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메에서의 두번째 날은 전날 예약해둔 그린투어를 다녀왔다. 일정이 짧고 거리가 가까운 로즈밸리 투어와는 다르게 그린투어는 하루종일, 제법 먼 거리까지 다녀오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문하기에는 어렵다.


투어의 시작은 괴레메 근처의 전방대에서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쳐야 하는지 절로 궁금해지는 풍경이었다. 나무나 풀마저 없다면 이 곳이 지구상에 위치한 곳이라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것 같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내려다보니 계곡 곳곳이 작은 오솔길로 이어져있었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실제 계곡 아래로 내려가 보면 계곡 사이에 농작물을 키우기도 하고, 계곡 때문에 차로 빙 돌아서 가야할 길을 계곡 사이에 난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 사이를 왕래하기도 한다. 다만 이 계곡은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이 곳 길과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손에 잡힐듯 가까운 계곡 건너편이라도 쉽게 갈 수 없다.


다음 방문한 곳은 버스를 타고 꽤 가야 볼 수 있는 지하도시 데린쿠유였다. 데린쿠유는 이슬람인들의 종교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만든 지하도시인데 과장해서 말하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지하도시였다.


수십미터 아래로 지하 7,8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성당은 물론이고 학교와 침실, 부엌, 동물 축사, 환풍시설까지 있는 완벽한 도시였다. 게다가 미로처럼 복잡해서 가이드 없이 혼자 돌아다니다가는 길을 잃기 쉽상이라 가이드가 몇 번이나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일대에는 이런 도시가 여러 개였다니 종교에 대한 신념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으면서 무섭기까지 하다.



열성적이었던 그린투어 가이드




지하도시는 어두워서 똑딱이 카메라로는 제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아 올릴 사진이 별로 없다.

이렇게 복잡한 미로같은 지하도시에서 이들은 어떻게 길을 찾아다녔는지 신기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이흘라라(?) 라는 계곡이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대부분이 평탄한 평지인데 차를 타고 가다보면 갑자기 평평한 땅이 갈라진 계곡이 나온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갑자기 나타난 계 곡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는데 위에서 보니 제법 아찔하다.


여기서는 계곡을 흐르는 냇물을 따라 한시간쯤  걷는데 조용하고 한적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관광객들이 많아서 호젓하게 걷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계곡 중간에 투어에 포함된 점심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다.



절벽을 파서 만든 동굴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여기까지는 이슬람인들이 찾지 못했던 것인지 성인들의 얼굴이 남아있다.



트래킹을 하다가 간단한 요기를 하고 차이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빵을 굽는 터키 여인을 보다가 과연 저 넓적한 빵을 어떻게 뒤집을지 궁금했는데 짧은 나무 막대기 하나면 충분했다.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는데 메뉴로는 스프와 빵은 기본에 주요리로 송어나 시시 케밥을 선택한다. 처음 먹어보는 터키 송어라 시켰는데 작아서 그런지 그다지 먹을게 없었다. 터키에서는 케밥이든 뭐든 주요리에 사진처럼 밥을 깔아주는데 이게 보리쌀처럼 동글동글하고 찰기가 없이 푸석푸석하다. 이런 밥을 먹으면 따끈하게 금방 지은 우리네 쌀밥이 그리워진다.



계곡을 트래킹한 후에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한 셀리메 수도원으로 간다. 예전에는 수도원이었겠지 지금은 큰 돌산을 파서 만든 옛 흔적만 남아있다. 이 수도원의 풍경이 외계 행성처럼 독특해서 스타워즈를 촬영했겠지만 괴레메에서는 이런 경치가 흔하다보니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왜 이곳만 까만지 잘 모르겠다. 혹시나 불에 탓을지도 모르겠지만...

벽면을 자세히 보면 성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우치사르 성이 보이는 피존밸리였다. (터키석을 가공해서 파는 공장 겸 보석 매장에도 가지만 별 의미없으니 생략) 어제 로즈밸리가 붉은 바위가 많았다면 이 곳은 노란색, 흰색, 분홍색의 바위들이 어우러져 색채만으로 본다면 어제의 로즈밸리보다 훨씬 다채롭다. 비둘기가 많이 살았는지, 비둘기를 키우는 계곡이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름이 피존밸리다.



멀리 로즈밸리까지 보인다.


왼쪽 바위산이 우치사르인데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그 아래로는 최고급 호텔들이라는데 이제보니 구조나 모양이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비슷하다.




아침에 시작한 투어는 해가 저물어갈즈음 끝났다. 기울어져가는 햇살을 받으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다채로운 색채가 어우러진 피존밸리를 보고 있으려니 지구상에 이 곳과 비슷한 풍경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투어는 차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하룻동안 멀리 떨어진 여러 곳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스치듯 보고 지나치는 것보다 많은 곳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직접 걸어가서 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음날 숙소에서 우치사르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이 결정은 괴레메에서 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으며 가장 무모하고 힘들었던 선택이기도 했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버스는 어딘지 모를 황량한 버스 터미널에 여행자들을 내려줬다. 밤새 불편한 버스에서 몸을 구긴채 보낸 여행자들은 아직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다시 다른 버스에 올라탔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버스는 괴레메가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라서 괴레메 근처에 여행자들을 내려놓고 최종 목적지로 다시 출발하는 듯 보였으며, 여기서 괴레메까지는 작은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야하는 것이었다.


괴레메에 도착해서는 짐을 내려놓고 한숨 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부랴부랴 숙소를 찾았다. 중심지와 조금 떨어져있긴 했지만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구하고, 숙소에다 저녁에 로즈밸리 투어를 신청하고서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점심시간 직후 잠에서 깨어 주린 배를 채우러 나왔다. 터키의 또다른 유명 음식 항아리 케밥을 시켰더니 정말로 항아리 같은 걸 갖고 와서는 윗부분을 깨줬다. 조그만 토기 안에 고기와 야채를 채워서 봉인한 다음 불에 익힌 음식이었다. 토기가 막혀있기 때문에 야채의 수분으로 익혀진 음식은 압력솥과 같은 효과가 생겨서 그 재료만으로도 꽤 맛이 훌륭했다.






하지만 나에게 항아리 케밥보다 더 입맛에 맞았던... 이름을 잊어버린 음식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탄불과는 또 다른 날씨였다. 바닷가여서 습하고 선선했던 이스탄불과 달리 괴레메는 건조했고 햇살이 매우 강렬했다. 햇볕 아래에서는 더웠지만 건물 안에서는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처음 도착한 곳에서는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동네 구경을 시작했다. 사진으로 봐왔던 버섯모양의 기괴한 바위들이 동네 곳곳에 삐죽하게 솟아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바위들마다 조그만 구멍들이 뚫려있는게 신기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아직도 바위 산을 일부 깎아내어 주거지를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은 호텔로 이용되는 것 같은데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이 지역의 숙소들을 검색해보면 'Cave Hotel'로 이름붙은 곳들이 꽤나 많다.


괴레메에서 근교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투어 장소에 따라 로즈밸리 투어, 그린투어, 레드투어 등이 있다. 여행자의 기호에 따라 선호하는 투어가 다른데 나에게는 로즈밸리 투어도 매우 좋았다.


로즈밸리 투어는 오후 늦게 시작해서 괴레메 근교의 로즈밸리라 이름 붙은 골짜기를 천천히 트레킹하고 해가 질 때쯤 끝난다. 투어들 중에서 시간도 짧고 괴레메 근교이기 때문에 가격도 가장 저렴하다. 점심식사 후 동네마실 다니듯 괴레메 구경을 하다가 투어 시간에 맞춰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그날 같이 투어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는데 신혼 여행 온 부부, 가족 여행객 등등이었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주로 한국 사람들을 담당하는 가이드가 따로 있는 듯했다. 버스를 타고 괴레메 근교에 도착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날 가이드를 했던 터키 아저씨. 과수원과 큰 식당을 가진 부자이면서도 취미삼아 가이드를 하는 듯.

한국 사람들을 가이드하면서 배운 짧은 한국말도 섞어서 유머러스하게 가이드한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이 곳은 몇 억년 전 화산폭발로 용암과 화산재가 굳어서 형성되었는데 이 바위들이 아주 부숴지기 쉬운 구조에다 이 고원의 심한 기온차이와 바람에 의해 풍화되면서 기기묘묘한 바위산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이 황량한 고원에 숨어든 사람들이었는데 7세기 경 이슬람의 침입으로 다시 박해를 받기 시작하자 부수기 쉬운 바위를 파내어 그 안에 집과 도시를 건설하고 살았다고 한다. 원래는 나무와 식물들로 덮여 밖에서 보이지 않았을 이 도시들은 풍화가 일어나면서 겉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로즈밸리인데 붉은 색의 바위들이 많아서 로즈밸리라 이름붙인 듯하다.



실제 사람이 살았던 곳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성화가 남아 있는 성당도 있다. 한참 걷다보면 차이와 간식거리를 파는 매점이 나오는데 이 매점도 옛날 바위산을 깎아 만들어진 곳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곳을 발견한 이슬람인들이 성화에서 성인들의 얼굴부분만 훼손했다.



집 내부에 있는 구멍들은 비둘기가 살았던 곳으로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던 사람들은 산과 산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연락할 방법으로 비둘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산길을 벗어나 너른 들판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건조하고 맑은 괴레메의 파란 하늘과 붉은 저녁놀이 대비되어 이 황량하고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한 이 곳을 더욱 처량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린투어는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하루 종일 투어를 진행한다.(레드투어는 해보지 않았다.) 물론 로즈밸리 투어보다 더 많은 곳을 보고 배울 수 있지만 그 곳들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라 오히려 로즈밸리가 괴레메의 분위기를 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투어라고 생각된다. 둘 다 좋은 투어였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로즈밸리 투어가 훨씬 더 마음에 남는다.

사람들마다 체질에 맞는 음식이 있고, 어울리는 옷차림이 있고, 성격이 맞는 친구가 있듯이 여행자에게도 왠지 모르지만 끌리는 장소가 있고, 마음에 와닿는 도시가 있다. 그게 선입견일수도, 방문했을 때의 날씨나 운좋게 혹은 나쁘게 마주하게된 사고의 탓일 수도 있지만... 어제 저녁 생각한 것처럼 나에게 이스탄불은 그다지 와닿는 도시가 아니었고 그렇다면 길게 머물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늘밤 괴레메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스탄불의 마지막날은 돌마바흐체 궁전과 그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도 어제 봤던 그 빵집에서 빵과 차이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역시나 다시 먹어도 이 집의 빵은 꽤 훌륭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 먼저 탁심 광장으로 가는 구형 트램을 탔다. 역시나 꽤 오래된 듯 내부는 모두 목재로 만들어졌고 핸들도 마치 배의 키처럼 생겼다. 신형 트램에 비해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아이들은 재미로 달리는 트램에 올라타거나 내리며 즐거워한다. 좁은 구시가를 지나다보면 탁 트인 곳이 나오는데 여기가 탁심 광장이다.


탁심 광장은 이스탄불의 구도심과 신도심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이 곳 주변으로는 현대식 빌딩들, 고급 호텔들과 상업시설이 많았다. 여기서 천천히 돌마바흐체 궁전까지 걸었다.


지난 며칠간 돌아다닌 이스탄불의 구시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터키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인지 단체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역시 궁전이라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그다지 넓거나 특이한 점은 없다.



궁전의 한쪽은 보스포러스 해협과 맞닿아 있다. 

배가 저 곳에 정박하면 술탄이나 귀족들이 배에서 내리던 곳이 아닐까.



돌마바흐체 궁전은 19세기 중엽 유럽의 여러 궁전을 본따 지었다고 하는데 들어가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이드를 따라 투어를 하게 되어 있으며, 신발 위에 나눠주는 비닐 덧신을 신어야만 한다. 입장료도 꽤 비싸지만 들어가는 절차도 복잡했다. 게다가 내리쬐는 땡볕에서 예정된 투어 시간이 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여행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아쉬웠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들어갔으며 사진도 찍을 수 없었지만 아쉽게도 볼만한게 별로 없었다. 유럽의 여러 호화로운 궁전에 눈이 익숙해져버린 현대인들에게 단지 그들의 궁전 양식을 본따서 지었을 뿐인 이 궁전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는게 당연했다. 나에게 이스탄불에서 가장 의미없었던 여행지가 돌마바흐체 궁전이었다.


돌마바흐체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궁전 투어를 마친 후, 매점에서 고양이들과 놀며 보낸 시간이었다. 이스탄불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우아하고 예뻤다. 나는 원래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했었는데 점점 고양이의 매력에 끌렸다.






특히나 이 잿빛 고양이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괴레메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이스탄불의 버스 정류장은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했다. 저녁 어두워진 후라 방향을 잡기도 어려워 여러번 현지인들에게 물어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버스 터미널에서는 버스 회사마다 각각 표를 팔고 있는데 버스 회사가 워낙 많아서 괴레메로 가는 버스 회사를 찾아서 표를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통된 창구에서 어디로 가든, 어떤 버스 회사의 표든 살 수 있는 우리나라 버스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기 힘들만큼 편리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괴레메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벤츠에서 만든 버스에 개인좌석마다 모니터가 달려 있고 무척 깨끗하고 훌륭했다. 동남아에서 지저분한 버스만 타다가 이 버스를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괴레메에서 내릴 때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데 터키어만 지원되는 모니터는 무용지물이었고 좌석은  좁고 불편했다. 차라리 좀 지저분하더라도 동남아의 버스가 훨씬 편했다. 약 12시간 후, 괴레메에 내렸을 때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숙소 근처에 있는 갈라타 타워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다 주위에 집들이 높지 않아서 사방이 뚫린 곳이라면 이스탄불 어디에서도 이 타워가 보인다. 14세기경 지어진 후로 여러 번의 재건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목적이 화재와 외치의 감시라고 한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현대에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수백년 전에는 이 정도로도 감시하기에 충분한 높이였나보다.


하지만 이 갈라타 타워 입장료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제 톱카프 궁전과 술탄의 할렘에서 비위가 상했던터라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기 싫었다. 여행을 가서 비용이 좀 들더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기 여행에서는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없고 좀 더 가치 있을 것이라 싶은 것을 골라가며 다녀야한다. 엄청난 여행비를 쓸 수 있는 부자 여행자가 아니라면 그러지 않고는 비용이 떨어져 금새 돌아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지나는 길에 현지인들이 무척 많은 것을 보고 들어갔던 빵집. 역시나 맛있는 빵을 팔고 있었다.


앞서가며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계속 뒤돌아보던 터키 소년


터키에서는 오렌지나 석류를 짜서 파는 행상들이 무척 많다. 오렌지 주스는 가격도 싸고 맛있는데 석류는 비싸고 맛이 굉장히 셨다.


갈라타 다리는 2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위로는 자동차, 트램이 다니고 아랫층에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이 날은 아랫층으로 다리를 건넜다. 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야 소피아에 도착했다. 아야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360년 경, 정교회의 대성당으로 지어졌으나 몇 번의 소실을 거쳐 6세기 초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져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술탄 마흐멧 2세는 성당을 모스크로 변경할 것을 명령했다. 대성당은 네 개의 미나렛을 가진 모스크로 바뀌면서 천정과 벽에 있던 이콘화에 회칠을 해서 덮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게 술탄이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변경했기 때문에 건축물뿐만 아니라 이콘화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스크도 아니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둥의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한바퀴를 완벽하게 돌릴 수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시도한다. 난 안될게 분명하기 때문에 내 차례에서는 사진만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돌린 그 부분만 깨끗한 흰 대리석으로 남아있다.





역시나 아야 소피아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기둥이 없이 건물 내부에 거대한 공간을 만든 건축 기술도 놀라웠다. 아야 소피아의 외관은 지붕이 여러개의 돔으로 되어 있는데 이 돔을 이용해서 기둥 없이도 이런 넓은 공간을 만든 것 같다. 역사적으로 아야 소피아보다 뒤에 지어진 앙코르 와트도 무척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지만 그들은 아치 구조의 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이런 넓은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회벽칠이 되어 있던 성화를 복원한 모습


아야 소피아 다음으로 예레바탄 사라이라는 동로마 제국 시대에 물을 저장했던 거대한 지하 저수지를 구경했다. 천년도 훨씬 전에 지하에 물을 저장하기 위해 이렇게나 거대한 토목 공사를 했다니 놀라웠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저수지의 끝에는 기둥의 주춧돌이 메두사의 머리로 되어 있는 기둥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메두사의 머리가 뉘여져 있다. 사진을 찍었을텐데 찾을 수가 없다.




터키의 음식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어서 첫날 먹었던 그 음식이 케밥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날 예레바탄 사라이를 갔다오면서 레스토랑이 많은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중동지방 특유의 호객행위가 심했다. 거기서 '시시(Shish)'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알고보니 첫날 먹었던 그런 케밥은 '도네르', 꼬챙이에 소고기나 양고기, 닭고기를 야채와 같이 구워서 내어놓는 '시시'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케밥이 있었다.


터키에 왔으니 제대로된 케밥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럴듯해 보이는, 호객행위가 덜 심한 레스토랑을 골라서 들어갔다.(호객행위를 무척 싫어하는데다 그러지 않는다는건 음식에 자부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음... 이젠 사진만 보고는 어떤 맛이었는지, 재료로 무엇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구운 고기를 안에 넣어서 먹거나 같이 먹는 빵, 피데(Pide)

담백하면서도 약간 짭짤한 맛이 난다.


종류별로 고기를 다 먹어볼 심산으로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가 모두 나오는 케밥을 선택했다.

괜찮기는 하지만 가격대비 감탄할만한 맛은 아니었다.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그랜드 바자르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스탄불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이 곳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가보다. 그랜드 바자르는 단지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기념품 가게였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광객이며 현지인들은 거의 없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없으며 장식품, 기념품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들과 이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났을 거대한 시장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오다보니 어느 덧 저녁 노을이 지며 날이 저물어갔다. 숙소 근처 커피숍에 앉아서 테이블을 삼각대 삼아 야경을 찍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도 감탄이 나올만큼 아름다웠고, 예레바탄 사라이도 정말 대단했지만 나에게 이스탄불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볼거리도 없는 동남아의 조그만 도시에서 느낀 흥분과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다. 큰 도시에서의 밤문화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현지인들의 문화를 경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부 현지인들의 부자연스러운 호의를 받아들이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이스탄불 시내를 보면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터키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라는 지정학상 위치 때문인지 유럽이라고 해야할지 아시아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다. 경제적으로는 유럽과 관련이 높으면서도 역사나 문화적으로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더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의 국가가 단일 민족의 문화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고 문화보다는 경제적 혹은 정치적 연관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현재는 터키를 유럽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터키의 노선이 유럽에 속하기를 원하고 있어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는 아직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처음에 이스탄불의 물가가 그 정도로 높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터키 직후에 여행한 그리스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스탄불은 여행자에게 무척 인색한 면이 있는데 각종 유적이나 관광지의 입장료가 만만치 않게 비싸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그걸 보기 위해 시간을 내어 먼 길을 온 사람들이니 입장료가 비싸서 불만이 있더라도 볼 수 밖에 없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고궁이나 문화재의 입장료는 이스탄불에 비해 무척 저렴한데다 오히려 외국인에게 후하고 내국인에게 인색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인 것이 어느 나라에서도 내국인 할인은 있어도 외국인 할인은 없다. 그만큼 유적이나 문화재는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광자원의 목적도 있지만 우선적인 목적은 자국민들의 역사교육과 의식함양을 위함이어야 한다. 그래서 관리되고 보호되는 것 아닐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는 그에 합당한 입장료를 받더라도 외국인들이 충분히 지불하고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귤하네 공원을 나와서 공원과 맞닿아 있는 톱카프 궁전으로 걸어갔다. 톱카프 궁전은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15세기부터 약 400년간 오스만 투르크 술탄의 궁전이었다.



가는 길 담벼락에서 졸고 있는 '백구두'를 신은 고양이





역시나 유명한 톱카프 궁전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무척 길었고, 가격 또한 무척 비쌌다.(2,3만원대였던 것으로 기억) 게다가 서로 자기가 국가로부터 공인 받은 가이드임을 내보이며 투어를 받으라는 자칭 '국가공인가이드'들의 호객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웃으며 정중히 거절하다가 점점 눈도 안마주치고 무시하게 되었다.


수십개의 굴뚝이 있는 낮지만 거대한 건물은 술탄의 요리를 만드는 주방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양식의 궁전답게 내부는 다양하게 채색된 모자이크와 타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비슷비슷한 방과 구조가 나중에는 지겹게 느껴진다.



톱카프 궁전에서 본 보스포러스 해협


무엇보다도 톱카프 궁전에 불만이었던 것은, 궁전 내부에 있는 술탄의 할렘에 들어가려면 톱카프 궁전 입장료와 비슷한 비용의 입장권을 따로 사야하는 것이다.(전체를 보려면 입장료만 4,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 여행자로부터 뽑을 수 있는만큼 뽑아내겠다는 터키 정부의 얄팍한 속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톱카프 궁전 자체도 크게 감탄이 나올만한 볼거리는 없었기에 할렘은 그냥 건너뛰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그 유명한 아야 소피아가 보였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라 아야 소피아는 느긋하게 와서 넉넉한 시간을 들여 보기로하고 근처에 있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모스크)로 이제 뻐근해지기 시작하는 다리를 옮겼다.


비잔틴 건축양식의 걸작,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는 아야 소피아 바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섯 개의 미나렛을 갖고 있는 유일한 모스크라고 한다. 왜 6개의 미나렛을 갖게 되었는지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술탄이 황금(알튼) 미나렛을 지으라고 했는데 건축 책임자가 발음이 비슷한 알트(6)로 잘못 듣고 미나렛을 6개 지었다는 설이 있고, 술탄이 이슬람의 성지 메카의 모스크와 동급의 모스크를 바래서 6개의 미나렛을 갖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메카의 모스크는 미나렛을 하나 더 세워서 7개가 되었다니...


모스크에 위치한 미나렛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동시에 그 모스크의 위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한다. 조그만 모스크는 대부분 1개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으며, 규모가 매우 크고 유명한 모스크도 대부분 4개의 미나렛을 가진다. 블루 모스크는 6개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으니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예상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소양이 깊지 못하니 단지 '아~ 멋있네~' 할 뿐


입장하는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야한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건축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인간 공통의 '미'에 대한 감각은 있으니 

그저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뿐이다.



이슬람 신자들이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깨끗이하는 곳


블루 모스크를 나오니 이제 해가 꽤 기울었다. 초봄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지는 듯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걸으며 다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이스탄불 혹은 터키의 유리세공 기술이 유명한지 섬세하게 세공된 유리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 호이안의 등은 하나로는 단순하지만 다수가 모였을 때 아름다운 등이라면, 이스탄불의 등은 하나만으로도 아름답고 가치있어보이지만 다수로 모으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피곤한데다 일교차가 커서 해가 지니 금새 쌀쌀해졌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쉬려고 트램에 오르니 노을이 멋지게 지고 있고 아침에 피어오르던 연기는 아직도 하늘을 덮고 있었다. 이렇게 이스탄불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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