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뭐라고 해야할지 한참 고심했다가 그냥 알프스라고 해버렸다.

아시다시피 알프스는 스위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걸쳐있는 커다란 산맥인데, 이 산맥을

여행지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그런데, 제목을 마터호른이나 융프라우라고 하자니 이것들은 알프스의 

봉우리 이름인데 의미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좀 무리가 있더라도 스위스의 알프스라고 한다.


스위스는 배낭여행을 하기는 편하지만, 물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은 곳이다. 철도 교통이 

매우 잘 되어 있고, 유레일 패스가 없는 여행자더라도 철도나 케이블카를 반값에 이용할 수 있는 티켓도 있으므로 

계획을 잘 세우면 생각보다는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하지만, 비싼 숙소와 음식은 여행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갔을 때, 빅맥세트가 12프랑(약 15000원), 푸드코드의 가장 싼 메뉴가 20프랑 내외(대략 25000원), 호스텔의

도미토리가 40~50프랑이었다. 


알프스에서 돈을 절약할 수 있었던 방법은 부엌을 갖춘 호스텔에서 대부분의 음식을 해먹는 것이다. 점심까지도 샌드

위치를 만들어서 다녔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나라라하더라도 기본적인 식재료가 우리나라보다 비싼 나라는 없었다.(농담이 아니다.)

저녁에는 소고기를 사서 스테이크를 해먹어도 1만원 정도면 혼자 먹을만큼은 살 수 있다. 바게트 빵이나 햄, 치즈, 

우유, 주스를 사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한국교포분이 하는 호스텔에도 묵었었는데 거기는 부엌이 없었고, 식사 제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 절약은 불가능

했다. 분명한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도 있으므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뭐가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여행을 오래하다보면 여행지의 문화와 자연경관만 보는게 아니라, 우리의 모습과 그네들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고,

우리가 나은 점과 부족한 점을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는 공공요금은 국민의 생활 수준에 비해 무척 저렴한 편이지만, 의식주와 

관련된 물가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다른국가의 국민들에 비해 낮은 점은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물가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2010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7만불에 가까운 스위스보다 2만불이 조금 넘는 우리나라의 식료품 물가가 비싸

다는건 분명히 큰 문제인거다.


스위스의 여행은 루째른에서 시작했다. 루째른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알프스를 느끼기에

약간은 부족한 도시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잘 되어 있어서 다른 도시에서 가기 쉽고, 리기산이나 티틀리스 산이 가까

이 있으므로 시간이 많지않은 여행자들은 방문할만 하다. 하지만, 융프라우나 마터호른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방문자

면 루째른에 머무는 일정을 줄이고 융프라우나 마터호른에서 더 오래 머물길 추천하고 싶다.


위 사진은 너무나 유명한 루째른의 카펠교인데 그냥 다리구나... 하는 느낌이다.

물위에 떠있는 휴지처럼 보이는 것들은 큰건 고니이다. 고니가 참 많았는데 보기엔 우아하지만 실제론 너무 큰데다

상당히 사나워서 고니들이 몰려들면 다른 새들은 슬금슬금 피한다.


[루째른의 성곽에 올라가서 본 풍경. 날씨가 흐린게 좀 아쉽다.]


루째른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기념물은 '빈사의 사자상'이다. 프랑스 혁명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지키다 전멸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해 화강암 벽면에 새긴 조각물로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한번

쯤 보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여행 5개월째여서 무덤덤해졌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루째른 근교 티틀리스 산을 가기 위해서는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넌 후, 기차로 갈아탔다. 물론 기차만 타도 갈 수 있

지만 경치도 구경할 겸 다들 이렇게 간다.


[티틀리스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본 정경]


티틀리스 산은 해발 3000m가 조금 넘는다. 케이블카를 세번정도 타고 한참을 올라가면, 만년설을 깎아 만든 동굴을

통과해서 산꼭대기로 갈 수 있다.


아랫쪽에는 날씨가 그다지 나쁘진 않았는데,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많아서 아쉽게도 제대로된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여행중에 여러차례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복불복이다. 다른 사람이 경험했다고 해서 나도 그럴거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여행이 더 흥미진진해진다.


[티틀리스 꼭대기에는 구름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티틀리스에서 내려와 역까지 걸어가는 중]


알프스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아마도 마터호른과 융프라우요흐일 것이다.

마터호른은 체르마트라는 마을을 통해 갈 수 있는데, 체르마트도 알프스 깊은 골짜기의 산골마을이기 때문에 해발

1600m가 넘고, 7월이었음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못해 춥기까지 했다.

특히나 체르마트가 유명하게 된 것은 자연보호를 위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것 때문이다. 아래 사진처럼 승용차, 택시, 버스, 화물차가 모두 비슷하게 생긴 전기자동차이다.

체르마트에 있었던 닷새동안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한번 봤는데, 쓰레기차였다. 아마 특수 목적용 자동차는

전기차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인가보다.

[택시비가 무지막지 비싸기 때문에 타보지 못했지만 마을이 작아서 탈 필요도 없다.]


마터호른만 보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트래킹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관광안내소나 숙소에 비치된 지도에서 자신에게 알맞는 코스를 고른다음, 체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트래킹이 시작

되는 지점까지 걸어서 올라가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산악기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시작지점까지 가면된다.

나는 중급코스 1곳, 초급코스 1곳을 걸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트래킹코스 시작점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아 안에서


[트래킹코스 시작점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저 멀리 구름에 쌓인 마터호른이 보인다.]


[트래킹코스 저 멀리 빙가 보이고, 길 옆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펴있다.]


[트래킹코스에서 만난 산장겸 레스토랑]


[이날은 구름이 많아서 무척 아쉬웠다.]


그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제법 쏟아졌다. 티틀리스에서도 구름 때문에 그랬는데, 마터호른의 날카로운 위용을 볼 수

없나보다 하고 아쉬워하면서 어두컴컴한 레스토랑에서 다음에 가야할 곳의 정보를 검색했다. 그러다 밖으로 나왔는데

불과 두세시간만에 비가 개고 마 터호른이 위용을 드러냈다.

[체르마트 마을 다리위에서면 마터호른이 깨끗하게 보인다. 관광객들 뷰포인트]


며칠만에 맑아진 날씨에 다음 계획을 모두 연기하고 여기서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이렇게 맘에 드는 곳에서는 더

있을 수 있는게 장기 배낭여행자들의 특권이다. 

그리고, 오후가 많이 지나있었지만 부랴부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내일은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게 산악

지방 날씨니까.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오늘도 맑음이다.

마터호른은 4500m에 가까운 높이에 뾰족한 봉우리로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올라갈 수 없다. 마터호른에 가까운 

봉우리(4000m)까지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하였으나, 가장 높은 곳을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테크니컬한 

문제로 오늘은 운행이 중지되었단다. 역시, 여행은 복불복이다. 그래도 어제까지 비가 내렸으니 오늘 맑은 마터호른을

 볼 수 있는게 어딘가 싶었다.


[두번째 높은 전망대에서 찍은 마터호른.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3500m 가까이 되었던것 같다.]


[세번째 높은 전망대에서 본 마터호른. 이쪽 방향이 평소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하다.]


다음으로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보기 위해서 그린델발트로 갔다. 당일치기로 융프라우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여행자들은 보통 인터라켄에서 머물고, 트래킹을 한더던가 며칠 머무는 여행자들은 산과 더 가까

운 그린델발트나 라우터브루넨쪽에서 머문다.

나는 그린델발트에 있는 호스텔에서 머물렀는데, 아침식사도 꽤 잘나왔고, 무엇보다 언덕 위에 있어서 경치가 정말 

좋았다.

[호스텔 마당에서 본 풍경]


[호스텔 입구에서 보이는 아이거]


융프라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산악열차가 있지만, 걸으면서 알프스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트레킹 코스를 한군데

정해서 걷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로 가는 길]


[트래킹 중. 산 아래에 그린델발트가 보인다.]


[7월의 알프스는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트래킹 코스는 아이들도 걸을 수 있을만큼 평이하다.]



[아이거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트래킹 코스]


[날씨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아이거는 구름에 싸여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 험하고 거친 자연을 보호하며 개발해온 스위스인들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자연을 개발하는 것과 유지하는 것 사이에 종종 마찰이 발생한다. 그럴 때 보통은 자연을 유지했

으면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들처럼 개발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꼭 필요한 부분에서 제대

로 해야할 것이다.


스위스는 자연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비싼 물가에도 불구하고 들러볼만한 멋진 곳이다. 스위스에 갔다면 쮜리히나 

제네바 같은 도시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직접 걸으면서 알프스를 보도록 권하고 싶다.


[7월 알프스에 핀 들꽃]

좋았던 여행지를 정리하는 김에 기대이하였던 혹은 실망했던 여행지도 정리하려고 한다.

순전히 배낭여행자로서 받은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니 글을 읽고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더라도 어쩔수가 없다.


내가 워스트 여행지로 꼽은 첫번째는 그리스의 유명한 휴양지 산토리니다.

산토리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여배우 손예진씨가 신인시절에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찍으면서 더욱 유명

진 곳으로, 사진에서 보면 짙푸른 에게해와 절벽에 눈부시게 하얀 집들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그런 기대에 설레었었다.


[로도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페리에서 본 에게해]


산토리니가 나에게 워스트 여행지가 된 것은 아마도 기대가 너무 컷기 때문일거다.

직접 보기 전에는 하얀 집들이 절벽을 뒤덮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얀 집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 여기가 아닌가보다. 좀 더 가면 사진에서 보던 그런 집들이 보이겠지'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집은 절벽위 일부분뿐이고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인 집은 몇 없다.]


내가 사진으로, TV 광고에서 보던 경치는 산토리니에서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마저도 그런 집들은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베란다에서 에게해가 보이는 절벽위의 호텔들은 적어도 1박에 수십만원, 좋아보인다 싶으면 100만원을 가뿐하게 

넘어갔다. 물가도 배낭여행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닷새동안 산토리니의 골목골목을 보고 다녔지만 좁은 골목에는 넘치는 관광객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이

나 악세서리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산토리니는 크루즈 여행을 하는 유럽인들이나 신혼여행을 온 동양인이 가는 곳이란걸 알게되었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값비싼 호텔이나 레스토랑]


[그래도 짙푸른 에게해와 깎아지른 절벽이 멋있긴 하다.]


[산토리니에서 본 석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에서 본 산토리니. 흰 집들은 어디에 있냐고?]


산토리니는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꾸며진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그런줄 모르고 갔던 내 책임이 크기도 했고, 산토리니에 가기 직전 여행지였던 로도스가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었던 것같다.

'세계여행(2012년) > 워스트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추픽추(페루)  (0) 2013.03.19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맑고 깨끗한 에메랄드 빛 호수를 보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보기 힘들면서도 가장 오묘하고 

아름다웠던 호수가 이번에 쓰게된 페루의 와라스 근처의 69호수이다.

69호수는 찾아가는 것부터 만만하지가 않았는데, 리마에서 와라스까지 9시간이었나... 꽤 긴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그리고 와라스에서 아침일찍 택시나 꼴렉띠보라는 현지 승합차 버스를 타고 가거나 현지 여행사의 교통편

을 이용해서 2시간정도의 비포장 도로를 간다.


리마는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이므로 해발고도가 해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데 와라스는 3000m 정도이고, 트래킹을

시작하는 지점은 3800m, 69호수는 4600m가 넘기 때문에 고산지대에 적응이 덜된 여행자들은 트래킹 내내 힘들어

하기도 한다.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에 얀가누코 호수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게 해주는데, 이 호수도 다른 어느 호수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트래킹을 시작하는 지점은 평탄했고, 날씨마저 좋아서 3800m가 넘는 지점이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1시간쯤 지나고부터는 슬슬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정면으로는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 좌우는 폭포, 뒤돌아서서 보면

 확뚫린 골짜기의 멋진 풍경이 보이기 때문에 지루하지게 걸을 수 있다.







이렇게 두시간쯤 가다보면 마지막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는데, 이때까지 그다지 힘든 줄 몰랐지만 이 언덕을 넘을 

때는 숨이 가빠서 헉헉대고 있었다.

언제 언덕이 끝나나 생각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시야 끝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푸른 빛이 보이게 되는데,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이 보석이 점점 커진다.

[거친 돌들과 비교되는 호수는 정말 보석처럼 보였다.] 



마침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호수는 왠만해서 밖으로 감정표현이 안나오는 나마저도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호수는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었고, 녹은 만년설이 바위를 따라 호수로 흘러내리며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만년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맑고 서늘한 바람이 더해져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 호수는 사진으로 느낄수 없는 벅찬

느낌이 들게 했다.

30분 가량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몇 시간을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지만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짧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는지 그 시간은 정말이지 소중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 내려가는 길에는 날씨가 급변하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오전에는 날씨가 좋고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 꼴렉띠보를 이용하면 비용이 절약되겠지만 인원이 차야 출발하는데다 자주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에이전시를 이용하는 편이 나은것 같다.(늦게 출발하면 걸음이 느린 사람은 69호수까지 못갈 수도...)

* 한국 배낭여행자들은 리마에서 남미여행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 고산지대에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바로 트래킹을 시작하면 고산병에 시달릴 수 있으므로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와라스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고산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심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 와라스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트레킹은 산타 크루즈 트레킹인데, 며칠간 강행군 해야하는데다 만족도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아서 패스했었는데 다시 방문한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우유니 소금사막과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을 2박 3일 코스로 돌아보는 투어는 남미 배낭여행자라면 반드시 

거치는 코스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거치는 동안 볼리비아를 거쳐온 여행자들에게 이 투어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면,

'괜찮았지만 너무 힘들다. 다시 간다면 한나절짜리 투어만 하겠다'는 의견도 꽤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꽤

고민이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우유니 투어는 여행중에 했던 투어중 최고였다'라고 할 수 있다.


투어를 하는 2박 3일은 자연이 만든 온갖 색의 향연에 빠져있는 시간이었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더욱 푸르게 보이는 하늘과 손에 잡힐듯한 구름, 푸르고 희고 붉은 호수들, 다양하고 묘한 빛깔

의 산들, 눈이 아프도록 하얀 소금사막, 그리고 새카만 하늘에 쏟아질듯한 수많은 별... 

우유니와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은 해발 3000~50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여행자

들에게는 아주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방문했을 때는 봄이 한창이었음에도 밤에는 꽤 춥기 때문에 

침낭에 이불까지 덮어야했다. 아마도 투어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여행자들은 추운 계절에 고산병으로 힘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숙소에 남방기구 없다, 전등도 일찍 소등한다. 주위에 땔감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다.)

다행히 나는 고산지대에 적응을 잘하는 체질이었는지 전혀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 두통이 없었다. 평소보다 숨이 

빨리 차고, 몸이 쉽게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투어중에 식사는 숙소에서 하거나, 4륜구동 차에 실어온 음식을 운전사 겸 투어 가이드가 차려준다. 식사는 꽤 만족스

러웠는데 원래 가리지 않는 편인데다가 투어내내 몸을 움직여야하니 맛없을 수가 없었다.

[점심식사는 차를 세우고 대충 앉아서 식사를 한다.]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온통 하얀 색이라 원근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다들 재미있는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TV에서 너무 많이 봐와서 그랬는지 나에게는 좀 밍숭맹숭한 느낌이었다. 우기가 되면 얕게 물이

차서 하늘이 반영되기 때문에 신비롭고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는데 그렇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우유니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새벽이었다. 소변이 급해서 따뜻한 잠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 어두운 복도를 

가로질러 화장실을 찾아야 했는데 그때 창밖으로 하늘을 보게되었다. 밖으로 나와서 추위에 떨며 올려다 본 하늘에는

어디가 은하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죄다 별이었다.

하늘과 땅이 구분이 안되는 어둠속에서 나 혼자 수많은 별을 보고 있었던 그 기분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전에도 이집트나 칠레 사막, 파타고니아의 산장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날씨가 그리 좋진 

않아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드디어 우유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추운데다 똑딱이 카메라 밖에 없어서 그 별들을 찍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쉬웠지만,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오게되지 않을까.


우유니와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은 신비로운 색으로 가득했다.

다른 베스트 여행지와는 구별되는 독특함이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이와 유사한 곳은 가보지 못했다.

역시 남미를 찾는 배낭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시작, 칠레 아따까마에서 끝나는 투어와 반대로 진행되는 투어가 있는데, 우유니에서 시작

하는 투어가 더 저렴하다고 한다.

나는 여정상 아따까마에서 우유니로 가는 투어였는데 아따까마에서 제일 저렴한 에이전시에서 당시 환율로 한화 13

만원 정도였다. 저렴했지만 숙소나 음식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대개, 아따까마에서 시작하는 투어는 15만원 전후, 우유니에서 시작하는 투어는 10만원 전후였는데, 칠레가 볼리비아

보다 물가가 훨씬 비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2박 3일동안 숙박, 식사, 교통을 모두 포함하는 투어로는 정말 저렴한 것이어서 나중에 다른 나라의 비싼 

투어와 내내 비교하게 되었다.


* 우유니 투어는 2박 3일 프로그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하는 일반적인 프로그램일뿐이다.

* 2박 3일을 한대의 지프차에 1명의 드라이버와 6명의 승객이 같이하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과 같이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번 여행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몇가지 있었다.

이집트 홍해에서 스쿠바 다이빙 배우기,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트래킹하기,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보기 등등.

그 중 한가지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여러편 보면서, 무엇 때문에 이 길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라는 말은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특정한 루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은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의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까지 약 800km의 거리를 말한다.

(이 길에서 만난 프랑스인 할아버지는 프랑스 남부 자신의 집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600km도 더 남은 시점에

 이미 40여일째 800km 넘게 걷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 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과 그와 연관된 전설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운동, 교황이 산티아고를 성지로 지정(목적이 무엇이었건 간에)하게 된 것, 유명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자신이 산티아고 순레길을 걸었던 경험을 담은 책 '순례자' 등등 많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길에 대해서는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책이나 블로그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두셨기 때문에 '맛'만 본 내가 어설프게

설명을 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스페인에 도착한 시점은 유럽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약 한달정도 남았을 때였다.(우리나라 국민들은 EU국가

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으나 90일의 체류일을 넘길 수 없다. 그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일단 EU국가가 아닌 나라

출국 후 재입국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는데 남은 시간을 모두 이 길에 투자하려니 스페인에는 볼거리가

너무도 많았고, EU국가가 아닌 나라로 출국 후 재입국하자니 비용과 시간이 아까웠다. 게다가 남미라는 미지의 대륙

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맛'만 보았지만, 순례길을 마친 후에도 그 맛에 중독되었고 언젠가는 다시 맛을 

보리라는 생각을 여행내내 하게 되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순례길은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 순례한 거리가 도보로 100km 이상이거나 

말이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200km가 넘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산티아고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실제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내가 순례길을 시작한 지점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순례자들이 피레네산맥을 넘은 후 만나는 첫번째 큰 도시인

팜플로나이다. 팜플로나는 헤밍웨이가 오랫동안 머물며 소설을 썼던 곳이며, 그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에서

산 페르민 축제가 등장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산 페르민 축제는 골목길에 소들을 풀어놓고 그 앞을 사람들이 뛰어가는 것으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TV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팜플로나 시청사이며 여기서 산 페르민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순례길에서 숙박은 알베르게에서 하는데, 수백년이 넘은 알베르게에서부터 현대적인 시설의 대규모 알베르게,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까지 다양하다.

알베르게에서는 크레덴시알(순례자용 여권)도 발급 받을 수 있다. 순례자는 이 크레덴시알에 묵었던 알베르게의

도장을 찍음으로써 이곳을 지나왔다는 증거를 남긴다.

[첫번째 숙소였던 팜플로나의 알베르게. 순레길을 시작하던 날 새벽.]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순례자는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스페인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순례길 800km에는 스페인의 산과 숲, 들판, 도시, 조그마한 마을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스페인의 자연을 보고, 사람들

을 만나고,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으며 한달이 넘는 시간을 걷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의 여름은 혹독하다. 여름에 스페인을 방문했던 여행자라면 작열하는 태양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게될 것이다. 내가 순례길을 걸었을 때, 한낮의 온도는 대개 35도를 넘었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내리쬐는 햇볕은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오전 6시쯤 걷기 시작하고, 12시나 늦어도 오후 2시전에 걸음을 멈춘다. 

하룻동안 좀 더 먼길을 가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한낮에는 나무 그늘이나 건물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쉰다.

나는 처음 이틀동안 40km를 조금 넘게 걸은 후, 자신감이 붙은터라 사흘째 오후 2시까지 32km를 걸었다가 그 뒤로

내내 후회해야했고,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이었음을 깨달았다.

썬블록을 발랐지만 어깨와 다리는 벌겋게 되어 따끔거리고, 발바닥은 불에 덴듯 후끈거렸다. 그 뒤에 발바닥과 뒤꿈

 500원짜리 동전보다 큰 물집이 잡혔다.


[의사였던 순례자가 치료해준 덕분에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순례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허물이 없었다.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도와준다.

유럽이나 영어권 국가를 여행할 때 가끔 느끼게 되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태도, 불친절함이 거의 없다. 게다가 순례길

을 걸으며 만난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쾌활했다.

아침일찍 산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다음 마을까지 태워줄테니 자꾸 타라고 하던 일, 길을 가르쳐준 자동차 운전자가

안심이 안되었던지 지켜보고 있다가 잘못가고 있던 나를 따라와서 가르쳐주던 일, 정겹게 인사를 건네주는 많은 

사람들...


그 길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들도 무척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내가 머물고 있던 숙소까지 찾아와서 물집을 치료해줄

의사를 소개시켜준 이석기씨는 순례길을 생각하면 매번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 뒤로 연락을 못했지만...


나에게 순례길 이미지는 내내 추수가 끝난 황금색 밀밭과 수없이 많은 해바라기, 이제 겨우 여물기 시작한 포도가 

너무 아쉬웠던 포도밭으로 기억되어 있다.

짧은 시간밖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보면 무엇을 얻거나, 버리거나 하기 위한 목적조차도 희미

해지고, 단지 걷는다는 단순한 일을 통해 나 자신도 단순해져 간다는걸 느끼게 되더라. 거창한 깨달음을 얻기에는 내

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나는 그 느낌이 정말 즐거웠다.

반드시 다시 한번 찾고싶은, 끝내지 못한 숙제로 아쉬움이 가득한 곳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