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땅고 사랑은 유별나서 주말에도 공원에서 땅고를 추거나 강습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왔다. 그런데, 그 주에는 모임이 없었는지 땅고를 추는 사람들은 안보이고 공원에는 이른 봄을 만끽하러 나온 가족이나 연인들 밖에 없었다. 비록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하늘도 맑고, 오랜만에 따뜻한 날씨라 기분 좋게 햇살을 쬘 수 있었다. 이런 공원에서 보는 풍경은 지구 반바퀴가 떨어진 나라라도 비슷하다.



땅고 구경을 못했지만 이 공원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가보기로 했다. 차이나타운 입구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차이나타운임을 나타내는 예의 그 붉은 색의 커다란 문이 있었고, 갖가지 중국음식(약간은 현지화된)과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며칠전 한식을 먹기 위해 갔던 코리아타운에는 주로 한국인들만 있었는데 이 곳은 아르헨티나에 사는 중국인 이민자뿐만 아니라 현지인이나 관광객도 무척 많았다. 


세계 어디서나 중국 음식점은 찾을 수 있고 현지인들도 널리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음식점은 한국 이민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지난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었음에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문화의 전파를 자신의 임기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조급함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싶다. 문화는 단기간에 비용을 들인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닌만큼 우리 식문화를 알리려면 오랜기간 현지인들에게 녹아들어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의 식문화가 아르헨티나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 식료품점에서 파는 많은 상품들이 한국 기업들이 수출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 음식이 아니라 중국 음식으로 알고 먹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길에서 가장 많이 먹으며 다니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 '메로나'라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메로나의 색깔이 연두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메론이 대부분 연두색일뿐 실제 메론의 과육은 주황색을 띈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메론은 주황색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다음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기억에 남았던 곳은 아름다운 서점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엘 아테네오'였다. 아름다운 서점으로 여러번 매체에 소개된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은 짧은 일정탓에 가볼 수 없었지만 엘 아테네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엘 아테네오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서점이다. 무대는 까페로 사용되고 있고, 관람석은 모두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엘 아테네오의 훌륭했던 디저트


무대에서 바라 본 서점





둥그런 오페라 극장의 관람석에 맞춰 책도 그렇게 전시되어 있다. 사용하지 않는 오페라 건물을 서점으로 리모델링해 도시의 명소로 만든 이들의 현명함이 놀라웠다.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하에는 어린이용 도서가 전시되어 있는데 놀이방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있다. 책장 사이의 공간도 충분하고 중간중간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소파나 의자를 갖춰 놓았다. 책만 잔뜩 쌓여있는 우리네 대형서점은 책을 파는데만 집중하고 책을 보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던게 아닐까.


지하층에서 윗층을 보면 전시된 책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도 사용되는 오페라 극장처럼 보인다.






엘 아테네오 서점은 단지 오페라 극장이었던 건물을 활용한 서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옛것을 현대에 어떻게 재활용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는 것 같다. 아울러,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게되는 고객을 위한 배려가 결국은 더욱 많은 고객을 불러온다는 것을,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들까지 오게 만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요즘 소비자들은 현명하면서도 영악하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도 구매해주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고객만족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뭐, 잘 알고 있겠지만 할 수 없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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