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포 번지점프대를 떠나 다시 후카폭포로 향했다. 잠시 숲이 없는 길이 나왔지만 이내 강을 따라 난 숲길로 다시 들어갔다. 왼쪽으로는 무척이나 맑고 푸른 강물이 흐르고 우거진 숲에는 거대한 고사리처럼 생긴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서 걷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언제든 강가에 앉아 발을 담글 수도 있다.

같은 화산지대라 그런지 둥글둥글한 언덕과 거무스름한 흙길이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빛이 아름다운 호수는 여럿 봤지만 강물이 이런 색을 띄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석회질을 많이 함유한 뿌연 색이 아니라 맑은 청록색이라 더 예쁘다.




잔잔한 강물 위로 카약이 스스르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강물이 호수처럼 잔잔해서 힘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물가에는 처음보는 수초가 잔뜩 있었다. 짧고 몽글몽글하게 생겨서 수초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수초들 덕분에 물이 맑고 푸르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트레일은 강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져 있었다.


자연은  그대로일때 더 아름답고, 더욱 가치있다. 물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런 자연재해조차도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불균형을 맞추는 지구의 자정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재해들로 발생하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한답시고 무리하게 자연에 손을 대면 결국 더 큰 불균형을 가져오고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타우포와 와이카토 강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쉬면서 잠시 맑은 물에 발을 담그는 트레커들. 무척 시원해 보여서 돌아가는 길에 따라 해봤다.



거대한 고사리처럼 생긴 양치식물



자주 쉬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걸었더니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새 조용하던 숲길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더 걸으니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급류가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이 맑아서인지, 강바닥이 흙이 아니라 바위여서인지 급류가 흔히 볼 수 있는 흙탕물이 아니라 하얀 포말이 섞인 하늘색이었다. 이 급류를 보고 난데없이 거대한 '캔디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폭포쪽으로 걸어갔다. 다리도 있어서 급류 한가운데 서서 시원스런 물줄기를 감상할 수도 있다.



폭포 자체는 큰 볼거리가 아니다. 낙차가 크지 않고 수량도 커다란 폭포들에 비해서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훌륭한 경치를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의 폭포는 흙탕물이거나 급류에 이런저런 부유물이 많이 섞인 혼탁한 물인데 후카폭포는 맑고 깨끗한 물이라 청량감이 배가 되었다.





액티비티의 천국, 뉴질랜드답게 후카폭포에도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있다. 날렵하게 생긴 제트보트를 타고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는 투어다. 이구아수 폭포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한번 타는데 뉴질랜드 달러로 100달러 정도였다. 지금은 환율이 많이 떨어져서 1NZD에 800원이지만 당시에는 1000원이 넘었기에 타는 것은 포기하고 구경만 했다. 


그 와중에 텅빈 보트가 한 대 폭포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배를 운전하는 가이드를 제외하고 젊은 동양인 남자 혼자 타고 있었다. 보트 정원은 가이드를 제외하고 14명인데 어째서 저 배는 텅 빈 채로 운행하나 궁금했다. 다른 배들에는 모두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다. 그러다 저 배는 타고 있는 젊은 사람이 통째로 전세 낸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14명이니 원래대로라면 1400달러, 당시 환율로 150만원이 넘는 돈을 선뜻 지불하고 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다면 참 편할 거다. 가격대비 좋은 숙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저렴한 교통편을 구하느라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 갖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은 그냥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건 댓가가 필요한 법이라, 편하게 얻는 방법은 그것을 어렵게 구한 기쁨도 알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만난 연연도, 현지인에게 받은 친절도, 우연히 먹은 눈물나게 맛있는 음식도, 골목과 거리를 헤매다 보게 된 광경도, 내 발로 걸어올라가서 봐야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경치도 모두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저 보트에 혼자 타고 있는 젊은 친구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을테고,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모르고 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의 '갑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그런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구하면 들어주는 세상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자신의 당연한 행동이 지탄 받고 욕을 먹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사과하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사과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삶을 당연하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책임도 있지만 그런 갑질과 특권의식이 통하게 만들어 온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


물론, 저 보트를 빌린 젊은 친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저 보트를 혼자 타보는게 소원이라 여행 경비의 상당 부분을 보트 타는 데 투자했을 수도 있고, 같이 탈 친구들이 모두 아파서 같이 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내가 저 보트를 10번 타는 것보다 훨씬 적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인생이 훨씬 즐거워질걸?


원래는 이게 정상적인 보트의 모습이다.




물이 맑다는 것 말고는 음... 솔직히 크게 훌륭한 경치는 아니다.


벤치에 앉아 급류를 바라보며 싸가지고 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점점 훌륭해지는 솜씨에 감탄하며 게눈 감추듯.





겨우살이라고 하나? 파타고니아 숲에서 수없이 봤던 이 식물이 여기도 보인다.







돌아가는 길에 발을 담그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시끌시끌해서 보니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얕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온천인가 싶어 다가가니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갈아 입을 옷도 없고 벗고 입기도 귀찮아 몸을 담그지는 않았지만 손을 담가보니 물이 꽤 뜨거웠다. 사람들은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가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더워지면 깊은 강쪽으로 가서 몸을 식혔다. 





오후 해가 제법 기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후카폭포까지 가는 트레킹이었지만 정작 후카폭포보다는 그 곳에 가는 동안 볼 수 있는 경치가 훨씬 아름다웠다.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면서 잘했다 싶은 한가지가 후카폭포까지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간 것이었다. 차를 타고 휙 갔다가 폭포만 보고 돌아왔다면 무척 실망했을 것 같다. 살면서 겪에 되는 많은 일들이 이것과 비슷하다. 목적한 바를 이뤘지만 정작 목적은 허망하고 애썼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 일,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소중한 경험들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쉽게 얻는 것들은 오히려 쉽게 잊혀진다. 여행도 발로 하는 여행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돌아와서 저녁으로 대형마트에서 파는 해산물 샐러드와 뉴질랜드의 명물인 녹색홍합을 사서 데쳐 먹었다. 뉴질랜드는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가 무척이나 쌌다. 고기와 유제품, 해산물은 물론이고 마트에서 파는 1달러도 안되는 커다란 머핀조차 스타벅스에서 파는 4000천원이 넘는 조그만 머핀보다 훨씬 맛있었다. 마트에는 갖가지 종류의 머핀과 빵들이 매장 한쪽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고, 여러가지 과일과 먹거리들도 무척이나 다양하고 저렴했다. 뉴질랜드에 온 뒤로 매일 저녁 마트에 가는게 꽤나 재미난 일과가 되었다. 자연환경과 복지와 물가까지 현지인들이 살아가기에 참 좋은 뉴질랜드는 경제선진국은 아닐지 몰라도 선진복지국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PS. 2000년대 중반까지 뉴질랜드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고, 2010년대 초만해도 우리나라는 3만불이 조금 안되었고, 뉴질랜드는 3만불이 조금 넘었었다. 지금은 뉴질랜드는 4만불이 훌쩍 넘었고 우리나라는 변함없이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비슷했던 나라가 어째서 몇 년만에 이렇게 크게 차이 나게 되었는지, 복지로는 한 나라는 세계 3대 복지국가로 일컬어지고 한 나라는 '헬'이라 불리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던 당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잘 터지지 않는 와이파이로 선거결과를 검색하던 나는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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