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 또 하나의 명물은 라 보카(La Boca) 지역의 까미니또(Caminito) 거리다. 보카는 오래된 항구와 공업지구이며, 초기 이탈리아 이민자들로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은 흔히 땅고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원색으로 칠해진 가옥들이 늘어선 까미니또(소로, 골목길)라는 거리가 유명한데, 옛날에는 항구 노동자들의 애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가득했을 이 거리는 지금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 레스토랑 등으로 번잡하다.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보카지구로 향했다. 이 지구는 워낙 치안이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탓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버스안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도 보카지역은 위험하니 버스에서 잘못 내리면 안된다고 몇 번을 신신당부하고는 자신이 내리고나서 세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왠걸, 할아버지가 내리고 세번째 정거장이 되었지만 책자나 인터넷에서 보던 거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릴까말까 주저하다가 지나쳤는데 정작 보카 거리에 도착하니 운전사가 여기가 보카라고 알려주었고 대부분의 승객이 여기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것도 남미의 오지랖인건지, 동양인 여행자를 골탕 먹이려는 할아버지의 심술인지... 하마터면 호되게 힘든 하루를 보낼뻔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갖가지 기념품과 장신구들을 파는 행상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형형색색의 목조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예전 궁핍하던 시절, 페인트 부족으로 모든 벽을 한가지 색으로 칠할 수 없어서 이렇게 알록달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게 지금 와서는 오히려 전세계의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명소가 되었으니 세상일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곳이 까미니또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건물 베란다에 아르헨티나 유명인사들의 우스꽝스런 인형들이 붙어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마라도나, 미아 페로, 체 게바라는 알아볼 수 있겠다.
유명한 거리지만 장신구나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길거리 댄서의 땅고 공연은 흥미로웠지만 이것도 레스토랑의 호객 행위의 한가지였다. 서울의 인사동이나 삼청동이 고급 레스토랑이나 갤러리에 점령되어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듯이 이곳도 자본에 의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이유인지 이런 변화가 마뜩찮다.
까미니또 거리 뒤편 골목길이 그나마 낫다. 보카 항구에 막 도착한 이민자의 동상도 있고, 골목길 주변의 집들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가 풍긴다.(앞쪽은 레스토랑이지만)
이 골목길의 대부분은 큰길에서 밀려난 그림을 파는 거리의 화가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림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의 명소나 땅고를 추는 댄서를 그린 그림들이다. 장사가 안되는지 앞쪽 벤치에 앉은 화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까미니또 거리는 무척 짧다. 주변 가게들을 둘러보며 걷더라도 금새 그 끝에 도착한다. 그 끝에는 바리케이트를 친 경찰들이 서서 구경하느라 한눈을 판 여행자들이 위험 지구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이 지역이 위험하게 된 것이 여기에 사는 이들의 책임만은 아닐터라 안타깝다.
보카 항구에는 옛날 북적였을 항구의 구조물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보다는 관광지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다.
한가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클럽이 2개 있다. 리베르 플라테(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다. 그 중에서 보카 주니어스는 이탈리아 이민자 청년들이 만든 블루칼라에게 인기있는 축구단이며, 리베르 플라테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지지기반을 가진다. 이들 클럽간의 축구 경기는 수페르 클라시코라는 이름으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이상의 치열한 경기가 펼쳐진다고 한다.(위키에서 찾아보니 보카 주니어스는 아르헨티나에 축구를 전파한 영국인들의 영향을 받아 영국식 이름을 지은 것이라 보카 후니오르스가 아닌 보카 주니어스라고 하는게 맞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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