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맨처음 땅고(탱고)를 접한 것은 대부분 영화 '여인의 향기'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알파치노와 젊은 여인이 추던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춤과 흥겨우면서도 애수에 찬 음악이 땅고라는 것은 알지 못했으면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액션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트루 라이즈'에서 영화 마지막에 아내와 추던 춤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Tango라는 영문자의 발음에 따라 대부분 탱고라고 부르지만 스페인어로는 '땅고'라고 들리기 때문에 여기서는 땅고라고 적기로 했다.
땅고는 음악이다. 그리고 이 음악에 맞춰 추는 춤과 노래를 통틀어 땅고라고 한다. 땅고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온 흑인들의 여러 춤과 노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 음악들이 변형되어 땅고가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1800년대 말에 최초의 땅고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에 독일에서 반도네온이 전해지면서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반도네온이 땅고 음악을 연주하는 중심 악기가 되었다고 한다.
땅고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은 카를로스 가르델이라는 음악가에 의해서였으며, 그는 '탱고의 황제'로 불리고 있다. 앞에서 말한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온 'Por una cabeza'도 그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1년에 한번있는 땅고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땅고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는 전시장에서는 큰 무대에서 땅고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땅고를 보고 한 곡이 끝나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나이가 매우 많아 보이는 반도네온 연주자는 아주 유명한 사람인지 곡을 연주하는 내내 무대를 보여주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이 할아버지 연주자만 비춰줬다.
늘씬한 남녀 무용수가 영화에서 보던 땅고를 추고 있다. 땅고는 매우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춤인데 때론 안타까운 사랑을 표현하는 듯 애절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스탭이나 발놀림이 매우 현란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배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문적인 무용수들의 춤이 아니라 무대 입구에 마련된 관람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주되는 땅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는데, 이들이 추는 땅고는 무대에서 추는 현란한 발놀림과 화려한 몸동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땅고의 스텝을 밟고 있겠지만 훨씬 쉬워 보였다.
땅고는 전문적인 무용수만 추는 춤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배워서 즐길 수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생활이자 문화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눈빛을 교환하고 마음이 맞으면 다가가 땅고를 추기 시작했다. 반백의 할아버지부터 젊은 20대 여인까지 땅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땅고를 같이 출 상대를 찾을 수 있다.
춤을 문란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점잖은 문화가 아쉽고, 춤을 문란하게 이용하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사실 나는 춤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다지 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들의 문화만큼은 너무나 부러웠다.
전시장을 나오니 어느 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다시 한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번쯤 땅고를 배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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