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를 마지막으로 1년 동안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으로서는 긴 시간이었지만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짧은 시간이었다. 사실 금전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그대로 지구 한바퀴를 더 돌면서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시드니를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돌아올때는 우리나라 국적기를 탓다. 한국을 떠나던 비행기 이후로 처음이어선지 우리나라 항공사 비행기안에서 들리는 한국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비행기에 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깨밑으로 떨어지는 긴 머리에 오랜시간 햇볕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 낡고 후줄근한 옷차림의 내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 같은 얼굴인데 행색은 한국사람 같지 않은 내 모습을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행자들 중에서는 이런 류의 여행자가 드물데다 대부분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는 사람들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동안 여행했던 곳에서 터미널이나 공항에서 수없이 봐왔던, 초라한 행색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둘러맨 나와 같은 부류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1년만에 돌아온 이곳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벌써 만 4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고 느낀다. 훨씬 건강했고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사고는 자유분방했다. 하다못해 그 뒤로 매년 겨울이면 고생하는 피부 트러블조차도 없었다. 훨씬 더 건조한 곳들을 여행했음에도 말이다. 그 뒤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일상생활으로 돌아와서 그 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더 깔끔한 모습으로 더 좋은 옷을 입고, 통장에는 더 큰 숫자가 찍혀있지만 그때의 나에 비해서 연약하고 생기를 많이 잃었으며 더 이상은 빛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1년간의 여행이 내 일생에 단발적인 생기만을 불어넣은 것은 아니다. 여행의 가기 전의 나와 다녀 온 후의 나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자유로워졌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훨씬 겸손해졌다. 상대방에 비치는 내 모습에 신경쓰는 일도 별로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기 전의 나는 여행을 재충전의 시간,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으로 생각했다면 다녀 온 후의 나는 여행을 내 삶의 목적이자 그 자체로 생각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1년만에 창밖으로 본 여의도는 공사하던 빌딩(SFC)이 완공되어 스카이라인이 바뀌어 있었다. 그 고층건물의 불빛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 아쉬움,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반가움, 직장을 구하고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다시 긴 여행을 가게 될 때는, 그때는 여행이 곧 삶이 되는 그런 여행을 해볼테다. 그때까지 잠시 안녕...' 하는 생각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바램은 희미해지기보다 더 강렬해지고 목표는 더 뚜렷해진다. 찬 바람이 불면 파타고니아에서 오감으로 느꼈던 차고 강렬했던 바람이,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는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한여름의 더운 열기 속에서는 이집트의 숨이 막힐 듯했던 열기가 그리워지며 온 몸이 쩌릿해지며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리고 조금씩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나는 여행에 완전히 중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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