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루아 호수에 간 일을 쓰면서 로토루아 호수에 내려오는 아주 유명한 전설을 빼먹었다. 이 전설이 유명한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노래 '비바람이 치던 바다~'로 시작하는 '연가'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잊지 않기 위해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내용을 적어둔다.
"호수의 중앙 근처 모코이아 섬(Mokoia Island)은 유문암 돔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호수 섬으로 마오리 족의 가장 유명한 전설 중 하나인 "히네모아와 트타네카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호안의 아가씨 히네모아가 모코이아 섬에 사는 애인 트타네카가 있는 곳으로 호수를 헤엄쳐 건너갔다고 하는 유명한 연애담이다.
이 전설은 이후 마오리족들의 민요로 전해 내려오다가, 1914년 투모운(P.H. Tomoan)에 의해 편곡되어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라는 노래로 탄생된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때 초연이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마오리족 출신의 뉴질랜드 국민가수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가한 뉴질랜드 군에 의해 한국에도 《연가》(戀歌)라는 노래로 번안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연인을 찾아 호수를 헤엄쳐 건넌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아가씨는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멋진 아가씨다.
이 호수를 제외하고 로토루아 지방의 또다른 유명한 관광지는 와카레와레와라는, 지열활동으로 간헐천이 끓어오르는 지역이다. 일본의 하코네나 노보리베츠에서 지열활동이 활발한 지역을 가 본 적이 있지만 간헐천은 본적이 없어서 기대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들어가면 수면으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끓어오르는 진흙탕이 보인다.
커다란 진흙 구덩이가 끓고 있다.
이따금 '퍼벅'하는 소리와 함께 진흙거품이 제법 높이 튀어오른다.
와카레와레와에는 간헐천 분출구가 60여 개 있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간헐천은 7개라고 한다. 간헐천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순서대로 분출하기 때문에 간헐천 분출은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시간에 맞춰 봐야하는 필수 공연처럼 되었다. 분출이 예정된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분출구 주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앞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공원 관리자가 분출구 옆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마치 공연전에 연출자가 공연에 대한 줄거리나 포인트를 짚어주는 것처럼 보여서 재밌었다. 분출 순간을 찍기 위해 저마다 사진기나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TV에서 보던 간헐천은 고래가 소리없이 수면으로 나와서 숨을 내뱉듯이 갑자기 뜨거운 지구의 숨이 뿜어지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한참 설명하던 공원 관리자가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분출구에 쏟아넣었다. 그러고 조금 지나자 분출구에서 수증기가 나더니 뜨거운 물을 조금씩 뱉어내기 시작했다.
분출구로 올라오는 뜨거운 물기둥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제법 힘차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않아서 곧바로 점점 낮아지더니 끝이 났다. 기대했던 장면 치고는 꽤나 볼품없었다. 원래 간헐천이란게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치고 넘어갈텐데 본 적이 없으니 공원 관리자가 분출구에 넣던 그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건 서커스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을 위해 시간을 맞추려고 맹수의 몸짓을 억지로 이끌어내는 먹이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기다리다가 '오늘은 분출을 하지 않았다'거나 '평소에 비해 분출량이 적었다'라면 항상 그랬듯이 '여행은 복불복'을 외치며 돌아설 수 있었을텐데... 사실, 그 관리자가 넣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른다. 분출하고는 상관없는 것이었을지도... 하지만 나에게는 '맹수의 먹이'처럼 보였다.
공연이 끝났습니다~
간헌철의 짧은 공연을 마치고 본격적인 와카레와레와 투어를 시작했다. 딱히 정해진 코스나 순서없이 공원 지도를 보고 우거진 뉴질랜드의 숲길을 발길 닿는대로, 보고싶은대로 다니면 된다.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보기만해도 뜨거울 것 같은 구덩이에 뛰어들 사람은 없겠지만 증기도 없고 뜨거워보이지 않아도 위험한 곳이 있었다. 그런 곳은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거나 들어가지 않도록 나지막한 울타리가 쳐져있었다. 다니라는 길로만 다니면 위험할 것은 없다.
다니다보면 증기가 피어오르는 구덩이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곳들마다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연두색 혹은 푸른색, 어떤 곳은 붉은색이나 검은색으로 바위가 물들어 있다. 지하에 묻혀있는 광물의 종류에 따라 이런 다양한 색으로 물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색깔이 꽤나 다채로우니 흥미로웠다.
위험하거나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 앞에서 인간은 항상 악마니 지옥이니 혹은 신의 무엇이니 하며 종교와 연관시켜 이름을 붙인다.
여러 개의 구덩이를 지나고 탁트인 지역으로 나오자 파스텔톤 물빛의 아름다운 호수가 등장했다.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이 몽환적인 수채화처럼 모호한 경계로 섞여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지만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위험한 호수다. 지금은 멀리서, 나중에는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다.
호수의 물빛은 밝은 청록색인데 호숫가 한쪽에서 노란색과 초록색이 들어와 섞이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샛노란색이다.
저 조그만 구멍에서 지구가 만들어내는 물감이 끊임 없이 흘러나온다.
이 곳은 초록색 물감을 담은 팔레트
숲길을 걷다보면 뉴질랜드답게 곳곳에 커다란 양치식물이 보인다. 양치식물이라면 고사리밖에 못봤던 나에게는 꽤 신기한 풍경이었다.
숲 깊은 곳에서 공룡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와카레와레와에서 가장 유명한 곳에 도착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도 놀랍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곳이 유명한 곳인지는 몰랐는데, 여행 후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선정한 '세계의 놀라운 물빛의 호수'에 선정된 것을 보고 그런 줄 알게 되었다.
아름답지만 스산하기도 해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품마저 꽤 위험해 보인다.
호수를 이루는 물빛과 바위가 이렇게나 대조되는 색을 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여러가지 색을 띈 호수와 지구가 아닌 듯한 주변 풍경에 놀랐었지만 하나의 호수에서 이런 색의 대비를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이 호수도 위험하다. 동식물을 포함해서 호수도 알록달록한 물빛을 띄는 것은 위험하다.
그 뒤로도 여러가지 색깔을 띈 호수와 구덩이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이 호수를 보고나니 감흥이 없어졌다.
반나절동안 와카레와레와를 돌아보고 로토루아 시내로 돌아왔다. 흐린날이 많았던 뉴질랜드에서 간만에 만난 좋은 날씨에 지구가 만들어낸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을 만끽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보이는 곳곳이 텔레토비 동산이다.
이 날 저녁으로 난생 처음 연어초밥을 만들었다. 로토루아의 수퍼마켓에서 파는 싱싱하고 큼직한 연어 한덩이가 무척 저렴했기 때문이기도 하고(한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지 절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음식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딱히 없어서 매일 먹는 서양식에 질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어를 손질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회는 커녕 생선을 손질해 본 적도 많지 않은데 연어는 기름기가 많아서 더 그랬다. 한손에는 호스텔의 무딘 칼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미끄덩거리는 연어를 잡고 껍질을 벗겨냈다. 그리고 횟집이나 부페에서 본 것을 흉내내어 연어를 썰었다. 저녁을 준비하던 서양여행자들이 한번씩 와서 구경을 했다. 이들에게는 비싼 스시집에서나 보던 음식을 동양인이 호스텔에서 만들고 있으니 신기했나보다. 나도 내가 뉴질랜드 호스텔 주방에서 연어초밥을 만들고 있을 줄은 몰랐다. (구경하는 녀석들은 많았지만 감히 먹어보자는 녀석은 없었다.)
처음이라 모양새는 썩 좋지 않았지만 마트에서 산 초밥용 간장과 겨자까지 섞어서 먹으니 맛이 기막혔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먹기 어려운 음식이 회나 초밥이었다. 한국음식은 가지고 다니던 고추장 등등으로 만들어 먹거나 간혹 한국음식점에서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데 회나 초밥을 파는 곳은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가격이 무척 비싸서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런 초밥을 만들어 먹으니 만족감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연어가 정말 쌌던 칠레 푸에르토 몬트에서 먼저 시도해보지 못한게 무척 아쉬웠다. 그 뒤로 두어번 더 하면서 초밥을 만드는 시간도 짧아지고 모양새도 나아졌다.
'세계여행(2012년) > 오세아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로운 물빛, 와이카토 강 - 후카폭포 가는 길 (0) | 2016.04.25 |
---|---|
거대한 분화구, 타우포 호수 - 타우포 (3) | 2016.04.22 |
동강보다 시시한 래프팅 - 로토루아 (0) | 2016.04.04 |
동굴속에 펼쳐진 은하수 - 와이토모 (1) | 2016.03.28 |
대도시일까, 전원도시일까? - 오클랜드 (0) | 201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