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 탄 버스는 여러 도시를 거쳐 어둑해질즈음 포르투갈의 리스보아(리스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잡은 숙소는 터미널에서 멀지않은 새로 개발된 상업지구의 오피스텔이었다. 구시가는 고풍스럽고 멋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서울의 테헤란로나 상암지구 같은 곳이라 미디어를 통해 본 리스보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숙소가 있었던 20층에서 어두워가는 바깥 경치를 보고 있으려니 내일 떠날 남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브라질의 히우 지 자네이루(리오 데 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 후, 남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빠짐없이 묻는 질문이 '안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남미에 대해 접하는 기사나 영화들의 대부분이 갱들의 살인, 마약, 매춘이나 경제적인 궁핍, 정치인들의 부패 같은 것들이다보니 이런 물음이 먼저 나오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든다. 나 또한 여행을 다녀온 여러사람들의 책이나 블로그를 봤음에도 이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미는 맘편히 여행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니다. 밤거리를 다닐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낮이라 하더라도 위험지구에 잘못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써야 한다. 미리 조심하고 준비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물론 아무리 준비하고 조심하더라도 불가항력으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살더라도 모든 일에 대비하고 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물게 발생하는 것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심하고 준비했을 때 문제없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는다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한다면 이런 점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남미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어려움을 뛰어넘는 매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브라질 '히우'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둑해질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여행 중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는 가능한 어두운 시간은 피하도록 교통편을 조정했었는데 하필이면 남미에 도착하는 첫 나라에서는 항공편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지하철로 갈아타야했는데 도무지 지하철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각 국가마다 지하철 시스템이 묘하게 달라서 처음 지하철을 탈 때는 항상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다. 날은 어두워가고 마음이 점점 급해지니 등에 맨 배낭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퇴근시간과 겹쳐 무척 붐비는 가운데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아보니 안전띠와 제복을 입고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겉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딱 떠오르는 인물이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 나오는 주인공인 흑인 영화배우와 비슷했다. 


머뭇머뭇 다가가서 여기에 가려는데 어떤 지하철을 타야하는지 물었다. 이 사람과 나 사이에 만국 공용어 '바디 랭퀴지' 말고는 어떤 언어도 통하지 않지만 또한 필요하지도 않다. 거대한 덩치와 다르게 무척이나 친절하게 열심히 설명해줬다. 자신의 지하철 노선도까지 꺼내 열심히 설명하더니 그 노선도를 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지하철이 도착하자 이걸 타야된다며 밀어넣다시피했다.


그 뒤로도 여러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가 브라질에서 가장 먼저 '소통'한 이 사람이 잊혀지지 않는다.


숙소는 지하철 역에서 조금 떨어진 현지인들의 생활지역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 받고나서 브라질 숙소의 또 하나의 절차인 현관 도어락 사용법 안내를 받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배는 채워야하기에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할만한 곳과 지금 나가도 괜찮은지를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게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브라질의 물가는 무척 비싸서 식재료를 제외하고는 유럽수준의 물가다. 식당의 음식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브라질에서의 첫 식사니 맘껏 먹어보자싶어 이것저것 시켜봤다. 그런데 이 음식 하나하나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한국인치고 먹는 양이 많은 편인데 이걸 어떻게 다 먹나 싶었다. 게다가  음식이 많이 짰다. 브라질 음식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브라질에서의 첫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비행기 안에서 찍은 한 장을 제외하고는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어지간히 긴장했었나보다. 내일은 여행 중에 기대했던 곳 중에 하나인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있는 거대 그리스도 상을 보러 간다. 자고 나면 긴장이 좀 풀리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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