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로 일주일 이상 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가끔 여행 중이었을 때를 생각하고 언젠가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면 현재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여행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에서의 여행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포르투갈에서는 리스본에 도착한 다음날 브라질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래서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자, 실질적으로 유럽에서 마지막 여행지는 세비야가 되었다.


보통은 이탈리아 음악가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오페라로 유명한 이 도시는 (사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무척 유명한 이야기라 로시니의 오페라가 가장 유명할뿐, 이 내용으로 만들어진 오페라가 여럿이다) 대항해시대에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항구로 발달하였다고 한다.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비야 대성당이다. 원래 이슬람지배하에서는 모스크였다는데 레콩키스타의 완성 후, 성당으로 재건축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이자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 크기도 무척 크지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어서인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톡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나 사진 위의 히랄다 종탑은 모스크의 미나렛을 개조하여 성당의 종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모양이나 무늬가 이슬람 건축물과 유사하게 보였다.


역시나 고딕양식의 건축물답게 화려한 기둥양식들이 하늘로 치솟아있다.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던 청동상...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이며 용도가 풍향계라고 한다.


우습게도 블로그를 쓰며 사진을 유심히 보니 바로 위의 사진의 청동상과 히랄다탑의 꼭대기에 있는 청동상이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온통 번쩍이는 금빛에다 노란 조명까지 더해져 내부는 무척이나 화려하다. 게다가 붉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은 여지껏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었다.


성당 옆에는 안뜰이 있는데 이 구조가 이 곳이 예전 모스크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돌로 만들어진 바닥 사이로 분수에서 이어진 물길 같은 것이 나무까지 이어져 있어서 더욱 독특했다.





세비야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성당 자체가 갖는 건축학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이 곳에 그 유명한 탐험가 콜럼버스의 관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성당의 지하에 묻힌게 아니라 옛날 에스파냐로 통일되기 전 주요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나 앞줄의 두 왕의 발끝은 맨들맨들하게 닳아 있는데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내부에 있는 피에트로 상의 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것과 비슷하다.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보던 중, 더위를 먹었을 때 증세와 비슷하게 몸에 힘이 빠지고 땀이 났다. 한달 동안 40도를 오르내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다가 막바지에 이르자 맥이 풀린 탓일까... 이런 날은 절대 무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급히 숙소로 들어가 쉬어야 했다. 더구나 저녁에는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플라멩코 공연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중정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무대는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공연의 무대보다 훨씬 작아서 이런 단에서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좁았다.


댄서와 악사들을 소개하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된다. 흔히 플라멩코는 춤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이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문화로서 춤, 노래, 연주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며, 춤을 출 때도 캐스터네츠, 손뼉, 구두를 이용해서 박자를 맞춘다.(이런 점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유사하다.)


복잡다단한 민족적, 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지방의 특성상 플라멩코도 이방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특별히 서정적이라거나 일반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이들의 문화적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처음 보게되면 아름답다, 우아하다는 감정보다는 오히려 생각했던 것과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먼저 받게 된다.


공연은 남녀의 혼성 댄스, 그리고 남녀 무용수 각각의 독무, 기타 연주, 노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시나 춤과 음악은 빠르고 정열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무당의 춤이 연상될 정도로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졌다.


내가 춤에 있어서 젬병이라 그런지 플라멩코 공연보다는 공연이 펼쳐진 스페인 고택의 분위기, 여성 무용수의 육감적인 춤사위, 현란한 무용수들의 동작만 머리에 남아있다.






플라멩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거의 넉달간의 유럽/중동 여행을 마쳤다. 드디어 여행의 클라이막스 남미로 간다.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불안감이 마구 뒤섞인 묘한 기분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이튿날은 협곡 아랫쪽 론다의 옛날 마을에서부터 하루일정을 시작했다. 이날도 아침부터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과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유럽의 도시나 마을 광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공공수도


협곡을 꼬불거리며 내려 온 길은 다른 마을과 도시로 이어져있다.



Puente Nuevo가 지어지기 전부터 사용되지 않았을까 싶은 오래된 다리








길은 협곡 위로 통하는 오르막 길로 이어진다


조금은 위태로운듯 보이는 절벽위의 집들




협곡 아래에는 예전에 사용했을 우물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집(물레방앗간?)이 있고, 절벽 중간에는 그쪽으로 통하는 작은 길이 있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지만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Puente Nuevo는 표를 사서 다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간단한 전시물밖에 없어서 볼거리는 별로 없지만 다리 밑 그늘에 앉아있으면 협곡을 통과하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기 때문에 지친 다리를 쉬었다 가기에는 그만이다.




론다의 또다른 명물은 투우 경기장이다. 론다는 투우의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투우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현대 투우의 창시자로 알려진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이 곳 론다 출신이며, 역대 론다 출신의 스타 투우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에 하나가 이 곳 론다에 있다.


지금도 축제 기간에는 투우 경기를 하는데 그 외에는 투우와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나 유물을 전시해 놓은 기념관으로 사용된다. 재미있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론다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볼만한 곳이다.


관람석 밑으로 투우장을 빙둘러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다.


투우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더라도 당시의 투우 포스터, 그림, 사진, 유명한 마타도르의 물품 등 다양한 전시품들이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남부,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행해지던 투우는 현재 일부 지역이나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잔혹한 문화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거나 반대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이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로 분명하게 나누기 어려운 문제다.



마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과 같은 모습이다.

고대 검투사들끼리의 목숨을 건 결투가 투우로 바뀐 것은 아닐까 싶을만큼 비슷하다.


투우장까지 둘러보고 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어제 먹었던 론다의 음식들이 만족스러워서 이번에는 타파스 레스토랑에서 이것저것 골라 먹어보기로 했다. 하얀색의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어제의 레스토랑보다 가격이나 분위기가 고급스러웠지만 문제는 음식맛이 훨씬 못했다는 것이다.


부실하고 불만족스러웠던 점심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저녁에 찾은 곳은 숙소주변에 있는 낡은 식당이었다. 숙소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 아닌, 현지인들로 붐비는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었다.




낡은 테이블과 단골들이 마시다 맡겨놓은 듯한 술병들이 정겹다. 시끄러운 곳을 유난히 싫어하지만 오래된 식당이나 술집의 번잡함,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는 유별나게 좋아한다. 문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 아닌 레스토랑에서는 웨이터와 대화가 잘 되지 않으니 대충 짐작으로 음식을 시켜야한다는 것이다.(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있거나 영어로 설명되어 있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시킨 음식이 무엇으로 만든 어떤 모양의 음식인지 기대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바르셀로나 민박집에 묵을 때 였다. 저녁식사 후, 주인아주머니와 숙박객들이 간단한 음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아주머니께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어디였는지 여쭤보았을때 대답하신 곳이 론다였다. 그전까지는 론다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여행책자에도 간단한 설명밖에 없었다.


그라나다에서 버스를 타고 말라가를 거쳐 론다에 도착했다. 말라가는 피카소가 태어났으며 지중해의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한 도시지만 대도시보다는 이 작은 도시가 더 끌렸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도착한 론다는 짙푸른 하늘과 하얀 집들이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지경이었다. 작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숙소를 잡고 하루종일 버스를 타느라 부실했던 식사를 만회하기 위해 어제 검색해 둔 론다의 훌륭하다는 레스토랑을 찾아 골목을 헤맸다.




작은 골목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는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자 저녁 영업을 준비중인 뚱뚱한 스페인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으라 손짓으로 가리켰다. 잠시 앉아 있자 기본 메뉴 올리브와 메뉴판을 가져왔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지중해에 접한 국가들은 올리브를 무척 많이 먹었다. 그냥 담은 것을 먹기도 하고 각종 요리에 넣기도 한다. 그리고, 올리브가 발효된 상태에 따라 종류도 무척 많았다. 이들 나라들에서 올리브의 위치는 우리나라의 김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스에서는 적응이 되었는지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가끔 먹긴 했지만 그리 좋은 줄 몰랐는데 몇 개월간 조금씩 꾸준히 먹다보니 이 사람들이 왜 올리브를 먹는지, 그리고 이게 어떤 맛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론다의 레스토랑에서는 인심 좋게도 푸짐한 양의 올리브를 기본으로 가져다 주었다.


껍질이 얇은 새우가 들어간 샐러드

새우도 꽤 많은데다 껍질이 얇아서 껍질채로 먹어도 괜찮았다.


알이 굵은 홍합 샐러드

홍합은 크고 맛있었지만 양이 많지 않은게 아쉽다


짭짤한 맛의 오징어 튀김

우리의 오징어 튀김과 거의 똑같다


이름을 잊어버린 생선튀김


샐러드와 튀김, 빵과 와인으로 훌륭한 저녁식사를 했다. 스페인의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입맛에 잘 맞는다. 주로 고기를 많이 먹는 유럽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은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있고 상대적으로 물가도 저렴해서 주머니 걱정없이 이런저런 음식들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도심을 느긋하게 산책하다보니 론다의 유명한 다리 Puente Nuevo에 이르렀다. Puente가 Bridge, Nuevo가 New 라는 뜻이니 무슨 다리 이름이 이렇게 붙였나 싶었는데, 이 깊은 협곡에 놓인 다리가 1700년대 말에 지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전망대에서 해가 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언제부터인지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워낙 기타로 유명한 나라여서 그런지 거리의 악사지만 연주하는 솜씨가 무척 훌륭하게 들렸다. 해지는 광경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금은 감상적으로 만든다. 그런 상태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기타 연주곡을 들으니 무료로 듣고 있는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작은 사례라도 할 수 밖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악사의 마케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거기서 해지는 광경을 보며 기타 연주를 듣겠냐고 물어보면 망설임없이 그때 했던 사례의 10배를 하더라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특별하고 감미로운 경험이었다.


전망대에서 Puente Nuevo로 걷다보니 까마득하게 깊은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곳보다 훨씬 깊고 넓은 협곡이 많지만 이런 협곡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지어진 것이 놀랍다. 몇 달전 봤던 이탈리아 소렌토의 지형과 매우 흡사했다.




Puente Nuevo, 

이전에 있었던 다리 대신, 새롭게 만들어진 다리라 그랬겠지만 

이 정도로 훌륭하게 만든 다리라면 멋진 이름이라도 하나 지어주었다면 좋았을걸





처음 도착했을 땐 더위와 햇살 때문에 텅 비어있던 광장이 사람들로 붐볐다. 작고 조그만 이 도시는 이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았고, 스페인의 하늘은 밤하늘마저 짙푸른 색을 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알람브라 궁전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슬람 건축물의 하나로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기타 연주곡의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라나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이 궁전은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왕조에 의해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거쳐 지어졌다고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후에도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종교시설이 아니라 궁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타종교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은 그리스도교인들도 이 궁전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알람브라 궁전 입장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대편 언덕에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의 하얀집들과 새파란 하늘, 진녹색의 나무



궁전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모양의 기둥과 세밀한 벽면의 모양이 절로 감탄을 나오게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뿐이었다.



흰 대리석에 정교하게 세겨진 문양을 보면 당시 이슬람의 건축술과 예술성에 감탄하게 된다. 현대에 지어진 어떤 건축물도 이런 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진 못한다.




별빛이 가득한 한여름 밤하늘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이스탄불에서 본 술탄의 궁전은 훨씬 거대한 규모였지만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종유석 동굴의 천장을 보고 있는 듯하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던 당시에도 감탄했지만 블로그를 쓰며 사진을 보고 있으니 그때의 느낌이 다시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루하루 되짚으며 여행 기록을 블로그에 남긴 이후로,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이런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알람브라 궁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라나다 시내와 알바이신 지구








이 둥그런 원통모양의 건물은 알람브라에서 가장 멋없고 다른 건물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이 건물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후, 에스파냐의 왕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국토는 되찾았지만 당시 문화적인 수준은 이슬람쪽이 훨씬 높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도 이슬람 왕조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진 헤네랄리페였다. 나무와 물과 돌로 조화롭게 지어졌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고 더운 날씨에 하루종일 걸은 탓인지 무척 피곤했다. 


아직도 스페인에서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쉥겐조약 탓에 유럽을 떠나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는 포르투갈에서도 일주일 이상 머무르다 남미로 넘어갈 계획이었지만 매력적인 스페인의 도시들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잠시 영국령인 지브롤터로 가서 유럽에 머무르는 기간(60일)을 리셋하고 더 머무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남미의 유혹을 이길 수도 없었다. 결국 포르투갈은 다음번 여행지로 미루고 일단 남은 일정을 론다, 세비야에 모두 할애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바이신으로 향했다. 알바이신 지구는 알람브라 궁전이 지어지기 전부터 무어인의 궁전이 있었던 곳이었으며 이슬람과 안달루시아의 문화가 어우러진 중심지역이었으나 이슬람 세력이 패하여 물러간 뒤에는 남은 이슬람인들의 주거지역으로 쇠락한 곳이다.


알바이신 지구는 강을 사이에 두고 알람브라 궁전의 북쪽 맞은 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밤에 보는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했지만 가는 곳마다 매번 야경을 챙겨볼 수도 없는 일이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아침 일찍 이곳을 찾게 되었다.


좁은 구시가 도로를 돌고 돌아서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골목을 걸어 조그만 광장으로 나오니 시원하게 뚫린 맞은 편으로 알람브라 궁전이 보였다. 아침이라 조용하고 고즈넉했으며 아직 햇볕이 뜨겁지 않았고 선선한 바람마저 불었다. 광장 담벼락에 걸터앉아 오후에 갈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알람브라 궁전 건너편으로는 높은 산들이 보였다. 아마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산들이 아닐까 싶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3000미터가 넘는다고 하는데 겨울철에는 스키를 타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볼 것은 많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나머지 여정을 생략하더라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즐기는 것이 오히려 나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결국 추억이다. 좋은 곳에서는 시간을 들여 바람과 공기와 냄새까지도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머릿속에 꼼꼼하게 새길 필요가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가다보면 조그만 광장이 나오고 다시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광장이 나왔다.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는 그라나다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이슬람 풍이며, 안달루시아 풍인지 구별할 수는 없지만 이 곳의 집들이 다른 스페인 지방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특히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집은 후에 고쳐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독특한 모양이라 기억에 남는다.




알바이신 지구를 밤에 다녀온 여행기를 보면 불빛도 휘황하고 레스토랑이나 기념품점도 많았는데 이른 시간이라 몇몇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조용했다.


골목골목을 돌아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다. 알바이신 지구와 도심을 연결하는 길에는 예전 통행자들이 지나다녔을 성문이 남아 있었다. 꽤 뜨거워진 햇볕도 피하고 지친 다리도 쉴겸,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오랜만에 차이를 마셨다. 불과 4개월 전에 터키에서 차이를 마셨었는데 무척이나 오래전 일로 기억됐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보면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도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되었는데 여행을 하면 매일 다른 하루를 살게 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은 일도 아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일상 생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알람브라 궁전은 더운 오후 일정인데다 넓기 때문에 분명히 체력이 많이 소모될 것 같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큰맘먹고 레스토랑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하몽을 곁들인 샐러드


오징어? 꼴뚜기? 튀김(이름은 잊어버렸다)


생선과 감자요리


밤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 알바이신은 조용하고 평화로와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딱히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발길 가는대로 걸어도 좋고, 탁트인 전망을 보면서 사색에 잠길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적인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게 더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알람브라보다 알바이신에서 보낸 반나절이 더 좋았던게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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