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 좋았던 날씨가 바릴로체의 일반적인 3월 날씨인줄 알았는데, 다음날은 언제 날씨가 좋았냐는 듯이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여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눈쌓인 봉우리인지 구별이 안될만큼 온 하늘이 흐렸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어제는 운좋게 맑은 날씨에 나우엘 우아피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이지 파타고니아의 이른 봄 날씨는 여행자에게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어쨌든 어제 계획했던대로 바릴로체의 여러 전망대 중 하나인 '세로 깜빠나리오'에 가보려고 했다. 시내에서 어제 보트를 탔던 선창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중간쯤에 내리면 깜빠나리오 언덕으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탈 수 있다. 세로(Cerro)는 스페인어로 봉우리나 언덕을 뜻하는 말인데 깜빠나리오는 봉우리 정도는 아니고 언덕쯤 되는 높이이다. 그리 높지 않아서 걸어서도 충분히 올라갈만 하지만 날씨도 좋지 않고 바람도 세게 불어서 그냥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허술한 리프트가 센 바람에 흔들리니 뜻하지 않은 스릴까지 느끼게 되었다.






바릴로체는 앞뒤로 수많은 호수에 둘러쌓여 있는데 전망대 위에서 보니 그 모습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구상에 빙하가 가장 많이 남은 지역이라는 파타고니아는 혹독한 바람으로 유명하다. 최대 풍속이 60m/s가 넘는 바람도 드물지 않다고 하는데(위키 참조) 열대성 저기압이 17.2m/s 이상의 바람을 동반하면 태풍이라고 이름 붙인다니 이곳의 바람이 얼마나 센지 짐작할 수 있다. 이날 불었던 바람은 파타고니아의 바람치고는 그리 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시절을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보냈던 나에게도 만만치않게 느껴졌다.(그리고,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얼마나 센지는 그 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중에 뼈져리게 느꼈다.)


바람을 맞으며 전망대에 서있었더니 온몸이 꽁꽁 얼어버렸다. 다행히 전망대에 까페가 있어서 초콜릿 부스러기가 잔뜩 올라간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국기가 쉴새없이 나부꼈다. 제법 큰 국기인데도 한번도 깃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계속 저 상태로 펄럭였다.



어제처럼 맑은 날씨였다면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가 훨씬 훌륭했을 것이다. 호수는 파랗게 빛나고 흰눈이 쌓인 봉우리와 푸른 하늘이 대비되어 무척 아름다웠겠지만 그날 나에게는 이틀 연속 좋은 날씨를 맞는 행운은 없었다. 하지만, 구름이 잔뜩끼고 쉴새없이 바람이 분 그날의 날씨가 바릴로체의 일반적인 3월 날씨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운좋게 가끔 볼 수 있는 화장한 모습도 좋지만 그대로의 민낯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다시 부실해보이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원래는 바릴로체의 또다른 전망대도 가볼 생각이었지만 언덕위에서 꽁꽁 얼어버린 몸으로 다시 바람 앞에 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릴로체에는 고작 사흘 머물렀지만 이 정도로 지나칠 곳은 아니었다. 언젠가 여름에 바릴로체를 다시 찾는다면 눈덮인 산의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빛나는 햇살아래 푸른 호숫물에 몸을 담궈보고 싶다. 그리고 지겨워질만큼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


숙소 '남미사랑'에서 2주를 뭉기적대며 남미 여행경로를 고민했다. 어떤 날은 운이 좋으면 해변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푸에르토 마드린으로 갈까 했다가, 생각을 바꿔 비행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 우수아이아로 갈까 하기도 했다. 그러다 숙소 주인장이 추천해준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로 가기로 결정했다.(이렇게 꼬여버린 것은 파타고니아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인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겨울동안 폐쇄되어서 9월말이 되어야 오픈하기 때문이다.)


바릴로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약 1700km 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도시다. 여름에는 낚시와 수영,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고, 산악 트레킹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바릴로체는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나우엘 우아피 호수와 접해 있는 조그만 도시이다. 


약 400년 전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남미에 온 성직자들에 의해 외부에 알려졌고,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 유럽의 이민자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했다고 한다. 유럽 이민자들의 영향인지 바릴로체의 가옥들은 유럽의 목조건물과 닮아있고, 이곳의 특산품도 수제 초콜릿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저녁에 출발한 버스는 24시간도 더 지나서 그 다음날 오전에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바릴로체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비해 훨씬 남쪽이라 조금 더 추웠지만 봄이 오는지 나무마다 연분홍 꽃이 가득했다.



이튿날 나우엘 우아피 호수 투어에 나섰다. 호수 주변을 자전거를 빌려 다니는 방법도 있지만, 이른 봄이라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추운데다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될 것 같아서 투어 보트를 타기로 했다. 바릴로체 시내에서 보트를 타는 선착장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버스를 타고 노선의 거의 마지막까지 가야한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예매하고, 출발하기까지 남는 시간에 주위를 걸었다. 선착장 주변마저도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달력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지만 그 이상이 아닐까 싶었다. 호수를 둘러싼 설산들, 맑다 못해 스스로 파란빛을 내는듯한 호숫물... 내가 본 스위스의 어떤 호수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오늘의 투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일부러 인공적인 것을 배제한 듯한 선착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없지만 이런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함이라면 충분히 감수할만 하다.






투어는 단순하다. 섬 두개에 들러서 짧은 트레킹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날의 투어에 대해 구구절절히 기록을 남기는게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올려두고 가끔 마음이 불편하고 복잡해질때 보기만 한다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특이한 나무가 자란다는 첫번째 섬에 닿았다. 이 나무는 굉장히 단단하고 무거워서 물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나무를 두드려보니 마치 돌을 두드리는 듯 했다. 얼마남지 않아 보호되고 있다는 이 나무가 이룬 숲을 산책하는 것으로 이 섬에서의 투어를 마쳤다.









겉보기에는 보통의 나무와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단단하기가 돌과 같다.







첫번째보다 좀 더 크고, 섬안에 뭔가를 재배하는 농장이 있는 두번째 섬에 닿았다. 풍경에 빠져 가이드의 설명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르겠다. 





사진에서,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좀 더 어렸을 때, 화려하고 번화한 유명 도시를 동경했던 때도 있었다. 그리던 도시에 갔을 때는 무척 좋았지만 조금 지나고나면 남아있는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나는 도시의 화려함이나 유행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는지, 어떤 것에 유독 신경을 쓰고, 어떤 것에 무던한지 낱낱이 알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려면 여행을 가야한다는 말도, 스스로를 알고 싶으면 여행을 가야한다는 말도 모두 옳다.






 

선착장 근처에 있는, 바릴로체에서 유일한 별 다섯개짜리 숙소, 야오야오 호텔


이른 봄의 해는 금새 기울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큰 기대없이 '토레스 델 파이네'에 가기 전에 며칠 시간이나 보내려고 왔던 바릴로체는 앞으로 남은 파타고니아 여행을 무척 기대하게 만들었다. 바릴로체는 파타고니아의 다른 어떤 곳 못지않게 청정하고 깨끗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잘 알려진 '토레스...'나 '엘 찰튼'이 마초적인 남성같이 거친 파타고니아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바릴로체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매너있고 부드러운 남성같은 파타고니아를 만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땅고 사랑은 유별나서 주말에도 공원에서 땅고를 추거나 강습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왔다. 그런데, 그 주에는 모임이 없었는지 땅고를 추는 사람들은 안보이고 공원에는 이른 봄을 만끽하러 나온 가족이나 연인들 밖에 없었다. 비록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하늘도 맑고, 오랜만에 따뜻한 날씨라 기분 좋게 햇살을 쬘 수 있었다. 이런 공원에서 보는 풍경은 지구 반바퀴가 떨어진 나라라도 비슷하다.



땅고 구경을 못했지만 이 공원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가보기로 했다. 차이나타운 입구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차이나타운임을 나타내는 예의 그 붉은 색의 커다란 문이 있었고, 갖가지 중국음식(약간은 현지화된)과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며칠전 한식을 먹기 위해 갔던 코리아타운에는 주로 한국인들만 있었는데 이 곳은 아르헨티나에 사는 중국인 이민자뿐만 아니라 현지인이나 관광객도 무척 많았다. 


세계 어디서나 중국 음식점은 찾을 수 있고 현지인들도 널리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음식점은 한국 이민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지난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었음에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문화의 전파를 자신의 임기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조급함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싶다. 문화는 단기간에 비용을 들인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닌만큼 우리 식문화를 알리려면 오랜기간 현지인들에게 녹아들어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의 식문화가 아르헨티나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 식료품점에서 파는 많은 상품들이 한국 기업들이 수출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 음식이 아니라 중국 음식으로 알고 먹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길에서 가장 많이 먹으며 다니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 '메로나'라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메로나의 색깔이 연두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메론이 대부분 연두색일뿐 실제 메론의 과육은 주황색을 띈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메론은 주황색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다음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기억에 남았던 곳은 아름다운 서점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엘 아테네오'였다. 아름다운 서점으로 여러번 매체에 소개된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은 짧은 일정탓에 가볼 수 없었지만 엘 아테네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엘 아테네오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서점이다. 무대는 까페로 사용되고 있고, 관람석은 모두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엘 아테네오의 훌륭했던 디저트


무대에서 바라 본 서점





둥그런 오페라 극장의 관람석에 맞춰 책도 그렇게 전시되어 있다. 사용하지 않는 오페라 건물을 서점으로 리모델링해 도시의 명소로 만든 이들의 현명함이 놀라웠다.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하에는 어린이용 도서가 전시되어 있는데 놀이방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있다. 책장 사이의 공간도 충분하고 중간중간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소파나 의자를 갖춰 놓았다. 책만 잔뜩 쌓여있는 우리네 대형서점은 책을 파는데만 집중하고 책을 보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던게 아닐까.


지하층에서 윗층을 보면 전시된 책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도 사용되는 오페라 극장처럼 보인다.






엘 아테네오 서점은 단지 오페라 극장이었던 건물을 활용한 서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옛것을 현대에 어떻게 재활용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는 것 같다. 아울러,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게되는 고객을 위한 배려가 결국은 더욱 많은 고객을 불러온다는 것을,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들까지 오게 만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요즘 소비자들은 현명하면서도 영악하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도 구매해주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고객만족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뭐, 잘 알고 있겠지만 할 수 없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또 하나의 명물은 라 보카(La Boca) 지역의 까미니또(Caminito) 거리다. 보카는 오래된 항구와 공업지구이며, 초기 이탈리아 이민자들로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은 흔히 땅고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원색으로 칠해진 가옥들이 늘어선 까미니또(소로, 골목길)라는 거리가 유명한데, 옛날에는 항구 노동자들의 애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가득했을 이 거리는 지금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 레스토랑 등으로 번잡하다.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보카지구로 향했다. 이 지구는 워낙 치안이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탓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버스안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도 보카지역은 위험하니 버스에서 잘못 내리면 안된다고 몇 번을 신신당부하고는 자신이 내리고나서 세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왠걸, 할아버지가 내리고 세번째 정거장이 되었지만 책자나 인터넷에서 보던 거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릴까말까 주저하다가 지나쳤는데 정작 보카 거리에 도착하니 운전사가 여기가 보카라고 알려주었고 대부분의 승객이 여기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것도 남미의 오지랖인건지, 동양인 여행자를 골탕 먹이려는 할아버지의 심술인지... 하마터면 호되게 힘든 하루를 보낼뻔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갖가지 기념품과 장신구들을 파는 행상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형형색색의 목조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예전 궁핍하던 시절, 페인트 부족으로 모든 벽을 한가지 색으로 칠할 수 없어서 이렇게 알록달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게 지금 와서는 오히려 전세계의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명소가 되었으니 세상일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곳이 까미니또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건물 베란다에 아르헨티나 유명인사들의 우스꽝스런 인형들이 붙어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마라도나, 미아 페로, 체 게바라는 알아볼 수 있겠다.


유명한 거리지만 장신구나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길거리 댄서의 땅고 공연은 흥미로웠지만 이것도 레스토랑의 호객 행위의 한가지였다. 서울의 인사동이나 삼청동이 고급 레스토랑이나 갤러리에 점령되어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듯이 이곳도 자본에 의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이유인지 이런 변화가 마뜩찮다.


까미니또 거리 뒤편 골목길이 그나마 낫다. 보카 항구에 막 도착한 이민자의 동상도 있고, 골목길 주변의 집들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가 풍긴다.(앞쪽은 레스토랑이지만) 





이 골목길의 대부분은 큰길에서 밀려난 그림을 파는 거리의 화가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림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의 명소나 땅고를 추는 댄서를 그린 그림들이다. 장사가 안되는지 앞쪽 벤치에 앉은 화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까미니또 거리는 무척 짧다. 주변 가게들을 둘러보며 걷더라도 금새 그 끝에 도착한다. 그 끝에는 바리케이트를 친 경찰들이 서서 구경하느라 한눈을 판 여행자들이 위험 지구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이 지역이 위험하게 된 것이 여기에 사는 이들의 책임만은 아닐터라 안타깝다.


보카 항구에는 옛날 북적였을 항구의 구조물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보다는 관광지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다.


한가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클럽이 2개 있다. 리베르 플라테(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다. 그 중에서 보카 주니어스는 이탈리아 이민자 청년들이 만든 블루칼라에게 인기있는 축구단이며, 리베르 플라테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지지기반을 가진다. 이들 클럽간의 축구 경기는 수페르 클라시코라는 이름으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이상의 치열한 경기가 펼쳐진다고 한다.(위키에서 찾아보니 보카 주니어스는 아르헨티나에 축구를 전파한 영국인들의 영향을 받아 영국식 이름을 지은 것이라 보카 후니오르스가 아닌 보카 주니어스라고 하는게 맞다고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렀던 기간은 딱 2주였이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날씨마저 갑자기 쌀쌀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머무를수록 이 도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남미여행 계획을 덜 세웠다는 핑계로 떠나는 날짜를 미루다보니 결국 여행하는 동안 가장 오래 머무른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매일매일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흥미진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양파껍질을 벗기듯 조금씩 알아갈수록 새로운 재미가 있는 도시, 시설은 좋지 않지만 자유로운 숙소, 남미여행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친해진 사람들이 있어서 떠나기가 힘들었다. 다음에도 똑같이 볼 수 있는 것들은 미련을 접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이 더 훌훌 털고 일어서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 곳에서 일정을 하루 단위로 정리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기에 몇 편이 될지는 모르지만 크게 묶어서 정리하려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권이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매우 많은 나라다. 그래선지 피자를 파는 곳이 매우 많다. 다양한 토핑이 올려진 미국식 피자가 아니라 치즈를 중심으로 몇가지 토핑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식이다. 육류와 유제품이 훌륭한 나라답게 치즈도 풍부하게 올려져있고 맛도 나쁘지 않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너무 짰다.


이름이 뭐더라... 낮에는 펼쳐지고 밤에는 오므라드는 꽃을 형상화했다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라틴미술관(MALBA)

보려고 갔던 보테로의 작품들은 공사로 전시하지 않았는데 매표소에서는 그런 안내조차 없어서 화가 났었다. 


숙소에 문의하면 땅고를 공연하는 곳들 중에서 평이 괜찮은 곳들을 소개해준다. 내가 갔던 곳은 식사를 겸하는 극장식의 커다란 공연장이었는데 음식은 무척 훌륭했지만 땅고에 관심이 있다면 극장식 공연장보다는 작은 밀롱가 형태의 공연장을 추천하고 싶다. 극장식 공연장은 크고 시끄러워 집중도 안되는데다 아무래도 땅고라면 밀롱가가 제격이 아닐까. (밀롱가는 땅고의 기원이 된 여러 음악중에 한가지이기도 하지만, 땅고를 추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공연장의 음식은 식전주부터 스테이크까지 모두 훌륭했지만, 스테이크는 마트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숙소에서 굽더라도 훌륭했기 때문에 감탄이 나오진 않았다. 







식사가 차려지고 얼마지나면 본격적으로 땅고 공연이 시작된다. 하지만 무대까지 거리가 있고,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은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숙소에서부터 걸어서 산책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7월 9일 거리'가 있다. 거리 중심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커다란 오벨리스크가 있어서 찾기도 쉬운데 길의 폭이 무려 140m가 넘고 14차선인가 16차선인가 그랬다. (7월 9일은 아르헨티나의 독립기념일이다.)



사진으로는 그다지 넓어보이지 않지만 횡단보도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까마득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무는 동안 묵었던 숙소는 남미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남미사랑'이다. 이 곳의 주인장은 '미친가족 집팔고 지도밖으로'라는 남미여행 책을 쓴 부부이며, 나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보고 매료되었던 책이다.


몇 달째 블로그에 여행을 정리하면서 좋았건 나빴건 숙소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고, 방문했던 당시의 상황이 따르기 때문에 누군가 이 블로그를 보고 그곳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블로그에 숙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여기서 2주를 보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 곳의 분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어서이다.


이 곳은 전적으로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다. 유럽의 한인민박처럼 생각한다면 이곳을 찾으면 안된다. 아침은 매니저분들이 간단한 빵과 잼들을 부엌에 챙겨주지만 유럽의 민박처럼 아침저녁 한식으로 차려주지 않는다. 저녁은 여행자들끼리 그날 먹을 것들을 사서 요리해서 먹는다.(외국인들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호스텔들이 이런 시스템이다.)


나같은 여행자에게는 한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렴한 숙소와 여행자들끼리의 분위기가 훨씬 중요하다. 오랜 여행으로 한식이 그립다면 한인들이 사는 지역에 가서 제대로된 한식을 배부르게 사먹으면 된다. 게다가 호스텔에서 한식을 끼니마다 차려준다면 가격이 몇 배나 뛸텐데 아르헨티나의 훌륭한 소고기를 두고 한식을 꼭 먹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숙소 휴게실 베란다에서 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골목길


내가 있던 2주간, 여행자들은 매일 저녁에 소고기와 와인 한병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사온 고기와 와인들을 맛보고 품평하는 것도 재밌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했다. 가끔 아껴둔 소주를 풀기도 하고, 싸매둔 김치를 꺼내놓기도 한다. 내일 떠나는 여행자가 있다면 아쉬워하고 새로 들어온 여행자를 환영하기도 한다. 가끔 주인장이 합세해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숙소의 시설은 내세울게 전혀 없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나는 이 숙소가 무척 좋았다.


여행하는 동안 묵었던 숙소들 중에서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들끼리 친해질 수 있었던 유일한 숙소였다. 내가 묵었던 이후로 벌써 2년 반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리워진다.


가격보다는 좋은 시설을 원한다면, 여행자끼리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한다면,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원한다면 이 곳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사실 이것들을 모두 충족하려면 남미에서 배낭여행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숙소의 무쇠 플레이트에 소고기를 굽는다.

처음에는 덜 익거나 좀 태우기도 했지만 매일 하다보니 나중엔 꽤나 훌륭하게 구울 수 있었다.



구워진 소고기를 와인과 여행자들끼리 함께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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