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치앙마이에서 이렇게나 오래 있을 계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쏭끄란 축제를 즐기고 나서 치앙마이가 무척 마음에 들어버렸다.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동네 구경을 다니고 먹고 싶었던 음식도 먹고 하다보니 9박 10일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두 달간 인도차이나 반도 4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 치앙마이다. 생각 같아서는 근처 치앙라이, 빠이, 매홍손 같은 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떠날 시간이 되어버렸다.


오후 늦게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참고로 치앙마이에서 방콕까지는 12시간쯤 걸린다. 도로 사정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거리에 비해서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다양한 가격대의 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정도 되는 좌석 크기에 큼직한 개인별 모니터까지 달린 버스도 있다. 하지만 태국 제 1,2의 도시를 잇는 교통편이므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맘에 드는 버스를 타려면 예약은 필수다. 나는 며칠 전에 예약했음에도 원하는 버스를 탈 수는 없었다.


이른 새벽 방콕 외곽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많은 차와 사람들이 뭄비는 모습에 방콕에 다시 왔다는 실감이 났다. 저녁에는 두달 전에 두번이나 시도했음에도 줄이 길어서 실패했던, 요즘 방콕에서 떴다는 치킨과 쏨땀을 파는 맛집을 가보기로 했다. 해가 질때쯤 숙소에서 나와 기분 좋게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실망스러울수가... 치킨은 짜기만하고 먹을게 별로 없었고, 쏨땀은 특유의 향이나 맛이 없이 밋밋하기만 했다. 여기가 방콕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최신 맛집이라니... 우리나라도 세대에 따라 입맛이 바뀌는 것처럼 여기도 퓨전이 대세인가? 비싼 가격과 예상치 못한 맛에 실망 잔뜩하고 나왔다. 동남아 음식 특유의 향이나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살짝 쏨땀을 맛보려고 가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을 것 같다.


이튿날은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까오산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나던 국수도 먹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마사지 가게에 가서 마사지도 받았다.





이렇게 두 달간의 동남아 여행을 마쳤다. 내일은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난생 처음 중동국가라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끼며 잠들었다.

처음 치앙마이에 올 때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가 1일 요리교실이었다. 치앙마이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타이  음식을 만들어 보는 요리교실이 여러군데 있어서 요리에 관심있고 일정에 무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이 만든 음식들은 자기가 먹기 때문에 참여하는 비용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예약한 시간에 요리교실에 도착하면 먼저 위에 있는 메뉴를 보여주고 종류별로 그날 자기가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를 선택한다. 나는 팟타이, 스프링롤, 똠양, 스티키 라이스와 망고, 그린 커리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그날 요리 교실에 참여한 사람들을 데리고 정원에 나가서 타이 요리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허브나 향신료를 보여주고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게했다.





타이 요리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국수들. 종류가 매우 많다.



쌀도 품종별로 매우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었고 간단히 설명까지 해줬다.



쏨땀을 만들때 절구통에 찧어 넣는 발효된 게. 일반적인 쏨땀에는 넣지 않는다.


다음에는 바로 요리를 시작하는게 아니라 근처 시장으로 가서 타이 요리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식재료(국수, 쌀, 피시 소스, 젓갈 등등)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요리하는 법만 배우는게 아니라 타이의 식문화에 대해 알게되는 좋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교실로 돌아오면 그 사이에 만들 음식의 식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식재료 준비도 하나하나 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상 어려울뿐만 아니라 칼질이 서투른 사람도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주었다. 맨처음에는 상추에 여러가지 야채나 향신료를 싸서 소스를 넣어 먹어보게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준비된 팟타이 재료 들



먼저 요리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고나서 그걸 따라 만들어보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커리를 제외하고는 재료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금방 만들 수 있다.


나의 첫번째 타이요리, 팟 타이


 이어서 만든 쏨땀. 우리나라의 김치같이 한번 길들여지면 중독성이 강하다.


그린 커리를 만들 재료



커리는 그린, 레드 등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향신료들을 직접 절구에 넣고 찧어서 페이스트를 만든다. 커리를 좋아하지만 매번 만들어진 가루형태의 커리만 먹다가 직접 만들어보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커리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는 중


만들어진 요리들. 왼쪽 위가 그린 커리, 왼쪽 아래가 똠양이다.


요리 교실은 즐거웠다.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외국 음식을 만들어보고 직접 만든걸 먹는게 색다른 체험이었고, 외국인들과 어울려 그 나라의 식문화를 배우는 것도 재밌었다. 요리 교실이 끝나면 그 날 만든 음식들의 레시피가 적힌 간단한 책자를 준다.


저녁에는 어제 먹었던 그 바베큐를 사러 다시 시장으로 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고, 아들처럼 보이는 남자 셋은 부지런히 고기를 굽고 아주머니는 큼직한 칼로 고기를 자르고 비닐에 담고 있었다.






삼겹살과 똑같은 부위를 구운 것과 돼지 갈비, 곱창까지 실컷 먹을 양을 사도 우리 돈으로 몇 천원 되지 않는다. 거기에 쏨땀과 시원한 수박주스나 망고주스까지 곁들이면 어떤 값비싼 음식보다 맛있는 한 상이 차려진다.



이제 치앙마이에서의 일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치앙마이에서 가까운 빠이나 치앙라이에서 좀더 머물고 싶었지만 미리 예약해 놓은 비행기 날짜도 다가오고 있었고 두 달동안 더운 곳을 여행하다보니 덜 더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떠나고 나야 좋았던 것을 더 실감하게 되는 법이라 그 뒤로 물가가 비싸거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곳에서는 항상 동남아에서 여행했을 때가 그리워졌다.

쏭끄란 마지막날, 아침부터 따끈한 국물 생각에 다시 예전에 갔던 보트 누들을 파는 집에 갔다. 태국 국수는 양이 무척 적기 때문에 남자들은 곱빼기로 달라고 한다던지, 두 가지를 시켜서 먹어도 많지 않다. 쇠고기 국수는 국물이 진하고 닭고기 국수는 맑고 시원하다. 


간혹 타이 음식이 무척이나 생각날 때에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현지식으로 만들어내는 타이 음식점이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 몇 번 유명하다는 타이 음식점을 가봤지만 베트남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한국화한 맛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 베트남 쌀국수집들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당연히 고수가 들어가 있었고 그 맛이 싫은 사람은 빼달라고 해야했는데 어느샌가 고수가 들어가지 않는게 당연해지고 맛은 밋밋하고 평범해졌다. 사업은 성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호응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게 당연하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면에서는 많이 아쉽다.


그러고보니, 여행 초기 방콕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그리스 레스토랑을 했었던 덩치 큰 '그 녀석'이 생각난다. 이제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그는 여행중에 그리스 음식이 좋아서 그리스 요리를 배웠고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리스 요리는 지중해에서 많이 나는 올리브유, 가지, 레몬 등등이 주재료이고 조금 느끼하다.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현지화하라는 주위의 조언보다는 제대로된 그리스 음식을 내놓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에 레스토랑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분명 그리스 음식을 좋아하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들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쏭끄란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구도심으로 통하는 성문 근처에 모여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아래 사진처럼 'No ALCOHOL'이라고 써진 깃발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타이 국왕이 축제 기간중에 알콜로 벌어지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알콜을 전혀 팔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낮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실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신나게 놀 수 있으니 마실 필요도 없다.


꽃남방과 커다란 물총, 다이빙 마스크로 중무장한 커플. 나이도 있어뵈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모두 아이가 된다.





쏭끄란 축제기간 동안에는 밤에 사원에서도 음식을 파는 장이 선다. 거기서 파는 음식은 사찰음식이라거나 채식위주의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먹어볼 신기하고 다양한 것들이 많았다.







시끌벅적했던 사흘동안의 쏭끄란 물축제가 끝이 났다. 다음날 숙소를 나왔을 때는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제까지 그런 축제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간간히 골목에서 어린 아이들만 축제의 아쉬움을 풀고 있을뿐이었다. 이틀간 수고했던, 내 인생 첫번째 물총은 골목 아이들에게 선물로 넘겨졌다.


이 날 아침식사는 '론리 플래닛'의 강력한 추천 식당인 아룬 라이 레스토랑에서 했다. 커리와 똠양, 스티키 라이스를 배부르게 먹고 쏭끄란을 즐기느라 미뤄뒀던 치앙마이의 명소를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왼쪽 바구니안에 쫄깃한 찰밥이 담겨있다.


어떤 음식을 시켜도 풍부하게 들어가있는 해산물 들


축제가 끝나고 치앙마이의 명소로 방문한 곳은 왓 프라탓이 있는 도이수텝이었다.  도이수텝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왓 프라탓은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된 불탑이 있고, 이 사리를 운반해 온 흰 코끼리의 절설이 있는 유명한 사원이다.


치앙마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버스와 택시가 없다. 시내에서는 몇 개의 노선으로 나뉘어진 썽떼우(색깔로 노선을 판별했는데 상세한 생각은 나지 않는다)를 타고 다닌다. 도이수텝은 치앙마이에서 좀 떨어진 외곽에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치앙마이 동물원으로 가는 썽떼우를 탄 다음, 여기서 도이수텝으로 가는 차로 갈아타고 가야한다.


산을 빙빙 돌아올라가서 도이수텝 입구에 내리면 아래 사진처럼 계단이 나온다. 높거나 가파른 계단은 아니지만 이 땡볕에 올라가려니 괜히 한숨부터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잭 푸르트 나무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가지가 아니라 큰 줄기에 주렁주렁 붙어있다. 더운 나라를 여행하면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열대지방의 풍성한 생명력과 다양성은 놀랍다.





왓 프라탓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산 위에서 치앙마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쏭끄란 기간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참배하고 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는 커다란 황금불탑이 나온다. 




불탑주위의 모든 것이 황금색으로 칠해져있어 눈이 부실 정도다.



스님에게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향이나 초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향로에 기름을 부으면서 또는 종을 치면서 행복을 기원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복을 비는 방법이 무척이나 다양한 것 같다.



부처님 사리를 운반한 흰 코끼리가 세 번 돌고 죽었다는 불탑 주위를 돌며 뭔가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이수텝을 내려와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을 해결해야 하기에 썽떼우에서 내린 곳에서 가까운 시장으로 갔는데 그 와중에 달콤한 고기 굽는 냄새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발걸음이 향한 곳은 돼지 갈비나 삼겹살, 곱창을 석쇠에 구워 파는 노점이었고 타이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여행 경험상 이건 여행자들은 잘 모르는 현지인들의 맛집이 분명했다. 이들 사이에 끼어 기다린 끝에 종류별로 고기를 사고, 다른 노점에서 쏨땀과 밥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가격대의 여러가지 음식들을 먹었지만 시장에서 사온 고기와 쏨땀이 나에게 동남아 최고의 음식이 되었다. 구운 고기도 최고였고, 그 옆 노점에서 산 쏨땀도 그에 못지않았다. 먹는데 열중하느라 이 날 남긴 사진조차 없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바로 이때 먹은 고기였다. 정보를 보고 찾은 곳도 아니고 늦은 저녁을 때우기 위해 우연히 간 곳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살다보면 찾으려고, 가지려고 많은 노력을 쏟은 후에 얻은 것들이 생각에 못미칠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히 노력이 부족해서, 열의가 부족해서 얻은 것이 보잘것 없다고 이야기하고 더 노력하면 더 큰 것을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보잘것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대로 평소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더 집중한다면 훨씬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늦은 여행 후기를 쓰는 중에 뜬금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여행내내 이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여튼, 오늘 낮에 본 도이수텝과 왓 프라탓보다 늦은 저녁식사로 먹은 고기와 쏨땀이 훨씬 크게 각인되었고, 다시 치앙마이에 가야할 이유가 되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쏭끄란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어제 하루종일 물벼락만 맞았던 나도 오늘은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기려고 난생 처음으로 물총을 구입했다.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가보니 이미 물축제가 시작되어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물총으로 물을 쏘고, 가끔은 얼음을 띄운 차가운 물을 양동이째 부어대거나 성능이 너무 좋은 물총에서 나온 물줄기가 얼굴을 직격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기분 나빠하거나 성질을 내지 않는다.



더위에 지친 아주머니는 그늘에서 잠시 휴식 중


별의 별 물총이 다 있지만 이런 커다란 물통을 등에 질 수 있는 물통이라니...


축제를 즐기는데 남녀노소가 없었다. 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도 가벼운 차림으로 물총을 쏘고 있다.


가족들과 같이 나온 꼬마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물총을 열심히 쏘고 있자...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한 남자가 웃으며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머리 위로 냅다 물을 부어버렸다.


어안이 벙벙한 꼬마 명사수들이 아빠를 보고 있고, 아빠는 웃음보가 터졌다.


이런 과감한 복장을 하고 축제를 즐기는 이들도 있어서 여러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집중 표적이 된다.


오전내내 축제를 즐기고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구도심을 지나는 도로에 뭔가 시작되려는지 도로를 텅비우고 사람들은 길가에 쭈욱 서 있었다. 잠시 후, 타이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이 뭔가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행진하고,


꽃으로 치장한 예쁜 어린이들도 행진을 했다.



정치인 분위기의 중년 남자 뒤로 나타난 것은



화려한 수레에 실린 불상이었다.


쏭끄란 축제의 공식적인 행사는 1년에 한번 치앙마이의 모든 사원에서 준비한 화려한 수례에 불상을 실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었다. 치앙마이에는 사원이 매우 많기 때문에 불상이 실린 수레와 그 앞뒤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도 끝없이 이어졌다. 유명하고 큰 사원에서 준비한 퍼레이드는 화려했고, 작은 사원의 퍼레이드는 소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다 진지한 표정으로 준비한 꽃잎을 띄운 물을 불상에 뿌리고 한해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듯 했다.






퍼레이드 중간에 귀여운 복장과 앙증맞은 무당벌레 물총을 든 서양 여행자들의 모습이 재밌다.




불상에 부을 꽃잎 띄운 물을 정성스레 준비한 불신자


꽃잎을 띄운 물을 비닐에 담아서 팔기도 한다.



타이 사람치고는 꽤 키가 크고 훤칠한 남녀가 행진한다. 아마도 연예인인듯.


퍼레이드가 끝나고 다시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해가 뉘엿뉘엿 질때쯤 여행자들의 피곤한 몸을 쉬고 주린 배를 채워줄 어제의 야시장이 다시 선다.


어제 감탄했던 타이식 해물전을 한번 더 먹고 다시 야시장을 구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행을 시작한지 두 달째 이렇게 하루를 완전히 놀면서 보낸 것도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치앙마이의 쏭끄란 축제는 동남아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완벽하게 풀어준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타이에는 설날이 세 번이라고 한다. 태양력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는 1월 1일과 불교에서 정하는 설날, 그리고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날(쏭끄란)이다. 처음에 이 쏭끄란은 건기 동안에 불상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서로가 건기를 무사히 지난 것을 기념하며 물을 부어주는 정화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타이를 여행하기 전에도 쏭끄란이라는 물 축제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쏭끄란이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나 성대하게 이 축제를 즐기는 줄은 여기서 겪어보고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았던 뜻밖의 축제가 너무도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라오스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어깨에 물을 부어주고는 수줍게 웃던 이유가, 어제 사원에서 승려들이 준비하던 행사가,  무엇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거하게 먹고 시작했다. 흡사 갈비탕 맛이 나는 고기가 잔뜩 들어간 탕에 커다란 생선 한마리와 타이를 여행하며 반해버린 쏨땀까지... 이렇게 먹고 싶은 타이 음식을 잔뜩 시켜도 몇 천원 되지 않는 가격이라 자꾸 과식하게 되는게  유일한 문제였다.


시원한 얼음에 채운 생과일주스조차도 천원 안팎이었는데 이때는 동남아 물가에 길들여져서 이 주스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훌륭한 타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과일주스로 디저트까지 마신 후에 어제 다 들르지 못한 사원 구경에 나섰다.





성미급한 꼬마들은 집앞에서 이미 축제를 시작했다.


치앙마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에는 성미급한 어른들이 뛰어들었다.




도심 외곽의 사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도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무작정 들어간 치앙마이 대학교 미술관.


축제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물총이나 자그만 양동이를 들고 지나가고 있다. 가게 앞에서는 아예 호스를 끌어다 놓고 지나가는 차에 물을 뿌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인줄 알았다. 썽태우를 타고 숙소가 있는 구도심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물벼락이 쏟아졌다. 하루종일 다닌 여파로 풀어져 있던 몸에 차가운 물을 맞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이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차에 물을 뿌린다. 더군다나 유리창도 문도 없이 뚫린 썽태우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되어서 심지어는 쫓아오면서 물을 뿌려댔다. 가만히 앉아서 비무장인 상태라 아무런 응사도 하지못한채 몸은 이미 완전히 젖어버렸다.



성곽이 있는 구도심에 들어와보니 이곳은 이미 난리가 났다. 내가 생각했던 쏭끄란이 아니었다. 훨씬 더 격렬하고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한...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이렇게 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물총싸움을 하면서 몇 날을 즐기는 이런 축제가 또 있을까?


상점들은 앞에 커다란 물통을 가져다 놓고 사람들이 공짜로 물총에 물을 담을 수 있게 해줬고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 물을 쏘아대며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즐기다보니 한해 중에서 가장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간이라고 했지만 정작 내가 있던 동안에는 사고가 발생하는걸 한번도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물놀이에만 집중했으며 밤이 되면 물놀이를 중지하고 술을 마시거나 낮동안 노느라 지친 몸을 쉬었다. 





전 세계의 물총 종류는 다 모여있는 듯하다. 이렇게나 다양한 물총이 있는 줄 미쳐 몰랐다.








구도심 밖으로 픽업트럭에 물을 가득 채운 드럼통을 싣고 천천히 지나가면 길에 늘어선 사람들은 그 차에 물을 쏘아대는데 이 날 최고의 인기인은 군인복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물총을 진지한 표정으로 쏘던 사람이었다. 가장 집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물총 세례를 받고는 장렬히 전사했다. 온 도시가 물에 흠뻑 젖었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는 이 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이나 하자고 나갔다가 하루종일 물세례를 받았다. 내일은 나도 물총을 사서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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