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근교에 있는 참파 유적을 다녀오려면 현지 여행사를 통한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투어는 참파 유적과 기념품을 파는 한두개의 마을에 잠시 들리는 것으로 끝나는데 참파 유적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투어는 반나절 조금 더 지나 끝난다.(실제 참파 유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발굴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큰 규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 내려서 참파 유적으로 들어가는 다리


참 심플한 참파 유적 지도. 길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일거다.



참파 유적은 호이안 일대에 자리잡은 말레이 인(참파족)의 힌두문명 유적이다. 앙코르 와트와 규모나 세밀한 아름다움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같은 힌두문명 유적이라 그런지 벽면의 부조나 유적의 형태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다만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인지, 발굴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는지 상당부분이 발굴되지 못한 상태이며 발굴된 부분도 약간은 방치된 상태라 안타깝다.


현지 가이드는 생각보다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했으며 유적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서양 여행자들이 꽤 많았는데 관심없이 인증샷에 열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발굴되기 전에는 수백년 동안 무너진 유적의 잔해 위로 흙이 덮이고 열대의 무성한 식물들이 자라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유적들이 작은 동산처럼 남아있다.



곳곳에 발굴중인 유적들이 보이지만 그 속도가 매우 더딘 것 같다.


참파 유적을 둘러 본 뒤에는 배를 타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른다. 패키지 여행이나 투어가 싫은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고 당시에는 기분이 안좋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먼저, 이 투어에서는 물건 구매를 종용하거나 거짓말로 과대포장하지 않았다. 국내 저가 동남아 패키지 여행의 대부분이 보신식품, 보석류, 특산품을 팔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거짓말로 효용이나 가치를 과대포장한다. 여기서는 그냥 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데려다 놓고는 구경하고 돌아오라고만 한다.


그리고, 정 맘에 드는게 있다면 적당한(혹은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사면 현지인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 여행자는 자국에서 파는 비슷한 물건보다 싸게 살 수 있으니까 서로 좋은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기념품에 관심없는 여행자도 잠깐 시간을 내서 이들의 솜씨를 구경할 수 있다.


동남아의 강은 강폭이 매우 넓다. 우기에 내리는 비를 다 받아들이려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배는 나무로 만들었고, 엔진은 힘이 없어 털털 거린다. 속도는 느리지만 동남아의 강을 구경하기에는 쾌속선보다 운치있다. 게다가 놀랍게도 구명조끼도 잘 비치되어 있다.



배에서 내려 구경하고 오란다. 뭘 구경하고 오라는지도 모른채 그냥 내렸다.(이야기해줬는데 못들었는지도) 마을은 아주 조용하고 인기척도 거의 없어 이상했는데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고서야 뭘 보라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목공예품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팔거나 도시에 납품하나보다. 불상이나 향로처럼 거대한 것부터 목기나 아이들 장난감 같은 조그만 것까지 매우 다양했고 솜씨도 훌륭했다.나야 사봐야 짐이니 구경만 할 뿐이다.


구경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TV에서 흔히 보던 동남아 물소가 매어져있었다. 한우처럼 순하게만 생기진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소들은 농사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매우 근육질이다. 동남아의 소고기가 질긴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동남아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훨씬 낫다.


호이안으로 돌아와서 어제 다 못한 고택 둘러보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식 다리에 다시 가서 밤에 흐릿하게 본 개와 원숭이 상을 다시 봤다.다리 구조도 그렇고 다리 양쪽을 지키는 동물의 석상을 놔둔 것도 특이하다.






원래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쭉 올라가면서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 들르고 베트남 북부를 통해 라오스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베트남에서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한 기간이 보름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입국은 해버렸으니 빨리 계획을 변경해야지 자책해봐야 필요없는 일이다. 


수십년을 살아온 생활 터전에서도 살다보면 계획에 어긋나는 일, 어쩔 수 없는 일들 투성인데 생전 처음와보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날마다 일어나지 않는게 다행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조사해도 현지 사정은 여행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냥 거기에 맞춰 계획을 바꾸는게 상책이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다보니 점점 이런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계획을 바꿔서 훼에서 베트남 국경을 넘어 사반나켓이라는 라오스의 작은 도시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버스도 있고, 인터넷엔 먼저 넘은 선배 여행자의 여행기도 올라와 있었다. 내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 먼저 했던 사람이 어떻게 했었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안심이 되었다. 새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변변한 여행책자도 없이 몸으로 부딪혔을 오래 전 여행자들이 존경스럽다.


내일은 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훼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도 다행스럽다.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했다. 여행이 점점 더 좋아졌다.

최근 대한항공 CF에 나오는 강가의 아름다운 도시 호이안은 처음 말레이인 참파족의 진출로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참파인은 훼, 호이안, 나짱 등에 도시를 세웠다.(호이안 근교에는 참파인이 건설한 힌두 문명의 도시 유적이 남아있다.) 당시에도 동남아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었다는데 16,7세기에는 중국 화교, 일본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인까지 무역을 하면서 매우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한 번영은 없듯이 근처의 다낭이 무역항으로 번성하면서 쇠퇴하여 결국 조그만 어촌 마을로 남게 되었는데 덕분에 베트남 전쟁의 포화에서 벗어나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고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위키백과 참고)


나짱에서 탄 야간 침대버스는 마찬가지로 12시간을 달려 새벽에 여행자들을 호이안 외곽 도로에 내려주었다. 앞서 가는 여행자들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갖가지 호텔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나타난다. 여기에 적당한 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호이안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이런 호텔들 수십개가 밀집되어 있는데 잘 고른다면 저렴한 호텔을 고를 수 있다.


호이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파인애플을 깎아서 파는 아가씨. 큰 칼로 돌려가며 깎는 솜씨가 예술이다.


관광지답게 길가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무척 많았다. 위의 사진과 같은 색색의 등을 파는 가게들이 특히나 많았는데 처음 낮에 봤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밤이 되고서야 이 전등을 파는 가게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호이안의 구시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시내로 통하는 골목길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장해야 한다.



구시내의 중심가로 나가면 바다와 연결된 조그만 강이 나오고 노란 벽면을 한 고택들이 줄지어 있다. 강변에 위치한 이 고택들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술집인데 여기에는 호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 음식을 파는 곳들이 많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은 꺼리는 편이지만 이 구시가 주변은 대부분이 그런 곳이라 선택의 여기가 없다. 다만 이럴땐 인터넷이나 책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호이안 지역 맥주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이안 전통 음식 몇 가지를 시켜 놓고 LARUE라는 맥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화이트로즈라는 별칭을 가진 만두류의 전통 음식


일본 소바에서 현지화된 호이안 전통 요리 까오라우


여기 최고 음식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다. 바삭한 튀김에 새콤달콤한 소스와 아삭한 야채와 새우가 올라가 있어 식감도 좋고 맛도 좋았다.








배를 채우고 호이안 전통 가옥 투어에 나선다. 매표소에서 받은 호이안 구시가지 지도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전통 가옥들이 표시되어 있어 찾기 쉽다. 한가하게 걸으며 운치있는 고택들을 둘러보며 다니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중국 화교들이 살았던 저택이다. 관운장의 사당이 있고, 향과 향냄새가 자욱하다. 중국 고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저택의 모습 그대로다.


호이안의 아름다움은 밤에 더욱 빛을 발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호이안은 길마다, 집마다 밝혀진 등불로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대도시처럼 사방이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휘황하다면 등불이 이처럼 예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새카맣게 어둡기 때문에 이 등들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고, 등불의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등을 파는 상점들이 수많은 등불을 켜놓고 유혹한다. 기념품에 전혀 관심 없는 나마저도 다음 여정이 길게 남아 있지 않았다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의 불빛과 강물에 투영된 빛이 아름답다. 홍콩이나 서울같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마음 한컨에서는 베트남 전통극인지 춤과 노래가 섞인 공연을 하고 있다. 소박한 무대에 아마추어의 공연이지만...


옛날 일본 상인들의 거주지역과 연결했다는 다리. 일본풍으로 지어졌으며 특이하게도 사진 반대편 난간쪽은 막혀서 사당처럼 사용되고 양쪽으로는 다리를 지키는 원숭이와 개의 석상이 있다.






호이안을 방문하려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짱에서 훼까지 가기 위해서 중간 어디쯤 쉴만한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여행에서 이런 계획하지 않았던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었을 때, 여행자는 그 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평생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호찌민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제 막 해가 뜬 이른 아침, 해변가 도로에 잠시 정차해서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다시 출발해버렸다. 밤새 다리도 펴지 못하고 좁은 침대에서 불편하게 뒤척이던 나는 잠도 채 깨지 못한채 배낭과 함께 해변가에 버려졌다.


잠시 해변가 벤치에 앉아서 잘 굽혀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다리와 허리를 두드리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 여행의 첫번째 도착한 바다에 아침해가 눈부시게 빛난다. 여행을 하면서 산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내서인지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 곱지는 않았지만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고 해변가로는 야자수가 쭉 자라고 있다. 현지인들이 해변가를 따라 조깅이나 산책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호찌민과는 완전히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여유로움을 느끼기에는 아직 숙소도 정하지 못했고, 밤새 비워진 뱃속에는 뭔가를 채워야 했다. 나짱의 숙소는 생각보다  비쌌다.(상대적인 것이라 생각보다 비쌌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비싼 가격은 아니다.) 대충 적당한 가격의 호스텔에 짐을 풀고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 적당히 허기를 채운 후, 해변으로 나갔다.



하늘은 맑고 해변은 한가하고 야자수가 모래사장에 드리운 그늘 밑은 시원해서 좋았으나 파도가 꽤 심하고 수심이 깊었다. 수영하기에는 적당한 해변은 아니었다.


나짱이 베트남에서 유명한 해변도시이고 휴양지이긴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가로웠을 이 도시에도 서구의 거대 자본이 밀려오나보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호텔 체인들이 북쪽 해변에 거대한 성들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절약이 미덕인 배낭여행자여서 그런지 이런 획일화된 호텔과 리조트들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지어진 것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지어야한다면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현재의 모습을 망가뜨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텐데...




나짱의 해변에 누워있으면 예의 그 베트남식 삿갓을 쓴 여인네들이 양쪽에 커다란 바구니가 달린 봉을 어깨에 메고 해산물을 팔러 다닌다. 하루종일 그 긴 해변의 모래사장을 왕복하며... 편안히 누워있는게 미안할 정도로 끊임없이 지나가고 지날때마다 살지를 물어본다.




불편한 잠자리 때문이었을까? 몰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숙소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나니 벌써 저녁시간이 되었다. 고생한 몸도 약간의 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비싸보이지만 그럴듯하게 생긴 레스토랑을 골라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왔구나' 싶었다.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서양 관광객(여행자가 아니라 관광객)이었다. 전형적으로 관광객을 등쳐먹는 그런 식당이었던 것이다.


얼굴에 철판 좀 깔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래도 적당히 든 나이 때문에 차마 체면을 모두 벗어버리지 못하고 적당히 먹자는 생각으로 해물 요리를 시켰더니 나온 것들이 위 사진 두 장이다. 조그만 게 하나와 생선 한 마리, 새우와 가리비, 조개 조금이 전부였다. 잔뜩 화가 났지만 들어온 내가 잘못이지 뭐라 하겠는가. 억울한 마음을 안고 내일은 현지 식당에 가서 해산물 요리를 배부르게 먹으리라 다짐하며 잠들었다.


다음날은 일출을 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나짱이 베트남 동쪽 해변을 접하고 있으니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아침은 수평선에 구름이 껴서 해는 바다에서 솟아오르지 못하고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붉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둘러싼 구름덕분에 오히려 더 분위기 있는 아침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스무살을 갓 넘긴 커플. 스무살에 둘이서 지구 반대편으로 배낭여행을 떠날 용기가 부러웠다. 내가 스무살이었던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게 아쉬웠고, 이들이 앞으로 세상에서 배우고 경험할 것들이 많음이 부러웠다. 


지금은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방학이면 배낭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여행지가 유럽이나 미주로 한정되어 있고 여행 기간도 짧은 것 같다. 유럽에서도 제한된 기간과 금액내에서 더 많은 나라에서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느라 꼭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오히려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식들이 배낭여행을 다닐 때는 더 나은 여행을 하기 위해 많은 충고를 해 줄 것이고, 자식들은 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더 다양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여행자유화(라고 표현하니 참 어색하지만 실제 그렇게 쓰였다)가 된 것은 88년 올림픽을 막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그 전에는 공무나 사업적인 출장이 아니고는 여행으로 해외에 나가기가 참 어려웠다. 외무부 등의 정부기관에서 만들어야 하는 서류만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여권만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국가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가 자유롭게 여행하고 여행문화를 만들어 온지 아직 2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오후내내 해변에서 뒹굴거리고 낮잠도 자고 거센 파도에 몸을 부딪히기도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어제 마음 먹었던 현지인들이 가는 해산물 식당으로 향했다. 락칸이라는 이 식당은 주로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이긴 하지만 베트남을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나짱에 왔다면 가봐야하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조그만 숯불 화로에 먹고 싶은 재료들을 주문하여 직접 구워 먹는 음식점인데 동남아에는 우리나라처럼 식탁위에 불을 피워서 손님이 직접 구워 먹거나 데워 먹는 음식들이 꽤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이 많을 때는 일단 종류별로 시켜놓고 먹어본다. 그리고 특히나 맛있었던 것을 더 주문하면 된다. 소고기, 장어, 새우 등을 시켜서 맥주와 배부르게 먹으면 배낭여행자에게는 약간 부담있는 가격일 수 있는데 이 재료들을 우리나라에서 먹었을 때 나올 가격을 생각하면 싸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남아에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맥주들이 있다. 태국의 타이거, 창, 싱하 등의 맥주는 잘 알려져 있는데 베트남에도 사이공이나 333 등의 맥주가 있고, 도시마다 그 지역의 맥주가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별로 다른 소주가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맥주는 대부분 라거맥주들인데 그 품질이 나쁘지 않다. 맥주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가는 나라마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현지에 있는 맥주들을 마셔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잘 먹고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식당 주변을 거닐며 구경하다보니 꽤 큰 시장이 나왔는데 저녁무렵이라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닫기 위해 정리하고 있다. 여행 중에 시장 구경은 아주 큰 재미거리인데 무척이나 아쉬웠다.



어두워지는 나짱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던 사이에 밤이 깊어졌다.


다음날은 2박 3일간 나짱 여행을 마치고 호이안으로 가는 침대버스를 타는 날인데 마침 그 동안 쌓인 여행의 피로가 몰려드는지 으슬으슬 한기가 도는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낮동안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다가 저녁무렵에 버스를 타려고 나섰는데도 영 나아지지가 않았다. 이럴 때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법이라 근처 쌀국수집을 찾았다.


버스 시간도 다가오고 인터넷을 뒤져 맛집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근처에 보이는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에 무턱대고 들어가서 국수를 시켰다. 우리가 흔히 먹는 얇은 쌀국수가 아니라 칼국수처럼 넓적한 국수에 덜익은 고기와 파가 잔뜩 올려져 있는 국수가 나왔다. 육수가 뜨겁기 때문에 고기는 휘휘 저으면 적당히 다 익는데 이 국수 맛이 일품이었다. 진한 육수까지 모두 들이켜고 나니 몸이 따뜻해지는게 한결 기분이 나아졌고, 무리없이 야간 버스를 타고 호이안으로 갈 수 있었다. 생김새는 그다지 볼 품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보양식이었다.


베트남은 커피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비록 품질로는 크게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는 듯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2012년 베트남이 브라질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이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동네마다 조그만 가게에서 커피를 팔고 있으며 예의 그 낮은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호찌민에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커피 프렌차이즈도 있으며 원두를 로스팅해서 파는 전문점들도 많았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보통 커피에 연유를 타거나 설탕을 무지 넣어서 아주 달게 마신다. 처음에는 너무 달아서 적응이 안됐지만 자주 마시다보니 중독되었는지 인도차이나를 떠나고 난 후에는 이 달디단 커피가 자주 생각났다.




커피 전문점 앞 조그만 자리에서 시원하고 달달한 커피를 시켜놓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퍼부었다. 가게 앞 자리까지 물이 튀는 상황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주인은 친절하게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열대지방의 스콜이라는게 다 그렇지만 퍼붓는 비를 바라보는게 조금 지루해질 때쯤 잠시 한눈을 팔고나면 어느 새 그쳐있다.

[호찌민 시의 노트르담 성당]


[호찌민 중앙우체국]



[호찌민 중앙우체국 내부 모습]



호찌민의 노트르담 성당과 중앙우체국 건물이다.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서양식이지만 큰 감흥은 없다. 제대로된 감흥은 음식에서...


[우리나라 쌀국수 식당에도 메뉴가 있지만 쫄깃한 면발과 얇지만 바삭바삭한 롤 그리고 롤 안을 채우고 있는 해산물까지... 같은 음식이지만 맛과 식감이 전혀 다르다.]


[태국의 똠양과 같은 듯 같지 않은... 해산물과 조개, 버섯, 그리고 토마토까지 들어가 있는데 시큼하면서 또 해산물의 시원한 맛도 느껴진다. 특별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았던...]


[새우 스프링롤...겉은 바삭하면서도 롤에 말린 새우는 적당히 익어서 퍽퍽하지 않고 탱탱하다.]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베트남 방문에서 찾았다는 베트남 국수집 'pho2000'을 찾았다.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식당이지만 내가 갔을 때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먹은 쌀국수와 롤만큼은 내가 먹어 본 그 어디보다도 뛰어났다.



호찌민에서 3박 4일간 여정을 끝내고 그 날 밤에 나짱(나트랑)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방콕의 까오산 거리가 배낭여행자 거리로 유명하듯, 호찌민에서는 데탐거리가 배낭여행자 거리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있는 신투어리스트에서 예매할 수 있다. 베트남 일정을 미리 세워두고 한번에 예매도 가능하다.


여행 중 처음 야간 버스를 타는데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침대 버스라 약간의 흥분과 호기심을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3열로 2층 침대들이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는데 썩 깨끗하진 않지만 민감하지 않은 여행자라면 그다지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베트남 사람들 체형에 맞춰진 침대의 크기인데 사진에는 길게 보이지만 절대로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길이다. 좌우 폭도 무척 좁아서 남자들은 어깨나 팔이 침대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별 문제 없었지만 12시간 동안 다리를 뻗지도 못하고 한쪽 어깨와 팔은 밖으로 삐져나온채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12시간 정도라면 차라리 우리나라의 우등 고속버스가 훨씬 편하다. 이후로 여러 나라에서 여러 차례 장거리 버스를 탓었지만 터키의 벤츠 버스와 더불어 베트남의 침대 버스는 상당히 불편한 편이었다. 특히  키와 덩치가 조금이라도 한국 평균 이상인 남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저녁에 출발한 차는 한참을 달려 한 밤중이 다 된 시간에 도로가 휴게실에 세운다. 여기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대충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밤새 달려 나짱에 도착한다. 자느라 보진 못했지만 운전석 옆에 두 사람이 더 타고 있는데 이들끼리 교대해가며 밤새 운전하는 것 같았다.


구글맵에서 보니 호찌민에서 나짱까지는 445km에 승용차로 8시간이 조금 안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베트남은 도로 사정도 안좋은데다 한밤중에 큰 버스로는 속력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의 12시간을 달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짱에서 내릴 수 있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2박 3일동안 그 침대 버스를 타고 가는 현지인들도 있다니 내키는 곳에서 내릴 수 있는 여행자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현지인들의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을 고르라면 단연 시장일 것이다. 시장에서는 현지인들의 삶의 짧은 단면과 함께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로부터 그 곳의 문화, 기후, 생활 방식을 옅볼 수 있다.





호찌민의 초벤탄(벤탄 시장)에서는 베트남의 풍부한 해산물과 과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무척이나 싸다. 동남아에서는 저렴한 물가와 더위로 부엌이 딸린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었는데 만약 부엌이 있었다면 매일 해산물 파티를 벌이지 않았을까. 같은 종이라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조금씩 다른 모양과 크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초벤탄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실용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위 사진은 화려하게 칠해진 목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유명한 과일의 제왕 두리안을 깎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기막혔다. 그 두껍고 단단한 두리안 껍질을 빠르고 높은 베트남어로 대화하면서 능숙하게 깎는다. 동남아는 망고, 망고스틴, 파인애플, 두리안 등등 열대과일이 무척이나 싸고 풍부하다. 그 열대과일의 단맛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우리나라도 7,80년대에는 대부분 이랬었다. 전봇대에 수없이 얽힌 전깃줄이 이들의 경제발전에 대한 갈망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혼란을 보여주는 듯하다. 너무 빨리 가기 보다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며 가는게 중요하다는 걸 지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베트남은 우리가 인식하는 동남아 사람들(조금은 낙천적인 면)에 비해 무척이나 빠릿하고 셈이 빠르다. 호찌민에서는  관광객에게 물건 값을 속이거나 일부러 거스름돈을 잘못 돌려주는 일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이들이 밉지 않은 것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이들에게서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행 당시 호찌민의 젋은이들에게 '핫'한 레스토랑이라는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에 갔다. 깨끗한 식당내부와 식기류에 좋은 모양의 음식들이 나왔지만 적어도 내 입맛에는 맛까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뜨는 음식점이 맛까지 좋은 경우가 별로 없듯 베트남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이 날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은 위 사진의 맞은 편 길거리에서 팔 던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 미(Bahn mi)였다. 반 미는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베트남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기는 샌드위치인데 가격이 싸지만 내용물이 무척 다양하고 크기도 무척이나 크다. 아침에 조그만 수레에 많은 아주머니들이 거리에서 반 미를 파는데 아침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이 날은 저녁이 다 된 시간에 반 미를 팔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숯불에 넙적한 고기완자를 구워서 빵과 채소 사이에 넣어서 팔고 있었다. 지나다 고기 냄새를 못이기고 가격이 싸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먹었는데 이건... 베트남에서 먹었던 최고의 반 미였다. 그 후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드는 반 미를 먹고 싶었지만 보질 못했다.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게 너무 아쉽다. 처음엔 다음날 또 와도 된다고 생각했고, 다음날에는 다른 곳에도 비슷한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다보면 지나고 나면 돌아올 수 없는게 참 많다.




호찌민에서 가장 유명한 초 벤탄(벤탄 시장)의 정문이다.



길거리 낮은 의자와 식탁에서 먹는 조금은 지저분한 그릇의 쌀국수가 때로는 번지르르한 식당의 음식보다 맛있을 때도 있다. 가격 또한 몇 백원 수준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가 싼 베트남이 아니면 이런 호사를 언제 누려 보겠나 싶어 찾아간 레스토랑. 여행 중에 먹었던 가장 고급 요리였던 것 같은데 스위스에서 먹었던 빅맥 세트밖에 안되는 가격이다. 이 날의 음식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주위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한 잔씩 올려 놓고 있는 음료를 보고 '저거 주세요'하고 시켰던 베트남의 디저트 음료였다.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하고 마셔버린게 아쉬운데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그만이었다.


베트남은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먹거리로 하루하루 나를 감동시켰다. 이후 나짱(나트랑)에서도 호이안과 후에에서도 매번 여행자를 감동시키는 그런 음식과 먹거리들이 즐비했던 베트남. 다시 베트남을 간다면 그 여행은 아마도 식도락 여행일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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