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앙코르 와트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꼬마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책에서 였다. 세계 몇 대 불가사의 어쩌고 하는 것들이 호사가들이 가져다 붙인 것들이라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밀림에 수백년 동안 감춰진 거대한 도시와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깊게 각인되었고 결국 그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앙코르 와트는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신비로운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도시도 아니고, 몇 백년간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다 갑자기 발견된 것도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와 사원은 오랜 시간 버려진채 새로 그곳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옛 사람들이 살던 폐허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 서양에서 온 종교인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시엠립에서 미리 예약해둔 오토바이 삼륜차(태국의 '뚝뚝')를 타고 앙코르 와트로 향했다. 드디어 그 '앙코르 와트'에 간다는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감을 느낀 상태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뚝뚝 앞으로 캄보디아 처녀의 자전거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바람에 뚝뚝과 뚝뚝 밖으로 약간 나와 있던 내 어깨에 동시에 부딫힌 것이다. 어깨의 묵직한 통증을 참고 내려보니 자전거는 엉망으로 쓰러지고 처녀는 도로 가운데 쓰러져 엎드려 있었다. 


뚝뚝 운전사는 처녀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옆에 서있기만 하고 나도 경황이 없던 와중에 지나가던 서양 배낭여행자 아가씨가 처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처녀의 상태를 살펴보고 운전사에게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지만 운전자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오늘 재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서양 아가씨는 더욱 높아진 음성으로 운전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운전사에게 당신 뚝뚝은 타지 않을테니 빨리 처녀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운전사는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녀를 태우고 떠났다.


여행중에 사고를 당할 수도,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떠나기 전에 이미 각오했던 바이고, 여행중이 아니라 한국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처녀의 상태를 살피고 병원으로 옮기라고 화를 내던 서양 아가씨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은 여행자일뿐이며 주위에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음에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즉시 행동하는 그 자세가 충격이었다. 나였다면 '어떡할까? 주위에 이 나라 사람들이 많으니까 누가 조치를 취하겠지? 어라, 아무조치도 안하네. 그럼 내가 해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나서야 움직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의 사고나 어려움을 보면 그 아가씨 덕분에 어느 정도 짧게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이외에도 여행은 계속해서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가르침을 주었다.


[사고로 돌려보낸 그 뚝뚝... 자동차, 뚝뚝, 자전거, 오토바이 등등... 혼잡하니 언제나 사고 조심]


통증이 심하던 어깨를 돌려보니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다. 뼈나 인대에 큰 손상은 없는 것이려니 싶어 안심이 되고 다시 앙코르 와트에 갈 생각에 다른 뚝뚝을 잡아 탓다.


앙코르 와트에 가는 길에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재탕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웹캠으로 사진을 찍고 표에 사진을 프린트해서 내어준다. 표는 1일권, 2일권, 3일권 등 여러 가지인데 앙코르 와트만 본다면 1일권, 앙코르 와트와 톰을 본다면 적어도 2일권 이상은 끊어야 된다. 나는 첫날은 앙코르 와트, 둘째날은 앙코르 톰을 다녔는데 유명한 사원이나 유적만 봐도 하루로는 그 넓은 앙코르 톰의 유적을 느긋하게 보는데 어림도 없었다.


[앙코르 와트를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앙코르 와트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덕분에 밀림의 수목으로부터 사원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앙코르 톰의 유적이나 사원들 중에는 지붕이나 담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거대하게 자라서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있는 곳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바깥문을 지키는 거대한 나가]


힌두교에는 수많은 신들과 그들이 모습을 바꾼 다른 신, 동물 모양의 신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러 개의 뱀 머리가 달린 '나가'도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 상의 후광이 원래는 나가였다고 하는데 힌두 문화권에서 점차 불교 문화로 바뀐 동남아의 오래전 불상에서는 부처님 뒤에서 머리를 펼치고 있는 나가를 볼 수 있다.



[드디어 멀리 보이는 앙코르 와트]


긴 해자를 건너고 외성(?)을 들어간 뒤에도 앙코르 와트는 멀기만 하다. 이 거대한 사원은 더욱 거대한 도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덥고 습한 캄보디아에서 앙코르 와트를 방문할 때는 물, 모자, 썬글라스, 간편한 복장과 신발은 필수다.


[앙코르 와트 벽면의 아름다운 부조]


[앙코르 와트의 부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힌두의 창세신화 '우유바다 휘젓기']


[신들이 거대한 뱀의 몸통을 잡고 우유 바다를 휘젓고 있다]


[선한 신들의 대장]


[심판을 보고 있는...]


[악한 신들의 대장]


[앙코르 와트 부조의 아름다움]


[힌두문명에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를 추천한다]


캄보디아는 옛날 프랑스 지배의 영향인지 프랑스어 관광객이 매우 많고 안내판, 게시판 등도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우선이다. 프랑스어로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들이 상당수였다.



아직 복구를 진행중인 곳도 있고,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크메르인들이 이뤄놓은 힌두문명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힌두교나 그 문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상세히 알지 못한게 아쉬웠다. 오디오 가이드가 없으니 가능하면 한국어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반드시 정식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 투어를 받는게 좋다.



앙코르 와트를 떠나며 이들이 천년도 훨씬 넘는 시간 전에 이룩한 문명이 놀랍기도 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백년 남짓한 삶이 얼마나 한순간인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다른 나라보다 조금 강한 힘으로 앞선 기술로 주변 나라들을 핍박하는 것이, 조금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 얼마나 하찮은 삶인지도 깨닫게 된다. 절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하는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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