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서 동남아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곳이다. 저렴한 물가와 넘치는 길거리 음식, 극도의 단맛을 보여주는 열대과일, 친절하고 인간적인 사람들...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배낭여행지이겠지만, 끝임없는 벌레의 공격과 후텁지근한 더위, 불편한 교통편, 조금은 비위생적인 환경을 못참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여행지일 수도 있다.
나에게 동남아는 자유롭고(저렴한 물가 덕분에 잘 곳, 먹을 것, 할 것들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많다), 선량한 (라오스) 사람들, 느긋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훌륭한 여행지였다. 비록 머문 두 달동안은 최소 20군데 이상 모기물린 자국을 달고 다녔지만...
동남아에 있었던 두 달 중에서 2주는 방콕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고 실제로는 나머지 한달 반동안 여행했다. 계획한 시간이 두 달이라 라오스의 빡세나 씨판돈, 태국의 치앙라이나 빠이를 가보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베트남은 무비자 입국이 15일이라는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후에 위쪽으로는 가보지 못했다. 나처럼 느릿느릿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동남아 4개국을 여행하기에 두 달은 터무니 없는 시간이었다.
[동남아 여행 경로]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자본주의 관점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며, 다른 나라들에게 미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는 나라이다. 침입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프랑스에 넘겼다고 하는데 태국 사람들은 서구열강의 침입을 받지 않았고,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미소의 나라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상업화와 유명 관광지로 정형화된 미소와 상술을 보여주는게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지로서 태국의 매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불교유적들, 아름다운 열대 바다, 송크란으로 대표되는 축제, 똠양, 팟타이, 쏨땀, 사테이 등등의 맛있는 요리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을 위한 화려한 밤문화...
[태국의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
캄보디아는 보고만 있어도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앙코르 와트/톰이라는 당시 세계 최대 사원과 도시를 건설한 강대국이었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크메르 루즈 준동,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세계 최빈국중 하나가 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지식인층(교수, 의사, 엔지니어 등등)이 대부분 학살당했다. 그 때문에 세계에서 젊은 인구층이 매우 높은 국가지만 그들을 이끌어줄 지도층이 부족하다고 한다.
수도인 프놈펜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무기력함이었으나 앙코르 와트에서 얼음에 재워둔 콜라를 팔던, 한국말을 곧잘하던 소년에게서 그나마 캄보디아의 희망이 보였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갖고 낮에는 콜라를 팔고 밤에는 호텔에서 일을 한다던 그 소년의 미래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베트남은 활기차다. 호치민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상인들로 온 도시가 시끌시끌하다. 불과 사십년 전에 큰 전쟁을 겪었던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그 전쟁에서 증명된 이 사람들의 인내와 영리함은 이제 돈 버는데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다른 국가의 화폐와 차이가 심한 화폐 단위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거스름돈을 속이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태국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에 맛있고 훌륭한 요리와 커피,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는 정겹다. 여기서는 만나는 현지인에게 수도 없이 듣는 말이 '싸바이 디'(안녕하세요)와 '꼽자이'(고맙습니다)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 사람들의 인사가 예의상하는 겉치레가 아니며, 그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뒤에 있는 순박함과 수줍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동남아 어디건 해야했던 '흥정'이 여기서는 없다. 당연히 잡을거라 생각하며 돌아섰는데 아무 말도 없을 때의 당혹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배가 풀렀구만...' 생각하고, 좀 더 열심히 물건을 팔지 않음을 게으르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가 생각한 적당한 가격을 이야기하고 고객이 돌아서면 잡지않는 것뿐이다. 다른 나라의 상인들처럼 일부러 비싸게 부르고 선심쓰듯 깎아주는 얄팍한 상술을 쓰지 않는 것이다.
친절을 받으면 수줍은 듯 고마움을 표하며 웃는 얼굴이, 그 친절에 보답하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다. 라오스는 푸르고 멋진 해변도 없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밤문화도,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멋진 자연도 없다. 하지만 라오스에는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산다.
같은 곳들을 다녀왔더라도 시간이 다르고, 만난 사람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100% 훌륭한 여행지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4개국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훌륭한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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