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을 포기하니 하루정도는 오클랜드에서 더 보내도 될만큼 시간이 넉넉해졌다. 오늘은 걸어다니며 오클랜드 시내구경을 할 계획이었다.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의 장점은 많이 볼 수 없는 대신에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대로 여행한 사람들에게 느긋하게 가고 싶은대로 다니며 보는 즐거움을 꼭 느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른 아침 한산한 오클랜드의 거리... 보다는 고장난 카메라 탓에 초점이 맞지 않은게 아깝다.


걷다보니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공원이 나왔다. 공원자체도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거기 있는 크고 기괴하게 생긴 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는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가지들이 주로 옆으로 뻗어나와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사람이 없는 공원의 괴물같이 생긴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아침인지 간식인지를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놀라서 올려다 본 나무 위에는 사람의 다리와 이런저런 천이나 옷가지들이 보였다. 이 기괴하게 생긴 나무는 오클랜드 노숙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 나무의 괴상한 모양과 거기에 핀 붉은 꽃이 묘하게 어우러져 인상깊게 남아있다.




온통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건물이 멋있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앨버트 파크로 향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인구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커다란 공원들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 앨버트 파크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도시 중심부에 있고 스카이 타워와 가까워서 찾아가기 쉬웠다.





예쁘게 보이려고 가꿔진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리되는 듯해서,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과 함께 골프장처럼 관리된 잔디밭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가 드러누울 수 있는 잔디밭이어서 좋았다. 하긴 서울에 있는 공원 잔디밭에 들어가도 좋다고하면 잔디든 풀이든 남아나질 않는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 그렇듯이. 뉴질랜드처럼 관리하기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 많은게 문제다.


오클랜드의 랜드마크, 스카이 타워로 가는길.



스카이 타워에는 이를 이용한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탑 상층부에 빙 둘러진 원형 길을 따라 걷는 '스카이 워크'와 탑 위에서 번지점프하듯 뛰어내리는 '스카이 점프'다. 그 중에서 '스카이 점프'는 뛰어내리는 사람의 비명과 함께 지상에 가까워질 때 속도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소리 때문에 아래에서 보는 사람도 아찔하게 만든다. 물론 이 두가지 모두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안그래도 높은 곳을 싫어하는데 돈까지 두둑하게 지불하고 극한을 경험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지만 오클랜드 시내에는 세계 각지의 여러 인종들이 보였다. 당연히 백인이 가장 많지만 인도, 중동, 동남아에서 온 듯한 사람들도 많다. 그 중에서 의아했던 것은 동북아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는 것이다. 커피숍에 들어가도 여기저기서 한국말과 중국말이 들렸다.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섣부른 짐작으로는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학연수를 온 같은 국가의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를 쓰지 않고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학연수의 목적은 그 언어권의 문화를 배운다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 언어를 쓰는 시간이 늘어남으로서 더 빠르게 습득하려는 것일텐데 오클랜드는 전혀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 뒤에 갔던 시드니는 더 좋지 않았다.)




이 날 저녁도 타이 음식점의 해산물 스프와 찰밥으로 해결했다. 꼭 먹어봐야 할 뉴질랜드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오클랜드를 떠나면 먹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시작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