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 도착한 아테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보니 그리스 시내는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제는 뉴욕의 뒷골목 같이 어둡고 음습함이 가득했었는데 날이 밝으니 사람들로 가득한 번잡한 시내였다. 다시 배낭을 매고 숙소에서 나와 까페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더니 파업으로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에서 종종 파업으로 애를 먹었다는 여행기를 본 적이 있는데 하필 나에게도 그런 날이 걸린 것이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버스 정류장이 꽤 멀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탓에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제대로 찍힌 사진이 별로 없었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에 도착한 다음, 바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후루가다로 갈 예정이었다. 후루가다는 다합과 함께 이집트 홍해를 대표하는 다이빙 포인트이다. 후루가다에서 다이빙을 배우고 남쪽으로 내려가 이집트 문명의 주요 유적지인 룩소르, 아스완을 본 다음에 다시 카이로로 올라와서 카이로 근교와 바하리아 사막까지 둘러보는게 이집트 여행에서 계획한 경로였다.


저녁쯤 도착한 카이로 공항에서 다시 후루가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니 어느 새 밤이 늦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캡쳐한 지도를 보여주니 무사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샵 '우리집'에 데려다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이로 비행장에 내릴 때쯤 비행기에서 바라 본 카이로의 전경이었다. 지평선까지 온통 뿌연 사막에 커다란 도시가 있는데 도시도 모두 뿌연 모래색이었다. 거대한 모래로 만든 도시처럼 보였다. 하필 해가 질 무렵이라 하늘도 온통 불그스레하고 석양을 받은 모래들도 모두 불그스레한 색이었다.



이집트를 방문하는 많은 여행자들은 후루가다나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다. 다합은 배낭여행자들의 도시이며 다이빙을 배우는데 가격도 싸지만 해변에서 공기통을 메고 오리발을 끼고 다이빙 포인트까지 직접 이동해야 하므로 힘이 든다. 반면 후루가다는 유럽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홍해의 휴양도시로 유명 호텔과 고급 리조트가 많고 다이빙을 배우는데  다합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요트를 타고 포인트까지 가는데다 크루들이 모두 준비를 해주기 때문에 훨씬 편하다.


다이빙은 일단 다음날부터 배우기로 하고 첫째날은 그동안 장거리 배와 비행기로 인해 생긴 피로를 풀었다. 후루가다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리된 도시였다.


이집트인의 주식. 따뜻할 땐 잔뜩 부풀었다가 식으면 호떡처럼 납작해진다.



무슨 메뉴였는지 모르겠다. 대충 설명을 보고 선택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음식이 나왔다. 그래도 먹을만했다.


우리집은 다이빙샵과 숙소를 겸하고 있는데 다이빙 강사님들에게 근처의 식당과 지리를 대충 묻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나서 후루가다의 바다는 어떨까 궁금해져 바다가 있을 것 같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니 어시장이 나왔다. 알록달록 파랗고 붉은 제법 커다란 고기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듣기로 후루가다 근해는 보호를 위해 물고기를 못잡게 되어 있어 여기서 파는 고기들은 멀리서 잡아 온 것들이라고 했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고 찬거리를 사러 온 여자들은 가끔 보였다. 이슬람 국가는 여자들의 사회 활동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도 숙소에도 식당에도 모두 남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터키보다 훨씬 엄격하게 종교적인 규율을 따르고 있는 듯했다.



모스크 앞에 붙은 안내문구. 역시나 터키보다 훨씬 엄격하다.

홍해는 러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열대 바다라서 러시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러시아 안내문구도 붙어있다.


후루가다는 홍해 가까이에 있어 다른 내륙 도시들보다 훨씬 시원했다. 물론 낮에는 무척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도 느껴진다. 물보다 수박이 싼지 당나귀가 수박으로 수분을 섭취하고 있다.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바다가 나왔다. 바다색이 환상적이었다. 내일부터 배울 다이빙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산토리니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예약해둔 페리 때문에 떠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가서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갈 예정이었기에 일정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다시 이집트로 가게 된 이유는 먼저 이야기했듯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 때문에 육로로 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뉴스에서는 이집트도 대통령 선거로 인해 카이로 시내에 동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했지만 다이빙을 배우러 갈 이집트 후루가다의 다이빙 샵에서는 별다른 조짐이 없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이아 마을까지 가려다 그만둔 다음날은 숙소에서 늦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났다. 숙소에서 점심을 만들어 먹고 그날 있을 EPL 11~12시즌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 중계를 해주는 펍을 찾아 돌아다녔다. 어렵게 찾은 펍에는 벌써 맨유와 맨시티 팬들이 나뉘어 TV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유독 중요했던 이유는 서로 다른 상대와 경기를 하지만 이 마지막 경기 결과에 의해 그 해의 우승팀이 갈리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중계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펍답게 왼쪽과 오른쪽 TV에서 동시에 두 경기를 보여줬다.


맨유의 경기가 먼저 끝났다. 맨유는 승리한 상태에서 맨시티는 최약팀 중 하나인 QPR에 오히려 한골차이로 지고 있었다. 경기는 거의 끝나가는데 맨시티가 우승하려면 2골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맨유는 경기장에서 미리 우승 축하 세레모니를 펼치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의 웃음띈 얼굴이 계속해서 TV에 나오고 있었고 펍에 있는 맨유 팬들은 맨시티 팬들을 조롱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다 갑자기 맨시티가 한골을 넣어 동점을 만들었고 맨시티 팬들은 환호했지만 한 골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 맨유팬들은 검지를 까딱이고 고개를 저으며 맨시티 팬들을 놀렸다. 추가 시간도 거의 끝나기 직전 맨시티에서 또다시 한 골을

넣고 승리해버렸다. 맨유 경기장에서 우승 축하를 받던 퍼거슨 감독과 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펍은 난리가 났다. 맨시티 팬들은 환호성과 함께 맨유 팬들을 조롱하기 시작했고 맨유 팬들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마시던 맥주를 놔두고 다들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한동안은 맨시티 팬들의 축제였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있을까? 이래서 스포츠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하나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축구 경기를 산토리니의 펍에서 보게될 줄은... 뜻밖에 산토리니에서 좋은 추억을 갖게 되었다. 참 인생은 알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축구를 보고 나오니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아 마을에서 못 본 석양이 생각나서 근처에 석양이 잘 보이는 벤치를 찾아갔다.







강렬하게 마지막 붉은 빛을 내뿜던 태양이 바다 저편으로 사라졌다. 건너편 섬 너머로 졌으니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은 아니지만 보드룸 풍차 언덕에서 봤던 낙조와 더불어 에게해의 지는 해를 두 번이나 본 것도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은 산토리니에서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라 숙소 테라스에서 해가 뜨는 광경을 보려고 일찍 일어났다. 숙소가 절벽 반대편이라 해가 뜨는 광경을 바로 볼 수 있었다. 비싼 숙소에서는 해가 지는 광경이 보이지만 싼 숙소에서는 해가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아직 어두운 가운데 갑자기 바다 멀리 해가 솟았다.



야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평선에서 해가 솟는 광경을 본적은 몇 번 있지만 여행중에 해가 뜨는 것을 본 기억은 썩 드물었다. 해가 지는 것은 낮동안 여행하다가 해가 질 시간만 맞추면 볼 수 있는데 반해 뜨는 광경은 일찍 일어나서 해가 뜨는 곳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산토리니에서는 저렴한 숙소 덕분에 쉽게 볼 수 없는 해가 뜨는 광경을 테라스에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숙소 테라스에서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다.

반대편 가파른 절벽과 달리 완만한 경사에 펼쳐진 마을과 그너머 짙푸른 에게해가 보인다.

이 정도 뷰라면 가격대비 나름 훌륭한 편이다.


아테네로 떠나는 페리를 기다리며 항구에서 찍은 고양이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옆구리를 파고들어 앞발로 내 허벅지에 열심히 꾹꾹이를 했던 애교 많은 녀석이다.



떠나는 페리에서 본 마지막 피라 마을

당나귀 변이 가득했던 그 냄새나는 계단도 보인다.



해지는 걸 보러갔던 이아 마을


로도스에 갈 때 탓던 페리보다는 안좋았지만 산토리니 올 때 탓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배를 타고 몇 시간 지나니 다들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몇 군데 섬에 정박해 사람들을 태우고...



어느 덧 해가 저물었다.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는 12시가 다 된 시간이라 지하철도 끊어져서 시내로 들어갈 방법이 택시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테네 시내 중심가는 밤이 되면 우범지대가 되어서 꽤나 위험하다고 했다. 산토리니에서 찾아본 아테네 여행 정보에도 그런 내용들이 꽤 많았는데 택시 기사도 예약한 숙소에 데려다 주면서 계속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숙소에 도착하면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뒤도 돌아보지말고 숙소로 뛰어 들어가라고 했다. 길가에 흑인들이 보이면 '블랙 마피아', '블랙 마피아' 그러면서...(택시비가 꽤 나왔다. 한화로 4,5만원은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길도 모르는데 밤이라 제대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위험한 길가에 내리기 싫으면 그냥 나오는대로 줄 수 밖에...)


이집트 아래 수단은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국가로 여기서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비단 수단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르포를 여행 후에 봤다. 유럽 경제가 좋았을 때는 이들이 할 일이 있었지만 경제가 안좋아지니 일거리를 찾을 수 없고 결국 거리를 배회하게 된 듯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일은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의 사정도 안타깝다. 실제 낡은 배에 의지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하지만 택시 기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위협하고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불법 이민자일뿐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일로 가득하다.


내일은 이집트로 가야하는데 만사가 피곤하고 귀찮게 느껴졌다.

산토리니에는 주변 섬들을 투어하는 하루짜리 여행상품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요트에서 선셋을 보는 투어라던지 섬의 해변 투어, 남아있는 화산 분화구와 온천 투어 등이 있었다. 그런데 별로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산토리니 동네를 그냥 맘대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전망대 같은 이 곳도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조금 발품을 팔면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있다.


이아 마을까지 걸어서 가보려고 했는데 저렇게나 까마득하게 멀리 보일 줄이야.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햇볕을 받은 살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얗고 예쁘게 단장된 집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호텔 들이고 문이 닿여있다. 고급 호텔이라 투숙객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듯 벨을 눌러야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볼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이하게 산토리니의 가옥들은 절벽에 지어졌기 때문에 골목으로 이어진 현관은 그 집의 가장 높은 옥상이 되는 셈이고 아랫층의 지붕이 그 윗층의 테라스가 된다. 테라스에서 보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서 보기에 좋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며칠동안 똑같은 풍경이라면 지겨울 것 같기도 하다.



구름이 섬을 지나가면 저쪽에서부터 흰 집들이 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피라에서 몇 개의 마을을 지나치면 우리나라 제주도 같은 돌담길도 나오고 동네 마실나온 강아지들도 만나지만...


금새 다시 고급 별장이나 호텔들이 이어진다.



오래전 사람이 살았을 것 같은 몇몇 집들은 붕괴 위험 때문인지 폐가로 변해있다.


왜 그런지 카메라 설정이 변경되어서 흑백으로 찍혀버렸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찍힌 사진을 카메라 LCD로 봐도 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어서 한동안 모르고 계속 이렇게 찍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서야 깨달았다.


분명 산토리니의 풍경은 멋있고 훌륭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보다는 아름답게 꾸며진 유원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카메라 설정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원래 이아 마을까지 가는게 목표였고, 사진의 레스토랑은 이야 마을까지 반 정도 더 가야했지만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예쁘게 꾸며진 집들은 이제 실컷 봤으니 굳이 더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닷쪽에서 벗어나 현지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돌고 돌아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산토리니는 신혼여행지로 좋은 선택일 것이다. 고급 호텔의 훌륭한 전망을 가진 테라스에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현재를 만끽하고 미래의 행복을 다짐하는 곳으로, 정갈하고 아름다운 옷차림으로 화사하게 미소짓는 사진을 남길만한 곳으로 최적의 장소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흥미를 느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산토리니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몇몇 섬들은 화산 폭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보는 하얀 집이 있는 산토리니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졌지만 반대쪽은 바다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절벽쪽은 비싼 호텔과 레스토랑들이지만 반대쪽은 현지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마을로 이뤄져있고, 이쪽으로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숙소들도 찾을 수 있다. 로도스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부엌이 달린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유럽이나 남미 등에는 이렇게 부엌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아파트가 많아서 여행자들의 경비에 많은 보탬이 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토리니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


역시나... 어제 잘못 본게 아니었다


옛날 항구로 내려가는 돌계단


엄청나게 많은 당나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졸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저 작은 체구로 거대한 덩치의 서양 여행자를 실어나르는게 불쌍하기도 하다.


옛날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돌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절벽의 높이가 꽤 높기 때문에 이 항구로 들어오는 크루즈 관광객들을 태우고 절벽을 오르내리기 위해 당나귀들을 이용하고 있다. 당나귀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가보니 많은 당나귀와 그들이 발디딜틈 없이 퍼질러놓은 변으로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밟지 않고는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길이었다.


절벽 위에서 보면 여기가 화산폭발로 이뤄졌다는걸 확실히 알수 있다. 예전에는 앞쪽에 있는 섬들과 이어져있는 하나의 섬이었고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각각 섬으로 변한 듯하다. 분화구였던 곳은 이제 만이 되어서 커다란 크루즈와 요트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CF에서 봤던 하얀 집들은 절벽 꼭대기의 극히 일부분일 뿐...


당나귀로 오르내리던 길에 지금은 케이블카카 생겨서 당나귀들이 인기가 없다. 당나귀와 몰이꾼들은 대부분 놀고 있다.




옛날 항구는 수심이 깊지 않아서 큰 배들은 들어올 수가 없는지 

작은 배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크루즈를 타고 온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당나귀 변과 냄새를 이기고 힘들게 내려왔는데 막상 내려오니 볼게 없었다. 식당과 기념품 가게 밖에 없었다. 다시 올라가려니 자신이 없어서 비싸지만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어슬렁어슬렁 티라 마을을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산토리니를 찍은 사진에 반드시 나오는 몇몇 건물들은 이 곳에서도 유명한 호텔들이었다. 갑자기 산토리니에 흥미가 떨어졌다. 지금의 산토리니는 단지 예쁘게 꾸며진 놀이동산 같은 곳일뿐이었다. 게다가 관광객의 반 이상이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들을 폄하하거나 나쁘게 볼 생각은 없지만 여기에 있었던 이들은 시끄러웠고 무례했다.


잠시 로도스가 그리워졌고, 차라리 크레타나 다른 섬으로 갈걸 하는 후회도 했다. 생각보다 로도스에 오래 머물렀기에 다른 섬들을 둘러 볼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산토리니였던 것이다.










산토리니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이아마을에서 보는 석양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이아 마을로 갔다.






이아 마을은 석양으로 유명해서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벌써 석양을 보기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도 일찍 도착한 덕에 좋은 자리를 잡고 두어시간 동안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산토리니와 궁합이 맞지 않는 걸까. 낮동안 그렇게 내리쬐더니 저물때가 되자 스물스물 구름이 생기더니 태양이 구름 뒤로 넘어가버렸다.


여행자마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여행지들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장소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나에게 산토리니는 그런 장소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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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에서 로도스로 올 때 탓던 배는 큼직하고 시설도 넓고 깨끗했다. 당연히 그 배를 타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배를 타러 간 항구에는 훨씬 작고 낡아보이는 배가 서 있었다. 코스에서 로도스는 거리도 가까웠는데 로도스에서 산토리니는 하루종일 타야한다. 그런데 배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앞섰다.


항구에는 저렇게 크고 멋진 배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제일 작고 낡은 배를 타게 되다니...


사진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많이 낡았다.



예전에는 수영장으로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용조차 하지 않았다.


저기 앉아있는 서양 아가씨의 기분도 나하고 비슷한 것 같다. 젠장, 이게 뭐야! 이런 기분


배는 시끄럽고 느리고 낡았지만 바다는 아름답다.


그래도 다행히 구명보트는 있다.


시간은 지지리도 안지나갔다. 배에서 파는 저녁은 비싸고 맛도 없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승객들이 많지 않아서 자리를 넓게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몇 시간 지나자 지쳐서 바닥에 침낭을 펼치고 그 위에 드러누웠다. 



밤이 꽤 깊어갈 무렵 드디어 산토리니에 도착했다. 사람들도 어서 내리고 싶은지 나와서 페리의 문의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산토리니 티라 항에서 버스를 타고 산토리니의 중심가인 피라로 갔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찾아가야 하는데 어딘지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여기는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도 시원찮은데다 저렴한 숙소가 있는 곳은 늘상 CF에 나오던 하얀 집들이 있는 절벽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고 늦은 시간이라 이미 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힘들게 찾아간 숙소는 이미 리셉션을 오픈하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당연히 매니저는 퇴근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트 잇에 환영 메시지와 방열쇠를 놔두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좀 게으르기도 하고 그렇다지만 평균적으로 조금 그렇다는 것이다. 이 숙소의 매니저는 다행스럽게도 친절하고 부지런한 고마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자 항구에서부터 산토리니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CF에서는 온 절벽이 하얀집으로 가득한 것 같았는데 언뜻 본 모습은 절벽 꼭대기에 흰 집들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았다. 어두워서 잘못 봤겠지... 내일 가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절벽에 눈부시게 흰 집들이 가득할거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고 찜찜했다.


* CF에서 흔히보던 산토리니의 하얀집들은 대부분이 다 호텔이다. 거기다 가격이 ㅎㄷㄷ하다. 옛날에는 현지 주민들이 살아가던 집들이었겠지만 관광지로 알려지고 나서는 나 같은 배낭 여행자는 꿈도 못꿀 값비싼 호텔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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