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 처음 찾은 곳은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당연히 힌두 문명의 유물과 불교 문명의 유물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은 붉은 색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박물관 내부 유물은 사진을 못찍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내부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내부에서 찍은 사진이라고는 위의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에 찍은 힌두의 신 가루다 조각상 밖에 없다. 반인반조(?)라고 해야하나? 가루다는 힌두 최고신 중의 하나인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인간의 몸을 한 거대한 새라고 하는데 다른 조각상이나 그림들은 위협적이고 무서운데 이 조각은 마치 피카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어린이들도 좋아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본 여러 미술품 가운데 가장 귀엽고 친근한 모습의 조각상이다.






프놈펜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시 외곽에 있는 킬링필드에 방문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거기에 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 초기라 여행에서 마주칠 무거움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TV에서 봐도 가슴 아프고 먹먹해지는 장소에 직접 가서 마주 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여행 한 달째...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이 된다는걸 이제 겨우 알아가던 시점이었다. 짧은 여행이라면 여행지에서 느낀 아픔을 가슴에 담고 돌아가면 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위로 받고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쉬이 잊혀질 수도 있다. 아직 초보였던 여행자는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해나갈 배짱이 없었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대신에 뚝뚝을 잡아 타고 간 곳이 프놈펜 시내에 있는 크메르 루즈가 지배하던 당시에 지식인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곳이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많은 역사가 있었다. 이 곳도 그 역사중에 한 곳이다.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청소되어 관광객에게 보여지는 곳이지만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고 고통이 스며든 곳인지 둘러보고 상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아래 있는 물항아리에 담구며 고문했던 기둥]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 청소년이나 갓 성인이 된 사람부터 노인까지 너무 많다]




한 사람 눕기도 힘든 넓이에 가두고 고문했던 장소들이 있다. 마치 지금의 화장실 칸처럼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과 절망감을 나는 단 1%도 느끼지 못할텐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에도 배고픔을 느끼고 끼니를 찾는다. 이런 해산물이 잔뜩 든 쌀국수를 너무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데 감탄하면서.


2박 3일의 짧은 프놈펜 방문에 스치듯 보고 지나칠뿐이라 내가 느낀 짧은 첫인상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사람들이 아픔을 극복하고 더 많은 웃음을 띈채 살아가길 바란다.

이틀간 짧은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여행을 마치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향한다. 대개 시엠립에서 앙코르 유적지를 구경하고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 똔레삽 호수 여행을 많이 하지만 현지 사람들의 고된 삶을 구경하고 다닌다는게 마음이 적지않게 무거웠기 때문에 바로 프놈펜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여행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어차피 여행자들이 다녀감으로써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이들의 삶을 동정이나 연민으로 바라보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존중할 수 있다면 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광객용 투어 버스를 타고 스치듯이 이들의 삶을 구경하고, 이들의 음식을 비위생적이라 거부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이유가 이들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 비하하는 여행자들은 없어지길 바란다.


사실 프놈펜은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들른 곳으로 무엇을 봐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프놈펜은 미국의 군사개입이 시작되고, 크메르 루즈의 공산화와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시아의 진주', '동양의 파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1975년 크메르 루즈군이 프놈펜을 함락하던 시점에 200만명이 넘었던 인구가 1979년 친 베트남파 온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함락될 때는 5000여명이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시엠립에서 프놈펜은 버스로 수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구글맵에서 두 도시의 거리는 396km라고 나오지만 고물버스와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아침 일찍 탄 버스는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프놈펜에 도착했다.


버스는 시엠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약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사진으로 보여준 버스와 내가 탄 버스는 완전히 상태가 다른 버스였다.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들 중에서도 가격이 싸고 낡은 버스였는데 각종 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쿠터까지 버스 위에 싣고 다녔다.


[겉모습은 무난해 보이는 버스들]




버스 내부 상태는 좀 심각하다. 찬바람이 나와야 할 송풍구는 구멍만 뚫려 예전에는 에어컨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정도이고, 버스의 문이라는 문은 제대로 구실하는 것이 없어서 비포장 도로의 먼지가 버스 내부에 그대로 들어온다. 어느 정도냐면 버스 내부가 온통 뿌옇게 되어서 몇 자리 앞 사람의 뒤통수도 잘 안보인다.


몇 시간 지나고 휴게소에 잠깐 쉬면서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게 되는데, 같은 버스를 탓던 서양 커플이 완전히 지친 얼굴로 '넌 이 버스 얼마주고 탓니?' 하고 묻는다. 내가 대답하자마자 지친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데 이건 '다행이야. 우리보다 더 바가지를 쓴 녀석이 있어서...'라는 표정이다.


버스 요금이라고 해봐야 우리 나라 물가로 큰 돈이 아니다. 기분 나쁜건 바가지 쓴 몇 푼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좋은 버스라고 몇 번이나 대답하던 게스트하우스의 그 녀석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여행자를 속이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여행자는 대부분 당할 수 밖에 없다. 안 속겠다고 다짐하고 몇 번을 확인하더라도 확률은 조금 줄어들지언정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은 일년간의 여행기간동안 잊을만하면 되풀이 되었다. 이런 일로 여행자들이 여행지의 매력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큰 돈이나 안전을 위협할만한 일이나 여행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또 당했네. 젠장.' 정도로 넘기는게 속 편하다.


스위스에서 만 오천원의 돈으로 빅맥 세트를 먹을 때는 아깝다는 생각도 못하는데 동남아에서 그 돈으로 하루 숙박비와 세끼를 다 먹고 1,2천원 바가지 쓴다고 크게 손해보는건 아니지 않을까?


캄보디아의 색은 누런 황토색이다. 그때가 건기여서 더 그랬겠지만 메마른 논밭과 뿌연 먼지, 포장이 안된 도로, 강물까지... 열대의 녹색이 아니라 메마른 누런색이었다.





프놈펜의 숙소는 현지인들이 사는 지역안에 있었다. 근처에는 시장도 있어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높은데다 흰색으로 칠해진 숙소의 천장은 프랑스 지배의 영향이겠지만 마치 수십년 전 크메르 루즈의 고문실 같은 음울한 분위기라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가로등도 없고 집안의 불빛도 희미해서 거리가 온통 어둡고 적막했다. 프놈펜의 첫인상은 어두움이었고, 단지 저렴한 식사와 맥주 한잔이 위안거리였다.

이튿날 다시 뚝뚝을 타고 앙코르 톰으로 향했다. 앙코르 톰은 당시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던 거대한 도시이므로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지도를 보고 미리 가고 싶은 곳을 알아두었다가 뚝뚝 기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기사가 이끄는대로 따라 가야 한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 가이드 책자나 인터넷을 통해서 짧게나마 미리 공부해 둔다면 훨씬 흥미로운 투어가 될 수 있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 산크리스트어로 '앙코르'는 도시, '톰'은 크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도시는 단지 규모만 큰게 아니라 복원된 건물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다. 멀리서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고 가까이서는 정교한 부조와 건축미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나 방대한 규모에 둘러 볼 곳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모든 곳을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복장으로 꾸준히 수분도 섭취하고 쉬어가며 봐야할 곳이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 뚝뚝을 타고 앙코르 톰에 도착하자 멀리 밀림사이로 유적이 보인다. 이른 아침임에도 찌는듯한 더위는 숙소의 에어콘이 나오는 온도에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카메라 렌즈에 뿌연 습기를 만들어 버렸다. 뿌옇게 찍힌 사진이 오히려 고대 유적의 신비로움과 당시 내 기분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복구가 진행중인 유적들]


드넓은 앙코르 톰의 유적들은 복구 중이거나 복구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캄보디아의 경제 상황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 유네스코나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복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복구에 많은 원조를 하면서 입장료라던지 유적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척 섬세하고 아름다운 크메르인의 부조 솜씨를 보여주는 기둥]


[앙코르 톰 5개의 문 중에 한 곳]


[앙코르 톰의 유적중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바욘 사원]




[부서지거나 마모되어 희미해진 부조조차 놀랍도록 세밀하고 아름답다]



[바욘 사원의 인면상]


바욘사원은 사원 내부에 있는 수십, 수백개의 탑 사방에 새겨인 인면상이 특히 유명하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당시 사원 건축을 지시했던 크메르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원의 큰 규모도 놀랍지만 수많은 인면상의 숲과 빈틈없이 새겨진 부조의 아름다움이 놀랍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띈 얼굴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바욘 사원의 뒤편에서 본 모습, 마치 돌산을 보는듯]






[앙코르 톰에서 또 다른 유명한 유적인 코끼리 테라스]



[앙코르 톰의 다섯 문 중에서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했던...]


앙코르 톰으로 통하는 큰 문은 총 5개라고 하는데 그 문들은 모두 앙코르 톰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해자를 건너게 되어 있고, 이 다리들은 나가와 나가를 잡고 돌리는 아수라 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금은 부서지고 낡은 이 다리와 문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었을지 상상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요니와 링가, 남과여, 음과양을 나타내는 힌두 문명의 상징물]


앙코르 톰을 보면서 힌두 문명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한게 아쉬웠다. 깊지는 않았더라도 얕은 지식이나마 있었더라면 훨씬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여행은 항상 배움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에 불교 문명보다 힌두 문명이 훨씬 이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고 힌두 문명이 불교 문명으로 대체되면서 혼합하고 발전했다는걸 처음 알았다.




[자연에 의해 파괴되는 유적을 보존하려고 나무를 괴사시킨듯 하다]





처음에는 지붕에 겨우 뿌리내렸을 약한 나무가 열대 자연의 도움으로 거대하게 자라서 결국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마치 공룡이나 괴물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앙코르 톰의 유적들은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는데 특히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 레이더'의 장소로 유명하다. 그 영화의 배경이었던 '따 프롬'은 석양으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라 해질녘에는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보기 위해 유적에 올라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나는 아직 다 보지못한 남은 유적을 보기 위해 석양을 포기했다. 그게 잘한 것이었는지는 어차피 알 수가 없다. 여행도, 인생도 어느 정도는 복불복일 수 밖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를 방문하면 관광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원 달러 보이'들이 이 곳에도 많았다. '원 달러'를 외치며 좀 허술한 수공예품이나 악세서리를 파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애처롭다고, 본인에게는 큰 돈이 아니라고 댓가없는 돈을 쥐어주는 것은 결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아이들은 나중에 물건을 주고 댓가를 받는게 아니라 구걸하는데 익숙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여행객, 관광객들은 많은 지역의 사람들을 안좋은 방법으로 물들여 버렸다. 이 아이들을 돕고 싶다면 아이들이 파는 물건을 사는게 좋다. 마음이 조금 아프다면 약간의 바가지는 기꺼이 써주면 된다.



석양은 사람의 마음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대도시의 석양도 그랬지만 밀림의 석양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천년전 화려하게 꽃피운 문명과 어두웠던 근대사를 넘어 현재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비되어 여기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뚝뚝 운전사'와 여행자에게 콜라를 팔면서도 자기의 미래를 우리나라의 청소년들보다 더 똑부러지게 설명하는 '데이빗'에게서 다른 모습의 캄보디아를 기대하게 되었다.

내가 앙코르 와트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꼬마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책에서 였다. 세계 몇 대 불가사의 어쩌고 하는 것들이 호사가들이 가져다 붙인 것들이라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밀림에 수백년 동안 감춰진 거대한 도시와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깊게 각인되었고 결국 그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앙코르 와트는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신비로운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도시도 아니고, 몇 백년간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다 갑자기 발견된 것도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와 사원은 오랜 시간 버려진채 새로 그곳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옛 사람들이 살던 폐허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 서양에서 온 종교인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시엠립에서 미리 예약해둔 오토바이 삼륜차(태국의 '뚝뚝')를 타고 앙코르 와트로 향했다. 드디어 그 '앙코르 와트'에 간다는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감을 느낀 상태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뚝뚝 앞으로 캄보디아 처녀의 자전거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바람에 뚝뚝과 뚝뚝 밖으로 약간 나와 있던 내 어깨에 동시에 부딫힌 것이다. 어깨의 묵직한 통증을 참고 내려보니 자전거는 엉망으로 쓰러지고 처녀는 도로 가운데 쓰러져 엎드려 있었다. 


뚝뚝 운전사는 처녀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옆에 서있기만 하고 나도 경황이 없던 와중에 지나가던 서양 배낭여행자 아가씨가 처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처녀의 상태를 살펴보고 운전사에게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지만 운전자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오늘 재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서양 아가씨는 더욱 높아진 음성으로 운전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운전사에게 당신 뚝뚝은 타지 않을테니 빨리 처녀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운전사는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녀를 태우고 떠났다.


여행중에 사고를 당할 수도,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떠나기 전에 이미 각오했던 바이고, 여행중이 아니라 한국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처녀의 상태를 살피고 병원으로 옮기라고 화를 내던 서양 아가씨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은 여행자일뿐이며 주위에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음에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즉시 행동하는 그 자세가 충격이었다. 나였다면 '어떡할까? 주위에 이 나라 사람들이 많으니까 누가 조치를 취하겠지? 어라, 아무조치도 안하네. 그럼 내가 해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나서야 움직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의 사고나 어려움을 보면 그 아가씨 덕분에 어느 정도 짧게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이외에도 여행은 계속해서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가르침을 주었다.


[사고로 돌려보낸 그 뚝뚝... 자동차, 뚝뚝, 자전거, 오토바이 등등... 혼잡하니 언제나 사고 조심]


통증이 심하던 어깨를 돌려보니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다. 뼈나 인대에 큰 손상은 없는 것이려니 싶어 안심이 되고 다시 앙코르 와트에 갈 생각에 다른 뚝뚝을 잡아 탓다.


앙코르 와트에 가는 길에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재탕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웹캠으로 사진을 찍고 표에 사진을 프린트해서 내어준다. 표는 1일권, 2일권, 3일권 등 여러 가지인데 앙코르 와트만 본다면 1일권, 앙코르 와트와 톰을 본다면 적어도 2일권 이상은 끊어야 된다. 나는 첫날은 앙코르 와트, 둘째날은 앙코르 톰을 다녔는데 유명한 사원이나 유적만 봐도 하루로는 그 넓은 앙코르 톰의 유적을 느긋하게 보는데 어림도 없었다.


[앙코르 와트를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앙코르 와트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덕분에 밀림의 수목으로부터 사원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앙코르 톰의 유적이나 사원들 중에는 지붕이나 담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거대하게 자라서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있는 곳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바깥문을 지키는 거대한 나가]


힌두교에는 수많은 신들과 그들이 모습을 바꾼 다른 신, 동물 모양의 신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러 개의 뱀 머리가 달린 '나가'도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 상의 후광이 원래는 나가였다고 하는데 힌두 문화권에서 점차 불교 문화로 바뀐 동남아의 오래전 불상에서는 부처님 뒤에서 머리를 펼치고 있는 나가를 볼 수 있다.



[드디어 멀리 보이는 앙코르 와트]


긴 해자를 건너고 외성(?)을 들어간 뒤에도 앙코르 와트는 멀기만 하다. 이 거대한 사원은 더욱 거대한 도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덥고 습한 캄보디아에서 앙코르 와트를 방문할 때는 물, 모자, 썬글라스, 간편한 복장과 신발은 필수다.


[앙코르 와트 벽면의 아름다운 부조]


[앙코르 와트의 부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힌두의 창세신화 '우유바다 휘젓기']


[신들이 거대한 뱀의 몸통을 잡고 우유 바다를 휘젓고 있다]


[선한 신들의 대장]


[심판을 보고 있는...]


[악한 신들의 대장]


[앙코르 와트 부조의 아름다움]


[힌두문명에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를 추천한다]


캄보디아는 옛날 프랑스 지배의 영향인지 프랑스어 관광객이 매우 많고 안내판, 게시판 등도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우선이다. 프랑스어로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들이 상당수였다.



아직 복구를 진행중인 곳도 있고,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크메르인들이 이뤄놓은 힌두문명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힌두교나 그 문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상세히 알지 못한게 아쉬웠다. 오디오 가이드가 없으니 가능하면 한국어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반드시 정식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 투어를 받는게 좋다.



앙코르 와트를 떠나며 이들이 천년도 훨씬 넘는 시간 전에 이룩한 문명이 놀랍기도 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백년 남짓한 삶이 얼마나 한순간인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다른 나라보다 조금 강한 힘으로 앞선 기술로 주변 나라들을 핍박하는 것이, 조금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 얼마나 하찮은 삶인지도 깨닫게 된다. 절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하는 여행지였다.

방콕에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시엠립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돈을 아껴야하는 배낭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방콕에서 카지노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태국 국경까지 간 후, 태국 출국 검문소와 캄보디아 입국 검문소를 통화한 다음에 캄보디아 택시를 이용해서 시엠립까지 가는 것이다.


태국 국경에 있는 카지노에 가는 현지인들 틈에 섞여서 가는 것인데 아무리 배낭여행자들이 흔히들 이용하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누가봐도 카지노에 가는게 아니라 처음에는 좀 멋적고 쑥스러웠는데 어차피 200밧 정도의 차비를 주고 가는거라 떳떳하게 가도 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입국할 때는 비자를 받아야하는데 비자 받는걸 편하 해주겠다는 삐끼들이 웃돈을 요구하며 달라들지만 대꾸하지 않고 그냥 검문소에서 받으면 된다. 검문소를 통과해서 걸어나오면 자동차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시엠립 가자고 하면 가격을 불러대기 시작한다. 인터넷이나 여행책자에서 본 가격과 터무니 없다면 흥정을, 비슷하거나 조금 비싸다면 그냥 타면 된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동남아는 물가 변동이 심해서 본인이 찾은 정보가 며칠된 따끈한 정보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차이는 인정해야 여행자 스스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구한 몇 년된 영문판 론리 플래닛을 가지고 다녔는데 최소한 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택시안, 생각보다 택시가 멀쩡해서 다행]


태국에서도 방콕을 조금만 벗어나면 초라한 집들에 땟물과 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들을 보고 방콕의 휘황한 마천루와 비교되어 메우기 힘든 빈부의 격차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데 캄보디아로 넘어오니 흡사 태국은 선진국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아픈 역사와 중첩되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도롯가 캄보디아의 들판과 마을]


시엠립은 캄보디아에서도 큰 도시는 아니지만 앙코르 와트 때문에 유지되는 도시이다. 크고 작은 호텔들과 배낭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넘쳐난다. 대부분 아랫층에 식당을 겸하고 있고, 속도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컴퓨터와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숙도들이 많이 있다.


[내가 묵은 숙소의 1층 식당, 대부분의 여행자 숙소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다]


동남아는 불편한 교통과 무더위와 벌레들로 힘들긴하지만 의외로 여행하기 편한 점도 몇 가지 있다. 저렴한 숙소와 음식은 앞에서 말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게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직접 혹은 숙소 근처에 빨래를 해주는 곳들이 많이 있다. 더운 동남아에서 며칠만 빨래를 하지 않으면 옷이 곧 짐이 되는 배낭 여행자에게 이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점이다. 아침에 빨래를 봉지에 잔뜩 담아서 가져다주면 저녁에는 잘 개어진 따끈하게 마른 옷뭉치를 돌려받을 수 있다.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는 것은 덤이다.


시엠립의 숙소에서는 웃돈을 붙여서 앙코르 와트를 보는 동안에 타고 다닐 뚝뚝을 소개해준다. 시엠립과 앙코르 와트는 꽤나 거리가 있고 앙코르 와트만 본다면 모르겠지만 앙코르 톰은 당시 지구상 최대의 도시라 불릴만큼 거대한 도시이기 때문에 걸어다니면서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팔팔한 이십대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빌려서 다니기도 하지만 삼십대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자는 의욕만 있을뿐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 숙소에서 뚝뚝을 예약하고 동네 마실겸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고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캄보디아 맥주 몇 캔과 달콤한 열대 과일로 내 배낭여행에서 첫번째 국경을 넘은 오늘을 자축했다.(육로로 걸어서 국경을 넘은 것도 처음)


[처음 걸어서 국경을 넘은 기념으로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시킨 캄보디아 음식]


[왼쪽 세개는 캄보디아 맥주, 무난하게 마실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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