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짧은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여행을 마치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향한다. 대개 시엠립에서 앙코르 유적지를 구경하고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 똔레삽 호수 여행을 많이 하지만 현지 사람들의 고된 삶을 구경하고 다닌다는게 마음이 적지않게 무거웠기 때문에 바로 프놈펜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여행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어차피 여행자들이 다녀감으로써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이들의 삶을 동정이나 연민으로 바라보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존중할 수 있다면 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광객용 투어 버스를 타고 스치듯이 이들의 삶을 구경하고, 이들의 음식을 비위생적이라 거부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이유가 이들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 비하하는 여행자들은 없어지길 바란다.


사실 프놈펜은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들른 곳으로 무엇을 봐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프놈펜은 미국의 군사개입이 시작되고, 크메르 루즈의 공산화와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시아의 진주', '동양의 파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1975년 크메르 루즈군이 프놈펜을 함락하던 시점에 200만명이 넘었던 인구가 1979년 친 베트남파 온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함락될 때는 5000여명이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시엠립에서 프놈펜은 버스로 수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구글맵에서 두 도시의 거리는 396km라고 나오지만 고물버스와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아침 일찍 탄 버스는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프놈펜에 도착했다.


버스는 시엠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약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사진으로 보여준 버스와 내가 탄 버스는 완전히 상태가 다른 버스였다.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들 중에서도 가격이 싸고 낡은 버스였는데 각종 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쿠터까지 버스 위에 싣고 다녔다.


[겉모습은 무난해 보이는 버스들]




버스 내부 상태는 좀 심각하다. 찬바람이 나와야 할 송풍구는 구멍만 뚫려 예전에는 에어컨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정도이고, 버스의 문이라는 문은 제대로 구실하는 것이 없어서 비포장 도로의 먼지가 버스 내부에 그대로 들어온다. 어느 정도냐면 버스 내부가 온통 뿌옇게 되어서 몇 자리 앞 사람의 뒤통수도 잘 안보인다.


몇 시간 지나고 휴게소에 잠깐 쉬면서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게 되는데, 같은 버스를 탓던 서양 커플이 완전히 지친 얼굴로 '넌 이 버스 얼마주고 탓니?' 하고 묻는다. 내가 대답하자마자 지친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데 이건 '다행이야. 우리보다 더 바가지를 쓴 녀석이 있어서...'라는 표정이다.


버스 요금이라고 해봐야 우리 나라 물가로 큰 돈이 아니다. 기분 나쁜건 바가지 쓴 몇 푼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좋은 버스라고 몇 번이나 대답하던 게스트하우스의 그 녀석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여행자를 속이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여행자는 대부분 당할 수 밖에 없다. 안 속겠다고 다짐하고 몇 번을 확인하더라도 확률은 조금 줄어들지언정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은 일년간의 여행기간동안 잊을만하면 되풀이 되었다. 이런 일로 여행자들이 여행지의 매력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큰 돈이나 안전을 위협할만한 일이나 여행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또 당했네. 젠장.' 정도로 넘기는게 속 편하다.


스위스에서 만 오천원의 돈으로 빅맥 세트를 먹을 때는 아깝다는 생각도 못하는데 동남아에서 그 돈으로 하루 숙박비와 세끼를 다 먹고 1,2천원 바가지 쓴다고 크게 손해보는건 아니지 않을까?


캄보디아의 색은 누런 황토색이다. 그때가 건기여서 더 그랬겠지만 메마른 논밭과 뿌연 먼지, 포장이 안된 도로, 강물까지... 열대의 녹색이 아니라 메마른 누런색이었다.





프놈펜의 숙소는 현지인들이 사는 지역안에 있었다. 근처에는 시장도 있어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높은데다 흰색으로 칠해진 숙소의 천장은 프랑스 지배의 영향이겠지만 마치 수십년 전 크메르 루즈의 고문실 같은 음울한 분위기라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가로등도 없고 집안의 불빛도 희미해서 거리가 온통 어둡고 적막했다. 프놈펜의 첫인상은 어두움이었고, 단지 저렴한 식사와 맥주 한잔이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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