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우에서 거대 그리스도 상과 이빠네마 해변을 보고 다음날 이구아수 폭포로 출발했다. 호스텔 매니저에게 터미널로 가는 대중교통편과 터미널 위치를 물었다. 매니저는 남미에 처음이라는 동양인이 걱정되었는지 터미널 주위는 위험한 곳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여러번 알려주었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탈 때도 운전기사에게 터미널로 가니 정류장에서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 두었다. 위험한 지역이라고는 해도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남미의 대도시는 길 건너편, 블록 하나 차이로도 치안상태가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자칫 길을 잘못 건너거나 다른 블록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신변에 위협을 느낄만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남미의 대도시에서는 늘상 주의해야 하는 일이다.)
친절한 브라질 운전사는 터미널 근처에서 내려주었고, 터미널 방향을 손짓하며 알 수도 없는 말을 열심히 했다.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버스 뒷문으로 내렸다. 버스 앞쪽으로 걸어가며 보니 버스는 출발하지도 않고, 운전사는 앞문을 열어놓은채 아직도 나를 보며 열심히 터미널 방향을 손짓하고 있었다. 게다가 운전사가 버스를 세운 곳은 정류장도 아니고, 터미널 방향으로 건너는 길의 횡단보도 앞이었다.
제법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녔지만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자주 만났던 도시는 처음이었다. 큰 호의는 아니지만 아무 대가없이 열성적으로 여행자를 챙겨주는 이 사람들이 내 마음에 새겨졌다. 신이 도시를 축복한 것은 아름다운 풍광을 준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을 살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는 마당에 이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워졌다.
포스 두 이구아수는 이구아수 폭포의 브라질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답게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쪽에서 볼 수 있으며 브라질쪽은 포스 두 이구아수, 아르헨티나쪽은 푸에르토 이구아수라는 도시가 가까이에 있다.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 포스 두 이구아수까지는 1500킬로미터, 자동차로 1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로는 대충 24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가면서 휴게소에서 식사하고, 운전자를 교대해야 하며, 밤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브라질을 제외하고 남미에서 탓던 다른 버스들은 휴게소에 세우고 식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행기 기내식처럼 차장이 식사를 나눠준다. 브라질 버스도 회사나 좌석 등급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탔던 이 버스는 휴게소에 내려 식사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담배도 한대 피고, 굳은 몸도 풀 수 있게 휴게소에 쉬는 편이 훨씬 좋았다.
동남아 야간버스도 12시간이었는데 남미에서 처음으로 24시간 버스를 탔다. 이 때 탓던 버스는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 정도되는 좌석 넓이였지만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그렇다는 것이지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에 쥐가 날 것 같은 괴로움은 당연히 따라온다.
한낮에 도착한 포스 두 이구아수는 열대지방이라 겨울임에도 30도가 넘고 있었다. 히우 지 자네이루는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였는데 하루를 꼬박 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더니 한여름 날씨인 것이다.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브라질쪽 폭포를 보기 위해 나섰다.
포스 두 이구아수 시내에서 이구아수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표를 사고, 공원 내부를 다니는 버스를 이용해 폭포 가까이 가야한다.
이구아수 공원 안을 다니는 버스에는 이곳의 명물인 동물들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공원 안에도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는데 별 다섯개짜리 특급 호텔이라 가격이 무지 비싸다. 배낭여행을 하려면 숙소에 대한 욕심은 버리는게 좋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다면 중간에 여행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리니 멀리 폭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밀림 사이를 흐르던 물줄기가 수십 수백개의 폭포가 되어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당시는 건기라 이렇게 여러개의 폭포로 보이지만 우기에 비가 많이 오면 모두가 합해져 하나의 폭포로 떨어진다고 한다.
어딘가에서 타잔이 폭포소리를 뚫고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 같은 경치다.
어렸을 때 봤던 타잔 드라마에서 타잔이 폭포 위에 서서 소리를 내는 장면은
실제로 이구아수에서 찍었다고 한다.
폭포 안쪽으로 걸어가다보면 형형색색의 많은 나비를 볼 수 있다. 이 다양한 나비들은 사람을 무서웧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자주 사람들의 머리나 옷에 내려앉아있다.
브라질쪽 이구아수와 아르헨티나쪽 이구아수는 서로 특징이 다르다. 브라질쪽에선 이구아수의 전체적인 모습과 전망을 볼 수 있고, 아르헨티나쪽에선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기 때문에 여행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기도 하고, 어차피 같은 이구아수라 생각하고 한쪽만 가는 여행자도 있다. 하지만 둘다 굉장한 풍광과 잊기 힘든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반드시 둘다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
온 세상이 거대한 물소리로 가득하다.
안쪽으로 다가갈수록 떨어진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폭포보다 더 높게 치솟고 있어서 정작 폭포는 희미하게만 보였다.
저 앞이 브라질쪽 이구아수의 클라이막스다.
사방이 물줄기가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천둥같은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때문에 우비를 입지 않으면 금새 흠뻑 젖어버렸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 이구아수 폭포를 직접 보고, '불쌍한 나이아가라'라고 했단다. 나이아가라에 가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계 3대 폭포 중에서 나이아가라와 빅토리아 폭포를 합치더라도 이구아수 폭포의 수량이나 더 크다고 한다.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있으려니 자연의 경이로움과 거대함에 스스로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멍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여행중에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에 꼽았던 이구아수 폭포를 오늘 드디어 보았다. 폭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서야 겨우 물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밤새 천둥같은 물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았다.
'인간이 험하고 거대한 자연을 찾는 이유는 그것을 정복하거나 눈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겸손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남미를 여행했던 몇 달 동안 자연에 다가갈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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