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에서 300여 km가 떨어져있는 따리는 쿤밍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여섯시간쯤 가야 도착한다. 어제의 동부버스터미널과 마찬가지로 서부버스터미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나마 버스비는 생각보다 높은 중국물가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3,4개 정도로 버스비가 나뉘어 있는데 좋은 등급일거라고 생각하고 조금 비싼 가격을 주고 탄 버스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봐서는 버스 등급보다는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별로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버스였는데 내가 탄 좌석 에어콘 송풍구가 덕지덕지 바른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아마 부서진 송풍구를 수리하지 않고 대충 막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트도 깨끗한 편이고 버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음식물을 좀 덜 먹으면 훨씬 쾌적할텐데... (이 버스를 타고 있으니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탓던 많은 버스들, 그 중에서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프놈펜으로 가던 버스가 생각났다. 부서진 에어콘 송풍구로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들어와 버스안이 온통 뿌옇던... 그땐 정말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마저 그립다.)


문득 다른쪽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이드미러가 부서져 덜렁거리는 채로 운행되는 버스가 보인다.


오늘도 날씨는 좋지 않아서 잔뜩 구름낀 날씨에 가끔 비가 흩뿌렸다. 여행전에 확인한 일기예보에 윈난의 날씨가 안좋을거라 했지만 이렇게나 잘 맞을 줄은 몰랐다. 버스는 10월 중순임에도 짙푸른 녹음 사이로 난 도로를 부지런히 내달렸다. 



한참 가다보니 처마 밑 벽에 동그란 무늬가 그려진 집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 무늬는 집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다.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거주지임을 나타내는 표시일까... 왜 그려놓은 건지 궁금했는데 결국 모른채 여행을 마쳤다.


두세시간쯤 달리고나서 버스는 휴게소에 멈췄다. 중국의 장거리 버스는 쉬는 시간을 보통 20분 이상으로 넉넉하게 줬다. 버스 안에서 이미 뭔가를 먹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휴게소에서 내려 또 음식을 사 먹었다. 중국사람들의 음식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휴게소는 깔끔했고 투명한 유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조리대도 깨끗했다. 휴게소 음식들이 어디나 그렇듯이 간단한 음식임에도 가격은 일반 식당에 못지 않았다. 게다가 위생은 중국에서 쉽게 보기 힘들만큼 나무랄때 없었지만 고른 음식들은 영 맛이 없었다. 윈난에 와서 자꾸만 음식선택에 실패했다. 윈난음식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내가 고른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인지... 지금껏 여행다니면서 맛없는 음식이 별로 없었는데...



쿤밍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는 곳은 여행자들이 목적지로하는 따리꾸청(古城)이 아니다. 따리시는 커다란 얼하이(洱海)이 호수를 빙둘러 도시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있는 따리의 신시가는 호수의 남쪽에 있고 따리꾸청은 얼하이 호수 왼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리꾸청은 버스터미널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있어서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야한다. (얼하이 호수는 꽤 커서 중국에서 7번째 큰 담수호라고 한다.)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택시기사와 흥정했지만 가격을 너무 세게 불렀다. 80위안쯤 부른 것으로 기억하는데 15km에 그 정도 가격이면 서울 택시비보다 더 높으니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택시기사들은 꾸청으로 가는 여행자들을 쉽게 태울 수 있는지 절대 그 이하로 깎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세계여행때 사용했던 커다란 배낭을 매고 한참 걸어서 시내버스를 탓다.


꾸청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내리고 보니 예약한 숙소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배도 출출한데 근처에 아주머니가 뭔가를 구워 팔길래 구경하다가 하나 사먹었다. 뭘로 만든 반죽인지 모르겠지만 묽은 반죽을 구워서 계란과 상추 같은 야채, 바나나, 여러가지 소스를 넣어서 만 것이었다.(태국이나 라오스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여기서 파는 것과 조금 다르다.) 배고픈 와중에 뜨끈한 것이 들어가니 꽤 맛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꾸청 안에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깔끔한게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꾸청 안 건물 임대료가 너무 오른나머지 꾸청 밖 현지인들이 사는 지역에 숙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따리는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코스는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내 여행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 같았다. 윈난은 중국내에서 외진 지역임에도 어딜 가더라도 다른 성에서 온 중국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숙소에 대충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전에 따리꾸청 구경에 나섰다. 따리 꾸청은 동서남북으로 커다란 문이 있는데 숙소가 서쪽 창산문(蒼山門) 근처에 있어서 따리에 머무는 동안 이 문을 통해 꾸청을 드나들었다. 창산문인 이유는 이 문을 마주보고 해발 4122미터의 띠엔창산(蒼山, 점창산)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점창산을 보통 줄여서 창산이라 부른다.)


어렸을 때, 김용이라는 분이 쓴 영웅문, 소호강호, 천룡팔부 같은 소설을 통해 처음 무협소설에 빠지게 되었다. 그 소설들을 통해 접한 대리국이 서기 937년부터 원나라에 멸망하기 전까지 약 300년 간 윈난지방에 있었던 실제 국가라는 것을, 소설들에 정파지만 조금은 야비하거나 악역으로 나오는 점창파의 본거지가 따리에 있는 점창산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성문 앞 여행안내소에 있는 지도. 여행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단순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창산문 앞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 옷차림만 바뀌면 천년 전 따리에 온 듯하다.



따리꾸청은 생각보다 커서 절반쯤은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나 술집, 상가들었지만 나머지 절반에는 현지인들이 아직도 살아가고 있었다. 따리꾸청의 가장 번화한 거리는 동서남북 사대문이 이어지는 사거리에서부터 우화로우(五华楼, 오화루)를 지나 남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길은 사람들이 없어 한산한데 그 길 주위는 밤낮없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따리에서의 첫 끼니는 중심가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이곳은 한국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지 인터넷이나 책자에도 빠짐없이 나와 있었지만, 따리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 여러 번 갔어도 한국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이제 여행지로서 따리의 인기는 시들해졌나보다.



처음가면 불친절한 듯하지만 낯이 익으면 반겨주던 아주머니. 중국사람들의 특징인가보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봐도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일본사람, 

처음엔 너무 불친절하지만 친해지면 아낌없이 나눠주는 중국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었다.


쿤밍에서는 주로 국수를 먹었기에 따리에서는 쿤밍에서 먹지 못했던 볶음밥과 훈둔(물만두국하고 비슷)을 시켰다. 단지 계란과 야채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볶음밥이지만 기름기가 코팅된 풀풀 날리는 쌀알에 불맛까지 더해져서 맛이 무척 좋았다. 간장으로 간을 한 뜨끈한 훈둔과 같이 먹으니 쌀쌀한 윈난 날씨에 움추러들었던 어깨까지 펴지는 것 같았다.




창산에서 내려와 얼하이 호수로 들어가는 시냇물이 따리꾸청 곳곳을 흐른다. 집을 짓거나 묘자리를 쓸 때 배산임수가 가장 좋은 형태라던데 따리는 성 자체가 전형적인 배산임수였다. 옛날에는 이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했겠지만 지금은 여행자에게 예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따리(리장도 마찬가지였지만)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꾸청내에 왜 젬베를 파는 곳이 그렇게나 많은가 하는 것이다. 길 곳곳에 젬베를 파는 가게가 있고, 어김없이 젊은 여인들이 젬베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도 모두 비슷비슷한 노래라서 여행을 마칠 때쯤에는 그 노래가 나오면 따라 흥얼거릴 정도로 귀에 익어버렸다. 중국 전통악기 중에 젬베와 비슷한 악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게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가끔 젬베를 배우거나 가격을 문의하는 여행자가 보이기도 했지만 장사가 썩 잘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처음 차린 가게가 잘 되었겠지, 그리고 너도나도 그 가게를 차리고 나니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많아지는 바람에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닐까. 밤이 늦도록 젬베를 치며 노래 부르는 여인의 월급이 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가다 작은 식당들이 빙 둘러진 푸드코트를 보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푸드코트에 뭐 맛있는게 있을까,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양한 음식들에 현혹되어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녁거리를 여기서 사버렸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중국에서는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푸드코드에서도 자기가 먹은 것을 치우지 않는다. 먹다가 테이블에 두고 가면 종업원이 지나가며 다 치운다. 그래도 부지런히 치우는 덕분인지 지저분하진 않았다.


오른쪽은 매미, 왼쪽은 전갈튀김이다. 하지만 산 것은 커다란 가지구이와 양꼬치.


푸드코트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오화루라는 누각이 나온다. 꾸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처마가 위로 치켜올라간 전형적인 중국 누각이다.





창산에서 꾸청으로 물이 흘러드는 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무리봐도 사진을 찍을만한 풍경도 아닌데 왜 그런건지 알 수 없었다.


대장부의 포스~


오화루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남문이 나온다.


이 누런 금빛 엿을 파는 곳이 꽤 많았다. 엿을 만드는 방법도 우리나라와 거의 흡사하다.


꾸청 안쪽에서 본 남문


꾸청 밖에서 본 남문


꾸청 안 티베티안 바에서 맥주 한잔. 왔으면 지역 맥주 정도는 마셔주는게 기본.

사려는 사람은 없고 구경하는 사람만 많다. 젬베를 연주하는 아가씨가 예쁘면 더욱 많다.


해가 지니 따리는 금새 어두워졌다. 중심가에는 그나마 불빛이 많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불빛이 별로 없으니 하늘이 새까맸다. 서울은 빛공해가 심해서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까만 하늘을 볼 수가 없다. 날이 흐려서 별이 보이지 않는건 아쉽지만 새까만 하늘조차 반가웠다. 이런 하늘을 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창산문을 지나 다시 숙소로...


창산문 밖으로 창산과 천룡팔부 세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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