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이 없는 체질이라 그런지 낯선 여행지의 아침 풍경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곳이건 아침에는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밤에는 여행지로서 여행자를 위한 단장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침에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리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싶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했다. 잔뜩 흐린 날씨가 여행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창산문을 통해 들어간 꾸청에는 벌써 아침 장사준비를 하는 상인들이 꽤 많이 나와있었다. 꾸청 안에는 꽤 큰 시장이 있는데 그 곳을 중심으로 주위에 노점과 가게들이 많아서 낮에는 매우 붐빈다. 아침이라 그나마 사진 찍으며 걸을 만 했다.



길거리에서 돼지 해체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혐오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동네 정육점에 돼지들이 통째로 걸려있던 모습이나 시골에서 잔치를 위해 돼지를 잡는 모습을 보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광경이다.





정육점에는 훈제용으로 걸어놓은 고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훈제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수천 킬로 떨어진 곳이지만 먹고 사는 방법은 다들 비슷하다. 남미에 있는 말이나 몽고에 있는 말이나 말은 말이다. 털이 길고, 덩치가 크다고 해서 아닐 수는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썼지만 따리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인기있는 곳은 아니었다. 며칠간 따리에 머무르면서 한국 사람을 본 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꾸청 내 표지판은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순으로 반드시 한글로도 쓰여져 있었는데 이 한글 표지판 대부분이 엉터리라 배꼽잡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리에도 한글을 잘 아는 유학생, 교포들이 있을텐데 어째서 이런 엉터리 표지판이 계속 쓰는지 모르겠다.


다른 것들도 우습지만 '시 두 번째 사람의 병원'이라니... '시립 제2인민병원'이겠지?


꾸청 내에는 교회마저도 전통가옥 모습을 하고 있다.


아침 장을 보러 나오신 할머니 두 분의 담소가 정답게 들렸다.


꾸청 북문은 다른 문들보다 작고 낡아있었다. 아마도 북쪽은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이라 그런듯...


따리꾸청 영화관. 건물밖에 영화포스터조차 없어서 간판이 아니었다면 영화관인지 몰랐을 거다.


아침나절을 꾸청내에서 산책하며 보내고 다시 창산문으로 나오니 문 양쪽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은 전통적인 중국인들의 신체단련법인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른쪽은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태극권쪽은 나이 드신 분들 위주, 에어로빅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 위주였다. 수십년이 지나면 공원에서 태극권을 단련하는 중국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근 전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


저녁이 되면 길가에 음식을 파는 천막들이 쭉 펼쳐졌다. 이 간이식당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장사를 한 다음에 오전 중에 모두 사라졌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나왔다. 잠은 어디서 자는건가 궁금했는데 천막 한쪽에 침상과 담요가 놓여있는게 한쪽에서 쪽잠을 자는 것 같았다. 주변에 멀쩡한 식당들이 많은데도 이 간이식당들에는 생각외로 손님이 많아서 놀랬다. 저렴한 식사를 찾는 사람들이 고객층인 것 같았다.


돌아와서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고 강아지(이름이 '따리'였다.)와 놀다가 따리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충셍시산타(崇圣寺三塔, 숭성사삼탑)을 보러 나섰다.


사람을 무지 좋아하고 애교가 많았던 '따리'. 내 손가락을 야무지게, 하지만 아프지않게 물고 있다.




삼탑을 보러 가는 길에는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위도가 낮은 곳이라 늦가을임에도 꽃이 피어있었다.(쿤밍이나 따리에는 1년 내내 꽃이 핀다고 한다.)


고급 석재로 건축자재나 실내 인테리어에 많이 쓰이는 대리석의 '대리'는 이곳 지명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돌이 많이 채굴되었다고 한다. 그런 돌에 이곳의 지명을 붙여서 대리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삼탑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원석의 대리석을 채굴해 가공하는 석재상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돌을 깎는 소리가 들리고, 길가에는 돌가루가 흩날렸다. 석재상 안에는 아름답게 가공되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커다란 대리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행 전 도서관에서 빌린 책자에는 삼탑을 볼 수 있는 숭성사 입장료가 매우 비싸니 근처 공원 입장료를 사면 조금 멀더라도 삼탑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마을을 돌아다니고, 지도를 봐도 그 공원이라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공원이라고 예상되는 곳에 있는 작은 매표소에 물어봤더니 숭성사와 삼탑을 모두 볼 수 있는 입장료가 200위안(아마도 그정도 였던 것 같다.)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황당했지만 생각해보니 관광객들이 공원만 들어가서 보고 정작 비싼 숭성사 입장료는 사질 않아서 공원과 숭성사를 합해버린게 아닌가 싶었다. 중국의 과도한 입장료 수수정책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여행책에서조차 반드시 볼 필요는 없다고 하는 숭성사와 삼탑을 4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보고싶지는 않았다.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사진이나 찍자는 생각으로 근처 마을 골목을 돌아다녔다.


봐도 가치를 잘 모르는 삼탑보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마을 공터에 아침에만 잠깐 서는 장이 열렸나보다.



마을 공터에 있던 우물. 삼우정이라고 부르며 위에서부터 먹는 물, 씻는 물, 빨래하는 물 순서대로 썼다고 한다.




대리석 원산지답게 마을 입구에 거대한 대리석을 세워놓았다.


중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어느새 날은 맑게 개었지만 4000미터가 넘는 창산에는 항상 구름이 끼어있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이런 거대한 불탑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숭성사의 불탑이 가장 유명하고 높은데, 가장 큰 불탑은 높이가 거의 70미터에 육박하고 좌우의 작은 불탑들도 42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은 이 불탑의 가치를 알아볼만한 수준이 안되어서 그냥 크다, 높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러번 복구했다더니 불탑은 오래된 느낌도 들지 않았고 숭성사도 창건된지는 오래되었지만 건물들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숙소 내부. 지은지 얼마 안되는 건물이지만 구조는 옛날 그대로라 제법 중국 전통객잔 분위기가 났다.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어제 다못한 꾸청 구경에 나섰다. 오전내내 어디선가 폭죽터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는데 꾸청쪽으로 걸어가다보니 폭죽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중국 사람들은 명절이나 기념일, 개업 등등에 귀신을 쫓고 복을 비는 의미로 폭죽을 많이 터뜨린다던데 무슨 일로 폭죽을 터뜨리나 궁금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봤다.



소리의 정체는 오늘 개업한 가게에서 터뜨리는 폭죽이었다. 얼마나 터뜨렸는지 가게 앞에는 폭죽 껍질이 수없이 쌓였고, 근처에는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가 가득했다. 시끄럽고 불편할만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서 주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침 꾸청 산책부터 삼탑까지 제법 걸었던터라 오후 일정 전에 배도 채우고 다리도 쉴겸해서 따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독일 아줌마가 주인인 베이커리에 가서 케익과 커피를 시켰다. 먼저 가격이 한국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서 놀랐고, 맛이 없어서 두번째 놀랐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케익인 칠레 푸에르토 바라스의 할머니네는 커녕 우리나라 파리바게뜨보다 더 못했다. 누가 따리 최고의 베이커리라고 했는지, 혹시 그 뒤에 맛이 바뀌었는지, 메뉴를 잘못 선택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형편없었다.



케익보다는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는지 쉬었다 가기에는 좋았다.


어차피 쉬려고 온 곳이니 새로 산 사진기를 시험하며 시간을 보냈다.


맛없는 케익으로는 배가 차질 않아서 결국 다른 곳에서 만두 한판을 먹어야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차례대로 사진을 찍던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홍롱징(紅龍井, 홍룡정)이 나온다. 예전의 오래된 우물을 최근에 보수했는지 용이 새겨진 개성없는 정자가 우물을 덮고 있었다. 우물 모양을 해놓은 곳에는 배추모양의 조각상이 있었고 이것을 관광 온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우물과 배추에 연관된 전설이라도 있나보다 싶었다. 가서 보려고 할 즈음에 수십명의 단체관광 온 아주머니들이 나타나서 우물을 점령해버렸다. 뚫고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우물 내부를 보는 것은 포기해버렸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이 길을 쭉 올라가면 '홍룡정'이 나온다.


어째서 누각이 빌딩이 되어버리고, '인민로'는 '인민으로'가 되었나?


이것도 만만치않네. 인터넷 번역기의 결과를 그대로 쓴 것인지도...


다음으로 간 곳은 꾸청내 번화가 옆에 있는 다이저우보우관(大理州博物館)이었다. 이 곳은 남조 대리국의 유물을 주로 전시하는 근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박물관의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고, 전시품도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 앉아서 쉬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여기서 쉰 것을 후회했다.







박물관 전시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밀하게 만들어진 토기인형들이었다. 말을 끌고 있는 사람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토기들의 만듦이 무척 섬세해서 그 시대의 복식이나 악기, 마구 등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쯤 와서였나, 손에 모자가 들려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지 4년이 넘었고 이제는 꽤 낡은 등산모자였지만, 세계 각지에서 나와 추억을 같이 했던 무척 정든 것이었다. 박물관 건물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앉았던 벤치에 놔둔 것이 기억나서 부랴부랴 가봤지만 없었다. 아직 트레킹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모자가 필요한 시간은 이제부터인데 한순간 부주의로 수 년간 정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게 낫다. 가져간 누군가가 아껴서 오랫동안 사용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박물관을 나와 따리꾸청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에 올라가는 계단을 찾지 못해 헤맸는데 여자공안에게 물어보니 남문에서 양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계단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11년전 처음 선전으로 출장 갔을 때, 길을 물었던 공안은 무척 무뚝뚝하고 위압적이었는데 그 동안 조금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따리의 공안은 꽤 친절했다.



남문에서 본 꾸청 번화가. 반대쪽에 오화루가 보인다.


남문에서 본 창산의 거대한 줄기


작지만 한 나라의 수도여서 그런지 작은 규모 치고는 성벽이 꽤 두꺼운 것 같다. 그런데 쓰레기는 좀 버리지 말자고.


꾸청 내의 집들은 모두 회색의 기와와 흰색의 벽을 하고 있다.




요즘 중국에서 결혼하는 젊은 커플들의 관심사는 야외 웨딩촬영인가보다. 우리나라도 십수년 전에는 야외 웨딩촬영이 필수코스였던 적이 있었는데 중국은 지금 한창인 듯하다. 따리꾸청 성벽위에서 웨딩촬영하는 커플이 몇 커플이 있었고, 뒤에 여러 곳에서 웨딩촬영하는 많은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리장의 옥룡설산에서 눈비가 오는 와중에도 얇은 드레스만 입고 굿굿하게 촬영을 하던 커플들은 정말 대단했다.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인다.


혹시나해서 구글 번역기에 넣어봤더니 '당신의 머리를 마음'이라고 나온다. 역시나 번역기를 사용한 것이었다.



남문에서 오화루로 자리를 옮겼다. 오화루는 꾸청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이곳에서는 창산과 꾸청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오화루에 오르는 계단은 오화루에 있는 상가 안쪽에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백과사전에는 창산이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있다고 나오지만 창산에 만년설은 없다. 알프스는 해발 4000미터가 안되더라도 만년설을 볼 수 있고, 남미 파타고니아에서는 해발 1,200미터에서도 빙하를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위도가 낮은 곳이라 4100미터가 넘는 창산에도 만년설을 볼 수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도가 낮은 지역에 있는 만년설이 리장의 옥룡설산이라는데 이 산은 5600미터에 가까운 높이다. 만년설은 없지만 오화루에서 보이는 창산의 산세는 무척 크고 웅장해서 볼만했다.




멀리 보이는 남문. 사실 멀지 않은데 사진이 광각이라 그렇다.



저녁식사는 다시 양꼬치와 볶음밥, 가지구이로 해결했다. 특히 양꼬치가 우리나라에 비해 가격도 싸고 무척 맛있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적을뿐더러 냉동고기가 아닌 생고기일테니 당연히 더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숙박비와 교통비가 저렴하고, 음식도 고가에서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다양해서 입장료만 과하지 않다면 중국은 꽤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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