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수크레로 가기로 했다. 우유니는 볼리비아에서도 작은 도시라 그런지 수크레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일단 포토시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제 버스를 예약하면서 제발 좋은 버스이기를 빌었지만 도착한 곳에 서 있는 버스는 매우 낡아서 아무 자동차 부속이나 가져다 끼운 듯한 모습이었다. 제발 포토시까지 별일없이 가 주기만을 바랐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전체 인구에서 전통 남미 인디오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었는데 우유니에서는 얼굴이나 옷차림을 보니 대부분이 인디오들이었다. 왠지 이제야 본격적인 안데스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내를 다니며 보니 은행 ATM기 앞을 산탄총을 든 무장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남미에서 최빈국에 속하는 볼리비아는 범죄율이 높은 걸까, 치안이 안좋은가 조금 걱정도 됐었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 어느 동네 조그만 식당 앞에 멈췄다. 운전사도 휴식을 취할겸 식사를 하고 가는 듯 싶었지만 좀처럼 식욕이 나지 않았다. 버스 안은 좌석뿐만 아니라 통로까지 현지인들로 가득 찼는데 그러다보니 몇몇 이들의 몸에서 나는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너무 심해서 비위는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했음에도 속이 좀 불편했다.


그래도 배를 곯으며 갈 수는 없다 싶어서 옆에서 먹고 있는 음식들 중에 괜찮다 싶은 따끈한 스프를 시켰다. 스프는 맑은 고깃국물에 감자와 당근 같은 야채와 보리 같이 생긴 곡물이 들어가 있었는데 예상외로 이게 입맛에 딱 맞았다. 한그릇을 쭉 들이켜니 미식거리는 속이 달래지며 정신이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국이나 찌개같은 국물요리가 많은데 여행을 해보면 동남아를 제외하고는 국물요리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국물에 길들여진 한국사람들은 몸에 한기가 돌거나 입맛이 없을 땐 뜨끈한 국물을 마셔줘야 하는데 이런 요리가 없으니 아쉬웠었다. 그런데, 볼리비아에서 그런 국물요리를 만나니 참 반가웠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생겼다. 이 곳도 해발 3000미터는 가뿐히 넘는 곳이라 하늘이 눈부시게 파랬다. 고도가 높으니 공기는 서늘하지만 햇살은 눈부시게 밝았다.



이 낡은 버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을지 알 길이 없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지만 속이 편안해진데다 코가 냄새에 길들여져서 오전처럼 속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뱃속이 든든해야 뭐든 할 수 있는 법인가보다. 속이 편안해지니 이제 창밖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칠고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안데스 풍경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보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마을과 집들의 모습은 앞선 두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빈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버스는 우리네 시골 버스와 마찬가지였다. 버스에 탄 승객 누군가가 내린다고 하면 그곳이 정류장이 된다. 적당히 길가에 세우고 짐을 내려준다. 옛날 우리네 시골 완행버스하고 똑같아서 불편하고 느리지만 또한 정겹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추고 운전사가 차에서 내렸다. 처음엔 소변이 급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운전사가 돌아오기는 커녕 다시 몇몇 남자들이 내렸다. 시간이 더 지체되자 나도 궁금해서 내려봤더니 바퀴에 문제가 생겼는지 몇 사람이 달라붙어 끙끙대고 있었다. 이제 배낭여행 8개월 차인데 조급히 생각해봐야 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도 길가에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나서 타이어 교체하는 걸 구경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듯이 버스 크기에 비해서 타이어 크기가 무척 작다. 차는 크고 바퀴는 작으니 커다란 남자가 여자 하이힐을 신고 뛰는 격이다. 속도를 내기도 힘들고(물론 낡아서 속력을 낼 수도 없겠지만) 급히 제동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네들은 늘상 이러고 다녔을테니 도착만 한다면 별일도 아닐터다.


우여곡절 끝에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탄 좌석은 버스 앞쪽에서 두번째였고, 그 앞좌석에는 젊은, 젊다못해 어려보이는 인디오 부부가 아기를 안고 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멀끔히 잘 생겼지만 얼굴은 거칠고 피로가 묻어 있었다. 포토시로 돈을 벌러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달달한게 먹고 싶어 샀던 추파춥스가 주머니에 만져지기에 슬그머니 아기에게 건넸다. 엄마, 아빠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니 젊은 아빠가 감사의 표시인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며칠간 이 부부가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안데스 고산지대의 거친 바람과 자외선에 화장품이라고는 로션도 발라 본적이 없을 것 같은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던 건 수십년 전 우리 부모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때마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불편한 버스를 타고 드디어 포토시에 닿았다. 사실 동남아에서 탓던 버스에 비해 그리 불편할 것도 없는데 벌써 세계 최고 수준의 남미 버스에 길들여진 것인지도 몰랐다. 포토시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수크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밤늦게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적어도 오늘은 더 이상 불편한 버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미리 봐둔대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포토시와 수크레 사이를 왕복하는 택시를 찾았다.


부르는 값이 듣던 것보다 꽤 비싸서 흥정을 해도 차이가 적지 않았다. 어떡하나 망설일때 어찌어찌 현지인들과 섞여서 타게 되었다.(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가격이 적당히 떨어졌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택시를 타는게 낫겠다 싶어서 타긴했는데 문제는 같이 탄 사람들이 너무 뚱뚱했다. 소형 자동차 크기에 성인 다섯 사람이 탔는데 나도 작은 몸집은 아니지만 그 중 두 사람은 좀 지나쳤다. 뭐 피하려다 뭐 맞는다고 편하게 가려고 택시를 탓다가 짐짝처럼 껴서 두세시간을 시달려야 했다.



구름이 손에 잡힐듯하다. 평야같은 이곳이 해발 3,4000미터로 보이진 않는다.


그날은 영 운이 좋지않은 날이었다. 버스운도, 택시운도, 같이 동승한 승객운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섞여 있지 나쁘기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현지 사람들과 부대끼는 여행도 해봤고, 버스 타이어 가는 것도 구경했다. 어렵게 온 수크레는 생각보다 멋진 곳이었고, 예약한 숙소도 가격에 비해서는 완전 최고였으며,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대충 들어간 레스토랑도 훌륭했다.


볼리비아 여행의 시작이다.


피스코 사워와 볼리비악 맥주


첫날보다는 훨씬 나은 잠자리였지만 딱딱한 소금침대 위에서 자는게 그리 편할 수는 없었다. 어스름할 때 잠에서 깨어버린 김에 일출이나 볼까하고 숙소 앞으로 나왔더니 시간에 맞았는지 동쪽 지평선이 붉그스레 밝아오고 있었다.





까끌한 입속으로 숙소에서 차려 준 아침식사를 밀어넣은 후, 다시 차를 타고 셋째날 투어를 시작했다. 오늘 첫번째 목적지는 투어의 클라이막스인 우유니 소금사막이었다.


여행중에 만난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칠레 아타카마쪽으로 투어를 했던 여행자들은 첫날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고나니 그 다음 코스들이 시시했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투어를 하면서 첫째, 둘째날 봤던 호수와 사막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독특해서 소금사막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길도, 차선도 없는 흰색으로 펼쳐진 드넓은 소금사막을 사륜구동 SUV가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알리는 것은 투어하는 차들이 다니면서 만들어낸 바퀴자국뿐이고, 이마저도 우기가 되어 소금사막에 물이 차면 다 없어질테지만 이곳을 수없이 다녔을 가이드의 감과 지평선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의 모습만으로도 방향을 찾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나보다. 한참을 달린 차는 정확하게 소금사막 가운데 있는 물고기 섬(Isla Incahuasi)에 도착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해발 3656m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 경기도보다 조금 더 넓다. 이 흰색으로만 가득 찬 넓은 평원 가운데 물고기의 섬이라 이름붙은, 선인장들이 가득한 조그만 산이 있는 것이다.  Isla Incahuasi는 스페인어 Isla(섬)와 Inca라는 단어에다가 남미 토착민들의 Quechua어로 집을 뜻하는 wasi라는 말에서 파생된 huasi가 합쳐진 말로 '잉카의 집'이라는 뜻인데, 이 곳의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다고 하여 물고기 섬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위키백과 참고)



좁은 곳에 이렇게나 크고 많은 선인장들이 모여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섬 꼭대기까지 걸어서 오를 수 있다. 

높지 않지만 출발지점이 이미 3600미터가 넘는 곳이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힘들다.

사진 왼쪽 둥그런 케익모양의 물건은 여기서 파낸 소금덩어리로 만든 탁자다.



멀리서 본 선인장은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커다란 강아지풀 같았다. 윗부분은 하얗고 아랫부분은 누르스름한데 선인장 가시들이 부드럽고 부들부들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본 선인장은 잘못 몸에 닿았다가는 크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만큼 딱딱하고 커다란 가시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말 딱딱하고 길고 뾰족하다.


사방 수십킬로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소금밖에는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것 같다. 예전에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식용소금을 캐서 팔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국가가 지정한 회사만 채굴이 가능하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모양도 몽글몽글한 것이, 너무나 부드러울것 같다.


선인장으로 만든 덧창.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가 뭘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선인장이었다.



봄이 한창인지 선인장도 이 척박한 곳에서 번식을 위한 꽃망울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선인장 한그루에 이렇게나 여러 송이의 꽃이 피는 줄 미쳐 몰랐다.


분홍색 꽃망울이 아직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활짝 피면 꽤나 화려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선인장은 크기가 비슷비슷했지만 특히나 큰 선인장들이 몇몇 있었다. 이 날 본 가장 큰 선인장은 밑에서 찍은 사람 키와 비교하니 어림잡아 8미터가 훨씬 넘을 것 같았다.


이 날 본 가장 커다란 선인장. 원래 알던 선인장 크기가 아니다.


꼭대기에 오를 때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내려오다가 쓰러진 커다란 선인장 앞에 있는 조그만 표지판을 발견했다. CACTU MILENARIO(천년된 선인장) 이란다. 길이가 12.3m, 나이는 자그마치 1203세, 2007년에 죽었다는 내용이다. 살아있었다면 어마어마한 크기였을텐데 5년전에 아쉽게도 수명을 다해버렸다.


선인장도 여러 종류와 크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무만한 크기로 1천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겉부분은 썩어 없어지고 있었지만 단단한 내부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앞에서 봤던 덧창도 이렇게 선인장의 단단한 내부 목질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도, 휴지통도 모두 선인장으로 만들어져있다.


1200년이나 살았던 선인장은 죽었지만 새로 자라나는 조그만 선인장들이 이어서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Isla Incahuasi를 떠나 차를 소금사막 한가운데 세웠다. 사방은 바람소리를 제외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건기라 하얀 바닥에는 우기에 고인 물이 증발되며 남긴 벌집 모양의 무늬만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다른 차에 탄 20대의 팔팔한 청춘들은 하얀 사막을 배경으로 원근감이 사라진 재밌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몇 컷의 사진을 찍었지만 곧 시들해졌다. 우리 차에 같이 탄 어르신들은 조용히 대화하거나 눈을 감고 소금사막에 누웠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사진을 찍기보다 조용히 이 곳의 분위기를 느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소금사막은 우기(12월~3월)에 비가 오면 사막 전체에 얕게 물이 고인다고 한다. 그때는 잔잔한 물위에 하늘이 그대로 반영되어 보이는데 그 모습이 이 소금사막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불리는 풍경이다. 나도 처음에 그 사진을 보고 우유니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소금사막에서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Hotel del Sal(소금호텔)이라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이 묵었던 곳이었지만 오염수등의 문제로 얼마전부터 숙박기능은 하지 않고 기념품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몇 년전, 한창 세계여행을 꿈꾸며 이런저런 블로그와 사이트를 배회하던 시절에 봤던 곳이었는데 숙박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환경보존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오히려 돈벌이보다 보존에 더 우선한 이들의 정책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앞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서 여행자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줄 숙소로 다시 오픈했으면 좋겠다.



이 곳에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자기나라의 국기를 게양해 놓은 곳이 있다. 원래는 이곳이 볼리비아의 국토임을 알 수 있도록 볼리비아 국기만 걸려있었을테지만 언제부턴가 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국기를 같이 게양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갔을 땐 우리나라 태국기도 크고 높게 걸려 있었다. 워낙 바람이 센 곳이라 몇 달만 지나면 닳아 없어지겠지만, 각국의 국기들을 게양해 놓은 것이 단지 자신들의 출신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행자들간의 화합과 이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부에서는 소박한 기념품과 간단한 식음료를 팔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숙박객들이 이용했을 소금으로 만든 식탁, 안데스에 사는 동물들을 조각해 놓은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기념품을 구경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느라 분주할 때, 밖으로 나오니 같은 차로 여행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앉아 계셔서 옆에 가서 앉으니 조용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은 조용하지만 활발한 아내를 묵묵히 챙겨주던 자상함을 가졌으며, 70세의 나이임에도 양보를 당연히 여기지않고 항상 감사함을 나타내던 분이셨다. 이때도 조용한 목소리로 2박 3일간의 고마움과 나의 남은 인생에 축복을 기원해 주셨다.


아직은 많은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젊음이 부러웠던 적 보다는 멋있게 나이드신 분들을 보고 저렇게 나이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고상하고 깊은 지식이나 식견도 아니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외모와 멋들어진 옷차림, 경제적인 여유로움은 더더욱 아니다.



우유니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철도 무덤이라는 곳이었다. 19세기에 영국의 철도회사가 건설한 철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버려진 기차와 철길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근대 열강들이 세계 각국에서 수탈을 일삼을 때, 이곳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 코스라 젊은 친구들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투어가 끝나면 다들 자기 갈 길로 헤어지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동행을 하기도 한다.


철도 무덤을 마지막으로 모든 투어가 끝이났다. 우유니 시내에 있는 여행사로 돌아와 짐을 내리고, 2박 3일동안 같이 투어했던 여행자들끼리 작별 인사를 했다. 다른 차였지만 같이 다녔던 젊은 친구들도 모두 착하고 예의가 발라서 작별 인사를 하고 앞으로 안녕을 빌어주었다. 같은 차를 타고 다녔던 미국 노부부와 브라질 중년부부와는 너무 아쉬워서 작별인사도 여러번 해야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투어를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래서 이 우유니 투어가 너무나 특별하게 남을 수 있었다.


연락할 방법은 없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나면 모두들 건강하시길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재밌었던 것은 나이 많은 그룹을 데리고 운전했던 가이드와 젊은 그룹이 탄 차를 운전했던 가이드가 마지막에 희비가 엇갈렸던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이드하느라 혼자 이것저것 챙겨야했던 우리 차의 가이드는 투어내내 얼굴에 힘든 내색이 가득했고, 반면 젊은 그룹쪽 가이드는 젊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신나게 투어를 했었다. 그런데,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에게 팁을 줄 때 아무래도 나이든 그룹의 주머니 사정이 낫다보니 이쪽 가이드의 팁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얼굴 표정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나이든 그룹의 가이드 얼굴은 너무 신이 나서 붉게 상기될 지경이고, 반대편 가이드는 속이 꽤나 쓰린 표정이었다.


우유니는 작은 도시여서 여기서 딱히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우유니 투어를 마친 여행자들은 당일 바로 큰 도시인 수크레나 포토시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 쉬고 다음날 이동하기로 했다. 꽉차가는 30대의 체력을 과신해서는 안된다.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그동안 부실했던 영양을 보충할 요량으로 맥주와 고기요리를 시켰다. 고기요리는 대부분 닭이나 돼지지만 이 곳에는 소와 양, 심지어 알파카 요리도 있었다. 과감하게 알파카 스테이크에 도전했고, 나온 것이 아래 사진이다.


보기에는 꽤나 먹음직했다. 하지만 한입 먹고는 바로 도전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는데 소위 말하는 누린내가 너무 심했다. 지금까지 어떤 양고기에도 누린내 때문에 남긴적이 없는 식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알파카 요리는 결국 다 먹을 수 없었다. 알파카 스테이크는 나를 좌절시킨 최초의 고기요리가 되었다.



우유니 투어는 1년간의 여행에서 했던 여러가지 투어들 중에서 최고에 속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에게는 소금사막보다 그 전에 봤던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의 여러 풍광들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소금사막만 다녀오는 반나절 투어도 있는데, 2박 3일 투어가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걱정으로 이 반나절 투어를 선택하는 여행자들도 꽤 있었다. 혹시 그런 이유로 고민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70대의 어르신들도 할 수 있는 투어이니 그냥 해보라고, 게다가 당신은 나처럼 소금사막보다는 그외 기타등등이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남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밤새 추위에 떨며 잤더니 온몸이 뻐근하고 관절이 굳은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준비해주는 차를 마시며 몸에 온기를 돌게하고 몸을 풀었다. 고도가 워낙 높은 탓에 일부 사람들은 어지러움과 두통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한 고산병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한 고산병 증세를 느끼는 사람들은 코카잎을 씹거나 민트향이 나는 바세린을 콧구멍 주위에 발라서 조치했다.


남미 안데스를 여행하다보면 시장에서 코카잎을 팔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도 코카잎을 배치해둔다. 약한 고산병을 느끼는 사람들은 코카잎을 우려 차로 마시거나 입에 넣고 질겅절겅 씹는데 원래 안데스에 사는 원주민들의 조치방법이라고 한다. 마약의 원료이기는 하지만 코카인은 엄청난 양의 코카잎을 정제해서 마약성분을 뽑은 것이기 때문에 소량의 코카잎을 씹는다고 해서 환각작용이 생기지는 않는다. 진통제나 마취제 같은 약들이 대량으로 몸에 주입되면 마약효과를 갖는 것과 같다.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같은 숙소에서 묵은 20대부터 70대의 여행자들은 곧 활기를 찾았다. 아침식사 후, 짐을 꾸려서 4륜구동 차량 지붕에 얻어서 묶고는 다시 투어를 시작했다. 


두번째날 처음 도착한 곳은 사막 가운데서 풍화되고 있는 바위들이 늘어선 곳이었다.(장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옛날 이 곳이 아직 바다였을 때 바닷속에 있던 바위인지, 거친 기후로 무른 부분은 풍화되고 단단한 부분만 남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래로 된 사막 가운데 버섯모양의 작은 바위부터 커다란 바위까지 바위군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Arbol de Piedra(Stone tree)라 불리는 바위




하지만 바위들이 만들어낸 모습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묘한 색상들이 만들어 낸 사막과 산의 풍경이었다. 밝은 노랑색부터 짙은 갈색까지 소위 누런색이라고 표현되는 모든 색들이 절묘하게 섞여 지구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곳만의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제보다 날씨가 춥고 구름이 더 많았다. 해가 비치나 했다가 한순간 구름으로 뒤덮였다. 워낙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구름은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듯 했고, 간혹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다음 목적지는 Laguna Celeste였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Celeste는 '하늘의'라는 스페인어였다. Laguna Celeste라면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는 의미쯤 되나보다. 이 의미에 맞게 이 호수는 해발 4500미터가 넘는 곳에 있다.



사실 사진만 보고 이 호수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앞서 여행했던 호수들은 그 색깔이 워낙 독특하니 대충 짐작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이름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호수는 위키를 한참 뒤져서야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이 워낙 비슷하니 잘못 올려진게 아니라면 이 이름을 가진 호수가 맞을거다.


위키에서 Laguna Celeste를 검색하면 위 이미지가 나온다. 

맑은 날에 찍은 사진인지 내가 찍은 사진보다 밝고 깨끗하지만 동일한 곳임이 틀림없다.



다음 호수도 위키에서 비슷한 호수를 찾아야 했다. 그 결과로 찾은 이름은 Laguna Hedionda(악취가 나는 호수) 였다. 이런 이름의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수의 플라밍고가 있었다.




실제 쾌쾌한 유황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더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를 보니 Laguna Hedionda라는 이름이 그냥 붙여지지는 않은 듯하다. 2박 3일 투어를 하는 동안 여러 호수에서 플라밍고를 봤지만 이 호수에서 가장 많은 플라밍고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 호수는 플라밍고의 서식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똑딱이 카메라로 날아가는 플라밍고를 찍고 싶어서 여러차례 실패한 끝에 겨우...



아무것도 살것 같지않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소금호수(라기보다 진흙탕)에서 플라밍고는 뭔가를 계속해서 부리로 걸러 먹고 있었다. 아마도 부족한 소금기나 미네랄을 섭취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날 점심식사는 야외에서 했다. 따로 다니던 다른 여행사들의 차량도 멈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 곳이 점심식사를 하는 암묵적인 장소인가보다. 운전사 아저씨는 차량 뒤에 전날 숙소에서 싸준 음식들을 풀고, 음료수를 준비했다. 여행자들은 준비된 음식을 각자 식판에 덜어 담고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끌어와 앉았다. 테이블도, 바람을 막을 벽도 없고, 음식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불만을 가질 여행자는 없었다. 평생 처음보는 대자연의 풍광 앞에서 이런 사소한 불편은 불만거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한참을 달려 활화산인 오야구에(Ollague)가 보이는 계곡에 도착했다. 오야구에 산은 화산활동으로 봉우리가 없이 큰 분화구만 있는데도 높이가 5868m라고 한다. 이 계곡도 고도가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들 천천히 산책하거나 앉기 좋은 바위를 차지하고 주위 풍경을 감상했다.





산책하다보니 노란꽃이 핀 식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고도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이라고는 가시덤불 같은 식물밖에 없었는데 그런 식물조차도 꽃이 피고 있었다. 모양이 거칠고 볼품없어도 당연히 꽃은 피울텐데 그런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짝 피기 전인지, 이곳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했기 때문인지 꽃은 작고 꽃잎은 뾰족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꽃을 피우는 생명력이 놀랍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날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이 높은 고원을 통과하고 있는 철길이었다.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지금도 열차가 달리는지 알지 못한다. 아름답다거나 특이하다기보다 이 높은 곳에 철길을 놓느라 고생했을 노동자들의 수고에 마음이 엄숙해졌다. 





이로써 둘째날까지 일정을 마쳤다. 오늘 묵을 숙소는 어제보다 훨씬 건물이 크고 단단해 보였다. 고도가 많이 낮아져서인지 주위도 어제보다는 덜 황량했다. 게다가 이 숙소에서는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물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샤워비를 따로 받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다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석양이 멋지게 물들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우유니 소금사막을 기대하며 투어를 시작했는데 벌써 충분히 만족해버렸다.





짧은 온천욕을 마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아침의 태양(Sol de mánana)라는 이름의 간헐천 같은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지표면 여기저기 뚫린 구멍에서 갑자기 쉬익하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가 치솟는 광경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위키에서 찾아보니 이 곳은 해발 4800~5000m에 위치한다고 쓰여있었는데 당시 스마트폰 앱으로 봤던 높이도 대략 5000m 안팎이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유명한 간헐천은 아침에 50m 높이까지 수증기가 분출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오가 막 지난 시간이어서 그 간헐천이 분출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80년대 말, 이 곳을 개발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경제적인 효과가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그 뒤 뉴질랜드의 국립공원에서 간헐천이 오전 특정 시간에 분출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곳은 관광객을 끌기 위한 이벤트 성이 강했다. 이 곳처럼 땅속에서 데워진 증기가 더 이상 가둬지지 못해 지표를 뚫고 나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억지로 분출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언제쯤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될 즈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볼리비아 남녀가 관리하는 이 숙소는 난방은 물론 안되고, 전기도 특정 시간만 사용할 수 있고,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으며, 수세식이긴 하지만 공용 화장실도 편하게 쓸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대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여행자도 당연히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 정도 시설이라도 갖춰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 불편함이 싫다면 이 곳의 척박함을 불평할 일이 아니라 오지 말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볼리비아의 경제적인 발전과 정치적인 안정을 기원하지만 이 곳은 앞으로도 이 모습을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광활한 자연과 어디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풍광에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와 있는 모습은 왠지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숙소 앞에서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야마 두마리가 지나갔다. 야생 야마인지 고삐도 없고 표식도 없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주춤주춤 물러서니 어쩔 수 없이 대충 사진을 찍었다. 해발 5000m에 가까운 이 척박한 곳에서 이 녀석들은 뭘 먹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왠지 마음이 짠해져서 두 녀석이 가는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붉은 호수(Laguna Colorada)였다. 짙푸른 하늘과 다양한 누런색으로 어우러진 산, 붉은 빛의 호수가 만들어내는 색채는 강렬했다. 게다가 다른 호수에서는 몇 마리 정도였던 플라밍고가 이 곳에는 수백마리였다. 






플라밍고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고 있는, 같은 차를 타고 여행했던 70세의 미국인 노부부. 

활발하고 카리스마 있는 할머니와 점잖고 후덕한 할아버지 콤비는 여행중 만난 최고의 친구였다.

우유니 투어 후에 푸에르토 몬트에서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나비막 크루즈를 타러 간다고 했다.

진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공동침실과 외부 사이에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저녁 식사가 나오기 전에 숙소에서 묵고 있는 여행자들이 빙 둘러서 춤을 췄다. 젊은 친구들은 폼나게 춤을 췄고, 나이가 든 여행자들은 어설픈 춤을 선보였지만 춤실력은 별개로 인종과 국가, 나이를 떠나 이렇게 어울리는 것만으로 멋진 모습이었다.


저녁을 먹고나니 급속히 춥고 어두워졌다. 두달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난 여행자는 겨울에 했던 우유니 투어는 추위와 고산병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서 좋을 새도 없었다고 했다. 내가 우유니에 갔을 때는 북반구로 치면 4월 중순이라 봄이 한창이었음에도 밤이 되자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숙소의 딱딱한 돌침대에는 무거운 담요가 몇 겹이나 깔려 있었다. 가지고 다니는 사계절용 오리털 침낭까지 더해서 침대 속에 파묻혔지만 새벽에 들어오는 한기를 모두 막기는 힘들었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숙소를 운영하는 볼리비아인 남녀는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식기를 부엌에 가져다 줄 때는 내가 이 사람들 덕분에 편하게 여행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사에 감사하고 겸손해진다는게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인 것은 분명하다.


새벽에 소변이 마려웠다. 추위 때문에 침대밖으로 나가기가 정말 싫었지만 생리현상을 이길 수는 없어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화장실을 찾았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침실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본 창 밖에는 별빛이 가득했다. 살짝 숙소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스마트폰 플래쉬마저 끄자 온 세상은 완전한 어둠으로 가득찼다. 사방 어디에서도 불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완전한 어둠속에서 홀로 서 있는 느낌은 기묘했다. 예전 누군가 쓴 몽고 여행기에서 초원에 설치된 게르에 묵을 때, 한밤중 별빛에 끌려 나섰다가 게르를 찾지 못해 애먹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게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던 글이 그 순간 완벽하게 이해되었고, 약간은 공포심마저 들었다. 다시 돌아와 침낭속을 파고들어 오들오들 떨면서 잠을 청했지만 방금 느낀 그 기묘한 느낌에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칠레의 아타카마에서 출발해 볼리비아의 우유니까지 2박 3일간 우유니 소금사막을 비롯해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을 둘러보는 투어를 시작했다. 전날 여행사에서 일러둔대로 인당 5리터짜리 커다란 생수통을 들고 숙소앞에서 여행사 버스를 기다렸다. (투어는 대개 해발 3000미터 이상, 최고 5000미터 넘는 곳에서 진행되는데다 무척이나 건조하기 때문에 수분섭취를 꾸준히 해줘야 한다. 그래서 여행사마다 여행자에게 커다란 생수통을 필수적으로 챙겨서 올것을 당부한다.)


칠레를 떠나 볼리비아로 가는 날도 어김없이 맑았다. 아타카마에서 흐린날이란 게 있기나 한건지... 



아타카마를 출발한 여행사 버스가 도착한 곳은 볼리비아 출입국 사무소와 국립공원 관리소였다. 거기서 간단한 절차를 마치면 여행사의 4륜구동 SUV에 탑승할 인원을 배정해준다. 내가 배정받은 차량에는 좌석이 3열인 SUV에 6명이 탑승했는데 사람이 많으면 운전사를 제외하고 7,8명도 배정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여행사에서 준비한 간단한 빵과 음료수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2박 3일간 같이 여행할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힌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원치 않는 여행자라도 좁은 차 안에서 2박 3일간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들이므로 이때 일단은 충분히 좋은 인상을 심어두는게 좋다. 그러지 않으면 2박 3일간 혼자서만 외롭게 투어를 해야하는데다 고산병으로 힘들때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을지 모른다.)


하루종일 사륜구동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국립공원의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생리현상은 적당히 잘 조절하거나 자연에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식사 후 출발하기 전에 볼일을 봐둬야하는데 이 곳에는 여행자들에게 아주 유명한 화장실이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낡은 버스 껍데기 뒷편이 화장실이다. 따로 지어진 화장실이 없는데다가 사방이 훤히 뚫린 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저 버스 뒤가 유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장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소변을 보려고 뒤로 갔더니 거기는 온통 지뢰밭이었다. 수많은 덩어리들이 건조한 사막에서 썩지도 않고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생각보다 많은 덩어리 숫자에 당황했지만 지금은 재밌는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는 추억이 되었다.

 

먼저 출발한 SUV들이 먼지를 내며 달려가는 모습이 한층 투어에 대한 기대를 상승하게 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하얀 호수(Laguna blanca)였다. 이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은 오래전 바다였기 때문인지 곳곳에 소금호수가 있다. 하지만 아타카마에 있었던 수영 가능한 호수는 아니고, 근처 지질에 포함된 광물들의 종류에 따라 희고, 푸르고, 붉고, 녹색인 호수들이다.


Laguna blanca는 말그대로 호숫물이 비누를 진하게 풀어놓은 듯 뿌연 하얀색이었다. 위키에 찾아보니 이 호수는 해발 4350m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 더욱 푸른 하늘과 눈쌓인 산, 황량한 들판과 신비한 색의 호수가 이전에는 본적이 없는 기이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량은 호숫가에 여행자들을 내려주고는 저멀리 정차했다. 여행자들은 호숫가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처음보는 신기한 풍광을 만끽하며 차량까지 천천히 걸어서 도착한다. 투어내내 해발 고도가 무척 높기 때문에 광경에 취해 여기저기 뛰거나하면 금방 체력이 소진된다. 체력에 꽤나 자신있는 사람이라도 여기서는 조금만 빨리 걷거나 뛰어도 금새 헉헉대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녹색호수(Laguna Verde)였다. 호수는 진한 녹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녹색에 가까운 색이었다. 호숫가에는 여행자들이 올려놓은 수백개의 조그만 돌탑들이 있었는데 좀처럼 이런걸 하지 않는 나도 여기서는 조그만 돌을 하나 더 올려놓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한 번 이 곳에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 호수도 해발 4300m에 위치해 있는데 위키에서 찾은 Laguna Verde의 이미지는 내가 본 것보다 훨씬 더 녹색에 가까웠다. 계절에 따른 것인지, 이미지 보정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키에서 가져온 Laguna Verde의 모습 


2박 3일동안 운전과 가이드뿐만 아니라 점심식사 준비까지 담당하는 볼리비아 아저씨(나보다 나이가 적을게 틀림없지만)는 처음엔 좀 무뚝뚝해보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쾌활하고 잘 어울렸다. 아마도 볼리비아의 인건비가 무척 싸기 때문에 이 사람이 투어내내 고생한 것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보수를 받을게 분명하지만 여행자에게 팁을 요구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일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이겠지만 투어를 마친 후 우리 차에 탔던 사람들은 이 운전사에게 매우 후하게 팁을 주었고, 떠나면서 운전사의 환한, 너무나 환한 얼굴을 보았다.

3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의 여행자들을 안내하느라 고생했던 볼리비아 운전사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살바도르 달리 사막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인데, 그의 그림과 이곳의 풍경이 닮아있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유니 투어 내내 그랬지만 특히나 이곳은 비현실적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데스 산맥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지진이 빈번하고 화산도 많은데, 이렇게 건조한 사막에도 간헐천이나 온천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온천에는 몸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도 있는데 노천에다 물이 나오는 곳에다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탕이 전부였지만 뜨끈한 온천물에 들어앉아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계 어느 유명한 온천 부럽지않은 느낌이었다. 다만,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허름한 칸막이에도 이곳 물가로는 꽤 높은 요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끼리 서로 적당히 가려주며 갈아입어야 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칠레에서 볼리비아쪽으로 투어를 했기 때문에 첫날 들렀지만 반대로 방향으로 투어를 하면 마지막날 오전에 이 온천에 들르게 된다. 그러면 춥고 힘들었던 몸을 이 온천에서 풀고 투어를 마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우유니 투어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일정을 블로그 한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올리고 싶은 사진도 많고 내용도 너무 길어졌다.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려서인지 블로그가 느리고 버벅여서 적당히 자르고 두세번으로 나눠야 할 것 같다. 급하게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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