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말에서 이틀간 바다거북이와 춤을 춘 후, 다음 목적지는 멕시코 카리브해의 유명한 관광지이자 다이빙포인트인 코수멜이었다. 코수멜은 섬이기 때문에 아쿠말에서 칸쿤쪽으로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있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고속페리선을 타고 가야했다. 일단, 플라야 델 카르멘에 짐을 풀고 하룻밤을 보냈다.


플라야 델 카르멘도 유명한 해변을 가진 관광지이기 때문에 해변쪽은 각종 레스토랑과 술집, 다이빙숍, 기념품점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커다란 마트와 작은 음식점, 그리고 빨래방까지 있었다. 그동안 쌓인 빨래를 맡기고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앞에서도 썼지만 멕시코 남부 해안가에는 새우가 무척 저렴하다. 잔뜩 산 새우를 숙소 부엌에서 굽고, 비빔국수까지 만들어 배부르게 먹었다. 멕시코 음식이 무척 훌륭하고 맛있지만 한국사람은 어쩔 수 없게도 가끔 장맛이 그립게 마련이다.


좀 더 바싹 구워야했다. 새우 머리를 먹지 않는다면 반쯤은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덜 익은 머리는 떼어내서 다시 구웠다.


스파게티면이었는지 국수였는지, 양념을 고추장으로 만들었는지 비빔면 양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잘 먹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이튿날 코수멜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고, 바다는 온갖 다양한 파란색을 띄며 맑게 펼쳐져 있었다.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 뒤편으로 희미하게 코수멜이 보인다.


배를 탈 때도 큰 짐은 모두 태그를 붙여 짐칸에 실어준다.


배는 얼마 되지 않아 코수멜에 도착했다. 카리브해의 유명 관광지답게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유람선들이 몇 척이나 떠 있었다.


코수멜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여행자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서비스가 좋기로 알려진 다이빙숍에 내일 다이빙을 예약했다. 다이빙 비용은 이집트와 그다지 차이가 나진 않았다. 플라야 델 카르멘이 코수멜보다 조금 더 비싸고, 코수멜에서도 다이빙숍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렴한 곳을 찾는다면 잘 알아보는게 좋다. 하지만 비용이 비싸면 배가 좋던가 식사가 잘 나올테니 맘이 가는대로 골라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집트 후루가다 이후, 6개월만에 처음 다이빙을 하는 것이라 그동안 잊어버리진 않았을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멕시코는 다른 물가도 저렴하지만 특히 커피가 무척 싸다. 제일 큰 사이즈의 음료도 우리나라의 톨 사이즈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멕시코의 스타벅스도 미국처럼 주문자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어느새 내 이름은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를 함께했던 미국 할머니가 붙여 준 이름 존이 되어 있었다. (이름이 뭐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했더니, 발음이 비슷하다고 쉽게 '존'이라고 부르면 어떠냐고해서 그 뒤로 내 미국 이름은 존이 되어버렸다.)


파란 건물이 다이빙숍이다.


나는 안경을 쓰기 때문에 다이빙을 할 때는 도수가 있는 고글을 써야했다. 후루가다 다이빙숍에는 몇 개가 구비되어 있어서 그걸 빌릴 수 있었기에 다른 곳에서도 당연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코수멜의 다이빙숍에서는 대여하는 물품중에는 도수가 있는 고글이 없었다. 다이빙을 평생의 취미생활로 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냥 여기서 하나 장만할까도 잠시 생각했는데, 다이빙숍 주인이 새 제품을 뜯더니 빌려주겠다고 했다.


언뜻보니 70달러 정도 했던 것 같았는데 팔려고 가지고 있던 물건을 대여하는 제품으로 바꿔버렸다. 이게 멕시코 사람들의 매력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고 잘 웃었다. 그리고, 타인을 대할 때도 경계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마음가는대로 스스럼없이 대했다. 물론, 이 제품은 앞으로 나처럼 눈이 나쁜 다이버에게 대여되면서 충분히 그 값을 하겠지만 조금만 잘 구슬리면 팔 수 있을텐데도 자기네가 구비하지 못한 잘못이라며 새 제품을 빌려준다니 이 마음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타고갈 배는 커다란 왼쪽배가 아니라 자그마한 오른쪽 배다.


새 고글을 사용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눗물에 고글안쪽을 문질러 닦는 것이다. 새 고글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는데 이 코팅이 그대로 되어 있으면 다이빙중에 고글 안쪽으로 김이 서리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다이빙숍에서 준 비눗물로 계속 문질러 닦았고, 이정도면 됐으려니 하고 첫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채 첫 다이빙을 마쳐야했다. 다이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뿌옇게 김이 서렸고, 고글 안쪽으로 물을 넣고 빼는걸 했음에도 금새 다시 김이 서렸다. 다이빙하는 내내 물 넣고 빼는 연습만 줄창 하다가 결국 다이빙이 끝나버렸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두번째 다이빙을 하기 전까지 지문이 지워지도록 비눗물로 고글을 문질렀고, 그제야 김이 서리지 않았다. 새것이라도 무조건 좋은건 아니었다.


......


코수멜에서는 이틀간 다이빙을 했다. 원래는 더 오래, 더 자주 다이빙을 하려고 했지만 툴룸에서 잃어버린 자금의 영향 때문에 매일 7,80달러에 달하는 다이빙 비용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여행을 마칠 때까지 내내 후회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때론 이것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 그리고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음번 여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되면 항상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하리라.


다이빙을 한 이틀동안 출발전에 배를 찍은 사진이 전부고 정작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하다못해 코수멜 해변이나 시가지를 찍은 사진조차도 없다. 그때는 사진찍는게 귀찮았는데 지금은 무척 아쉽다.


저녁식사는 무조건 새우였다. 다이빙을 마치면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나서 새우를 사러 마트에 갔다. 제일 큼직하고 좋은 새우로 사서는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과 함께 구워 먹었다. 멕시코 남부를 여행하면서 먹었던 새우의 양이 아마 한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먹은 새우보다 많았을 것이다. 정말 원없이 새우를 먹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세운 계획으로는 멕시코 여행의 마지막은 칸쿤에서 편안하게 며칠 보내려고 생각했었다. 최근 몇년간 가장 각광받는 신혼여행지 중 하나인 칸쿤의 고급 리조트에서 편안히 쉬면서 여행 막바지의 피로도 풀 계획이었다. 하지만 툴룸, 아쿠말, 플라야 델 카르멘, 코수멜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나니 칸쿤이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현지사람들의 이야기도 칸쿤은 파도도 많이 치고 해변이 다른 곳에 비해 좋지 않다고 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리조트 안에 머무는 것보다 차라리 하루종일 바다를 보고 있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칸쿤을 포기하고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셀하(xelha,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해상공원)에 다녀오기로 일정을 바꿨다.


하루하루 멕시코를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게 아쉬웠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경찰서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숙소가 있는 아쿠말로 왔다. 사실 굳이 툴룸에서 차로 30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쿠말에 올 필요는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아저씨가 아쿠말 해변에서 스노클링으로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던 이집트 후루가다에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었지만, 정말 보기 어려웠던 대형 해양동물은 돌고래와 바다거북이였다. 열흘 넘게 다이빙을 하면서도 돌고래와 바다거북이는 서너번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다이빙이 아니라 스노클링만으로도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다니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쿠말에 도착해 아저씨가 적어준 주소를 보고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은 잠겨 있고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서 대문 앞에서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통화도 안되어서 대문 앞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겨우 통화가 되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어디에선가 돌아와 숙소 문을 열어주고 방을 배정해주었다. 이미 오후해가 많이 기울어있어서 스노클링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해변이라도 구경할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아쿠말은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과 리조트가 있는 해변이 툴룸에서 칸쿤까지 이어진 큰 도로에 의해 나뉘어 있었다. 해변으로 가려면 육교를 통해 윗 사진에 보이는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해변으로 가는 길. 어째 초점이...



해변을 거닐다 돌아오니 금방 석양이 지고 어두워졌다. 아쿠말 마을에는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작은 식당 몇 곳을 제외하고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서 마을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나처럼 바다거북이를 보는데 정신이 팔린 사람이 아니라면 플라야 델 카르멘이나 툴룸에서 묵으면서 당일치기로 아쿠말에 와서 스노클링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


......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해변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이빙센터에서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를 빌리고 바다로 나갔다. 장비를 빌릴 수 있는 곳은 모래사장 뒤편 다이빙센터와 해변에 바로 접한 야외 매장 두 곳에서 빌릴 수 있는데 가격은 약간 더 비싸지만 스노클링을 마치고 샤워장을 사용할 수 있는 다이빙센터에서 빌렸다.


바다거북이를 볼 생각에 들떠 해변으로 나오긴 했지만 막상 이 넓은 바닷속 어디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곳에 거북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바다 어디에서 거북이가 나올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바다를 다 살펴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어디에 가야 거북이를 쉽게 볼 수 있을지 물었다. 근데 이 사람 반응이 특이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휘휘저으며 해변 전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내 말을 이해 못했나보다 생각했지만 그냥 고맙다고 하고 일단 바다 위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바다속으로 들어가니 아쿠말 바다밑은 모두 곱고 하얀 모래였다. 얼마 들어가지 않았는데 여러 무리의 물고기 떼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온 모래바닥에 짧은 해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쿠말에서 바닷속 사진을 찍으며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를 맞추지 않은 것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깊은 수심에서 카메라를 보호하는 아쿠아팩이 없어서 수중에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었다. 이때 처음으로 물놀이용 아쿠아팩을 사용해 수중에서 사진을 찍어본 것이라 화이트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게도 사진이 모두 푸르딩딩하다.



오리발을 저어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다보니 갑자기 바다밑바닥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거북이는 느릿하지만 우아하게 움직이며 밑바닥에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바다거북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 곳에 사는 바다거북이가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다. 해변에 세워진 표지판에 큰 것은 최대 1미터 조금 넘게 자란다고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종류는 몰라도 곧바로 바다속에서 이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는 커다랗고 순하게 생긴 동물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바다거북이가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짧은 뒷발은 쭉 뻗고, 커다란 앞발을 마치 날개짓을 하듯 천천히 펄럭이며 헤엄친다. 이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그리고, 순박하게 보이는 커다란 눈과 뭉특하지만 꼭 다문 입이 (나보다 훨씬 높은 연배겠지만...) 무척 귀엽다.


마치 무중력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만난 거북이를 살금살금 따라다니다보니 어느새 이곳저곳에서 다른 거북이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제서야 해변 어디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냐는 물음에 황당하다는 듯 해변 전체를 휘휘 가리키던 현지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거북이는 이곳 바다 밑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거북이를 따라 다니다가 가오리를 만나기도 하고...


이곳에 사는 거북이는 모래바닥에서 자라는 해초를 먹고 산다. 잔잔한 바다위에 떠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다거북이가 해초를 뜯을 때마다 '또독', '또독'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해초를 뜯다가 숨이 가빠지면 천천히 물위로 올라와서 한번 숨을 쉴만큼 짧은 순간 수면에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바다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해초를 뜯는 행동을 반복한다. 거북이는 이 단순한 행동을 반복할 뿐이지만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이전에 본 바다거북이의 입은 앵무새의 부리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곳의 거북이는 입이 뭉툭한 편이었다. 아마도 바닥에서 해초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뜯기 좋도록 뭉툭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잠깐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쉰다.


저 점잖고 순해보이는 눈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제법 큰 가오리를 만났다. 물속에서는 30%쯤 크게 보인다고 하지만 꼬리까지 길이가 2미터는 훨씬 넘어보였다.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를 볼 때 주의할 점은 절대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과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흥분된 마음에 조금 가까이 다가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지나치게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 이곳이 잘 알려진 바다거북이 서식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인간은 단지 지켜볼 뿐이다.



꼬박 이틀 동안을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만 보면서 보냈다. 툴룸에서 당한 좋지 않은 일의 결과로 경비가 썩 넉넉하지 않아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입술이 파래질때까지 오랫동안 거북이를 보고 있는게 너무도 좋았다.



아쿠말의 해변. 깊지도 않고, 물도 깨끗해서 그냥 해수욕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발목보다 조금 깊은 곳에서 뭔가 있어서 보니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다니고 있었다. 물고기조차도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 음식냄새가 나자 발치에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쿠말은 툴룸에서 받은 약간의 상처를 치유했던 곳이었다. 여행중 첫번째 당한 소매치기(혹은 절도?)에 금전적인 피해도 상당했다. 소매치기를 당한 시점이 멕시코여행 초반이었으면 이곳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나빠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이후로 어떤 좋은 곳에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했거나, 어쩌면 일정을 줄이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주간 멕시코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미 멕시코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터라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작고 조용한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를 따라다니며 이틀을 지내다보니 그 일은 훨씬 쉽고 빠르게 잊혀졌다.


물속에서 바다거북이와 춤췄던 이틀은 쉽게 잊혀지지않을 기억이 되었다.(물론 춤이라는건 내 입장에서만이다.)


......


- 툴룸에서 소매치기 사건을 위주로 쓰다보니 몇 가지 빠뜨린게 생각났다. 소매치기를 당한 다음날 퍼블릭 비치에 갔었다. 화내고 짜증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내 성격중 조금은 장점이 아닐까싶다.) 퍼블릭 비치 누워서 코로나를 마시며 바다를 보는 것도 무척 좋았다. 편안하게 누울 자리가 필요하지 않다면 놀기에는 프라이빗 비치보다 퍼블릭 비치가 더 나았다.


- 아쿠말에서 둘째날, 아저씨의 추천으로 아쿠말과 툴룸 사이에 있는 조용한(길가에서 입장료를 받는 현지인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바닷가를 찾았다. 거기는 거북이와 가오리, 각종 해양생물들을 볼 수 있는 훌륭한 포인트라고 했다. 입장료(바다거북이 보호기금 같은)까지 내고 갔지만 커다란 가오리와 작은 바라쿠다 한마리씩 본 것 말고는 특별한 해양생물이 거의 없었고 파도도 꽤 심해서 다시 아쿠말 해변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카리브해에 도착했다. 어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고, 툴룸 시내는 해변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이곳이 바다에 접한 곳이란 것을 인식하기 어려웠지만 분명히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나마 나고 있었다.


이튿날 숙소에서 툴룸 해변에 대해 물었다. 바다에 접한 마야유적지가 있는 곳은 퍼블릭 비치쪽이었고, 그 아래로 레스토랑이나 펍들 소유의 프라이빗 비치가 늘어서 있다고 대답해주면서 지도에 괜찮은 레스토랑이나 펍을 표시해주었다. 숙소에서 준 지도를 들고, 마침 바닥난 경비를 은행 ATM에서 인출하고나서 지도에 표시된 프라이빗 비치 중에 하나를 골라 택시를 탓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해변을 가봤지만 어느 해변에서든 자리를 까는 것은 퍼블릭 비치의 야자나무 그늘이었지 깨끗한 베드와 차양이 쳐진 프라이빗 비치는 처음이었다.




카리브해는 아름다웠다. 더구나 푹신한 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면서 보니 환상적인 색의 바다와 강렬한 햇살, 이국적인 야자나무가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좋아보였다.










하지만, 불행이나 사고는 항상 마음을 놓고 있는 그 순간에 닥친다는 격언이 이번에 정확히 들어맞아버렸다.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나서 오후의 햇살이 서서히 스러질 때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마신 칵테일 값을 지불하기 위해 가방을 열었더니 있어야할 지갑이 사라져있었다.


해변으로 올 때 은행에 들러서 현금을 찾았으니 지갑을 숙소에 놓고 왔을 수는 없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요금을 지불했으니 택시에 빠뜨렸을 가능성도 없었다. 해변에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누군가 가방을 뒤져 지갑만을 가져간 것이다. 지갑은 명품이거나 가죽으로 된 훌륭한 것도 아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말시장 가판에서 산 조그만 천으로 된 지갑이었다. 하지만 지갑에는 하필이면 그날 인출한 현금 수십만원과 국제현금카드를 겸하는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프라이빗 비치라고 해서 왔는데 소매치기가 손님의 가방을 뒤지는 동안 너희들이 아무것도 못봤다는게 말이 되는거냐고 레스토랑 매니저에게 따졌다. 매니저는 프라이빗 비치지만 해변으로는 아무나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경찰을 불러주겠다, 칵테일 값과 택시비는 받지 않을테니 얼른 숙소로 가서 조치를 취해라 등등의 말만 할 뿐이었다. (사실 그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을 거다.)


경찰이 오고 의례적인 질문이 몇 번 오간 후에 가능성은 적겠지만 소매치기를 잡고 싶다면 경찰서로 와서 조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화가 나고 짜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 어느 경찰이 여행자가 지갑을 분실한 것을 신경쓰겠냐 싶기도 하다. 게다가 여기는 이런 것은 범죄축에도 못끼는 멕시코가 아닌가 말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스마트폰으로 카드 결제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다. 부랴부랴 카드사에 전화해서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정신을 차리니 이미 소매치기가 카드로 사용한 금액이 꽤 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분실한 카드가 사용되었을 때 어떻게 보상을 받는지 찾아보고 카드사의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분실한 카드가 사용되었을 때 카드사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하고 그에 대한 증서(정확하게 뭐라고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를 받아야 한다. 그 후에 카드사의 심사관이 심사를 해서 보상액수를 결정하게 된다. (보상액이 피해액의 50% 이상이면 양호한 수준인 것 같다.) 피해액이 적다면 차라리 무시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데 피해액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보니 툴룸의 경찰서를 찾아가야했다.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지만 굶어서는 아직 남은 일을 처리하기 힘들테니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었다. 좋아하던 멕시코 음식인데 이날의 음식은 맛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어째서 툴룸 경찰서는 그렇게 외진 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서라면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어야 사건이 생겼을 때 출동하기도 좋을테고 사고를 당한 사람도 찾아가기 좋을텐데, 툴룸 경찰서는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한참 가야하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사방이 어두운데 경찰서말고는 불빛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는 사람들도 없어서 경찰서에서 사고를 당해도 조치를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찰서 담당자는 먼저 온 현지인 아저씨와 조서를 작성중이어서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그리고, 조서를 작성하러 들어갔더니 담당자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피해보상이고뭐고 전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구세주로 나타난 사람이 먼저 조서를 작성중이던 현지인 아저씨였다. 멕시코 사람답지않게 키와 덩치가 무척 큰, 약간은 험상궃게 생긴 아저씨가 나서서 담당자와 통역을 해주었다. 


이 아저씨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조서 작성을 마치고 증서를 받고나서 아저씨와 이야기해보니 아저씨의 가족이 안좋은 사고를 당해서 경찰에 신고하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쿠말(툴룸과 플라야 델 카르멘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숙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한번 들르라면서 연락처를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중 처음 멕시코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날에 다시 친절한 멕시코인에게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가족이 당한 사건을 신고하러 왔음에도 외국 여행자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통역을 해주고(실제로 조서를 작성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태어나서 처음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한게 멕시코라니...) 여러가지 조언과 감정적인 위로까지 해주었다.


툴룸 경찰서의 복도 대기실


경찰서에서 돌아와 우울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다음날 바로 툴룸을 떠나기로 했다. 카리브해에 접한 툴룸의 마야유적도 보기 싫었고, 그냥 툴룸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여행중 처음으로 멕시코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지만 멕시코와 멕시코 사람들이 싫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어제 만난 친절한 아저씨 덕분일 수도 있다. (고백하자면 그 아저씨의 도움과 친절이 너무 커서 뭔가 요구하는 건 아닐까, 무슨 목적이 있는건 아닐까 의심도 했었다. 내가 좋은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 친절까지 의심했던게 많이 부끄럽다.)


숙소에서 나와 점심으로 길거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아쿠말로 떠났다.



밤새 생각해 본 결과, 지갑을 훔쳐간 사람은 레스토랑에 있는 누군가가 포함된 소매치기 조직인게 틀림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했던 썬베드가 해변 안쪽에 있어서 외부에서 누군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데다가 카드가 분실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대형 쇼핑센터에서 사용이 시작되었다. 레스토랑의 누군가 소매치기해서 건네주면 가져가서 결제가 되도록 하는 일사분란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사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지만 외국에서는 분실카드 사용이 빈번하기 때문에 영수증과 신용카드의 사인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에 여러군데에서 결제가 가능했다는 것은 쇼핑몰에도 소매치기 조직과 한통속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행중에 꽤나 신경쓰고 조심했었다. 그래선지 흔하게 발생하는 소매치기도, 도난사고도 한번 당하지 않고 10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여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예외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은행을 다녀 온 뒤에 그 돈과 카드는 숙소에 두고 가지 그대로 가지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해변에 가방을 가지고 가지도 않았을테고, 필요한 만큼의 돈만 가지고 갔을 것이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른 날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화가 나고 속 쓰린 일이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여행하는 동안 신체적인 위험이나 큰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으니 그 정도는 다행한 일이 아니었나싶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럼에도 카리브해는 아름답게 느껴졌고, 곧 멕시코 음식도 다시 맛있어졌으며, 멕시코 사람들도 싫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리다에서 버스를 타고 치첸잇사로 향했다. 멕시코의 가장 큰 버스회사는 ADO인데 여느 남미의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편안했다. 버스에 짐을 실을 때도 승차권을 보고 짐에 태그를 붙여주고, 내려서 짐을 찾을 때도 승차권을 확인하고 내어주기 때문에 짐이 바뀌거나 잘못 찾을 일이 줄어든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그 나라의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반밖에 안되는 멕시코의 각종 사회 인프라 중에서 적어도 버스 시스템만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훌륭하다.



메리다, 치첸잇사 그리고 오늘 최종 목적지인 툴룸은 모두 유타칸 반도 끝에 있어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다. 치첸잇사는 근처에 머무를만한 도시가 없어서 유적을 보고나서 바로 버스로 카리브해에 면한 도시이자 또다른 마야유적지인 툴룸으로 가기로 했다.


치첸잇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입장료를 사고, 배낭을 맡기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섰다. 유적이 워낙 넓어서 모든 짐이 다 들어있는 2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매고 다닐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안내소에서 배낭여행자들을 위해 무료로 짐을 맡아주고 있었다.


유적보다 먼저 눈에 띄인 것은 유적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판에서 팔고 있는 각종 기념품들이었다. 나무로 깎아서 색칠한 마야인의 마스크, 마야달력, 마야인들이 숭배했던 동물 등 크기가 다양하고 모양이 인상적인 기념품들이 많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나서 나중에 멕시코를 떠올리기에 무척 좋은 기념품들이었지만 짐이 늘어난다는 핑계로 사지 않았다. 결국 '하나쯤은 괜찮았을텐데...'하고 요즘 후회하고 있다.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치첸잇사는 '우물가 잇사의 집'이라는 뜻이다. 서기 5세기 경 잇사(Itza)족이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가 7세기말에 버려진 후, 다시 300년이 지나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13세기 중반 잇사족이 다시 이곳을 떠났다. 거대한 건축물과 뛰어난 문명을 이룩했던 이들이 어째서 결국 이 도시를 버리게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다고 한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치첸잇사의 대표유적. 피라미드 꼭대기에 쿠쿨칸의 신전이 있어서 쿠쿨칸의 피라미드라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유적은 치첸잇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마야의 피라미드다. 지금까지 와하까, 빨렝께 등에서 여러차례 마야유적지에서 피라미드를 봤지만 치첸잇사의 피라미드가 가장 복원이 잘 되어 있었다.


엘 카스티요(El Castillo, 성채)라고 불리는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해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마야인들의 놀라운 과학기술(특히 수학과 천문학)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각면의 돌계단이 91개인데 네면을 모두 합하면 364개가 되고 마지막으로 쿠쿨칸의 신전을 합하면 365개로 1년 365일을 나타낸다. 이것만으로는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춘분과 추분에 해가 질때 쿠쿨칸 신전에서부터 시작된 뱀모양의 그림자가 해가 질수록 길어지면서 신전을 타고 내려와 맨 아랫쪽에 있는 뱀 머리모양의 조각과 연결된다고 한다. 천년 전에 이미 1년 365일과 춘분과 추분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어낸 마야인의 문명이 놀랍다. 더구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서로 문명을 교류하며 발전한 것과 달리 마야인들은 독자적으로 이룬 문명이라 더 대단하다.

마야인들의 구기 경기장 모습이 보인다.


왼쪽 전사의 신전과 오른쪽 쿠쿨칸의 피라미드


마야문명은 건축술, 천문학, 수학에서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 것에 비해 인신공양이 흔히 행해지는 문명이기도 했다.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아포칼립토'에 잘 나타난다.) 그 대표적이면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풍습을 마야인들의 구기장에서 볼 수 있다.


커다랗고 단순한 구기장의 벽면 가운데에는 돌로 만들어진 동그란 장식물이 튀어나와 있다. 마야인들은 두편으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의 구멍에 공을 집어 넣는 경기를 했다고 한다. 더구나 손을 쓰지않고 어깨, 허리, 다리, 등만을 써서 공을 집어 넣는 경기라고 한다.(과연 집어넣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경기의 목적이 이긴 편 주장의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진 편도 아니고 이긴 편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들은 가장 용맹하고 뛰어난 전사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기 위한 목적이었고, 선택된 사람도 영광으로 받아들였다니...


저 높고 조그만 구멍에 손을 쓰지 않고 공을 집어 넣는다는게 과연 가능할까? 메시라고 해도 한참 걸릴 것 같은데?




비록 많이 마모되었어도 마야인들의 부조는 대단히 화려하고 섬세하다.


유적 돌무더기에서 만난 이구아나(?)


수백, 수천개의 돌에 모두 해골모양이 새겨져 있다. 마야인들의 죽음에 대한 사고는 다른 민족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치첸잇사 유적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세노떼가 있다. 메리다에서 봤던 맑고 깨끗한 작은 세노떼가 아니라 무척 커다란 웅덩이에 물도 무척 지저분해 보이지만 유적으로서는 커다란 가치를 지닌 곳이다. 이 세노떼는 인신공양이 행해지던 곳이라고 물 밑에서 많은 수의 어린아이들의 인골과 각종 장식품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인들이 남미를 지배한 이후에도 인신공양이 행해졌기 때문에 질겁을 한 스페인 지배자들이 이 풍습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세계의 고대문화에서 인신공양은 여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에서도 있었다고 하니 특정 지역만의 특이한 풍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행해졌던,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이런 풍습이 과학의 발달과 인류의 성숙으로 사라졌다. 먼 미래에 오늘날 우리 사회를 고찰할 후손들은 우리에게서 어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찾아낼지 궁금해진다.




제물로 바쳐진 인간의 심장을 올려두었다는 제단과 비슷하게 생겼다.


치첸잇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유적은 전사의 신전이다. 신전 아랫부분은 수많은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고, 맨 위에는 제물로 바쳐진 전사의 심장을 꺼내 올려두는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천문학과 수학에 밝았던 마야인들의 유적에는 대부분 천문대가 있다. 그 모습마저도 지금의 천문대와 매우 비슷하다. 





몇 시간동안 유적을 돌아다니고 나니 식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매표소가 있는 건물에 레스토랑이 있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무척 깔끔하고 맛있어 보였지만 관광지에서 파는 음식이 항상 그렇듯이 그다지 훌륭하진 않았다.


아보카도와 커다란 새우가 버무려진 샐러드는 보이는 것만큼 훌륭하진 않았다.


치첸잇사에서 버스를 기다려 툴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이었다. 더구나 예약한 숙소는 버스터미널에서 꽤 멀었기 때문에 다시 가로등이 없는 길을 한참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저녁식사를 하러 나갈 마음이 별로 생기진 않았지만 부실한 점심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숙소 주인에게 근처에서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해산물 식당 위치를 듣고 어두운 길을 되짚어 나갔다.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진 식당은 겉으로는 볼 품이 없었지만 현지에서는 꽤 유명한 곳인지 현지인들이 꽤 많았고, 빈 테이블에도 식사 후에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제법 놓여 있었다.


새우와 오징어, 생선살이 잔뜩 들어간 해산물 샐러드. '이런게 해산물 샐러드다'라고 하는 듯.


얼큰한 해물탕 맛하고 똑같은 해산물 스프. 게, 새우, 오징어, 생선이 잔뜩 들어가 있다.


완전 최고였던 해산물 스프


멕시코의 가장 유명한 맥주는 코로나지만 현지에서는 이 Sol 맥주를 많이 마시고 있었다.


툴룸 해산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빨렝께와 더불어 멕시코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다시 숙소로 어두운 길을 걸어 돌아왔지만 훌륭한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탓에 어두움조차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제 밤늦게 메리다에서 맥주를 사러 가게에 갔더니 냉장고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알고보니 10시가 넘으면 술을 못팔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냉장고를 자물쇠로 채우는 것이었다. 툴룸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면서 오늘은 꼭 맥주를 사리라 결심하고 가게에 갔는데 역시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분명히 10시 전이었는데도... 왜 그런지 점원에게 물어보니 9시 넘으면 술을 팔 수 없다고 했다. 10시 아니냐고 따졌더니 9시라면서 너 어제 어디에 있었냐고 물었다. 메리다에 있었다니 그제야 메리다하고 툴룸은 다른 주라서 법도 다르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젠장, 그 정도는 주들끼리 좀 맞추라고!


다음날 메리다에 방문한 첫번째 장소는 미술관이었다. 정확히 무슨 미술관이었는지는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고,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전시된 미술작품도 세계적인 작가도 아닌 것 같고, 전시물의 종류나 양도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개성있고 재밌는 전시물도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이 미술관 전시물의 상당부분이 도자기나 흙을 구워서 만든 알록달록한 도기로 만든 작품이었다. 현대미술에 문외한이니 작가가 이 작품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도기들을 재밌는 형태로 쌓아놓은 게 독특했다. 관람객이 잘못해서 건드리기만해도 떨어져 파손될지 모르는데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그냥 전시되고 있었서 괜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또르띠야를 굽는 멕시코 여인






귀여운 소녀가 미술관 정원에 '미술관은 지루해'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어서 웃음이 낫다.



아직 12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가게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미술관에서 나와서 다음으로 간 곳은 메리다 역사박물관쯤 되는 곳이었다. 역사박물관이라해서 거창한 유물이나 전시물이 있는게 아니라 메리다 근대 역사를 사진과 간단한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는 조그만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물들을 돌아보던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일 사진을 한장 발견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에는 20여명의 남녀노소가 찍혀 있었고, 사람들의 뒤에는 태극기가 멕시코 국기와 함께 걸려 있었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민족의 아픈 시대를 지내 온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우리나라의 슬픈 이민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목이 막혀왔다.


나라가 힘없던 시절, 위정자는 백성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지킬 욕심으로 외세에 빌붙던 시절에 힘없던 백성들은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찾아서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하와이로, 멕시코와 쿠바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사탕수수나 선인장 농장에서 노예와 다를바 없는 고된 노동과 궁핍한 삶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의 고난한 삶을 그린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본적은 없고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애니깽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어째서 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는지 몰랐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애니깽이란 스페인어 Henequen(용설란의 일종)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후, 쿠바 이민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나 고된 삶을 이겨내고 지금은 쿠바에서 자리잡고 살아가고 있는, 하지만 너무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도와 쿠바 공산화를 이루었으며 장관까지 역임한 분도 계셨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쿠바와의 국교 단절로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지금은 이민 1세대는 다 돌아가시고 2세대 분들도 무척 고령이시지만, 본적도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아리랑을 부르실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큐멘터리 방영 후에 정부와 기업의 노력으로 (그것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국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우연히 퇴근길에 삼성동 모호텔 앞에 주차된 관광버스에 쿠바교포들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것을 보고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난다.


이 분들이 가지고 계셨던 돈은 안타깝게도 일본 지폐였다.


100년도 전에 머나먼 멕시코 유타칸 반도의 열대농장에서 이들이 겪었을 고난과 궁핍함이,

게다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메리다 마지막 날의 점심은 이 부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몰레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유명하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레스토랑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다렸다 자리에 앉으니 먼저 식당 한쪽에서 또르띠야를 굽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몇 시간 전에 미술관에서 봤던 그 그림 그대로였다.



방금전에 구운 따뜻한 또르띠야가 흰 천에 싸여 나왔다.


세 가지색 몰레


닭고기가 들어간 까만색 몰레


메리다에서 먹은 몰레는 와하까의 몰레와는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의 김치도 각 지역마다, 재료마다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와하까에서 한참 떨어진 메리다가 똑같은 몰레를 만들리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와하까에서 먹은 몰레가 입맛에 더 맞았다.


밤이 되어서는 날마다 벌어지는 공연을 보러 갔다. 그 날은 하얀 옷을 맞춰 입은 연주자들의 연주와 노래, 민속춤 등이 공연되었다. 그리고, 마련된 좌석은 이미 현지 사람들과 여행자들로 꽉 차 있었다. 

 


비싼 공연이 아니라 소박하면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날마다 벌어진다는게 놀랍고도 부러웠다.









메리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은 멕시코에 있는 수많은 마야유적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치첸잇사를 거쳐 툴룸으로 가야했다. 이제 계획했던 멕시코 여행도 반쯤은 지나고 있었다. 어서 카리브해의 바다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메리다에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여행 초기였다면, 혹은 남아있는 여행일정이 많았다면 일정을 변경해서 더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여행중에는 간혹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거주자로 머무르고 싶은 도시들이 있다. 뛰어난 자연경관이나 훌륭한 문화유적, 살기에 좋은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 아님에도 자꾸만 정이 가는 곳이 생기곤 한다. 분명 멕시코는 이방인이 마음놓고 편하게 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나라인데도 여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곳들이 자꾸 늘어났다. 비단 여행지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것이 비슷하다.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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