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새벽, 숙소 앞에 도착한 승합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어느 한적한 해변에 닿았다. 이곳의 지명은 기억나지 않고, 바예스타(ballestas) 섬 투어가 시작되는 곳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이곳 해변의 특징은 펠리컨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새들의 천국인 바예스타와 가까우니 그렇다하더라도 이곳 펠리컨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펠리컨은 새중에서 크기가 매우 큰 종류로, 섯을 때 머리 높이가 사람의 허리 이상이고 날개를 펼쳐서 펄럭거리면 날개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길이가 사람 키보다 훨씬 커서 무척이나 위압적이다. 하지만 성격은 온순한 편인지 현지인 남성이 물고기를 먹이로 나눠줄때(아마도 팔다남은 물고기인듯) 싸우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펠리컨에게 팔다 남은 생선을 먹이로 주던 남자와 자신도 그걸 해보고 싶었던 여행자


다른 곳에서 봤던 펠리컨보다 부리 색깔이 알록달록한게 독특하다.


남미여행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이 거대석상이 있는 '이스터 섬' 여행과 찰스 다윈이 보고 종의 기원을 쓰게 되었다는 '갈라파고스 제도' 크루즈 여행이다. 그 중에서 동물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이번 남미여행에서는 페루에서 멕시코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얼마남지않아서 둘다 포기해야 했다. 이 갈라파고스에 갈 수 없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곳이 바예스타 섬 투어였다. 


바예스타 섬 투어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섬 주변을 돌면서 펭귄, 펠리칸, 바다사자, 물개들을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이 바예스타 섬의 별칭을 '가난한 여행자의 갈라파고스'라 이름붙인 것도 이런 연유다.



보트에 올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나면 투어가 시작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섬이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 모래언덕에 나무 혹은 촛대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 그림은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게 지표면을 파헤치는 형태로 그려져있는데 나스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그래도 아래위 길이가 200미터에 가깝다고 한다. 촛대 모양이라서 촛대(El Candelabro) 그림이라고 이름붙여졌는데 누가, 언제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나스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제 본격적인 바예스타 섬 투어가 시작되었다. 배를 돌려 멀리 하얗게 보이는 작은 섬들로 속력을 올렸다.



펭귄이나 바다사자 같은 동물없이 파도에 침식된 섬의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풍경이었다.


섬 가까이 다가가자 절벽아래에 펭귄 한마리가 서 있었다. 절벽 위에는 펭귄과 펠리컨이 무리지어 있었는데, 날지도 못하고 다리도 짧아 평지에서도 빠르게 걷지 못하는 펭귄이 절벽 위에서 어떻게 아래로 내려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지, 바닷속에서 어떻게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여행을 마친 후, TV에서 BBC에서 촬영한 '스파이 펭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풀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황제펭귄, 바위뛰기 펭귄, 훔볼트 펭귄의 서식지를 가까이에서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가 달린 여러가지 움직이는 모형(펭귄이나 바위, 심지어 알까지)을 이용한다. 펭귄이 이 모형들을 같은 무리나 주변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생태를 정말 놀랍도록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바예스타에 있는 이 펭귄이 바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훔볼트 펭귄이었다.(동물원에 있는 펭귄도 훔볼트 펭귄이 많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훔볼트 펭귄이나 바위뛰기 펭귄은 짧은 다리로도 절벽을 오르내리거나 평지를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렸다.






섬의 침식된 동물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무리의 바다사자(아니면 물개)가 쉬고 있었다.



섬을 돌아 뒤편으로 가니 바다사자들이 섬 절벽 바위 위에서 다들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배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낮잠을 방해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정작 녀석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눈을 뜨거나 쳐다보는 녀석조차 없었다.



새들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도 펠리컨은 워낙 덩치가 커서 쉽게 눈에 띄었다.


바예스타 섬이 유명해진 이유는 동물들의 서식지로서가 아니라, 구아노(guano)라고 부르는 새들이 남긴 배설물 때문이다. 이 섬에는 섬들을 새카맣게 뒤덮을만큼 많은 수의 새들이 사는데, 이 새들이 섬에 남긴 배설물들이 쌓여 수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굳어서 딱딱해진 이것들은 질소와 인산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훌륭한 비료가 된다. 바예스타의 섬들은 모두 흰색을 띄고 있는데 원래 흰색이 아니라 배설물로 뒤덮여서 흰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처음 비료로 사용한 사람들은 잉카인들이라고 하는데, 유럽인들이 비료로서 구아노의 효과를 알게된 후, 1800년대 이 지역에서 채취한 구아노를 유럽으로 엄청나게 수출했다. 당시 페루에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재화의 대부분이 이 구아노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볼리비아와 페루의 자원을 탐낸 칠레와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구아노 전쟁), 전쟁의 결과는 이전 글에도 썼듯이 칠레가 아타카마 사막과 태평양 해안을 차지하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어버렸다.  


그 후에는 화학비료가 개발되어 쓰임새가 줄어들었다가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배설물 채취는 페루 정부에서 허가 받은 회사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과도한 채취를 막기 위해 특정 기간에만 실시한다.


올해 초에 이 섬에서 구아노를 채취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새의 깃털과 뼈들이 섞인 배설물을 간단한 도구로 긁어 포대에 담는 일이었다. 심한 먼지와 냄새가 나는데도 페루의 인부들은 마스크 하나만을 쓰고 고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배설물들은 비싼 비료로 팔리는데 정작 이것을 채취하는 페루 노동자들의 보수나 노동환경은 척박한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섬마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들이 하나씩 있는데 이것은 섬에서 채취한 배설물 포대를 배로 옮기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구조물마저 새의 배설물로 하얗게 변하고 있다.


바예스타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사는지는 사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많은 새가 섬을 뒤덮어 색깔마저 검게 바꿔버린다.


정말 놀랍도록 새들이 많았다.




단순히 경치만 감상해도 바예스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야생 바다사자 무리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배나 인간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전혀 유연하지 않을 것 같은 몸매에서 이런 유연함이... 죽은듯이 자고 있다는 표현은 딱 이런 모습...









바예스타 투어는 배를 타고 반나절 둘러보면 끝나는 단순한 일정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관과 펭귄, 펠리칸 등 수많은 새들과 야생 바다사자와 물개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투어였다. 그리고, 이 곳을 방문하기 전에 섬들을 뒤덮고 있는 구아노와 이로인한 역사적인 일들을 미리 알고 투어를 한다면 더욱 의미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새와 동물들을 제대로 찍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성능 좋은 카메라 한대도 필요할 것 같다.)



이 동네는 펠리컨이 동네 강아지보다 흔하게 보인다.


와카치나로 돌아갈 승합차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잉카와 원주민들을 조재로한 조각과 회화 기념품을 많이 팔고 있었다.




바예스타 투어를 마치고 와카치나로 돌아온 뒤, 이까의 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는 버스를 탓다. 리마로 가는 길은 태평양을 따라난 해안도로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이었다. 가는 중에 해가 저물었다. 날씨가 맑지 않은 탓에 붉은 노을은 아니지만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해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떠오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꽤 늦은 시간에 리마에 도착했다. 여행내내 처음 가는 도시에는 가능한 밤에 도착하지 않으려 일정을 잡아왔지만 가끔은 그게 불가능할 때가 있다. 리마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 늦은 시간이었고, 여행자들로부터 리마에 대한 악명도 조금은 들었던터라 터미널에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리마는 내가 생각했던 리마와 많이 달랐다.


어둠이 내려앉은 리마 시내는 현대적으로 지어진 높은 빌딩과 깔끔하게 꾸며진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사실 도시에서 여행자에게 위험한 곳은 번화한 길거리의 뒷골목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내 상상만으로 위험한 도시의 전형으로 어두컴컴한 슬럼가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마의 주택가에 위치한 숙소도 나쁘진 않았다. 조금 낡은 시설과 마주보고 있는 다른 숙소와의 과도한 경쟁으로 불편했던 점을 제외하고는...

-- 이까에 있는 사막의 이름은 와까치나(Huacachina)였다. 분명히 뭔가 이름이 있었을텐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까의 사막이라고 썼다가 며칠 뒤에야 생각이 나서 고치기로 했다. --


눈을 뜨니 버스 창문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쿠스코에서 출발해 밤새 안데스 고원을 내달렸을 버스는 아직도 산악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평선 끝에 보이는 산들이 둥그스름하게 변한게 해발고도가 많이 낮아졌음은 알 수 있었다.


동남아, 중동,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이제는 일일이 새기 힘들정도로 많은 횟수의 장거리 버스와 기차를 타왔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아침을 맞을 때에는 멍한 상태의 머리와 고통을 호소하는 허리와 팔다리를 달래야했다.




멍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다.

이 구불구불한 길로 안데스 산맥을 넘어서고나면 태평양 연안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스마트폰 구글맵에서 GPS를 통해 내 위치를 찾아보니 나스카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저멀리 평원 어딘가 고대인들이 그려놓은 불가사의한 그림들이 펼쳐져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지나치기로 했다.


이른 아침, 버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도시의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까에 도착한 줄 알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터미널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오란다. 버스비에 포함된 아침식사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이까에 도착할텐데 왜 여기서 아침을 먹으라는 건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이 버스의 목적지는 이까가 아니라 더 먼 도시(어쩌면 리마까지?)여서 버스를 타고 더 가야하는 승객과 운전사를 위한 아침식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까에 도착해서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이까의 와카치나(Huacachina)사막은 시내에서 가까워서 물가가 저렴한 페루에서는 택시를 타도 될 것 같아서였다. 곧 시내를 벗어나 달리던 택시의 앞 유리창 앞으로 모래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모퉁이를 돌아들어가자 풍경이 갑자기 바뀌면서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던 평범한 이까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막과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길 앞에 문득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았을뿐인데 택시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와까치나 사막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오아시스가 있다. 그리고, 이 오아시스를 빙둘러서 작은 마을이 있는데 사막을 보려고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음식점들이 대부분이다. 이 오아시스에 마을이 생긴 것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서 사막 버기카 투어와 근처 바예스타 섬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밤새 버스에서 쌓인 피로가 가시지 않으니 가격대비 양호한 숙소를 찾아다닐 의욕도 없어서 가격이 적당하다 싶은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그날 오후 버기카 투어와 다음날 아침 바예스타 섬 투어 예약도 한번에 해치워버렸다. 경비를 절약하면 좋겠지만 여행은 보고 느끼고 즐기기 위한 것이니 체력을 회복하는게 우선이다.



남미 남단에서부터 꾸준히 올라오다보니 적도에 꽤 가까워졌는지 정오의 그림자가 매우 짧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점심때 일어나 식사를 하기 위해 오아시스로 나왔다. 이까 사막의 오아시스는 내가 상상해왔던 오아시스의 전형적인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이집트 바하리아 사막에서는 말라버린 오아시스를 보고 실망했었는데 이곳은 부드러운 모래언덕으로 둘러쌓여 물가에 야자수가 자라는 예의 그런 오아시스였다. 물이 맑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처럼 사막에서 목마름의 한계에 도달한 주인공의 상태라면 나도 이곳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아시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니 우리나라 중학생 나이쯤으로 보이는 페루 학생들이 단체로 와까치나의 오아시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중 한무리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학생들과 좌우로 쭉 늘어선 중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남미에서 한국 배우나 가수들이 인기라더니 그래서 사진을 찍자고했나 싶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단지 흔히 보이지 않는 동양인이라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을 곳곳에 사막 투어를 할때 타는 버기카가 서있다.


오후 느지막히 사막 투어를 할 시간이 되었다.(사막 투어는 늦은 오후에 시작해 해가 질때 끝이 난다.) 숙소 앞에서 투어를 예약한 다른 여행자들과 버기카에 타고 마을 바로 뒤에 있는 모래언덕을 올라갔다. 모래언덕 위에서 본 사막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내가 택시를 타고 들어온 반대방향으로는 모래언덕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하리아 사막은 흑사막이나 백사막 같은 돌로 된 사막과 모래 사막이 모두 있어서 이곳보다 훨씬 넓었지만 모래 사막만 따지자면 이곳의 모래 언덕이 훨씬 크고 높았다.


버기카는 이런 모래언덕을 신나게 내달렸다. 모래언덕이 워낙 크고 높낮이도 심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어떤 때는 버기카가 뒤집혀 그대로 모래언덕을 굴러내려갈 것 같지만 사막지형에 특화된 이 버기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달렸다. 사람들도 신이 나서 환성(또는 비명)을 지르며 마음껏 즐겼다.




한참을 내달리던 버기카가 커다란 모래언덕 위에서 멈췄다. 운전사는 다들 내리게 하고 차에 실린 스노우보드 형태로 생긴 나무판을 하나씩 갈라줬다. 샌드보딩을 하게 할 모양이었다. 샌드보딩은 바하리아에서도 했었는데 거기서는 모래언덕이 낮아서 스릴있지 않았지만 이곳의 모래언덕은 거기보다 훨씬 높아서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만, 보드를 타고 내려간 뒤에 이 높은 모래언덕을 어떻게 다시 올라올지 걱정이 되었는데 운전사는 내려가고 나서 다시 올라오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모두 내려가고 나면 버기카를 몰고 태우러 온다.)


점차 높은 모래언덕으로 옮겨가며 이런 샌드보딩을 세 번 정도 했다. 세번째 모래언덕은 경사가 꽤 심해 정말 스릴있었다. 하지만, 모래가 워낙 곱고 부드러워 샌드보딩을 하고나면 이 날 입었던 옷에서 오랫동안 모래가 나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깔끔하게 털고 세탁을 하더라도 허리춤, 주머니속 어딘가에서 계속 모래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모래언덕에 버기카를 세우고 사막을 몸으로 느낄 시간을 준다. 바하리아에서도 그랬지만, 사막이 없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에게 사막은 너무나 신비롭다. 주위는 너무나 고요해서 바람소리와 모래가 사각거리는 소리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파란하늘과 빛의 방향에 따라 명암이 다른 모래 언덕의 부드러운 곡선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한동안 모래 언덕에 앉아 신체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이 신비로운 느낌을 부지런히 받아들였다.




자세히 보면 투어 중인 버키가 사막에 띄엄띄엄 붉은 점처럼 보인다.


다른 투어에서 샌드보딩을 하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니 모래 언덕 높이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샌드보딩이 끝나면 버기카도 이런 모래 언덕을 그대로 달려 내려온다.



사람 발자국과 버기카의 바퀴자국을 제외하고

 사막에는 오로지 바람이 만들어 놓은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가득하다.





해가 뉘엿뉘엿 반대편 모래언덕을 넘어가고 나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모래언덕에서 내려다 본 이까의 오아시스는 역시나 내가 상상해왔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산에서처럼 사막에서도 해가 지면 금새 어두워진다.



저녁을 먹으러 점심때 갔던 식당에 다시 갔다. 음식이 나쁘지 않았고, 가격도 무난한 편인데 다른 식당을 고르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메뉴에 프라이드 치킨이 있기에 별 기대없이 시켜놓고 기다렸다. 


어느 나라건 치킨이 고기요리 중에서는 제일 저렴한 편이지만 대개 단순히 굽거나 튀긴게 전부라 여행중에 가끔 우리나라의 다양한 닭요리가 생각나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닭요리는 생김새가 우리의 양념치킨과 무척 흡사했다. sesame 소스라더니 참깨를 넣고 소스를 만든게 아니라 치킨 위에 잔뜩 뿌린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음식의 마무리로 깨를 뿌리듯이. 게다가 맛을 보니 오호라, 우리나라 양념치킨 맛과 아주 비슷했다. 100%는 아니더라도 90% 이상은 비슷한 것 같았다. 페루에서 만난 양념치킨이라니, 매콤한 양념이 씌워진 프라이드 치킨이 너무 반갑고 맛있었다.


세상이 넓고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비슷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비슷한 요리가 어딘가에 한두가지는 존재하나보다. 만족스러웠던 사막 버기카 투어에 이어 더 만족스러웠던 저녁식사까지... 마추픽추에서 조금 실망했던 페루에서 남은 일정이 더 기대가 가기 시작했다.


(버기카 투어 동영상과 샌드보딩 투어 동영상을 올리려니 10M 초과라고 올려지질 않는다. 변환까지 해서 올리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제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판을 치는 요즘 10M 제한이라니 티스토리 뭔가 어설프다.)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서 총 2박 3일의 시간과 숙박료와 식비 등등은 제외하고 교통비와 입장료로만 200불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그랬음에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볼거리나 지나친 상업성으로 나에게 남미여행에서 마추픽추는 결국 필수코스까지는 아니지만 빼려면 또 찜찜한, 가보긴 해야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던 계륵같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마추픽추를 보고 온 다음날, 오얀따이땀보를 떠나 페루의 사막도시 이까로 향했다. 일단 왔던 것처럼 쿠스코로 돌아간 후, 쿠스코에서 이까로 가는 야간버스를 타는 일정이었다.


오얀따이땀보 숙소에 난 창문. 하얀벽과 유리창이 보기는 좋지만 겨울이었다면 글쎄...



오얀따이땀보에서 묵었던 숙소는 넓은 정원을 가진 나쁘지 않은 곳이었지만, 워낙 집이 낡은대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욕실이 정원을 통해 갈 수 있는 별도의 건물에 있어서 겨울이었다면 꽤나 춥고 불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싼 숙소가 아니라 배낭여행자용 숙소라면 오얀따이땀보에서 이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쿠스코에서 이까는 12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하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구글맵에서 나오는 거리만 800km가 넘었다. 그리고 이까는 태평양과 가까운 곳이라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쿠스코에 비해 해발고도가 3000m 이상 낮았다.


이까에 가려는 목적은 이까가 인구 2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까 주변에는 페루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러야하는 볼거리가 2곳이나 있기 때문이다. 한 곳은 와카치나 사막이고 나머지 한 곳은 작은 갈라파고스, 배고픈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라는 바예스타 섬이다. 이까에 가려는 목적은 분명했으나 쿠스코에서 목적지로 이까를 결정하는데는 마지막까지 애를 먹었다. 그 이유는 쿠스코와 이까 사이에 너무나도 유명한 나스카 평원이 있기 때문이다.


나스카 평원에는 마추픽추와 함께 페루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대인들이 그렸다는 정체불명의 그림들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 평원의 불가사의한 그림들은 지상에서는 전체적으로 볼 수 없어 대개 경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걸렸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다큐멘터리로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실제로 보게 된다면 그 규모나 신비로움에 감탄하게될지 모르겠지만 보고싶은 생각이 없는데 유명세나 직접 보면 좋을지도 모를 확률에 기대어 가야한다는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리고, 과감하게 이번 여행에서 이곳을 제외했다.


여행중에 꼭 보려고 했거나, 가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럴 수 없었던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이번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곳이 있다면 그 때 다시 오면 될 문제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본 세계 7대 불가사의가 페루에만 2가지가 있었다.)




쿠스코 버스터미널에서 이까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터미널 매표소 앞에 개 한마리가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엔 주인이 근처에 있겠거니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참을 지나도 거기에 계속 앉아있었다. 자꾸 보고 있으니 왜그런지 표정도 배고프고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먹을거라도 줘볼까하고 배낭에서 남은 것을 주섬주섬 꺼내고 보니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녀석이 나갔을만한 터미널 출구로 찾아봐도 결국 찾지 못하고 주려고 꺼낸 먹을 것만 손에 든채 엉거주춤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이때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한게 오랫동안 마음에 불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길거리를 다니는 개들은 하루에도 여러 마리를 볼 수 있는데 그런 개들마다 모두 먹이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유독 이 녀석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살다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실이 어떤 날엔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그런 날이 있다.


오오~ 버스가 좋아보인다. TEPSA는 페루에서 제법 유명한 버스회사다.


남미의 장거리 버스는 편안하고 시설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미 브라질부터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질리도록 타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페루의 버스는 그 버스들을 능가한다. (볼리비아는 제외. 이들 나라중 경제적으로 제일 빈곤한 볼리비아의 버스는 시설과 편안함보다는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재미로 타야한다.)


넓은 좌석을 가진 등급의 버스는 아니었지만 좌석은 제법 넉넉했고, 편안했다. 버스 천정에는 제법 큰 LCD 모니터가 여러 군데 달려 있어서 우리나라 버스처럼 앞자리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느 좌석에서든 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좌석마다 전기 콘센트와 엄청 느리지만 와이파이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페루의 장거리 버스는 세계에서 손꼽힐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이 버스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외국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처음 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외국에서 유행중이라는 것을 주로 국내 뉴스기사로 보다가 페루의 장거리 버스에서 뮤직비디오로 보게 된 것이다. 외국 버스에서 한국어 유행가를 듣는 것은 꽤 신나고 기분 좋은 독특한 느낌이었다.






마추픽추에 대해서는 여행을 마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좋았던 여행지와 기대에 못미친 여행지에 대해 남긴 글이 있어서 그 부분을 조금 수정해 올리기로 했다. 


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추픽추는 여행을 하기 전부터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기대가 무척 컸었지만 가보고 나서 기대에 비해 실망도 컸던 여행지다. 오로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실망이 컸던 이유는 '유명 여행지일수록 그런 경우가 심해지긴 하지만 대놓고 여행자의 주머니를 털려는 듯한 과한 상업성', '근거없는 불가사의와 미스테리로 포장된 신비주의',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별로 볼게 없었던 유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것에 대해 반추하다보면, 그때는 갖지 못했던 느낌이나 생각들로 처음의 인상과 많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일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부분이 부각된다. 그렇기에 이번에 수정하는 글이 먼저 쓴 글과는 많이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이후부터는 예전 글을 수정한 부분이다.



마추픽추는 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이자 유적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이곳을 꼽고 있으며, 실제로 여행중 만난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마추픽추는 께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 '늙은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며,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르밤바 계곡에 있는 높이가 2057m인 산꼭대기에 지은 작은 도시이다. 사실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크기이다. 


안데스에서 2000m는 높은 곳은 아니다. 안데스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대부분의 도시가 3000m가 넘는 고원에 위치해 있다. 다만, 마추픽추가 있는 우르밤바 계곡은 넓은 고원지대가 아니라 험한 산들로 이루어진 지형이라 2000m라 하더라도 계곡에서는 산 위에 지은 마추픽추가 보이지 않는다.


이른 새벽 기차역으로 가는 중, 오얀따이땀보의 광장


이른 새벽의 오얀따이땀보. 곧장 가면 유적지이고 왼쪽으로 가면 기차역이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아구아 깔리엔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낡은 기차지만 운임이 비싼만큼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내부는 깨끗하고 좌석도 편안한 편이었다.



가장 저렴한 회사의 낮은 등급의 좌석이지만 상태는 매우 훌륭하다. 그렇긴해도 너무 비싸다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이 여러가지인 이유는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기차등급을 이용하더라도 쿠스코에서 아구아 깔리엔떼까지 왕복 200불, 오얀따이땀보에서는 왕복 100불 정도가 든다.(기차 회사가 3군데 정도 있고, 금액에 조금 차이가 있다.) 거기에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비와 마추픽추 입장료를 포함하면 50불 가량이 더 들어간다.


페루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혹은 칠레 같은 나라들보다 물가가 싼 편이지만 잉카 유적지에 대해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높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오얀따이땀보에 있는 잉카 유적지조차 3만원대의 입장료를 받는다. 


안데스에 부족형태의 국가가 수립되고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잉카의 시조로 알려진 망고 카팍이 나라를 세운 것이 1200년대의 일이며, 흔히 알고 있는 안데스 전체를 지배하던 잉카 제국이 이루어진 시기는 스페인에게 멸망당하기 얼마전의 일이라고 한다. 사실상 제국으로서 역사에 남은 시기는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스페인이 침략한 1500년대에도 청동기 문명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잉카의 유적은 석조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건축물이 대다수이다. 잉카인들의 건축물은 앙코르 와트와 같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용성과 내구성의 의미로 대단한 것 같다.


기차는 천천히 우르밤바 계곡을 달려 마추픽추로 다가갔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던 아구아 깔리엔떼 역


아구아 깔리엔떼 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가면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표를 파는 곳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젯밤 비가 내렸는지 젖은 땅과 잔뜩 흐린 날씨를 보고 걱정을 했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안개와 구름으로 시야가 제한되어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마추픽추가 아니라 자욱한 안개만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산허리에는 안개가 피어올랐고, 아구아 깔리엔떼 역에서 내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는 굵은 빗방울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는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구아 깔리엔떼는 오얀따이땀보보다 더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자 숙소들이 많이 있어서 이른 시간에 마추픽추를 보려거나 와이나픽추까지 오르고 싶다면 여기서 하루를 묵는게 좋다. 물론 숙소 가격은 더 비쌀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노점에서 본 코카잎과 빨간 바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본질이 반드시 그것이 아니거나 그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에 오르는 중


마추픽추 매표소 앞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미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비수기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으나 온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버스에서 내려 마추픽추로 가다보면 1911년 잊혀졌던 마추픽추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고고학자 히람 빙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보인다. 아마도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것 같다.


매표소를 지나 마추픽추 안으로 들어가려면 절벽이나 다름없는 가파른 경사에 만들어진 계단식 밭을 지나야 한다. 계곡사이에 흘러넘치는 안개와 구름이 이구아수 폭포의 물보라를 연상하게 했다.





아침부터 궃은 날씨라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사진에서 보던 마추픽추를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름으로 덮인 산봉우리와 뿌옇게 보이는 유적지를 보니 더욱 아쉬워졌다. 산에서는 날씨가 금새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마추픽추 뒷쪽에 있는 '잉카인의 길'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마추픽추 뒷쪽에 있는 제단인데 인신공양에 쓰였다고 한다.


잉카인의 길은 예전에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들어오는 길이었다고 하는데, 마추픽추 유적에서 봉우리를 돌아 30~40분쯤 걸어가면 볼 수 있다. 도중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적고 나올 때 다시 사인하도록 하는 곳이 있다. 길 자체는 전혀 위험하지 않지만 길 밖으로는 워낙 심한 낭떠러지인데다 간혹 쓸데없는 모험심을 발휘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절벽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다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창살로 막혀진 곳에 다다른다. 그 뒤로는 아슬아슬한 절벽에 벽돌을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보기만해도 위험해 보였다. 벽돌을 쌓아 만든 길 중간은 통나무 몇 개로 이어놓았는데 외부에서 침략을 받을 때 저 나무들을 치워서 적의 진입을 막았다고 한다. 사진은 높지 않게 찍혔지만 그 밑은 꽤 깊은 낭떠러지였다. 길을 만든 사람도 대단하고, 이 길을 다닌 사람들도 대단하다.





'잉카인의 길'에 다녀오는 동안 구름이 조금 옅어진 듯했다. 과연 한두시간 지났을 뿐인데 마추픽추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뒤로 와이나픽추도 험준한 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다시 날씨가 나빠질지 모르니 서둘러 유적지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날씨는 점점 더 좋아졌고 어쩌면 와이나픽추에 올라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와는 반대의 의미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마추픽추보다 훨씬 높고 가파른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추픽추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나무숲 사이로 언뜻언뜻 와이나픽추를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행 후, 산악인 엄홍길씨가 참여했던 '안데스 8000km'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8000m 이상 고봉을 모두 등정한 엄홍길씨도 이 와이나픽추를 오르면서 '아, 산이 무척 험합니다', '아, 힘드네요' 하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엄홍길씨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무척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 같았다.)


마추픽추의 채석장 유적에서 뭔가를 발굴하는 사람들


마추픽추에는 채석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캐낸 돌로 마추픽추가 지어졌다고 한다.



역시 산에서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어서 금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나하고 준비해 온 우비를 꺼내 입었다.




잉카인들이 마추픽추에서 사라진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이곳을 다시 발견한 빙엄은 수풀로 우거진 이 산의 절벽을 기어올랐다고 한다. 위 사진 반대편으로 빙엄이 올라 온 루트라는 표지가 있었는데 내려다보면 지금도 수풀이 가득한 절벽이었다.

안그래도 험한 산세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와이나픽추에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와이나픽추를 포기하고나니 시간이 넉넉해져서 느긋하게 남은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콘도르 신전. 앞부분이 콘도르 머리, 뒷쪽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석 두개가 콘도르의 날개란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스러운 곳이라는 태양의 신전


계단 모양의 하얀 바위가 아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바위가 아닐까 싶다.


마추픽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던 곳이었나보다. 곳곳에 신전이나 제단이라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았다.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탄 버스가 올라 온 구부구불한 도로

 

고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세는 제법 험하다.


마추픽추에 거주한 잉카인들이 경작한 거대한 계단식 밭



자연석을 파서 만든 수로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은 지진에도 견디도록 돌들이 퍼즐처럼 맞물리도록 만드는 것, 다양한 모양의 돌을 빈틈없이 짜맞추는 것도 놀랍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만든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벽을 쌓다가 옮기기 불가능한 거대한 자연석을 만나면 그것을 그대로 벽으로 사용한다던지, 자연석이 포개져 생긴 공간에 신전을 만든다던지, 수로를 만들때도 자연석을 파서 수로를 낸다던지 하는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마추픽추를 대표하는 유적인 태양의 신전이나 콘도르의 신전을 그 규모나 예술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보잘것없는 게 사실이다.




마추픽추를 둘러보는데 대략 네댓시간쯤 걸린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구아깔리엔떼로 내려오니 햇볕이 나고 하늘이 맑아졌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기차가 올때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오늘 본 마추픽추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마추픽추를 보고 왔지만 뭔가 허전하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광고하는 영화를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기대에 못미치는 바람에 나오면서 흠을 잡고 싶은 그런 마음하고 비슷하달까.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에서 대단한 유적지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유적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보다 그외의 것들로 과장되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마추픽추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들, 억측과 과장에 의해 신비한 불가사의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것은 학자들, 언론인, 돈만 밝히는 출판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게다가 그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그 가치보다 훨씬 더 큰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마추픽추만을 위해 남미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곳을 목표로 여행하기에는 남미에는 볼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가장 비싸면서 또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마추픽추행 기차가 정차하는 역 중에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그래도 기차 탑승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모험심 많고 체력도 충분하지만 여행비를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인데 버스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간 다음에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그외에 몇 일간 전문 가이드와 잉카 유적을 찾아다니며 야영하는 잉카 트레일 투어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돈과 시간과 체력이 모두 많은 여행자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대부분의 여행자들과 다르지않게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로 간 다음, 이튿날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등급에 따라, 회사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가장 저렴한 등급에 저렴한 회사의 열차를 탓음에도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에 100달러쯤 줬던 것 같다. 물론 기차가 매우 깨끗하고 좌석도 편안하지만 고작 2시간 남짓 가는 기차를 그렇게나 비싼 돈을 내고 타야하는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걸어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마추픽추행 기차 탑승권이 비싼 이유는 마추픽추까지 철로를 놓은 서구자본들이 탑승권 가격을 주무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생에 한번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의 주머니를 사정없이 뜯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겠는가? 마추픽추가 상업적으로 오염되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는 이 기차 탑승권 가격이 한몫한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가장 훌륭했던 샌드위치 가게를 다시 한번 방문했다. 숙소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에 현지인들과 여행자들까지 가득 붐비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샌드위치의 크기와 맛이 무척 훌륭했다.


맛이 좋을뿐만 아니라 샌드위치가 큼직하고 가격마저 저렴했다. 고기패티, 치즈, 야채가 듬뿍 담긴 가장 비싼 샌드위치가 0.5리터 콜라를 포함해 지금 환율로 4000원 정도 였다. 특히 감자를 얋고 작게 튀겨 샌드위치 안에 넣었는데 이게 바삭바삭하니 식감이 아주 좋았다. 4000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점심때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를 먹을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가게에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었는데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 모두 손님들에게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정도면 비주얼도 훌륭하지 않은가?


쿠스코에서 만난 훌륭한 샌드위치 가게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쿠스코 근교의 작은 도시들만을 오가는 버스들이 모여있는 길거리에서 탄다. 버스도 일반적인 대형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 정도의 미니버스인데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섞여서 탄다. 다행히 버스가 깨끗하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중간에 가다가 멈추진 않겠다 싶었다.


시내는 비교적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정돈되지 않은 달동네 모습이다.


쿠스코를 벗어나 국도를 타기 시작했을 때 미니버스가 길을 벗어나더니 연료를 채우느라 정차했다. 다시 출발하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동양인 여행자들로 보이는 커플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낭여행의 극한을 경험하려는 젊은 패기인지, 단순히 여행경비를 아끼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고단해 보이고 또한 걱정스러웠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최악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뒤섞인 남미이며 현지인들조차 낮에도 두꺼운 쇠창살로 된 대문을 닫고 사는 쿠스코라는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골이나 소도시보다 대도시의 빈민가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내내 이 커플이 생각났다. 이들의 여행이 별 탈없이 마무리되길 속으로 기원했다.







쿠스코에서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길은 너른 구릉에 펼쳐진 밭과 수량이 풍부해보이는 강과 호수, 진한 녹색의 무성한 나무들이 펼쳐져 있어서 지금까지 본 안데스의 풍경 중에서 가장 풍요롭게 보였다. 역사적으로 너른 평야와 풍부한 수량이 갖춰진 곳에서 문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안데스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것 같다.


오얀따이땀보에 거의 다달을때쯤, 계곡을 따라 난 길 옆으로 '레프팅, 카약킹, 패러글라이딩'을 광고하는 간판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강과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다보니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물과 관련된 액티비티가 성행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척박하고 건조한 안데스가 아니었다.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버스는 오얀따이땀보 유적으로 가는 길과 숙소들이 있는 마을 사이 애매한 곳에 여행자들을 내려주었다. 일단, 예약한 숙소에 가서 방을 잡고나서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얀따이땀보도 마추픽추나 모라이에서 봤던 계단식 밭과 잉카인의 뛰어난 석조기술을 볼 수 있는 잉카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다. 멀리 보이는 계단식 밭을 통해 많은 여행자들이 유적지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유적지 앞에 있는 기념품점과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입장하려고 보니 입장료가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잉카문명을 대표하는 유명한 유적 중 하나라 하더라도 인당 몇 만원에 달하는 입장료는 페루가 아니라 물가가 비싼 유럽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오얀따이땀보 유적은 거대해서 몇 시간은 돌아봐야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반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터키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느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머나먼 남미의 오얀따이땀보까지 왔으니 입장료를 비싸게 받더라도 대부분 돈을 쓸거라는 상술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중에 비싼 비용이 들더라도 감수하려면 비용대비 경험의 가치가 크다고 느껴져야 하는데 이곳은 나에게 반드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에게 가치가 크다고 해서 자신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판단은 오로지 여행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달린 것이다. 과하다 싶은 입장료에 기분이 상했다.


유적 앞에는 기념품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심지어 기념품까지 비싸다.




유적지에 가려던 시간에 마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마추픽추와 오얀따이땀보가 있는 이쪽은 지금까지 거쳐왔던 해발 3,4000미터에 달하는 고산지대가 아니다. 거의 1000미터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식물의 식생이 매우 풍부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꽃들이 마을 곳곳에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 아구아깔리엔떼까지 가는 기차가 다니는 역



계절이 맞지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안데스에서 볼 수 없었던 꽃들이 이곳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마을 곳곳을 다니다보니 여행자들을 위한 깔끔한 까페도 제법 보였다. 이곳은 오로지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오는 여행자들로 인해 유지되는 마을로 보였다. 본의아니게 유적지 입장료도 아꼈겠다,  까페에서 모히또를 한잔 시키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이 질 무렵 까페에서 돌아오는 길, 마을 광장에는 벌써 가로등이 켜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묵은 숙소에는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을 간단히 때울 요량으로 마을 광장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빵을 몇 가지 고르고 계산대에 가니 뜬금없이 카운터를 보는 백인 아가씨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자신이 부산에서 5년간 영어 강사를 했었다며 한국 음식 중에 특히 순두부 찌개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갈비나 김치가 아니라 순두부 찌개를 좋아한다니 한국에서 살았던게 정말인가보다 싶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짧은 한국 문장을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자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단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이 빵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빵은 무척 맛이 없었다. 1년간의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없는 빵, 아니 음식이었다.)




오얀따이땀보의 골목골목은 모두 잉카인의 석조기술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었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만든 물길과 커다란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빈틈없이 만들어진 양옆의 벽들을 보면 이곳이 잉카의 유적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놀라운 능력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맛없는 빵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추픽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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