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시내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주위에는 시산산림공원, 윈난민속촌, 주샹동굴(구향동굴), 뤄핑, 토림 등등 이름난 관광지가 여러 곳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흔히 석림이라고 불리는 불리는 윈난스린이다. 상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떠난 여행이기에 일단 석림을 보고 쿤밍에 더 있을지 결정하기로 했다.(일주일이 넘는 여행이라면 굳이 계획을 상세히 세울 필요가 없다. 그 계획에 발목이 잡혀 머물고 싶은 곳에 더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거나,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에는 여행을 망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석림에 가려면 쿤밍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한다. 숙소에서 나와보니 어제 나름 좋았던 날씨는 어디가고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그래도 중국의 교통체증은 유명한데 비까지 내리니 시내버스를 타면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아서 터미널까지 택시로 가기로 했다. 중국발음으로 더듬더듬 목적지를 말하고 올라타니 바로 핸들을 꺾어 불법유턴을 했다. 아무리 각오를 하고 있더라도 가끔 섬뜩하게 만든다.


택시, 불법유턴 중... ('한국에서 들어온 첨단 미용기술'이라는 간판이 재미있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는 동부시외버스터미널은 꽤나 크게 지어져있었다. 그럼에도 터미널 안에는 이른 아침부터 중국 각지로 가려는 사람들로 매우 붐볐다. 쿤밍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다는데 이 정도로 큰 터미널들이 모두 붐빈다는 말은 윈난성이 중국에서 변방에 속하는 성임에도 이동하는 인구와 물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삼 놀라웠다.



쿤밍 동부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지하철. 공항에서 이곳까지만 개통되어 있었다.


두어시간 달린 후, 버스는 석림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매표소까지 걸어서 이동한 뒤에, 표를 사고 다시 셔틀로 다니는 전동차를 타고 석림입구까지 가야한다. 어째서 석림 앞까지 버스가 다니지 않는지, 매표소와 입구는 왜 떨어뜨려 놓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뒤 여행하면서 거친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모두 이런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매표소에서 입구까지도 셔틀을 운행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얄팍한 상술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입장료도 무척이나 비싸서 한화로 3,4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했다. (중국은 입장료를 해마다 올리고 있다. 그들의 물가가 매년 높은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수준이다. 그렇기에 여행책자에 나온 정보는 전혀 의미없다. 그나마 인터넷으로 찾은 그 해의 여행정보가 신뢰할만하다.)


쌩뚱맞게 입구와 떨어뜨려 지어놓은 매표소


이곳에서 셔틀을 타고 가야한다.


시도때도 없이 다니는 셔틀. 하지만 이 셔틀을 모는 드라이버가 보행자를 신경쓰지 않으니 조심해야한다.


석림 입구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이라고 홍보하면서 자연석에 함부로 새긴 저 글자들은 뭐하자는거지?


어제 쿤밍 시내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석림에 오니 장년의 단체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다. 이곳이 한국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중국 관광지 중 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석림이 시작된다.

윈난성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위의 사진처럼 소수민족 전통복장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그만큼 윈난성이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겠지만 윈난성 전체 인구의 2/3는 한족이라는데 

관광지마다 있는 소수민족들이 정말 그런지 좀 믿기 어렵다.


어이, 좀 나와달라구





바위에 글자를 이렇게 파놓는 건 자연훼손이잖아



못된 사람이 지나가면 떨어진다는 바위



석림은 석회암이 녹아서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다. 이 일대가 석회암지대라 구향동굴과 같은 석회암 동굴도 많다.


기기묘묘하게 풍화된 바위들의 연속


'검봉'이라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잘린 검의 모양이라는건가?


꼬불꼬불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야한다. 어떤 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큼 좁은 곳도 있다.


길은 다니기 편하도록 잘 닦여 있었다. 너무 손을 많이 댄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는 석림 곳곳에 보도블럭을 말끔하게 깔아놓았다. 영겁의 세월동안 풍화되어 온 바위의 풍경과 사람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 놓은 길이 묘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코끼리 바위. 세계에서 코끼리 바위라고 이름붙은 곳은 많지만 이 바위가 가장 비슷할 것 같다.



좁고 가파른 길도 제법 있다.



'돌 감옥'이랬던가?


봉황이 부리로 자기 몸을 쪼고 있는 모습이란다. 봉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새처럼 보이긴 한다.



발길 닫는대로 석림 사이를 걷다가 어느새 전망대로 나왔다.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난간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했다. 날씨도 좋지않은데 이 정도라면 성수기에 날씨 좋은 날에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미어터질지도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보니 과연 석림이라 부를만하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대석림을 빠짐없이 다 훑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두어시간 동안 보고 나왔다. 처음에는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습과 풍광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계속 반복되다보니 점차 무뎌졌다. 게다가 아쉽게도 석림의 규모가 크고 방대하진 않아서 광활한 모습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대석림을 나오면 소석림으로 이어져 있는데, 소석림은 대석림처럼 석림사이를 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서 멀찍이서 보면 끝이다.








석림에서 쿤밍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다시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쿤밍의 시내버스는 우리나라 버스보다 훨씬 크고 길었다. 내부도 깔끔하고 깨끗해서 여느 나라의 버스 못지않았다. 택시도 몇 년전 출장 때 탔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깔끔했다. 중국의 발전은 높은 마천루와 휘황한 거리가 아니라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는 말처럼 쿤밍의 외곽에도 수많은 건물이 지어지면서 도시가 확장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학교 앞이었다.

학부모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자식들을 데리러 나온 것이었는데, 

자식에게 모든 기대와 투자를 올인하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겹쳐져서 씁쓸하게 느껴졌다.


점심은 석림을 걷다가 가져간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웠기에 저녁은 제대로 된 윈난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윈난의 쌀국수는 베트남이나 태국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면 종류도 여럿이긴 하지만 대표적인 면은 우동처럼 굵었다. 부드러운 촉감은 좋지만 쫄깃한 끈기가 없어서 뚝뚝 끊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쿤밍의 유명 국수집. 시내에 몇 군데 있는 듯.


매콤 짭짤한 양념장에 비벼서 먹는 차가운 국수


뜨거운 닭육수에 여러가지 고기와 야채, 면을 넣고 먹는 국수. 닭칼국수 맛과 비슷했다.

넣는 고기와 해물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진은 그나마 저렴한 것.


보기엔 쫄깃해 보이는 면발이 뚝뚝 끊어지는게 참 아쉽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봤던 여행기나 책자에는 동남아의 쌀국수보다 윈난의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 많아서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윈난의 국수도 맛있긴 했지만 내 입맛에는 베트남이나 태국 국수가 나은 것 같다. 우선은 가격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고 들어가다가 만두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작은 가게지만 현지인들이 계속 들락날락 하는게 근처에서 꽤 인기있는 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소룡포가 홍콩에서 먹어 본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지만 꽤 맛있었다. 

가격이 몇 분의 일 밖에 안되는데 같은 맛을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생각이다.



석림은 중국 정부에서 정한 별 다섯개의 풍경구이고 매우 유명한 관광지지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중국정부는 관광지를 그들이 정한 별의 개수로 나타내는데, 별 다섯개짜리 풍경구는 가장 가치있고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하며 본 별 5개짜리 풍경구는 모두 썩 맘에 들진 않았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곳이겠지만 내가 본 석림은 단지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손을 많이 댄, 입장료가 비싼 관광지 이상은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석림에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으니 쿤밍 주위의 다른 여행지들도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보니 구향동굴도 알록달록한 조명을 잔뜩 깔아놓은 종유동굴 이상의 느낌은 없을 것 같았고, 민속촌이나 시산산림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토림(방파푸토림이나 원모토림)은 가보고 싶었지만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교통편이 무척 불편하고 숙박시설도 많지 않았다. 적어도 1박 2일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길지 않은 여행이라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토림과 약간은 느낌이 비슷한 터키 괴레메나 칠레 아타까마를 비교하면 규모나 경치가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우지 못했다. 토림을 사진으로만 본 개인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소위 빵차라고 불리는 빠오처(현지 운전사가 모는 차를 빌려서 다니는)를 이용하면 하루만에 다녀올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매우 비싸다.


결국, 쿤밍에서의 여행은 이틀로 접고 따리(大理)로 가기로 했다. 제갈량이 정벌했던 남만(쿤밍)에서 어렸을 때 봤던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는 대리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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