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을 정리하다 마무리를 짓지않고, 10월달에 다녀온 중국여행부터 정리하려고 한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친지 한달이 넘어가다보니 슬슬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 늦어진 세계여행은 조금 더 미뤄두고 잊기 전에 중국여행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얼마남지않은 세계여행 정리를 마무리하게 되면 조금은 헛헛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않는 일투성이다. 세계여행 후,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근무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서 더는 할 일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 어떤 선배들은 기다리다보면 기회가 온다는 조언을 하시기도 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마냥 기다리는 것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더 나았을지 정답은 없고, 알 수도 없다.
회사를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나니, 탈탈 털면 3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심끝에 선택한 여행지가 중국 윈난(雲南)성이었다.
위난성을 여행지로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수 년 전 읽었던 여행 책에서 리장이 배낭여행자의 천국으로 그려지고 있었다는 점, 둘째는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라는 후타오샤(호도협)가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셋째는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샹그릴라(라고 중국정부가 지정해버린 것이지만)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라면 한국에서 바로 윈난성 리장이나 샹그릴라로 가야겠지만 문제는 직항이 없었다. 그래서, 인천에서 직항이 있는 쿤밍으로 가서 따리-리장-호도협-샹그릴라-매리설산 순으로 코스를 잡았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리장이나 샹그릴라로 가려면 쿤밍보다는 먼저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가서 로컬 항공기로 갈아타고 가면 된다.)
윈난성은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쓰촨성, 서북쪽으로는 티벳자치구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의 오른쪽 끝자락이기도 하다. 구름의 남쪽(雲南)이라니 이름조차 서정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탄 중국 동방항공. 기내식이 좀 부실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썼던 카메라는 성능도 떨어지는 데다가 언제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낡았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할때 DSLR이나 미러리스는 부담이 될터라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지만 성능은 괜찮은 수준급 카메라가 대상이었다. 몇몇 카메라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SONY RX100M3 였다. 후속기종까지 나왔지만 동영상이나 특별한 몇몇 기능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구형이지만 저렴한 모델로 구매했다. 아쉬웠다면 면세점에서 이런저런 할인과 쿠폰을 적용해 사다보니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바로 여행을 떠나야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늦게 출발해서 다섯시간쯤 걸려 쿤밍에 도착했다. 쿤밍 공항에 지하철이 있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쿤밍시내까지 가진 않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도 변변치 않아서 택시를 탓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조금 멀다싶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쿤밍의 택시비는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중국 물가가 생각보다 비쌀거라는 충고가 벌써 와 닿았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저녁이나 먹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조금 걸어나오니 24시간하는 패스트푸드 점들이 보였다. 햄버거 세트의 가격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저렴한 음식이 어째 한국에서는 일반 음식과 가격차이가 없고 중국에서는 되려 비싼 음식이 되어버린다.
볼품은 없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밤이라 그런지 야채가 시들시들.
도착하기 전, 쿤밍은 '꽃의 도시'라고까지 불리는 사시사철 온화하고 따뜻한 곳이라고 들었다. 위도상으로는 열대기후에 가까워야 하지만 고도가 1890미터라 그런 것이다. 그러나, 쿤밍에 머물렀던 며칠 간 아침저녁으로 꽤나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맑은 날씨보다는 흐리거나 비가 흩뿌리는 날씨가 더 많았다. 한국의 10월 초중순보다 오히려 추웠다.
전날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렸는지 도시가 젖어 있었는데 다음날 숙소에서 나오니 다행히 하늘이 개어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내려오면 '정의'라 쓰여진 현판이 걸린 큰 문이 있었다. 그 문을 등지고 남북으로 나있는 길에는 쇼핑센터나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서울 명동과 비슷한 상업중심지역인 것 같았다.
중국에 처음 온 여행자가 여기서 길을 건널 땐 대부분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중국에 몇 번 출장 다닌 경험이 있지만, 항상 처음 며칠은 당황스러웠다. 몇 년 사이에 차와 스쿠터(특히 소리도 나지 않는 전기스쿠터는 꽤 위험했다.)는 크게 늘어난 반면, 사람들의 교통의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아서 점점 더 주의해야 할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건널목에서 보행자 신호가 켜졌다고 안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보행자 신호가 켜지면 건널목으로 들어오는 차들의 숫자와 속도가 좀 줄어들 뿐이다. 그리고, 길을 건널때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하는 차들 모두를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차들이 차선과 신호를 무시하고 들어오니 한국에서 익숙해진대로 한쪽에서 오는 차들만 주의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질때까지 며칠은 길을 건널 때는 무조건 현지인들을 좌우에 두고 속도를 맞춰 후다닥 건너는게 상책이다.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는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국인들의 애플 선호가 한눈에 띌 정도로 애플 관련 매장이 많았다는 것(애플 매장, 로컬 스마트폰 브랜드 매장, 다음이 삼성 매장이었다. 중국에서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약화되고 있다는게 절실히 느껴졌다.), 중국의 로컬 스포츠 브랜드가 다양하고, 매장이 무척 많다는 것(중국인들의 경제수준이 올라가다보니 레저에도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이었다.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모여서 체조(혹은 댄스)를 하거나 주의사항을 전달받는 듯한 모습이 흔히 보였다.
하긴, 우리나라 회사에서 체조를 하거나 사가(社哥)를 부르지 않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아침이라 거리가 한산했다.
스타벅스 커피가 무척 비쌌다. 비싸다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쌌다. 그 돈을 내고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윈난은 중국의 성들 중에서 소수민족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 공인한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25개 민족이 윈난에 있다고 한다. 쿤밍에도 일부 소수민족들은 아침마다 공원에 모여서 전통복장을 하고 춤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이들의 전통도 국가라는 커다란 용광로에 차츰 녹아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들. 힙합모자를 쓰고 태극권이라...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다가 한 식당에 현지인들이 제법 많길래 들어갔다. 한데, 이들은 국수 하나에도 올리는 고명에 따라 종류를 수십가지로 나눠놓았다. 그리고, 주문을 받는 사람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중국어 외에는 아주 기본적인 영어 단어도 통하지 않았다. 손짓발짓에 눈치까지 섞어 겨우 주문을 마쳤다. 맛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톡 쏘는 향신료와 뚝뚝 끊어지는 쌀국수 면발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보기엔 참 얼큰해 보였는데...
국수가 맛있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 입맛 덕분에 한그릇을 다 먹었다. 그런데도 배가 차지 않아서 그나마 아는 음식으로 샤오롱바오를 하나 더 시켰다. 그런데 나온 것은 만두안에 육즙이 차 있는 샤오롱바오가 아니라 그냥 찐빵에 약간의 고기소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투덜대면서도 다 먹었다. 모든걸 뱃속으로 넘길 수 있는 이 입맛 덕분에 여행이 덜 힘들어진다.
현지인들은 제법 많았는데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윈난의 음식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나보다.
여행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지 못한 것을 볼 수도 있고, 현지인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의 단점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꽃의 도시라더니 역시 꽃이나 화분을 파는 곳들이 많았다.
윈난 여행을 하면서 까만물에 삶아지고 있는 계란이나 메추리알을 자주 봤다. 혹시 병아리라도 나올까봐 시도는 하지못했다.
천천히 구경하며 걷다보니 쿤밍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완통시(원통사)에 도착했다. 볼게 많지는 않지만 중국 관광지의 입장료가 너무나 비싸다보니 원통사처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봐야한다.
원통사는 세워진지 천년이 넘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었다.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건물은 대부분 근대에 다시 지어지거나 복원된 건물이다.
새로 산 카메라의 아웃포커싱 성능 테스트도 해보고...
똑딱이 카메라 치고는 아주 훌륭한 성능이다. 다만, 가격이 똑딱이가 아니라는게 문제.
원통사의 연못에는 수많은 거북이들이 햇볕이 쬐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생태계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붉은귀 거북인 것 같았다. 이 거북들은 아마 절을 찾는 신자들이 방생을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복을 받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시장에서 거북이를 사다가 방생하는 것과 복을 받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텐데.
징그럽게 많았다. 그리고, 애완용인 붉은 귀 거북이 이렇게나 크게 자라는 줄 몰랐다.
원통사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취후(취호)공원으로 갔다. 비취색 호수의 공원이라는 뜻인 것같은데 영어식으로는 Green Lake Park였다. 물빛이 진한 녹색인게 영어식 이름이 적당한 듯 싶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차림새도 그렇고 표정도 넉넉해 보인다.
연꽃이 만개하면 보기에 좋을텐데...
호수 안쪽에는 섬이 있는데 동서남북 네 개의 다리로 건너갈 수 있다. 섬 안에 뭔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팔거나 여행자들을 위한 간단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취호공원은 볼거리가 풍부한,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다. 쿤밍시민들이 산책하고 가볍게 나들이하는 공원일 뿐이지만 시간이 있다면 쿤밍 사람들의 나들이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취호공원 남쪽 입구로 나오니 할아버지가 커다란 붓을 들고 글씨를 쓰고 있었다. 먼저 쓴 글자들이 희미하게 말라서 없어지는게 물로 쓰는 것이었다. 한문도, 서예도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쓴 글이 제법 멋있게 보였다. 저 커다란 붓으로 흔들림없이 글을 쓰려면 다리와 허리가 꽤 튼튼해야 할 것 같은데 쉬지않고 글을 쓰는 할아버지의 체력도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글을 쓰면서 서예만 아니라 체력과 정신도 함께 달련하시는 것 같다.
막대기와 페트병으로 만든 붓.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명장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다시 걸어서 윈난 대학교 근처 까페가 많은 거리로 갔다. 윈난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했다. 까페에 가면 커피 종류가 윈난원두와 해외 원두로 나뉘어져 있었다. 윈난원두를 선택해 마셔보았지만, 특징적인 인상은 받지 못했다. 원두를 사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까 했는데 마셔보고는 관뒀다.
역시 중국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서 좋다. 다만, 시키기가 너무 복잡해서 한참 지켜보다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말이 안통하면 어쩔 수 없이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시내를 작게 한바퀴 돌면서 둘러봤지만 박물관은 공사중이라 문을 닫았고, 번잡한 거리를 사람과 스쿠터, 차를 피해 다니다보니 몸보다 머리가 먼저 피곤해졌다. 게다가 700만이 사는 거대도시라 매연도 심한 편이었다. 한바퀴를 돌아 오전에 왔던 거리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무척 많아져있었다.
거리에 야외 안마소가 차려졌다.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5년 전 출장때 베이징에서 마사지를 받고 며칠간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적이 있어서 포기했다.
팔꿈치로 어깨근육을 사정없이 문지른다. 보기만해도 아프다.
늦은 점심은 쿤밍에서 유명하다는 훠궈 식당에 갔다. 역시나 이전 출장때 맛봤던 훠궈가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유명하다니 한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식당이었지만 여기서도 주문을 하려니 손짓발짓에 눈치까지 동원해야 했다. 어렵사리 주문을 하고, 육수가 끓고 주위에 먼저 먹고 있는 중국인들을 흘끗거리며 따라서 먹었지만 결론은 '맛이 없다' 였다. 여행책에는 훌륭하다고 나와 있었고, 까다롭지 않기로는 넉넉히 상위 1등급을 차지할 입맛이지만 분명 맛이 없었다. 윈난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이 식당 음식맛이 바뀌었거나, 여행책 저자가 맛을 본 적이 없거나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처음엔 첫번째 이유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 많아서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엄청 들어가있던 돼지뼈들. 그런데 뼈에 붙은 고기가 질겨서 떨어지질 않았다.
이 육수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어봤지만 짜기만하고 맛이 없었다.
거금을 들인 식사를 실패하고 오후 늦게 열린 길거리 음식점을 기웃거렸다.
쿤밍 여행 1일차. 쿤밍은 중국의 커다랗고 번잡한 대도시였다. 삼국지연의에 제갈공명이 정복한 남만이 바로 이곳이지만, 역사적인 유적도 없고, 별다른 특징도 없다. 여행 목적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쿤밍에(적어도 쿤밍시내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진 못할 것 같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들이 모두 우리나라 발음으로 되어 있어서 정작 중국사람들에게 뭐라고 물어야 할지, 바이두 지도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바이두에서 검색하려면 일단 중국단어의 영어표기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한다.) 중국말은 모르지만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은 지명이나 관광지의 정확한 중국식 발음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하는지를 정리해 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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