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다시 뚝뚝을 타고 앙코르 톰으로 향했다. 앙코르 톰은 당시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던 거대한 도시이므로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지도를 보고 미리 가고 싶은 곳을 알아두었다가 뚝뚝 기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기사가 이끄는대로 따라 가야 한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 가이드 책자나 인터넷을 통해서 짧게나마 미리 공부해 둔다면 훨씬 흥미로운 투어가 될 수 있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 산크리스트어로 '앙코르'는 도시, '톰'은 크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도시는 단지 규모만 큰게 아니라 복원된 건물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다. 멀리서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고 가까이서는 정교한 부조와 건축미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나 방대한 규모에 둘러 볼 곳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모든 곳을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복장으로 꾸준히 수분도 섭취하고 쉬어가며 봐야할 곳이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 뚝뚝을 타고 앙코르 톰에 도착하자 멀리 밀림사이로 유적이 보인다. 이른 아침임에도 찌는듯한 더위는 숙소의 에어콘이 나오는 온도에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카메라 렌즈에 뿌연 습기를 만들어 버렸다. 뿌옇게 찍힌 사진이 오히려 고대 유적의 신비로움과 당시 내 기분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복구가 진행중인 유적들]


드넓은 앙코르 톰의 유적들은 복구 중이거나 복구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캄보디아의 경제 상황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 유네스코나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복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복구에 많은 원조를 하면서 입장료라던지 유적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척 섬세하고 아름다운 크메르인의 부조 솜씨를 보여주는 기둥]


[앙코르 톰 5개의 문 중에 한 곳]


[앙코르 톰의 유적중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바욘 사원]




[부서지거나 마모되어 희미해진 부조조차 놀랍도록 세밀하고 아름답다]



[바욘 사원의 인면상]


바욘사원은 사원 내부에 있는 수십, 수백개의 탑 사방에 새겨인 인면상이 특히 유명하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당시 사원 건축을 지시했던 크메르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원의 큰 규모도 놀랍지만 수많은 인면상의 숲과 빈틈없이 새겨진 부조의 아름다움이 놀랍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띈 얼굴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바욘 사원의 뒤편에서 본 모습, 마치 돌산을 보는듯]






[앙코르 톰에서 또 다른 유명한 유적인 코끼리 테라스]



[앙코르 톰의 다섯 문 중에서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했던...]


앙코르 톰으로 통하는 큰 문은 총 5개라고 하는데 그 문들은 모두 앙코르 톰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해자를 건너게 되어 있고, 이 다리들은 나가와 나가를 잡고 돌리는 아수라 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금은 부서지고 낡은 이 다리와 문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었을지 상상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요니와 링가, 남과여, 음과양을 나타내는 힌두 문명의 상징물]


앙코르 톰을 보면서 힌두 문명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한게 아쉬웠다. 깊지는 않았더라도 얕은 지식이나마 있었더라면 훨씬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여행은 항상 배움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에 불교 문명보다 힌두 문명이 훨씬 이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고 힌두 문명이 불교 문명으로 대체되면서 혼합하고 발전했다는걸 처음 알았다.




[자연에 의해 파괴되는 유적을 보존하려고 나무를 괴사시킨듯 하다]





처음에는 지붕에 겨우 뿌리내렸을 약한 나무가 열대 자연의 도움으로 거대하게 자라서 결국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마치 공룡이나 괴물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앙코르 톰의 유적들은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는데 특히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 레이더'의 장소로 유명하다. 그 영화의 배경이었던 '따 프롬'은 석양으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라 해질녘에는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보기 위해 유적에 올라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나는 아직 다 보지못한 남은 유적을 보기 위해 석양을 포기했다. 그게 잘한 것이었는지는 어차피 알 수가 없다. 여행도, 인생도 어느 정도는 복불복일 수 밖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를 방문하면 관광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원 달러 보이'들이 이 곳에도 많았다. '원 달러'를 외치며 좀 허술한 수공예품이나 악세서리를 파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애처롭다고, 본인에게는 큰 돈이 아니라고 댓가없는 돈을 쥐어주는 것은 결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아이들은 나중에 물건을 주고 댓가를 받는게 아니라 구걸하는데 익숙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여행객, 관광객들은 많은 지역의 사람들을 안좋은 방법으로 물들여 버렸다. 이 아이들을 돕고 싶다면 아이들이 파는 물건을 사는게 좋다. 마음이 조금 아프다면 약간의 바가지는 기꺼이 써주면 된다.



석양은 사람의 마음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대도시의 석양도 그랬지만 밀림의 석양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천년전 화려하게 꽃피운 문명과 어두웠던 근대사를 넘어 현재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비되어 여기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뚝뚝 운전사'와 여행자에게 콜라를 팔면서도 자기의 미래를 우리나라의 청소년들보다 더 똑부러지게 설명하는 '데이빗'에게서 다른 모습의 캄보디아를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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