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파타고니아 여행을 위해서는 남미 대륙의 남쪽 끝에 있는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나 푼타 아레나스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려면 꼬박 2박 3일이 걸리는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긴거리는 비행기, 짧은 거리는 버스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아르헨티나인 바릴로체에서 일단 버스로 칠레 푸에르토 몬트로 가서 하루를 묵은 뒤, 비행기로 푼타 아레나스로 가고, 다시 거기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기로 했다.


파타고니아는 특정 국가에 속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여행하려면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빈번히 넘나들어야 한다. 세어보니 이번 여행 중 총 다섯번쯤 국경을 넘은 듯하다.


이른 아침, 푸에르토 몬트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어찌나 센지 이곳의 나무들은 주로 부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나뭇가지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자란다.




바릴로체와 푸에르토 몬트를 넘어가는 길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나누는 안데스 산맥을 넘는 길인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숙소 주인장도 추천했었고 여행책자에도 그렇게 나와있었다. 초반에는 황량한 황무지와 멀리 눈쌓인 안데스 산맥만 보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온 세상이 눈밭이었다. 한참 안데스의 고개를 넘느라 꽤 높은 고도로 올라온 듯하다.



남미의 장거리 버스들은 대부분 운전석과 승객석이 문으로 차단되어 있어 운전자가 문을 열어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다. 버스를 운전하는 동안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 같은데, 사고나 뜻밖의 사태에서 승객이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창밖으로 눈쌓인 숲을 바라보다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 깼을 때는 아름답다는 바릴로체와 푸에르토 몬트를 잇는 길은 끝나있었다. 내가 잠든 동안 아름다운 길을 지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이 길이 특별히 아름다운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름다울 때는 봄이나 여름에 신록이 우거질때가 아닐까 싶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민족과 문화가 매우 다르듯이 아르헨티나와 칠레도 무척이나 다르다. 칠레는 아르헨티나보다 백인 비율이 낮고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  (볼리비아와 페루로 가면서 인디오의 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해안선이 단순하고 대서양에 접한 아르헨티나의 주식은 육류인데 반해 해안선이 무척 복잡하고 섬이 많은 칠레는 해산물 요리도 다양하다. 음식의 다양성으로 따지면 칠레의 음식이 훨씬 흥미롭다.(하지만 칠레의 소고기와 와인은 아르헨티나의 소고기와 와인에 비해 몇 수 뒤진다.)


남미의 숙소에는 대부분 부엌을 포함하고 있어서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요리하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푸에르토 몬트의 숙소도 마찬가지여서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만들었다. 칠레의 대형마트는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못지않게 다양한 제품으로 가득한데, 특히나 저렴하고 신선한 해산물들과 훌륭하지만 또한 저렴한 빵과 케잌류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칠레 내에서 생산되는 에일 맥주도 무척 다양했다.


이것은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내고 다시 푸에르토 몬트에 왔을 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 부근에 독일 이민자들이 터를 잡았기 때문에 이들이 독일에서 가져온 맥주 생산기술과 제과/제빵 기술이 전파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후에 쓰겠지만 푸에르토 몬트 근처의 푸에르토 바라스에서 먹은 케잌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디서 먹은 케잌보다 맛있었지만 가격은 절반 이하였다.)



마트에서 조개와 게를 사다가 가지고 있던 고추장으로 해물탕을 끓였다. 내일이면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떠나야하므로 다양한 재료를 넣을 순 없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보기 힘들었던 해산물을 보니 너무나 반가운데다 고기류 음식에 질렸기 때문에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였다. 거기다가 여러가지 맥주까지 곁들이니 위에 낀 기름기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면 다시 푸에르토 몬트로 와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갈 예정이라 여기서는 단 하루를 머물렀을 뿐이다. 하지만, 저렴한 식재료와 훌륭한 숙소 시설 때문에 돌아갈 때는 여기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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