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섬 투어를 했던 다음날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단 한장의 사진이 남아 있고, 그 사진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있을뿐이다. 사람의 기억이 무한하게 보존되는 것이 아니니 역시 여행에서는 사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한장 있는 그날의 사진은 트루차 구이를 찍은 사진이다.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던 첫날 먹었던 트루차 구이에 실망한 나머지 현지인들이 찾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날 점심때 우연히 현지인들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 앞을 지나다가 그 생각이 퍼뜩나서 들어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트루차 구이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생선치고는 고소한 맛이나 감칠맛이 부족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환호했던 그 트루차의 맛이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트루차 구이와 밥 또는 고구마와 옥수수를 같이 준다. 옥수수는 한 알이 엄지손톱만 했다.


글을 쓰다보니 그 날 무엇을 했었는지 조금씩 기억이 살아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차려 준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트레킹 후의 피로 때문인지 오전내내 뒹굴거렸다. 


참고로 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는 가격대비로는 여행을 통틀어 최고였다. 숙박비도 저렴한데 이런 훌륭한 아침식사를 제공해도 남는게 있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동남아에서는 보통 숙박비가 저렴한 대신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방에 먹거리가 있어 숙소에서 따로 아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남미에는 아침에 여는 식당이 없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대부분은 간단한 빵과 음료 수준이고 조금 나은 곳은 달걀후라이나 오믈렛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이 곳은 다양한 빵과 치즈, 잼, 우유와 커피, 주스, 달걀, 요쿠르트 등이 1인분씩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물가가 저렴한 볼리비아임을 감안하더라도 훌륭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위에서 썼던 현지인들이 많았던 음식점에서 트루차 구이를 다시 한번 시도하고, 여행자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중계해주는 펍에 들어갔다. 거기서 기성용 선수가 속한 스완지 경기를 포함해 두 경기를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2012년은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QPR로 이적한 후였지만, 대부분 외국인들은 아직 박지성 선수가 맨유 소속인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펍에서 축구를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엄지를 지켜들면서 박지성과 맨유를 언급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외국인들 중에서 아주 가끔 기성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차츰 중심이 옮겨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후에 어떻게 기억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 선수는 역시나 훌륭한 선수다.


이튿날 아침, 볼리비아 코파카바나를 떠나 페루 푸노로 가는 버스를 탓다. 볼리비아에서는 보름 정도 머물렀다. 볼리비아는 안데스의 산악지역부터 아마존의 밀림까지 다양한 기후에 볼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안데스 산악지역만 겨우 훑고 지나갔다.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훌륭한 자연경관과 멋진도시를 가진, 물가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했던 볼리비아가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나는 아무래도 볼리비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페루쪽 국경에 세워져 있던 조형물 


버스에서 내려서 볼리비아 출국과 페루 입국도장을 받아야 한다. 오래된 건물의 일부가 양국의 국경을 표시한다.


페루로 넘어왔음에도 안데스의 자연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다.


버스는 푸노 외곽지역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멈췄다. 구글맵에서 대충 찾아봐도 푸노는 코파카바나와 비교할 수 없이 큰 도시였는데 버스 터미널도 현대적으로 지은 크고 깨끗한 건물이었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푸노 인구는 10만명, 코파카바나는 6천명)  거기서 택시를 타고 도심안으로 들어갔다.


택시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골목길 바닥에 뭔가를 뿌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곳만 그런게 아니라 길 곳곳에서 그리는 중이었고, 그림은 색이 알록달록한 가루와 꽃잎을 뿌려서 그려진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축제나 국경일 같은 행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리 숙소를 잡고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정작 다시 도심으로 나오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날은 맨유와 첼시의 빅게임이 있던 날이어서 점심식사와 축구경기 관람을 한번에 해결할 생각으로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축구경기를 보고 나오니 한두시간 전에 그려져 있던 골목길의 꽃그림은 어느새 모두 치워지고 푸노 대성당 앞, 아르마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해졌다.




숙소 베란다에서 본 푸노 시가지 전경 


우선 숙소를 잡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아야 했다. 구글맵에 나온 숙소 주소를 보고 언덕을 올라 한참 헤매고 다녔음에도 결국 찾는데 실패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다시 갔던 길을 더듬어 내려오며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아르마스 광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예상이 들어맞았다. 광장은 이미 축제가 시작되어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El lago Titicaca)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수량을 가진 호수이며, 운송로로 이용되는 호수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3812미터)에 있는 호수이다.(위키피디아 참조) 면적도 꽤 넓어서 충청남도보다 더 넓다.


티티카카라는 이름은 푸마를 뜻하는 티티(Titi)와 바위나 회색을 의미하는 카카(Caca)가 합쳐진 단어인데, 푸마는 잉카인들이 힘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콘도르와 함께 숭상하던 동물이었다. 실제로 호수를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푸마처럼 생겼다는데 우리나라 한반도가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해도 처음 보면 전혀 와닿지 않는 것처럼 이곳도 어째서 푸마를 닮았다는건지 좀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 커다란 호수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40여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에서 볼리비아에 속하는 태양의 섬(Isla del Sole)과 달의 섬(Isla de la Luna), 페루에 속하는 갈대로 만든 섬 우로스(Uros)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태양의 섬은 호수에서 가장 큰 섬 중의 하나이며 잉카의 태양의 신천(Templo del Sol)이 있던 곳으로,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강화도 참성단하고 비슷한 곳일 듯 싶다. 여행자들은 아침 일찍 코파카바나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이용해 태양의 섬을 둘러보고 오후 배편을 타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많이 방문한다.


코파카바나를 떠난 보트


수면에 깔린듯 떠 있는 구름과 호수 위 일렁이는 물결이 몽환적이다.


배 위에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햇볕을 좋아하는 서양사람들로 북적인다.


멀리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의 설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유유자적한 상체와는 다르게 다리로는 배의 키를 조정하고 있다.

수없이 다닌 물길이라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나보다.


아예 키와는 반대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는 지금까지 오면서 봤던 섬들보다 훨씬 크고, 황량해 보이는 섬에 닿았다. 내려서 섬에 들어오는 요금(?)을 지불하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샀다. 


태양의 섬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고, 다른 방법은 전망대부터 계속 호수를 내려다보며 걸어서 내린 곳과는 다른 항구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싶어서 후자를 택했다. 길이 멀고 험하진 않지만 높은 곳이라 평지보다 훨씬 빨리 숨이 가빠지는데다 낮동안 내리쬐는 햇살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걷다보면 총 3,4시간은 걸린다. 충분한 물과 에너지를 보충할 간단한 간식거리 정도는 가지고 가는게 좋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재밌는 광경을 봤다. 서양 여행자 한명이 나귀를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이 어린 나귀는 뭔가 먹을 것이라도 주는 줄 알았던지 자꾸 다가오는 바람에 상체를 뒤로 젖히고 겨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낯선 사람을 겁내지 않는 어린 나귀와 자꾸만 다가오는 나귀에 당황하는 여행자의 모습이 재밌었다. 아마도 그의 사진에는 어린 나귀의 머리만 크게 찍혔을 것 같아서 한동안 자꾸 웃음이 났다.



결국, 어린 나귀를 스다듬어주는 것으로 둘의 신경전이 끝났다. 여행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현지 마을과 집들을 지나고, 한적한 호숫가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제주도와 매우 흡사한 돌담길을 지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제주도에 살며 봤던 그 풍경과 매우 비슷해서 눈길이 갔다. 제주도에서 돌로 담을 쌓게 된 이유가 가장 흔한 건축재료이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이곳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현무암이 아니지만 제주도와 무척 비슷한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푸른 물빛은 여기가 해발 4000미터에 달하는 호수가 아니라 지중해에 있는 그리스의 어느 섬인 듯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생각이 고쳐지게 된 것은 바로 다음, 호숫가 옆 비탈에서 밭을 일구는 현지 주민들을 보고나서였다.


이 춥고 척박한 땅에서 비탈을 밭으로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중 가장 따뜻한 계절을 앞두고 뭔가(아마도 옥수수)를 심고 있었다. 남자가 처음보는 농기구를 갈아진 밭에 꾹대고 눌러서 구멍을 내면 여자는 어깨에 둘러맨 보퉁이에서 종자를 꺼내 구멍에 넣었다. 농사를 전혀 모르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무척이나 단순해 보이는 농사방법이었다. 이들에게 좀 더 효율적인 농사법이 전해져서 물질적인 풍요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각박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고산지대를 여행한지 꽤 되었기 때문에 몸이 제법 적응을 했음에도 언덕을 오르거나 하면 숨이 쉽게 가빠왔다. 그런데, 전망대에 다달았을 즈음 몇 명의 10대 소년들이 뜀박질로 앞질러 지나갔다. 다들 햇빛에 바랜듯한 낡은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이지만 이 높은 곳을 아프리카 영양처럼 탄력있게 달리는 것을 보니 육상선수들인 것 같았다. 이 작고 척박한 섬에 육상선수들이 있을리 만무하니 볼리비아 어디선가 전지훈련이라도 왔나보다 싶었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런닝화가 아닌, 곧 구멍이 날 듯 낡은 운동화를 신고 비포장 흙길을 달리는 선수들이지만 꿈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절대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양궁선수들을 양성하던 박영숙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린 선수들을 엄마처럼 챙겨가며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비행기라고는 처음 타보는 선수들을 데리고 터키 안탈리아까지 가서 말라위의 첫번째 국제 양궁경기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부모님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채 제작진이 가져온 장례식 영상과 가족들의 응원 메시지를 보며 눈물흘리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했다. 성공한 양궁감독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스포츠인으로, 인간으로 존경 받을 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너무나 밝았던 감독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 책에서 보던 그 티티카카 호수를 직접 보게 된 것이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돈과 권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소소히 원하는 것들을 해낼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부는 가질 수 있었으니 복받은 삶이 아닌가 싶었다. 한동안 전망대에 앉아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망대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출발하는 뱃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걷지는 못하지만 체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만큼 시간은 넉넉했다.


재미있는 것은 배에서 내릴 때 섬에 들어오는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다른 마을로 넘어가게 되면 그 경계에서 다시 돈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돈독이 올랐나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닦아놓았을 길을 이용해 걷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비용을 받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리 큰 돈도 아니니 마을을 통과하고 길을 사용하는 이용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볼리비아 정부가 이 곳까지 길을 만들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 마을을 오고 가기 위해 만든 길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는 비싼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낌없지 지불한다. 화장실 입장료마저도 이들의 문화이니 하며 이해하고 지불하면서도 제3세계 국가에서는 이런 것에 지불하는데 무척 인색한게 아닌가 싶다. 여행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감보다 비용이 과하다 생각되면 안보면 그만이다. 그것이 루브르건, 앙코르와트건. 입장료를 아끼기 위한 꼼수는 여행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 언덕 위에도 요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비포장 흙길이지만 이정도로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










호수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전망대까지 가는 초반에는 여행자들도 제법 많았지만 그 뒤로는 트레킹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오로지 주위의 풍경과 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연의 위압적이거나 경이로운 풍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뒤로 이날 걸었던 길들이 자주 생각이 났다. 좋은 여행지는 여행 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곳이다. 왜 그런지 정확히 집어낼 수는 없더라도 그런 곳들이 가끔 있다. 나에게는 이 곳도 그 중의 하나이다.


배를 타기 위해 태양의 섬을 빙돌아 반대편에 있는 항구에 도착했다. 이 항구는 급경사의 산비탈 아래에 있는데 위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여럿 있었다. 이 숙소들은 호수쪽으로 창을 두고 있어서 해가 뜨거나 지는 광경을 숙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숙소들이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코파카바나에서 짐을 싸들고 와서 여기서 하루쯤 머물렀을텐데... 처음 와서 그곳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경험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든 여행지라면 반대로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었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련이 남았기 때문에 여행자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물가에서 나귀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덩치가 작고 머리는 커다란 이 나귀들은 산토리니에서 관광객들을 태우고 언덕을 오르던 그 냄새나는 나귀들에 비하면 애완용이 아닐까 싶을만큼 장난감처럼 귀엽고 앙증맞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른 안데스 지역에서는 짐을 나르는 목적으로 대부분 야마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곳은 나귀를 많이 기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설마 이 작은 나귀의 등에도 올라타는 걸까?



호수면을 눈부시게 빛나게 하던 오후 햇살을 받으며 코파카바나 항으로 돌아왔다. 제법 힘들었지만 예상보다 좋았던 트레킹에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지않고 항구 앞 바에서 맥주를 한 병 시켜놓고 해가 저물때까지 앉아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면서 몸이 떨려오자 그제야 숙소로 들어갈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는 구글맵에서 150킬로미터 밖에 안떨어진 것으로 나오는데, 버스로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라파스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곧 안데스의 고원지대를 달리기 시작했다. 칠레북부에서 볼리비아를 거쳐 페루까지 이어진 이 고원지대는 알티플라노 고원인데 티베트 고원 다음으로 넓다고 한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 너머로는 눈덮인 안데스 산맥의 고봉들이 펼쳐져 있고, 그 봉우리 바로 위로 구름들이 손에 잡힐 듯 떠 있었다. 우유니에서부터 계속되는 비슷한 풍경이지만 볼때마다 독특하고 몽환적이었다. 다음번 여행의 최우선 목적지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정해진 것은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의 오름처럼 부드러운 산등성이 바로 위로 구름이 지나고 있다.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티티카카 호수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버스는 선착장이 있는 작은 마을에 멈췄다. 코파카바나는 볼리비아의 영토이지만 페루쪽에서는 육로로 바로 갈 수 있는데 반해서 볼리비아쪽에서 가려면 티티카카 호수의 수역을 건너야 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보일 정도로 좁은 수역이지만 다리가 없어서 자동차나 사람을 반대편으로 실어나르는 배를 타고 건넌다. 


언젠가 여행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생각해보니 라오스에서 태국 국경을 넘을 때도 배를 타고 건넌 기억이 났다. 정말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불과 8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방법으로 출퇴근을 하고, 비슷한 일을 하며 지내다가 하루하루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다니다보면 단 몇 개월만에 몇 년치의 기억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한달전의 일도 훨씬 더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버스를 싣는 커다란 배. 사람은 지붕이 있는 작은 배로 옮겨 타야한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물가에서 본 야마인지 알파카인지...(남미 여행이 끝날때까지 구분을 못했다.)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탄다. 여행 중 이런 경험이 너무 좋다.




반대편으로 건너오니 이쪽 마을이 조금 더 큰 듯했다. 여행자를 위한 레스토랑과 티티카카의 명물 갈대로 만든 배와 잉카 왕의 조형물도 있었다.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이 마을은 Tiquina로 불리는 곳인 것 같다.






다시 버스에 올라 한참을 가다보니 드디어 코파카바나로 보이는 커다란 마을이 나타났다. 아래 사진 오른쪽의 야트막한 봉우리는 티티카카 호수의 석양을 보려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게으른 탓에 올라가지 못했다.


코파카바나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조금 지나 있었다. 점심은 이곳의 명물인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은 트루차(송어) 구이를 먹기로 하고 나름 괜찮아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맛이 그저 그랬다. 여행자들이 극찬했던 그 트루차가 맞나 싶었다. 대부분의 음식을 다 맛있게 느끼는 내 입맛에 별로라면 이 레스토랑의 음식솜씨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번지르르한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로 붐비는 식당에 가리라 결심했다.




점심을 먹고 호숫가에 앉았다. 햇살은 강렬하게 내리쬐였지만 고도가 높아서인지 그다지 덥지 않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내가 방문했을 때가 연중 가장 기온이 높을 즈음이었음에도 말이다. 연중 평균 최고기온이 17도 안팎, 연중 평균 최저기온은 영하 0.8도 정도 되는 것으로 나온다. 특히나 겨울에 속하는 7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7.5도 이하라니 서울보다 훨씬 춥다.(놀랍게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보다도 춥다!!!)


어디선가 꼬마녀석이 오더니 긴 작대기와 페트병을 가지고 한참이나 혼자 놀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장난감이 무척 귀했고, 집안 사정이 넉넉치 않으면 장난감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자란 경우도 다반사였다. 대신에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어떤 것이든 로봇이 될 수 있고, 자동차도 될 수 있었다.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내 어린시절이 생각이 났다.









내일 할 태양의 섬(Isla del Sol) 투어를 신청하고 숙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났더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전기 사정이 좋지않아 마을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걸어 시장인듯 싶은 곳으로 나왔더니 반갑게도 길거리에서 감자를 구운 것과 라파스에서 본 예의 그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별로 찾지 않는지 감자를 굽고 있던 아주머니는 가까이 가도 팔 생각도 없는 듯 보였다.



감자와 샌드위치를 사들고 가다보니 음악소리와 함께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유행가에 맞춰 멋들어진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가 모여 자기 맘대로 흔들어 대는 춤이었다. 이들은 혹독한 기후에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을 살면서도 흥겨움까지 잃어버리진 않았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볼리비아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라파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근교에 있는 '달의 계곡'에 다녀올까 잠깐 고민했지만 아타까마의 '달의 계곡' 이상은 아닐 것 같아서 포기했다. 내일 티티카카 호수에 접한 도시, 코파카바나로 떠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떨어진 비상식량(라면, 카레가루, 통조림 같은)을 채울 요량으로 구도심에 있다는 한국 식료품점에 가기로 했다.


오전에는 이제 4일째라 어느 정도 익숙해진 라파스의 골목들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라파스 도심의 골목은 스페인풍 집들과 보도가 깔끔해서 돌아다니기 좋았다. 그리고, 도심은 치안도 나쁘지 않아서 별 걱정없이 걸어도 소매치기나 도둑을 만날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미에서도 위험했던 곳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대도시였지 볼리비아나 페루 같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나 도시가 아니었다. (물론, 여행자는 어디서든 어느 정도의 주의는 항상 기울이며 다녀야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정말 온갖 색들의 구형 비틀을 다 볼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해야할 시간이 되자 이틀전 갔었던 한국식당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식탐이 많거나 한식에 집착하는 편은 아님에도 장기여행을 하다보니 기회가 있을 때 먹어두는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돌솥비빔밥을 시키고 한동안 한국식 매운맛이 생각나지 않을만큼 고추장을 벌겋게 올렸다.


식사를 마치고나서 구도심에 있는 한국 식료품점을 찾아 헤맸다. 분명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둔 주소로 대략적인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서 갔지만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그동안의 여행으로 지도를 보고 장소를 찾는데 이골이 났지만 어쩔땐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뭐든 그렇다. 살다보면 간절히 바라고 찾으려고 하지만 이미 손에 쥐고 있었는데 몰랐던 것들, 눈앞에 두고도 자신이 바랬던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땐 쥐고 있던 손을 펴거나 눈을 잠시 감았다 떠야한다. 이번 여행이 훗날 내 인생에서 그런 의미로 기억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코파카바나로 떠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Plaza Mayor로 돌아오자 다른 날보다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이상하긴 했지만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펑펑하는 소리가 들려 베란다로 나가봤더니 Plaza Mayor 광장쪽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불꽃축제처럼 거창하고 화려한 불꽃은 아니지만 겨우 나흘간 머무른 라파스에서 불꽃놀이를 보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새카만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이라면 더욱.


볼리비아에서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일은 여행에서 기대했던 곳 중에 하나인 티티카카로 간다.





다음날 라파스의 하늘은 무척 맑았다. 워낙 고도가 높은 곳이라 거침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자외선이 담뿍 담겨 있겠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여행 9개월차, 썬블록은 포기한지 오래되었고, 내 피부색은 이곳 현지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늘은 라파스의 대표적인 건축물들과 박물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느릿느릿 박물관들이 몰려있는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주제별로 여러개로 나뉘어진 박물관들은 규모가 아담했다. 입장했던 박물관이 무엇에 관한 것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볼리비아 지역에서 발굴된 잉카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던 박물관, 전통 악기나 민속품에 대한 박물관 등등을 돌아 본 기억이 난다.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은 거의 없고, 박물관이 있던 알록달록한 거리를 찍은 사진들만 남아있다. 당시의 나에게는 박물관보다 이 거리들이 더 인상적이었다보다.



점심을 먹었던 조그만 레스토랑

식사를 시작할 때는 분명 그늘이었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양지가 되어버렸다. 

부랴부랴 식사를 마치고 후식은 가게 안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박물관을 몇 군데 돌아보고 나서 점심식사 후에는 무리요 광장(Plaza Murillo)으로 향했다. 무리요 광장 주위는 볼리비아 정부기관,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등 입법, 행정기관들이 모여있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무리요 광장은 라파스 태생이며, 볼리바르나 수크레보다 먼저 스페인에 대한 독립을 선포하였던 페드로 도밍고 무리요를 기리기 위한 곳이다. 무리요는 1809년 스페인에 독립 투쟁을 시도하였으나 스페인의 탄압에 의해 이듬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투팍 아마루, 투팍 카타리 등 인디오 독립 운동가들로 시작된 독립에 대한 열정은 무리요를 거쳐 결국 볼리바르와 수크레에 의해 완성되었다.


볼리비아 국회의사당


왼쪽은 대통령 관저, 오른쪽은 라파스 대성당, 정면은 무리요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처형된 무리요의 동상 기단에는 정면에 PAZ(평화), 오른쪽에는 FUERZA(힘), 뒷쪽에는 GLORIA(명예), UNION(단결)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다



도시의 이름이 평화(PAZ)라서인지 무리요 과장에는 많은 비둘기들이 있었는데 마침 대통령 관저를 배경으로 비둘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Museo Nacional de Arte (국립현대미술관쯤 되는 곳치고 전시물이 참 소박한데 그게 또 매력이다.)



오후에는 숙소를 옮겼다. 처음 묵었던 곳은 볕이 들지않아 추워서 여행자 거리에 있는 숙소로 옮겼는데 저렴한 숙소니 별 수는 없었지만 대신 3층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이 좋았다.




짐을 옮기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저녁식사 할 곳을 찾아다니다 길거리에서 인디오 아주머니가 파는 샌드위치(모양은 햄버거하고 비슷한데 샌드위치라고 했다.)로 끼니를 해결했다. 볼리비아에 온지 겨우 열흘 남짓 되었는데 초라하고 볼품없는 이 나라가 희안하게도 자꾸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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