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완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카이로로 향했다. 선택한 교통편은 숙박비도 아낄겸 야간 열차를 타는 것이었는데 1등석 칸은 깨끗한 공간에 마련된 침대차라고 했지만 동남아에서 다양한 교통편을 경험해 봤으니 2등석 칸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1등석 칸은 시간은 절약될지언정 숙박비를 아낄 수 없을만큼 가격이 비싼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고난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는 법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남겨두고 기차역으로 갔더니 표를 사려는 줄이 꽤 길고 시끌벅적했다. 줄을 기다려 표를 달라고 했더니 없다면서 비키란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사는 걸 봤는데 왜 그러냐고 해도 없다고 하고 그만이었다.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차역에 서 있는데 누군가 왜 그러냐고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찰리'(였던 것 같다. 기억이...)라고 했다.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그 이름... '이집트 4대 천원' 중 한 사람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표를 구할 수 없겠느냐 했더니 문제 없다고 기다리라면서 자기가 매표소로 갔다.
잠시 뒤에 돌아와서는 숫자가 쓰인 두꺼운 골판지를 잘라서 만든 종이조각을 두 개 내밀었다. 이게 표를 대신할 거라면서...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만 제대로 된 표는 없다면서 이걸 보여주면 확실하다는데 썩은 동앗줄일지언정 아스완을 벗어나려면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돈은 딱 표 값만 받았고 팁을 주려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면서 저녁은 먹었냐며 식당까지 안내해줬다. 끝끝내 팁을 거절하고는 나는 한국인들의 친구니까 인터넷에 자기 이야기만 좋게 써달라고 했다.
눈앞의 돈 몇 푼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보는게 믿을만 하겠구나 생각되었다. 당장 나에게 사기를 치고 몇 푼 얻더라도 인터넷에 좋지 않은 이야기가 올라가면 한국인 여행자들이 찾지 않을테니 그런 모험을 하진 않겠구나 싶었다. 이 덩치와 키가 큰 이집션이 왠지 맘에 들었다.
한번도 내 스스로 찾지 않았음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나타나는 '4대 천왕' 중 2명에게 도움을 받았다. 신기할 다름이다.
이 날 탓던 기차는 아니지만 이집트의 기차는 대부분 이렇다. 거친 사막을 달려서인지 낡고 조금 지저분하다.
룩소르에서 만났던 여자 여행자 둘은 험한 경험도 했던 모양이다. 여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이집트인들 특성상 성적인 농담을 자주 당했었는데 기차역에서 심한 소리를 들었었다고 했다. 한 사람은 울음을 터뜨렸고 한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치며 따졌다고 한다. 그러자 경찰이 오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결국 경찰서까지 가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이집트는 여자들끼리만 여행하기에는 조금 거친 동네다. 물론 남자들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혼자 이집트에 도착한 여성 여행자라면 이집트를 같이 여행할 믿음직한 남자 동행을 찾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이들의 특성상(종교적인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남자와 같이 있는 여자에게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
저녁부터 밤새, 그리고 오전내내 달린 기차가 드디어 카이로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공중으로 본 카이로는 누런 모래빛의 삭막해 보이는 곳이었는데 의외로 기차역은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현대식 인테리어가 조화된 새련된 곳이었다.
하지만 기차역을 나오니 '아, 여기 이집트였지'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번잡하고 시끄럽고...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한 숙소 근처까지 도착했다. 숙소는 번화한 타흐릴 광장 근처였는데 이 근처를 아무리 돌아도 구글맵에 표시된 숙소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수차례였고, 그 때마다 친절하게 도와주려 했지만 다들 찾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다 운좋게도 물어본 현지인이 카이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고 이 곳 지리에 훤한 덕분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알고보니 찾느라 힘들었던 이유는 지도에 표시된 곳과 주소가 서로 달랐던 때문이었다.
카이로에는 한국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 있고 교민들도 꽤 살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따라 있는 것이 한국 식당이다. 중동 음식에 지쳐서 한국 식당을 찾았다. 숙소에서 꽤 멀긴 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걷고 걸어서 한국 식당에 도착했다.
얼마만에 먹는 제대로된 한국음식인가... 이날 잊지 못할 간만의 진수성찬을 맛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평온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카이로에 왔으니 가봐야 할 곳, 카이로 박물관을 찾았다. 아쉽게도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는게 수천년전의 유물이라 부주의한 사용으로 플래시 세례라도 받는다면 보존하는데 문제가 많을 것 같다. 훌륭한 여행자는 아니지만 제대로된 여행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 곳의 규칙을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여행자들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행동하고 규칙을 어긴다면 언젠가 그것으로 크게 낭패를 볼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다.
오호, 이 정도의 유물은 실내 전시관의 구석도 차지할 수 없단 말인가?
카이로 박물관의 유물은 너무도 많아서 대충 보더라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더구나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도 부족할 것 같다. 잘 보존된 미이라들은 박물관 내에서 따로 입장료를 내고 봐야하는데 나는 굳이 미이라를 보고 싶진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 이 곳에 투탕카멘 왕의 마스크와 유물들도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친절했다. 길을 물어도 성의껏 가르쳐주고 자신을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섰다. 일부 몇 명은 자기가 가이드해 주겠다거나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사람도 있었다.
TV여행 프로에서 우연히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고 대접받고 그들의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얻는 형식으로 방영한다. 하지만 TV프로는 현지의 가이드와 코디네이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이런 경우를 항상 주의해야 한다. 물론 선의를 배푸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혹시 있을 위험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면 좋게 거절하는게 상책이다.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육체적인 능력을 믿는 것은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여행자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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