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국제 정세를 전달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방문했던 작년 가을쯤 정부에서 정한 공식 환율이 아르헨티나 페소와 달러가 4.5:1이었는데 암달러 상들은 6.2:1이어서 황당했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암달러 상들이 조금 환율을 좋게 처주기는 하지만 여기는 너무 차이가 컸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가능한 달러를 많이 가지고 와서 암달러 상에게 페소로 바꾼다. 달러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나는 꽤 큰 손해를 봤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달러를 환전하는 것은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뉴스에서는 현재 비율은 거의 7배에 가까워졌고, 과도한 물가 상승으로 하우스 푸어가 늘어나고 국민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년 말 바릴로체에서 주민들이 대형 마트를 습격하는 자료화면을 보여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릴로체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과 호수의 이미지였고 다시 가고 싶은, 더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게 아쉬움으로 남았던 곳이었다. 게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소매치기와 조금 불안한 치안에서 벗어난 첫번째 도시였기에 사람들마저 좋게 기억되고 있었다. 뉴스를 본 바릴로체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단지 치안이 불안하고 폭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가보지 않으면 언론매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로 인식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동남아에, 남미에 가기 전에 가졌던 생각은 모두 허구였다는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웠던 파타고니아에서 처음 방문했던 도시, 남미의 알프스라는 바릴로체를 다시 떠올려보고 싶어졌다.

  내가 바릴로체를 방문한 시기는 겨울이 막 지난 초봄이었다. 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가로수에 핀 꽃과 파란 하늘, 청량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춥고, 흐리고, 눅눅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온 여행자의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었다.

  바릴로체는 등산과 트레킹뿐만 아니라 겨울에 스키, 여름에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나우엘 후아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바릴로체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차를 이용해서 나우엘 후아피 호수를 돌거나, 배를 타고 나우엘 후아피 호수를 구경하거나, 리프트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트레킹이나 등산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는 엘찰튼이나 토레스 델 파이네가 더 유명한 것 같다. 나도 거기서 실컷 할테니 여기서는 미리 쉬자는 기분으로 여행을 했었다.

  나우엘 후아피 호수 투어를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한다. 버스 번호는 잊었지만 바릴로체에서 가장 고급호텔이라는 Llao Llao(야오야오? 랴오랴오?)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도착한 선착장에서부터 '오~',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깨끗하고 맑은 호수와 푸른 하늘, 멀리 보이는 눈덮인 산이 어우러져 엽서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멀리 Llao Llao 호텔이 보인다. 꽤 고급스럽다.]


[투어를 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는데 가까운 시간으로 아무 배나 타면 된다. 투어 경로나 비용은 비슷했다.]


[바다와 하늘이 모두 눈부시게 푸르다.]



  비스킷을 쥐고 팔을 올리고 있으면 갈매기가 와서 채어간다. 우리나라에서만 새우깡을 가지고 그러는줄 알았는데 다들 그러나보다. 배에서 스탭들이 사진기로 찍어서 배에서 하선할 때 인화하여 팔고 있었다.




  정말 날씨가 좋았는데, 이때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도 모르고 당연히 그런줄로 알고 있었다. 눈이 시린 푸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처음 도착한 섬은 껍질이 주황색에 가까운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서 느긋하게 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나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매우 단단해서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 보호수종이라는 것만 기억이 난다. 실제로 나무를 만져보니 거의 바위처럼 단단했다.







  두 번째 섬에서도 깨끗한 호숫가를 따라, 긴 겨울이 끝나고 막 연둣빛 잎사귀가 나오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느긋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깨끗한 자연속에 있다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다음날에는 나우엘 후아피 호수의 경치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미리 인터넷에서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그러나, 연속해서 이틀동안 날씨가 좋은 행운은 나에게 없었다.



[어제는 그렇게 푸르던 하늘과 호수가 오늘은 회색빛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아르헨티나 국기는 내내 저 상태로 펄럭였다.]

[햇빛이 약간 나는가 싶었지만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걸어올라가도 되지만 등산로가 잘 되어 있지 않은듯...]

  전망대에서 본 경치는 멋있었고 가슴이 확 트이는 듯했지만, 어제처럼 아름다운 빛깔은 볼 수 없었다. 바람도 심하게 불었고, 기온도 뚝 떨어져서 밖에 서 있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전망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쉬워해야했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바릴로체에는 검은 빙하 트레킹이라던지, 여러가지 투어나 볼거리가 많았다. 여름에는 눈덮인 산을 볼 수 없겠지만 대신 깨끗한 호수에서 물놀이나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여유있게 머물면서 즐겼다면 좋았을텐데...

  바릴로체에는 스위스와 독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초콜렛이 유명하다. 조그만 번화가 상점의 상당수가 초콜렛 가게였지만 관심이 없어서 먹어보진 않았다. 중미, 남미 여행중에는 초콜렛 가게들이 많은 도시들이 여럿 있었는데 멕시코 와하까나 볼리비아의 수크레가 현지인들이 즐기는 초콜렛이라면 바릴로체는 관광상품 같이 느껴지는 초콜렛이라서 꺼려지기도 했다. 특히, 여행책자에서 맛있고 유명하다고 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이스크림들이 전혀 맛이 없었기 때문에 바릴로체의 초콜렛도 기대되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사실 괴레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하루는 로즈밸리 투어도 그린 투어도 아니라 마을 주변근처를 마음내키는대로 걸어다녔던 날이었다.

평소에도 투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문제도 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해서 다니는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물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기고 대략적인 경로를 호스텔 주인에게 물어본 후, 출발했다.

[호스텔 주인에게 마을 주변에서 경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물어서 도착한 마을 뒷산]

[진행중인 풍화작용으로 돌의 단단한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른 부분은 모두 풍화되고 결국 이런 모양의 돌기둥만 남았다]

[괴레메 마을 전경. 어딜가도 가장 높은 건축물은 모스크의 첨탑이다]

한가롭게 마을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풍화작용이 계속되고 있는 계곡과 그 주위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놓은 밭들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가끔 주말을 맞아 피크닉 나온 현지인 가족들이 나무그늘에 자리를 펴고 쉬는 풍경이 보였다. 우리들 피크닉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정하고 걷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한 가지 실수한 것은 이곳이 수많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괴레메라는 사실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반드시 목적지로 이어져 있다는 보장이 없다. 길은 끊기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길이 갑자기 끊어지고 바로 앞에 계곡이 나타나는 황당함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끊어진 길 대신에 다른 길이 있게 마련이고,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해야 할 필요도 없다.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이 즐겁고 만족스러우면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가장 편하긴 하지만 즐겁고 만족스러운 길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고민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멀리 보였던 목적지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제 얼마 안남은듯 보이던 그 순간에 길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결국 물도, 간식도 떨어지는 바람에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기로 했다. 계곡 능선이 덜 가파른 곳을 골라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예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일도 생긴다.

계곡 아래로 난 길을 걷던 중에 길을 가로지르던 거북을 보게 되었다. 이 곳은 강수량이 적은 곳이긴 하지만 사막에서 사는 거북도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잠시 피로를 잊게 만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피해 무척 서두르는듯한 몸짓을 보니 슬그머니 미안해져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계곡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출발했던 마을로 돌아가는 길도 수월하진 않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친절한 마을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고 반나절 이상 걸었던 길을 버스로 15분만에 돌아왔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으면서 느리게 느낄 수 있는 경치와 바람과 소리를 좋아한다. 걸으면서 하게되는 생각들과 예상하지 못하게 만나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모두 좋아한다.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걷는걸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라면 괴레메에서 내키는대로 걷는 트래킹은 몸을 힘들게만 하는 고행일뿐일 것이다.



그린투어 둘러보기

그린투어는 로즈밸리 투어에 비해 조금 빡빡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여러 곳을 다니기 때문에 이동거리도 멀다.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투어지만 개인적으로는 로즈밸리 투어가 더 좋았다.

그린투어는 괴레메 마을에서 각 여행사의 승합차에 나눠타고 이동한 후, 근처의 전망대부터 시작한다. 그 뒤에 한참을 달려 데린쿠유라는 지하도시를 구경하는데, 지하도시의 규모와 크기에 놀라게 될 것이다.

지하도시는 지하 수십미터에 걸쳐 수개의 층으로 건설되어 있고(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길이는 수십킬로미터에 달한다. 지하도시로 내려갈때 가이드가 길을 잃지 않도록 반드시 정해진 곳으로 다니고, 가이드를 따라 다니라고 주의를 주었다.

지하도시는 환기구부터 가축을 키우는 곳, 주거지 등등 없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도시였다. 이 지방에는 이런 지하도시가 수군데 더 있다고 한다. 인간의 집념이 놀랍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다음 간 곳은 Ihlara valleyd이다.(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계곡으로 내려가기전 안내지도 앞에서 간략히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

계곡 아래로 내려가 한두시간쯤 계곡을 따라 산책을 하고, 여행사와 계약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계곡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고 보긴 어렵고, 장엄한 크기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박해를 피해 피신한 기독교인들이 절벽을 파서 만든 교회나 주거지를 구경하고 계곡을 따라 천천히 산보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음 들르는 곳은 영화 스타워즈에서 외계인들의 주거지로 촬영되었던 곳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바위를 파서 숨어살던 곳인데, 꽤 커다란 바위산을 통째로 깎아서 몇 층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다른 곳보다 규모가 컸다.

바위산을 깎아서 내부에 거의 마을 크기의 주거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바위산 내부를 통해 꼭대기까지 갈 수 있는데 지금은 풍화가 심해 밖으로 드러나 있다.

마지막 방문지는 Pigeon vallley다.

마지막으로 터키석을 가공해서 파는 공장에도 가는데 그쪽엔 영 관심이 없어서 대충 훑어보고 나왔기 때문에 사진도 없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그린투어를 하고 난 직후에는 꽤 만족도가 높았던것 같은데, 10개월이 지나서 기억을 되살려 정리를 하려니 그다지 남아 있는게 없다. 내가 투어 특히, 차를 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투어를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상에서 열기구 투어 구경하기

괴레메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어이고,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여기서 반드시 해야하는 필수코스처럼 인식되어 있으나, 장기 배낭여행자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기 때문에 꽤나 고민하게 만드는 나쁜 투어이다.

열기구 투어 비용은 여행사마다 꽤 차이가 많이났다. 100유로 안팎으로 150유로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투어를 하진 않았지만 지상에서 열기구들을 유심히 관찰한 바로는 열기구 투어라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륙한 곳 주변만 살짝 돌아다니다가 금방 착륙하는 열기구가 있는가하면, 꽤 먼 곳까지 오랫동안 돌아다니는 열기구도 있고, 뾰족한 바위산에 스칠듯 가까이를 비행하는 열기구, 멀찍이 떠 다니는 열기구 등 다양하다. 아마도 열기구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숙련도와 투어비용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투어를 예약하기 전에 여러 여행사에서 이런 것들을 잘 체크해보고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투어를 선택해야 한다.

[일출을 배경으로 열기구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열기구가 떠 있는 풍경이 꽤나 이채롭다]

[이륙준비가 한창인 열기구]

대략 세어본 이날 이륙한 열기구의 수는 80여개. 성수기에는 하루에 100개가 훨씬 넘는 열기구가 뜬다고 한다. 비록 열기구 투어를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열기구가 떠 있는 모습을 지상에서 보는 광경도 꽤 멋있었다.

아직 여행 초반이었기 때문에 비용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열기구 투어는 탈 수 있다고 위안하면서 참았었는데 결국 여행을 마칠때까지 열기구는 타보지 못했다.(사실 타고 싶은 욕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괴레메는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도시이다. 이스탄불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12시간 후, 괴레메에 도착한다. 정확하게는 괴레메에 내리면 안되고 조금 더 가서 조그만 마을에 내리면 된다. (터키의 장거리 버스는 벤츠사의 버스였는데, 깨끗하고 멋지게 생겼으나 좌석도 좁고 매우 불편하다.)

카파도키아 일대는 신비로운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로마시대에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살기 위해 정착한 곳으로, 7세기 경에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동굴이나 바위를 파거나 땅밑에 지하도시를 만들어 수백년 동안 숨어살아온 곳이다.

[언덕에서 바라본 괴레메 마을]

4월말 괴레메는 비수기였기 때문에 마을이 조용하고 한적했지만 성수기에는 꽤 붐빈다고 한다. 그리고 4월이었음에도 한낮에는 눈부신 햇볕으로 여름을 방불케 했다.

이 지역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단체투어를 싫어하는 여행자라 하더라도 투어를 하는게 좋다. 일단, 맘에 드는 투어를 한 후에, 시간이 된다면 개인적으로 트레킹 삼아 돌아다니는걸 추천한다.

대표적으로 그린투어, 레드투어, 로즈밸리 투어, 열기구 투어가 있다. 레드투어는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열기구 투어는 자금의 압박으로 포기했다.


로즈밸리 투어

로즈밸리 투어는 오후 느즈막하게 시작해서 마을 가까이에 있는 로즈밸리를 걸어서 돌아보고 해가 질때쯤 돌아오는 투어로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괴레메 마을의 여행사나 숙소에서 문의하면 된다.

[한국말도 곧잘하던 유머러스한 가이드 아저씨]

[마을에서 여행사 승합차를 타고 골짜기 근처에서 내린 뒤, 바위 사이로난 오솔길을 걸으면서 투어를 시작한다.]

로즈밸리 투어는 오후 해지기 전에 두어시간 동안 로즈밸리를 천천히 걸으며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과 여기서 숨어 살던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생활공간, 교회 등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석양을 본 뒤에 괴레메로 복귀하게 된다.

로즈밸리 투어뿐만 아니라 그린투어 중에도 그리고 괴레메 마을 어디에서도 구멍이 뚫려있거나 내부 공간이 밖으로 드러난 바위산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위는 과거 화산재와 용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손으로 조금만 압력을 가해도 쉽게 바스라졌다. 박해 받던 기독교인들이 이 바위산을 파서 내부에 생활공간을 만들었던 것인데 예전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나 오랜 시간동안 거친 기후와 바람으로 풍화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로즈밸리. 붉은 빛을 띈 암석이 많아서 이름붙여진것 같다.]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한적했으며, 독특한 색깔의 암석이 지는 태양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처음보는 광경이 매우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종교에 의한 광기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빼앗기고 고통받지만, 종교로 인해 살아가는 힘을 얻고 고통과 고난을 감내하기도 하는게 아이러니하다.

바위를 파서 만든 교회 내부에는 예수와 성모를 포함한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후에 이슬람 세력에 의해 성인들의 얼굴이 훼손당했다고한다. 

이런 그림들을 그리는데 중요한 원료가 비둘기똥이란다. 비둘기는 마음놓고 돌아다닐 수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서로 연락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키우기도 했지만, 비둘기똥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물감으로도 난방을 위한 연료로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바위를 파서 만든 집 내부에는 위의 사진처럼 비둘기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로즈밸리 투어중에 오렌지주스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곳에서 잠시 쉬는데 이곳도 예전 바위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의 기후는 혹독했다. 그랬기에 이런 자연의 걸작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갑자기 불어온 모래 바람으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라 모두 가게 안으로 대피해야했다.

[지는 태양빛을 받아 계곡이 붉게 물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초원에서 여우를 보기도 했고, 좋은 날씨에 석양도 무척 아름다웠다.

투어중에서 가격도 제일 저렴한 편이었으며 걸어서 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개인적으로는 로즈밸리 투어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로도스는 한마디로 매력적인 곳이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문명이 싹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의 거상이 있던 곳이며, 십자군 전쟁의 최전방으로 중세 도시 유적이 잘 보존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내가 본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까지...

이런 매력을 갖고 있지만 너무 상업적이지도 않고, 부산스럽거나 번잡하지도 않다. 게다가 유럽치고는 물가까지 저렴하니 석달동안 있었던 유럽의 여러 도시들중에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로도스의 거상(위키백과)

기원전 407년경 로도스섬은 도시국가연합(Rhodo-Egyptian)의 수도로 건설되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그들의 주요한 동맹국(Ialysos, Kamiros, Lindos)과 함께 지중해 유수의 무역중심지였다.

기원전 305년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 1세는 동맹을 깰 방법으로 도시를 관통할 수 없게 로도스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도시국가연합은 마케도니아를 무찔렀고, 그들의 단일성을 축하하기 위하여 장비를 팔아 모은 돈으로 높이 36m의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철로 보강하고 돌로 무게를 더함)을 세웠다. 이 거상은 후일 로도스의 거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상에 의해 만든 한 돋을새김 작품이 표현하듯이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거상의 건설은 린두스 시(市)의 카레스가 12년에 걸려 기원전 282년에 끝마쳤다. 이 거상은 기원전 225년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고, 거의 한 천년간동안, 상이 파괴된 채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결국 서기 654년 아랍인이 로도스를 침범하여 부서진 대거상의 나머지를 분해하였으며, 그것들을 시리아의 한 부유한 유대인에게 판매함으로써 거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로도스의 거상 상상도, 위키백과]

거상이 두 다리를 딛고 있었을거라 예상하는 자리에 지금은 암수 사슴 동상이 서 있고, 그 사이를 요트나 범선이 지나다니고 있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여기서 데이트를 즐기거나 한가로이 낚시를 한다.


뭐니뭐니해도 로도스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역사적인 사건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이 함락되면서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이슬람 세력에 맞서기 위해 성 요한 기사단이 여기에 주둔한 것이 아닐까.

로도스에는 그리스 시대의 유적부터 중세시대 성 요한 기사단이 주둔하던 시절 성채의 모습이 너무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 성은 왕족이 살기위해 아름답게 지어진 성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성답게 두터운 성벽과 넓은 해자, 포탄으로 썼음직한 크고 둥근 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성 안에는 대부분 유럽의 성처럼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이나 박물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때 지어진 건물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마차가 드나들었을 성문으로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고 있다.]

골목골목을 다니다보면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한 영화 세트장에 있는듯한 느낌마저 갖게된다. 낡고 바스러지는 벽돌조차 대단한 유물처럼 생각되며, 무엇보다 아직도 대부분의 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게 놀랍다.

[각국에서 온 기사들이 주둔했던 기사의 거리]

성 요한 기사단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조직된 병원 기사단에서 시작하여 1차 십자군 전쟁 당시에 군사적인 조직으로 변하였으며,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후로는 로도스에 근거지를 두었으며 로도스 공방전에서 오스만 투르크에 패한 후에는 몰타로 건너갔다. 그래서, 성 요한 기사단을 로도스 기사단, 몰타 기사단이라고도 한다. 로도스에는 이 기사들이 주둔했던 거리가 있고, 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성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요한 기사단의 본거지인 성과 그 내부]

[성 곳곳에 포탄으로 사용되었음직한 커다랗고 둥근 돌, 현재는 차도와 인도를 분리하는 경계석으로 쓰이는듯]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는 넓은 해자는 현지인들의 피크닉 장소가 되었다.]

[기념품조차 고대 그리스와 중세 기사단과 관련된 물건이 대부분이다]


로도스의 마지막 매력은 너무나 깨끗하고 푸른 바다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지중해 여러 곳을 다녔지만 로도스 바다만큼 깨끗하고 푸른 곳은 볼 수 없었다.
로도스 이후에 갔던 그리스 산토리니, 이탈리아의 소렌토, 아말피, 카프리,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의 해변, 바르셀로나 등등이 모두 이름난 해변이었으나 나에겐 로도스보다 나은 곳은 없다.

로도스 항에는 수만톤 급의 거대한 유람선부터 유럽 각지에서 모여드는 크고 작은 요트가 정박해 있다. 그렇지만 항구의 물빛조차 투명해서 바닥이 비칠정도였고, 배 그늘 밑에 수없이 많은 치어들이 다니고 있었다.

[항구 바로 옆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저씨]

[배가 정박한 곳의 물빛이란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깨끗하다.]

5월의 로도스 해변은 한가롭다. 물이 조금 차긴 했지만 충분히 해수욕이 가능한 정도였고, 무엇보다 물은 깨끗하고 태양은 뜨거웠다.

내가 로도스를 방문했을 때는 성수기 직전인 5월초여서 그런지 숙박비가 유럽이라 할 수 없을만큼 쌌다. 부엌이 딸린 콘도식 숙소가 직전에 방문했던 터키 어떤 곳의 호스텔보다도 저렴했다.
대형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사서 아침, 저녁을 해먹고, 낮에는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거나 중세의 골목을 어슬렁 거렸다. 5일 동안 너무나 즐거웠던 나에게 유럽 최고의 여행지가 로도스다.

로도스는 그리스에 속하지만 터키와 매우 가깝다. 터키 보드룸에서 그리스 코스를 거쳐 대형 카페리인 블루스타 페리를 타고 로도스에 도착할 수 있다.

카페리를 이용하여 로도스에서 아테네의 다른 섬(크레타, 산토리니 등)으로 갈 수 있으나 비수기라면 미리 표를 예매하는 것이 좋다. 내가 방문했던 5월도 비수기에 속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2,3일만 머무를 예정이었으나 표가 없어서 5일을 머무를 수 밖에 없었지만 나중에는 떠나기가 무척 아쉬웠다.(성수기는 6월부터)

여행은 복불복이라 어쩔 수 없이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곳이 여행중에 잊기 힘든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하고, 무척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서둘러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좋은 여행지와 그렇지 않은 여행지는 여행자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절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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