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마다 여행의 즐거움 혹은 가치를 두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나는 그것의 상당한 부분을 음식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찾는다면 극복할 힘이 생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도시도, 사람도 마음에 들게 된다. 후에에서 딱 그랬다.



호이안에서 후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직 현지인들도 도착하지 않은 이른 점심시간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들어온 여행자를 보고 젊은 식당 아주머니는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떠넣는 시늉을 하니 놀람, 경계를 띈 얼굴에 약간 미소가 번졌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어차피 시도하는 영어는 안통할 거라는 걸 여행 1달이 넘어서니 잘 알게 되었다. 나도 그렇고 마주하는 현지인도 바디 랭귀지가 편했다. 세계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 편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쓸데도 없는 영어를 뭐하러 배운단 말인가, 그 시간에 좀 더 행복할 궁리나 하는게 합리적이다.


조금 지저분한 테이블에 어둡고 좁은 식당이었지만 밥에 여러가지 반찬을 얹어서 따끈한 국까지 나왔다. 국은 마치 우리나라의 맑게 끓인 시금치 국하고 비슷하게 보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밥 값은 천원이 채 안되었던 것 같다. 여행자가 저렴한 가격에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맛도 나쁘지 않은 훌륭한 음식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달달한 베트남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하긴 그때는 매일 마시다시피 해서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매고 다녀도 생각보다 살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 커피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버스에 올라 다낭을 지난다. 다낭은 꽤나 현대적이고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인듯했다. 도시 근교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베트남의 주요 무역항으로 우리나라에서 다낭으로 직항이 있다고 본 기억이 난다.



호이안과 후에는 거리상으로 멀지 않지만 산과 고원이 많은 베트남에서 편한 길은 드물다. 산 중턱 휴게소에 내리고 보니 야자나무만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 어디쯤 휴게소에 온 듯한 모습이다.


도착한 후에는 춥고 축축했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으슬으슬 감기기운마저 돌았다. 터미널에서 예약한 숙소는 생각외로 너무 멀었고, 나쁘지 않은 시설이었지만 잠자리마저 차고 축축했다. 후에에 대한 첫인상이 나빠졌다. 첫인상이 나쁘건 말건 사진을 남길만한 마음의 여유마저도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식당을 찾아 길을 헤매고 다녔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관광객이 많은 식당에는 가지 않는고 현지인들이 많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간다는 나름의 노하우로 어두운 길에 현지인들이 와글와글한 식당을 만났다. 게다가 고기 굽는 냄새가 기막혀서 안들어가고는 못배길 정도였다.




후에에서 처음 본 맥주 Festival과 훼의 전통 음식이라는 몇 가지를 시켜 놓고는 큰 기대없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처음 나온 음식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오~ 이게 뭐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먹는지 또 바디랭퀴지를 시도했다. 가운데 있는 소스(동남아에서 우리나라 간장처럼 쓰이는 피쉬소스 같은게 아닌가 싶다)를 숟가락으로 떠서 종지 위에 붓고 그걸 떠먹는단다.


먹어보니 소스의 짭짤한 맛과 종지 위에 놓인 것의 바삭하고 달콤한 맛에 흰색의 무언가의 쫄깃함까지... '우와, 이거 완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올려진 것은 새우살을 말린 듯하고 아래 흰 것은 쌀을 갈아서 만든 죽같은 것을 굳힌 듯한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다음에는 밥 위에 양념한 치킨 바베큐 한 덩어리가 올려져 나왔다. 양념치킨하고 밥을 먹는건데 이것도 먹을만하다. 소고기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지만 지역별로 가장 편차가 덜한 고기가 닭이라서 처음 시도하는 고기 음식은 대체로 닭을 시키는 편이다. 그리고, 고깃국물에 야채가 든 따끈한 갈비탕 맛의 요리가 나왔다. 오호, 이것 또한 별미다. 더구나 가격이 말할 수 없이 착하다.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잘 먹었는데 이렇게 적게 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춥고 습한 날씨에 움츠러든 여행자의 어깨가 펴지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갑자기 후에가 좋아지려고 했다. 이래서 음식이 중요한가보다.


사진을 신경 써서 찍지 않는 내가, 더구나 다시 올 가능성도 별로 없는 식당 간판을 여러차례 찍었다. 비록 제대로 찍히진 않았지만 지금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만큼 이 식당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여행자의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꿔버린 훌륭한 음식을 내어주는 식당이었다.




세상에... 메뉴까지 찍어뒀다. 이건 경우는 여행을 통틀어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처음 나왔던 음식은 반 베오(Bahn Beo)이고 예상대로 피쉬소스에 새우살이 올라간 후에의 전통 음식이다. 후에를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이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다.


베트남에 무비자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후에에서는 길어야 2박 3일이었다. 그냥 숙소에서 쉬면서 보낼 수도 있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150여년간 응우엔 왕조의 수도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후에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기에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라오스로 넘어가는 버스까지 예약했다.) 이것은 후에의 맛있는 음식의 힘이다. 아마 제대로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면 춥고 쌀쌀한 첫인상만 가지고 라오스로 가버렸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의 힘은 생각외로 막강하다. 특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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