜드에서 오던 비행기에서 봤다시피 시드니는 해안선이 무척 복잡하고 아름다운 곳어서 이름난 해변도 여러 곳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숙소에서도 가까운 본다이비치로 목적지를 정했다. 이곳은 해변 자체도 아름답지만 파도가 서핑을 하기에 적합해서 시드니의 여러 해변중에서 서퍼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숙소가 좋아지니 한여름의 눈부시게 밝은 햇살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본다이비치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얼마나 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창밖을 구경하며 가다보니 금새 해변에 닿았다.


호주도 영연방국가이기 때문인지 크리켓을 하고 있다. 


해변 주위로는 수많은 숙박시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있어서 이곳이 꽤나 이름난 해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이내 바다로 뛰어들거나 방금 물에서 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다이비치는 이름난 해변이긴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탈의실, 샤워실 등등)은 거의 없었다. 몇몇 곳에 야외 샤워기가 있었지만 (이것도 많이 부족해서 샤워를 하려면 줄을 서야했다.) 탈의실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미리 숙소에서 수영복을 입고 오길 다행이었다. 편의시설이 부족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여름철 성수기처럼 공공해변에 사설 편의시설을 설치해놓고 바가지요금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다.


절대 한적한 해변을 기대하고 가면 안된다. 어느 정도 불편함과 사람 구경할 각오를 하고 가야한다.


해변 오른쪽에는 유료 해수풀도 있긴하다.



몇몇 사진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찍혔는데 이건 절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어디를 찍어도 한두명은 찍힐 수 밖에 없다.


과연 듣던대로 파도가 제법 높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서퍼들은 먼 바다에서 보드에 앉아 좋은 파도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가 파도에 맞춰 보드에 올라탔다. 감탄이 나올만큼 멋있게 타는 사람은 커녕 넘어지지 않고 해변까지 보드를 타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정도 파도는 초급자나 서핑을 하기에 더 좋은 곳에 갈 수 없는 서퍼들이 아쉬움을 달래는 정도인가보다.


해변에 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하다가 바닷물에 몇 번 들락날락 했는데 멕시코 툴룸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기대보다 본다이비치는 아름다운 해변으로써 썩 감흥을 주진 못했다. 로도스의 에게해, 카프리의 지중해, 후루가다의 홍해, 멕시코의 카리브해에서 좋은 바다를 너무 많이 봐왔는지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바다보다 나아보이진 않았다. (정말 뛰어난 곳이 아니라면 제주도의 바다도 세계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





유명한 곳이어선지 한여름 성수기여선지 제법 넓은 해변인데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한동안 해변에서 햇살을 받다 뜨거우면 물에 들어가길 반복하다 지루해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야외 샤워기에서 대충 소금기를 씻어내고 수영복을 갈아입을만한 탈의실이나 장소를 찾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서 바로 갈아입거나 하진 않을테고 어디엔가 갈아입는 장소가 있을텐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찾은 곳이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공공화장실이었다. 실제로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를 올라 들어간 화장실은 내가 지금까지 본 화장실 중에서 최고로 더럽고 지저분한 화장실이었다. 동남아의 재래식 화장실이나 어렸을 때 시골에서 거름을 주려고 인분을 모으던 그런 화장실이 그리울 정도였다. 구역질이 올라올듯 했지만 젖은 수영복을 입고 버스를 탈 수는 없으니 숨을 참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대학교때 봤던 영화 '트레인스포팅'이었다. 극중에 이완 맥그리거가 구토하는 그 변기가 생각났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모습의 시드니였지만 모든 곳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다. 의외의 곳에서 시드니의 허술함을 체험하고 웃음이 났다.



시드니는 여행중 최악의 숙소와 생애 최악의 화장실을 경험한 곳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정돈된 도시와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의 이미지보다는 좋지 않았던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 호주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았던 울룰루와 세계 최고의 해변 중 하나라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갈 수 없었지만 그다지 아쉬움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일이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만 가득했다. 길게 여겨졌던 여행이 이제 지구 한바퀴를 돌아 단 하루만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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