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바라스에서 묵은 숙소는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 깔끔한 목조건물이었으나 내부는 아무래도 오래되어서인지 호스텔 중에서도 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꽤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짧지만 좋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되자 부엌이 다양한 여행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호스텔에서는 늘상 있는 일인데 낮동안 흩어져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면 각자 사온 먹거리들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낯선 여행자들끼리 마주치면 보통은 눈인사만 주고받거나 간단히 안부인사만 하는 정도인데,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지만 서먹함이나 경계가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대개 음식이 만들어지면 우선 식사를 하고, 그 뒤에 조리기구와 그릇들을 설거지를 해서 뒷사람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게 일반적이다. 만약, 본인이 쓴 조리기구를 뒷사람이 사용해야 한다면 식사전에 미리 씻어두기도 한다. 이 날도 조리를 마친 후, 식사를 하고 그릇들을 모아 설거지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싱크대에 놔둔 조리기구들이 없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찾아보니 이미 깨끗하게 씻겨져 정돈되어 있었다. 알고보니 먼저 식사를 마친 여행자가 본인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싱크대에 있는 내가 쓴 조리기구까지 해놓은 것이었다. 별다른 내색없이 다른 사람의 것까지 해놓고도 티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인품이 아닌가 싶었다.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일은 빠지거나 미루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처음보는 사람의 몫까지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을 보는 일은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굉장히 드문 일이다. 비록 여행지에서 만나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적어도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된다.


푸에르토 바라스의 숙소 창문

낡은 천을 고리에 걸어야하는 엉성한 커튼이지만 좋은 기억이 남은 숙소였다.


숙소 근처의 주택가. 집이 넓고 길거리가 깨끗하다.


푸에르토 바라스에서 하루밖에 머물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 정도 예정된 비행시간에서 2시간이 넘어 산티아고에 꽤 가까워졌을 무렵, 창밖으로 강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바다와 강물에 반사되어 비행기안까지 들이쳤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강과 바다가 온통 금빛으로 빛났다. 그동안 비행기를 꽤 여러번 탓어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산티아고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번화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더라도 어두운 밤거리에서 방향을 익히고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렵사리 찾아간 건물은 20층이 넘는 고층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때만 커다란 창살을 밀어 문을 열어주었다. 이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외국인으로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많은 오피스텔이 여행자용 숙소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숙소 관리인과 만나서 방을 안내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자신은 태권도를 배웠고, 유단자 심사를 받기 위해 국기원을 방문한적이 있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라면서 나가더니 다시 가지고 온 것은 과립으로 된 인삼차 네포였다.


세상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현지인에게 인삼차를 선물받게 될 줄이야. 한국에서는 얼마 하지않는 인삼차겠지만 이 사람에게는 그렇게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연이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친절을 받으면서 칠레라는 나라가 점점 더 좋아졌다.


이 숙소를 예약하면서 사용했던 메일 계정으로 아직도 가끔 안내 메일을 보내온다. 숙소에 묵었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스팸메일이지만 나에게는 그의 친절을 떠올리고 미소짓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이렇듯 좋은 기억이란 사소한 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제(22일) 푸에르토 몬트와 푸에르노 바라스 가까이에 있는 칼부코 화산이 폭발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정확하게 이 지역을 여행했던 기억을 블로그에 남기는 날 그런 천재지변이 발생했다니 기분이 더욱 언짢았다. 아름다웠던 이 지역에서 큰 인명사고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구글맵에서 칼부코 산을 검색해보니 이 산에 대한 간략 정보중에 최근 분화한 날짜가 이미 2015년 4월 22일로 업데이트 되어있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구글의 능력은 이제 무섭게 느껴진다.)


칠레는 국토 전체가 환태평양 조산에 속해있기 때문 대부분의 산들이 화산이다. 칼부코 산과 가까이에 있는 오소르노뿐만 아니라 푸콘지역의 비야리카 등이 모두 분화한지 얼마되지 않은 화산들이다. 지진 활동도 활발해서 몇 년전에는 큰 지진피해를 입기도 했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감동의 어시장을 다녀온 다음날,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조용하고 작은 도시이며, 푸에르토 몬트에서 승합차 버스를 타고 한시간 내에 도착하는 푸에르토 바라스로 갔다. 도시 전체가 유럽풍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나 호수 주변은 이곳이 알프스의 호숫가인지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울만큼 유럽과 닮아있었다.


근처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 성당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2000km나 올라와서인지 날씨는 훨씬 따뜻했지만 어제까지는 여기도 잔뜩 흐리고 쌀쌀했었는데 오늘은 완전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기분까지 좋아지는 듯했다.


시내에 인접하지 않은 한적한 호숫가로 가려면 여기서 버스를 타고 꽤 가야한다. 

아쉽게도 그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호수는 생각보다 훨씬 커서 수평선이 보일 정도였다. 호숫가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장식구조물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 점점 구름이 끼어가는게 조금 불안했다.

어떻게 찍었는지 수평이 엉망이다.


호수안쪽으로 나무로 만든 훌륭한 전망대가 있었다.


구름때문에 뚜렷하진 않지만 호수 건너편으로 봉우리의 절반정도가 눈으로 뒤덮인 산이 보였다.

이번 칼부코 화산 폭발 때문에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해발 2600미터가 넘는 오소르노 산이었다.

사진으로 본 경치가 훌륭해서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구름이 꼈다 해가 나길 반복하는 중에 호숫가에 있는 멋진 건물을 발견했다. 크지는 않았지만 외장이 나무로 되어있는 이 멋진 건물은 공연장이었다. 건물 앞에는 그해의 주요 공연 프로그램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부터 연극이나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칠레의 한 작은 도시(근처의 큰 도시인 푸에르토 몬트조차 20만이 넘지 않는)에 있는 공연장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는게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민들의 상당수가 독일 이민자들이라 경제적인 생활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안에서 보고 상상하는 세계의 모습과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이런 소소한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호숫물은 맑고 깨끗했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길텐데 당시에는 막 봄이 시작된 시점이라 친구들과 물장난하는 현지의 10대 청소년들을 제외하고는 감히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청소년들은 활기에 넘친다. 별다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대고 몸을 움직여댄다. 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지고 나도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여섯명의 남녀 청소년들이 호숫가에 앉아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다가 한 친구를 물에 빠뜨렸다. 그리고는 결국 모두 물에 흠뻑 젖은채 다시 깔깔거리며 호숫가 저편으로 걸어갔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모든 것이 신나고 재미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세상에서 재미난 것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어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이런 감정들을 너무 빨리 거두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살아가는 재미는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뛰어들고 싶을만큼 맑은 물빛이었다.


정원이 단정하게 정돈된 깔끔한 집들이 호숫가에 늘어서 있다.





먹을 것을 바라는지 한동안 따라왔던 강아지. 

미안하게도 떼어놓기 위해 레스토랑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옆문으로 몰래 나오는 꼼수를 부려야했다.




한동안 호숫가를 배회하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출출해졌다. 하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오는터라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 뭔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까페를 찾았다. 그러다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현지인들이 찾을 것 같은 까페를 찾았다.


카운터에는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계셨고, 직접 만든듯한 커다란 케이크들이 몇 가지 놓여있었다. 케이크는 종류도 네다섯가지 밖에 없고 모양도 투박했지만 정말 맛있어보여서 두 가지를 골라서 시켰다.(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모양에 신경쓴 음식은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모양에 신경쓰지 않고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싶은 그런 음식에 군침이 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시킨 이 케이크는 명품이었다. 크기도 큼직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케이크 중에서 확실하게 으뜸이었다. 제빵기술이 있다면 여행을 중단하고 한수 배우고 싶을  것 같았다.


이 케이크 하나만으로 푸에르토 바라스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여행은 잘 짜여진 스케줄 대로, 계획했던 것을 모두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정작 묘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불운한 것은, 다시 맛보기 힘든 이 케이크 때문에 그 후로는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이전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까페하고는 궁합이 잘 맞는지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카페에 앉아서 호수 건너편 오소르노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떠나기에 앞서 까페 내부 사진을 찍었다. 놀랍게 훌륭한 케이크가 별다를 것 없는 소박한 까페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는 경험해봐야 면목을 알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푸에르토 바라스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훌륭한 경치를 보러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있는가하면 이 곳에서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 지금까지는 태국 치앙마이, 그리스 로도스, 푸에르토 나탈레스 등이 그랬었다. 여기에 푸에르토 바라스의 이 마을도 추가되었다.

트레킹을 마치고나서 보니 노숙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행중 한번도 깎지 않은 머리카락은 전부터 어깨를 덮어가고 있었는데 트레킹 중에 제대로 빗지도 못했더니 엉망이었다. 며칠간 세찬 바람에 노출된 피부는 더욱 거칠어졌고, 표정에도 피로감이 잔뜩 묻어있었음에도 왜그런지 트레킹 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이 끊길까하는 조바심 없이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이튿날에는 더러워진 몇 안되는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하루종일 할 일 없이 빈둥대며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고 푸에르토 몬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거칠고 혹독한 기후지만 맑고 깨끗했던 파타고니아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자연 중에서 가장 내밀한 곳이었고, 가장 인상깊은 곳이었다. 여행자의 이기심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언제까지나 개발되지 않고, 때묻지 않고 보존되길 바란다.


푸에르토 몬트는 바릴로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스치듯 머물렀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올라가기 전에 며칠 머무르기로 했다. 


푸에르토 몬트는 '푸에르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항구도시이며, 인구가 15만이 넘는 대도시에 속하는 곳이다. 이 항구는 상업항이면서 또한 근해에서 잡히는 수산물들이 모이는 어항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항구 바로 옆에 유명한 수산물 시장이 있다. 좋아하는 해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버스(승합차)를 타고 물어물어 시장에 도착했다.


마치 거북손처럼 생기긴했으나 크기가 엄청나다.




도착한 시간이 오전이라 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다양한 해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연어만해도 한마리를 통으로 팔기도 하고, 일부 잘라서 팔거나 훈제해서 팔기도 했다. 조개도 매우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었고, 게도 날것뿐만 아니라 쩌서 살만 바르거나 집게 발만 파는 등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심지어 멍게 비슷한 것들도 보였다.


유럽이나 동남아에서는 주로 생선 중심의 해산물을 파는데 칠레에서는 우리네 시장처럼 다양한 해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요즘 가격이 저렴하면 '착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착하다 못해 고마울 지경이었다.


1미터가 훨씬 넘을 듯한 크기의 싱싱한 연어들이 가게마다 가득하다.



고마울지경인 해산물의 끝판왕은 게였다. 내 손바닥보다 훨씬 큰 게 한마리 가격이 단돈 2달러였다. 처음엔 당연히 20달러라고 하는 줄 알고 비싸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왔을 때, 대형마트에서 샀던 털게는 1달러였다.(대형마트는 시장보다 훨씬 비쌌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맛이 어떨지는 2달러만 투자해 먹어보면 되는 것이니 무조건 사야했다.


이 곳을 방문했던 다른 여행자의 블로그에서는 연어를 잘라서 팔지 않아 한마리를 사야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연어만 먹어야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잘라서 팔고 있었다. 하긴 자른 연어 덩어리도 큼지막하긴 했다.







커다란 게를 사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 재밌는 광경을 봤다. 뭔가 '딱', '딱'하는 소리가 들려 유심히 봤더니 갈매기가 공중에서 떨어뜨린 조개가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다. 갈매기가 딱딱한 조개껍데기를 깨기 위해서 바위에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새를 머리 나쁜 동물이라하면 갈매기는 제외해야 할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게를 쩌먹었다. 껍질이 무척 두껍고 단단했지만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한마리만 먹어도 배가 찰 지경이었다. 좋은 음식을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푸에르토 몬트는 이 게 한마리로 나에게 행복한 도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지금보니 내 손바닥 두배는 될 것 같다.


다섯번째 날은 나흘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여기로 왕복하는 배가 아직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부리나케 아침을 만들어 먹고는 여행사의 승합차가 도착하는 곳까지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그 곳은 마지막 날 머문 산장에서 십수km 떨어진 곳이었고, 정오까지는 거기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서둘렀다.


   * 넷째날 트레킹을 쓰면서 한가지 빠뜨린게 있어서 우선 여기 적어둔다.

영국에서 신혼여행으로 왔던 젊은 부부는 하루 먼저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남은 통조림 몇 개를 주었다. 통조림 몇 개가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 해보면 쉽게 이런 친절을 보이기는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인종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피부색을 가리는 백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근엄한 인상의 남편과 선하고 친절한 아내인 이 젊은 부부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여행중에, 그 후에 유독 남미를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현지인들도 그랬지만 배낭여행자들도 유독 다른 대륙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비해 친절했다. 남미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세계 여러곳을 이미 여행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인데다 선입견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인종이나 민족을 떠나 서로 도움을 주고,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 쉽게 어울리는 것 같다.



숙소에서 출발해 걷다보니 어스름이 걷히고 날이 밝아왔다. 밝아진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깨끗했고, 바람도 전혀 불지 않았다. 나에게 미련을 잔뜩 심어주려는 듯이 돌아가는 날에야 더 이상 좋기도 어려운 날씨를 선물해주었다.


한참을 걸어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뒤돌아 본 토레스 델 파이네는 다시 발길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돌아갈 때라도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해야할지, 억울해해야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W코스에 포함되지 않기에 보통은 트레킹하지 않는 길이었지만 걷는 재미는 충분했다. 산길과 들판이 고루 있었고, 주위의 설산이나 호수가 펼쳐져 있어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다. 도중에 야생마인지 모를 한무리의 말들을 만났다. 덩치 크고 늘씬한 말들이 하필이면 길 한가운데 진을 치고 있었다. 고삐도 없고 안장도 없는 이 말들이 사납지는 않을까, 다가가면 흥분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말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쳤다. 녀석들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마주친 인간들에게 긴장했는지 푸르릉 거리면서도 반보쯤 물러서주었다.



돌아볼수록 자꾸 아쉬움이 커졌다. 혹독하기로 이름난 이곳에서 오늘 같은 날씨를 만나는 것은 분명히 흔치않은 일일터였기 때문이다. 나흘동안 구름을 이고 있던 봉우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승합차가 데리러 올 시간이 정해져있었기에 자꾸 뒤돌아보고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아쉬움을 억누르며 부지런히 발을 떼야했다.






드디어, 약속시간을 조금 앞두고 국립공원 사무소에 도착했다. 픽업하는 시간이 비슷한지 여기저기 흩어져서 트레킹을 했던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각자의 여행사 승합차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넘었지만 여행사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간혹 차가 들어올 때마다 혹시나 했지만 다른 여행사였다. 하나 둘 여행자들이 떠났지만 마지막까지도 내가 예약한 여행사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짐을 줄이느라 먹거리를 오늘 아침까지만 준비했기 때문에 배를 채울 것도 없었다. 약속시간을 한두시간이나 지나서 부아가 치밀즈음에야 도착하더니 운전사는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승합차에는 일가족으로 보이는 남미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차를 타면 바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이 여행사가 더블 부킹을 해서 당일치기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투어하는 일가족과 같은 차를 타도록 한 것이다. 더욱 화가 치밀었지만 성질을 부려봐야 다른 차를 타고 갈 방법도 없기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졸지에 차로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한번 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행운이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막힌 날씨에 그냥 돌아가기도 아쉬운데 멀리서나마 다시 한번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행사에 대한 화로 그런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트레킹을 좋아하지 않거나 신체적인 고단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당일치기로 여행사의 투어 상품을 이용해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심하게 약하지 않다면  한번쯤 시도해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나도 궃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트레킹을 하지는 못했지만 차로 둘러보는 곳과 본인이 시간을 들여서 밟고 지나간 곳의 느낌은 정말 천지차이다. 


한번 해보고도 정말 아니다싶으면 다시 안하면 된다. 하지만 시도해보지 않고 결정해버리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선택에 제한을 가져온다. 어쩌면 숨겨진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을 찾지 못하고 평생 잊은채 살게 될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가 한참 되어서야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사에서 트레킹이 어땠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인상을 팍 써주고 급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해물잡탕밥? 보기는 이렇지만 맛은 괜찮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세계 여행을 계획하며 반드시 가야할 곳으로 정했던 몇몇 장소중에 하나였다. 그런 장소들 중에서 어떤 곳은 실망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더욱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크게 기대했던만큼 큰 만족을 주었고, 더 큰 아쉬움과 미련을 주었다.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시 가야할 1순위가 되어버린 곳이다.


넷째날은 W코스의 마지막 오른쪽 부분을 아래에서 위로 왕복하는 코스였다. 실질적인 트레킹은 오늘 마무리하고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오전 중에 승합차가 데리러 오는 곳까지 도착해야 했다. 왕복 20km가 넘는 산길이지만 표고차가 심하지 않아서 이번 트레킹에서 무난한 코스이며, 코스의 마지막에는 모레노 빙하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작은 빙하가 있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오늘도 날씨는 아침부터 흐려서 마지막까지 맑게 갠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려나 싶었다. 어제 비바람에 꽤나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다시 날씨가 거칠어질까싶어 처음부터 걷는데 속력을 내다보니 초반에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


호숫가를 따라 난 산길을 걸으면서 보니 위로 갈 수록 호수에 떠다니는 작은 빙하 파편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호수 저편으로 빙하가 나타났다. 다시 숲길을 얼마간 걸어 산장에 도착했다. 며칠간 트레킹하며 묵거나 봤던 산장중에 가장 호사스런 곳이었다. 프런트에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어 점심을 만들었다. 다른 산장에서는 취사할 수 있는 곳이라 해봐야 겨우 바람만 막을 수 있는 곳이 다였는데 여기는 간이건물이긴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산장에서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빙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넓게 펼쳐진 빙하에서 트레킹 중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부분은 사진의 오른쪽 부분이다.





빙하와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빙하와 내가 서있던 자리가 붙어있었거나 아주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빙하는 조금씩 녹아서 짧아지고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한동안 쉬면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면서는 바삐 걷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경치들을 이젠 느긋하게 즐기면서 걸었다.


오전내내 흐렸던 날씨가 오후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에서는 날씨운이 참 좋지 않았다. 트레킹을 시작하면 날씨가 안좋다가 마칠때쯤에는 개는 날이 반복되었다. 엘 찰텐에서 날씨운을 모두 써버린 느낌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아쉬움에 왔던 길을 뒤돌아봤더니 멋진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씩 옇어지는 구름사이로 햇살이 호수표면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강렬하게 빛이났다. 조금 전에 있었던 빙하에도 구름이 제법 걷혀서 빙하 뒷편 산자락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후 느지막한 햇빛을 받아 설산과 호수가 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찍힌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게 무척 아쉽다.





산장에 돌아왔을 때에는 날씨가 완전히 개었고, 심지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의 여러 봉우리들까지 깔끔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 나를 놀리는 것 같아서 약이 올랐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비경은 저 안에 있다. 셋째날 저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어야했다.


심지어 바람마저 잠잠해져서 깃발이 펄럭이지 않고 늘어진 것을 이틀만에 처음 봤다.


보기만해도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봉우리 들.


이렇게 토레스 델 파이네의 트레킹을 마쳤다. 날씨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트레킹이었지만 육체적으로는 고달프고 힘든 트레킹이 마음에는 이렇게나 행복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산길을 이렇게 오랫동안 걸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 올레길이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전히 자연안에서 걷는 길은 아니므로) 점점 더 산이 좋아지고 자연이 좋아졌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날씨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다시 한번 가야 할 곳 1순위로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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