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옮기고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일정상 호주 여행은 시드니에서 마치게 되었지만 아름답다는 이곳 해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뉴질랜드에서 오던 비행기에서 봤다시피 시드니는 해안선이 무척 복잡하고 아름다운 곳어서 이름난 해변도 여러 곳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숙소에서도 가까운 본다이비치로 목적지를 정했다. 이곳은 해변 자체도 아름답지만 파도가 서핑을 하기에 적합해서 시드니의 여러 해변중에서 서퍼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숙소가 좋아지니 한여름의 눈부시게 밝은 햇살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본다이비치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얼마나 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창밖을 구경하며 가다보니 금새 해변에 닿았다.


호주도 영연방국가이기 때문인지 크리켓을 하고 있다. 


해변 주위로는 수많은 숙박시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있어서 이곳이 꽤나 이름난 해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이내 바다로 뛰어들거나 방금 물에서 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다이비치는 이름난 해변이긴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탈의실, 샤워실 등등)은 거의 없었다. 몇몇 곳에 야외 샤워기가 있었지만 (이것도 많이 부족해서 샤워를 하려면 줄을 서야했다.) 탈의실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미리 숙소에서 수영복을 입고 오길 다행이었다. 편의시설이 부족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여름철 성수기처럼 공공해변에 사설 편의시설을 설치해놓고 바가지요금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다.


절대 한적한 해변을 기대하고 가면 안된다. 어느 정도 불편함과 사람 구경할 각오를 하고 가야한다.


해변 오른쪽에는 유료 해수풀도 있긴하다.



몇몇 사진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찍혔는데 이건 절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어디를 찍어도 한두명은 찍힐 수 밖에 없다.


과연 듣던대로 파도가 제법 높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서퍼들은 먼 바다에서 보드에 앉아 좋은 파도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가 파도에 맞춰 보드에 올라탔다. 감탄이 나올만큼 멋있게 타는 사람은 커녕 넘어지지 않고 해변까지 보드를 타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정도 파도는 초급자나 서핑을 하기에 더 좋은 곳에 갈 수 없는 서퍼들이 아쉬움을 달래는 정도인가보다.


해변에 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하다가 바닷물에 몇 번 들락날락 했는데 멕시코 툴룸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기대보다 본다이비치는 아름다운 해변으로써 썩 감흥을 주진 못했다. 로도스의 에게해, 카프리의 지중해, 후루가다의 홍해, 멕시코의 카리브해에서 좋은 바다를 너무 많이 봐왔는지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바다보다 나아보이진 않았다. (정말 뛰어난 곳이 아니라면 제주도의 바다도 세계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





유명한 곳이어선지 한여름 성수기여선지 제법 넓은 해변인데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한동안 해변에서 햇살을 받다 뜨거우면 물에 들어가길 반복하다 지루해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야외 샤워기에서 대충 소금기를 씻어내고 수영복을 갈아입을만한 탈의실이나 장소를 찾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서 바로 갈아입거나 하진 않을테고 어디엔가 갈아입는 장소가 있을텐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찾은 곳이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공공화장실이었다. 실제로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를 올라 들어간 화장실은 내가 지금까지 본 화장실 중에서 최고로 더럽고 지저분한 화장실이었다. 동남아의 재래식 화장실이나 어렸을 때 시골에서 거름을 주려고 인분을 모으던 그런 화장실이 그리울 정도였다. 구역질이 올라올듯 했지만 젖은 수영복을 입고 버스를 탈 수는 없으니 숨을 참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대학교때 봤던 영화 '트레인스포팅'이었다. 극중에 이완 맥그리거가 구토하는 그 변기가 생각났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모습의 시드니였지만 모든 곳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다. 의외의 곳에서 시드니의 허술함을 체험하고 웃음이 났다.



시드니는 여행중 최악의 숙소와 생애 최악의 화장실을 경험한 곳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정돈된 도시와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의 이미지보다는 좋지 않았던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 호주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았던 울룰루와 세계 최고의 해변 중 하나라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갈 수 없었지만 그다지 아쉬움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일이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만 가득했다. 길게 여겨졌던 여행이 이제 지구 한바퀴를 돌아 단 하루만 남겨두고 있었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고 귀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분은 복잡미묘해졌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계속해서 여행을 더 하고 싶었다. 여행중에 가끔 짜증이 나거나 힘든 일도 있고 그럴때면 순간 한국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여행하고 있다는게 다시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편한 여행도 아니고 행색은 꽤죄죄 그 자체였지만 철이 든 이후로 이렇게나 스트레스 없이 살았던 시간은 없었다. 더 이상 하기가 싫어질 때까지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드니에서 묵었던 그 최악의 숙소 사진은 올리지 않으려했다. 내 스스로가 다시 그때 기분을 느끼는 것조차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숙소를 나오던 날 사진을 (더구나 그 날은 몇 장 되지도 않는다.) 정리하다보니 내 매트리스를 찍어놓은 사진이 여러 장 나왔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화가 나서 우리나라 유명 여행까페에 죄다 올려놓으려고 찍었던 것 같다. 몇 년 지나고 나서 다시 사진을 보니 '이런 최악의 숙소가 있었지' 정도로만 생각된다. 시간이 약인지, 독인지...



이 숙소에 온 뒤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 여기저기가 그렇게 쑤시는 것이었다. 근육통이나 잠을 잘못 자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가 찔린듯 아팠다. 귀찮지만 매트리스에 씌워진 시트를 벗기고 보니 어이없게도 매트리스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고 몸을 매트리스에 누이게 되면 스펀지가 내려가면서 아래에서 끊어진 스프링으로 보이는 뾰족한 철심이 몸을 찌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런 구멍이 한두개면 시트를 벗기고 매트리스를 확인하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밤새 내몸을 찔러대던 스프링 철사


시트를 걷어보니 매트리스에 총알 세례라도 받은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매트리스를 들어올려 적의 총탄을 막는 장면이 떠오른다.


게다가 매트리스와 시트에는 죽은 빈대와 빈대가 피를 빨다가 눌려 터진 듯한 핏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틀째 아침에 이 상태를 보고 나서 바로 짐을 싸서 숙소를 탈출했다. 여행을 하면서 아무리 환경이 안좋은 숙소더라도 환불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숙박비를 포기하고 나온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날 폴더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어째서 이렇게 사진이 없을까 의아했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났다. 너무 좋지 않았던 숙소의 반대급부에다 여행 마지막 숙소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꽤나 좋은 숙소를 잡았다. (보통의 게스트하우스는 여전히 만원이라 자리를 구할 수 없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짐을 풀어 하루종일 빨래를 돌렸다. 앞 글에서도 썼지만 빈대에 한번 물리면 모든 옷을 다 세탁하고 빨 수 없는 것들은 햇볕에 말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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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글을 쓰고 석달이 넘게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올린 글이 7월 31일이었으니... 일이 갑자기 바빠졌거나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오지에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블로그에 접속하기 싫었고, 글을 쓰는게 무서웠다. 이제 하루나 이틀이면 1년간의 여행기가 모두 끝날터였다. 그 뒤에는 써야할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아예 묻어놓고 노트북도 켜지 않았다. 가끔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할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 엊그제 바꾼 아이폰의 백업을 위해 거의 100일만에 노트북을 켰더니 쓰다만 페이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가 봐주길 바래서가 아니라 여행을 잊지 않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인데 나는 여전히 4년전의 그 여행을 마무리할 마음이 생각이 없었나보다. 어쨌든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여행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도록 앞으로도 다녀온 여행을 꾸준히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좋은 숙소로 옮긴 다음 근처 수산물 시장으로 향했다. 이전 숙소는 부엌조차 도저히 음식을 만들 수가 없을 정도로 더럽고 지저분해서 군침도는 해산물들을 보고도 살 생각을 못했었다. 이제 깨끗하고 멋진 부엌이 생긴 김에 몸보신이 하고 싶어졌다. 커다랗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우와 초밥용으로 다듬어놓은 연어 한토막, 호주산 와인까지 샀다. 남미나 멕시코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무척 저렴한 편이라 돌아가기 전에 실컷 먹어둘 생각이었다.


소금구이도 버터구이도 아니다. 그냥 올리브유를 두르고 구울 뿐이지만 재료가 좋으니 더 바랄게 없다.


뉴질랜드에 이어서 다시 연어초밥에 도전했다. 연어가 살이 무르고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라 첫 시도에는 껍질을 벗기고 손질을 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모양도 엉성했고 힘을 과하게 주다보니 살이 부서지기도 했다. 이번이 세번째 시도였는데 이번에는 모양이 꽤 마음에 들게 나왔다. 그냥 밥을 뭉쳐 연어살을 올린 것을 간장에 찍어 먹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고급 초밥집의 그것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이런 재미가 여행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호주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때 먹은 연어초밥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찬이었다.



얼마전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이번 휴가지는 쓰촨성 청두를 거쳐 주자이거우와 황룽이었다. 와라스 69호수의 감동, 파타고니아의 광활함이나 메이리설산의 웅장함까지는 아니었지만 가을이 완연한 주자이거우는 아름다웠다. 길고 길었던 이 여행기를 마치면 그걸 정리해야겠다.

다음날, 밤새 빈대로부터 맹렬한 공격받은 줄도 모르고 눈을 떴다. 빈대는 내가 누웠던 침대 벽쪽 어딘가에 서식하는 듯, 벽쪽으로 누웠던 팔, 다리로 집중 흡혈을 하고 사라졌다. 한쪽 팔다리만 수십군데의 붉은 반점이 생겼다. 어떻게 한두군데도 아니고 그렇게 물리는 동안 모를 수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빈대는 모기보다 훨씬 교묘하게 물고 사라진다. 그리고, 물리고 난 다음 가려움은 모기보다 심하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숱한 벌레들의 괴롭힘에 면역이 되었기 때문일까, 인터넷에서 본 여행 중 빈대로 고생했던 사람들 괴로운 경험담보다 훨씬 덜 했다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빈대에 물린 자국을 긁으며 시드니에서의 이틀째 여정을 시작했다.


뉴질랜드도 그랬지만 호주에도 타이 음식점이 많았다. (동남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 사람들로 붐비는 타이 음식점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 꽤 비싸보이는 집이라 선뜻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입구에 마련된 메뉴판에 '보트 누들'이라는 이름을 보고나서는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음식 가격도 한국식당의 메뉴보다 훨씬 저렴했다.


보트누들은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자주 먹었던 고깃국물을 진하게 우려낸 쌀국수다. 영문명이 어째서 보트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부들이 고기잡는 중에 보트에서 먹던 국수인가?) 이 국수를 거의 1년만에 지구 한바퀴를 거의 다 돌아 여기에서 먹을 수 있다니... 약간 감격스러웠다.


맛은 있었으나 양이 적다. 하긴 태국음식들은 뭐든 양이 적었다.


아침식사로 태국 쌀국수를 먹고 이 날의 첫 일정으로 찾아간 곳은 시드니의 피쉬 마켓이다. 앞서 여행했던 오클랜드에도 피쉬 마켓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종류도 많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부산 자갈치 시장 같은 곳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머물렀던 곳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처음 가는 길을 구경삼아 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끔 지도에 있는 길이 실제로는 나타나지 않거나, 건널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길이 중앙분리대가 있는 넓은 차도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시드니 피쉬 마켓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무척 붐볐다. 여러 동으로 나뉘어진 건물마다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들이 가득 했다. 워낙 해산물을 좋아하다보니 보이는 것마다 모두 사서 먹어보고 싶었다. (물론 고기류도 좋아하지만 고기는 구경하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물가가 비싼 동네다보니 다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사지도 않을 해산물들을 사진만 엄청 찍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도미로 불리는 스냅퍼, 바다송어, 무지개송어, 연어, 가리비와 바닷가재 등등...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칠레에서는 너무 싸서 정말 이 가격이 맞나 의아했던 해산물이 여기서는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쉽게 사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중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격 차이가 많이 나거나 가격대비 저렴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노하우다.


아, 연어.... 크고 먹음직스러운 연어...



피쉬 마켓에서 해산물을 대량으로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현지인이고 여행자들은 조금씩 포장해 놓은 해산물을 사서 공용 테이블에서 먹거나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메뉴를 즐길 수 밖에 없다. 연어나 새우, 가리비 등을 무척 사고 싶었지만 그 지저분한 숙소 주방에서 이 좋은 재료를 요리할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만 가득 안고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주방에서 연어회를 떴다가는 식중독에 걸렸을 것 같다.


맛있지만 튀김옷이 두텁고 기름졌다.


레스토랑에서 맛 본 메뉴는 갓 탈피를 한 게를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것이었다. 탈피를 하고 나면 게껍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튀겨서 통째로 먹을 수 있는데 무척 고소하고 맛있다. 피쉬 마켓에서 먹은 이 게튀김도 나쁘지 않았지만 베트남 호치민 로컬 음식점에서 먹은 게튀김에 비하면 소문난 맛집과 쇼핑몰 푸드코드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피쉬 마켓을 구경하고 온 길과는 다른 길로 시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서 본 선착장에는 특이하게도 크고 작은 요트들 사이로 군함과 잠수함이 정박해 있었다.




서울의 명동과 같은 시드니의 상업지구.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수준이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폭스바겐의 오래된 미니버스. 성능과 연비는 좋지 않겠지만 이런 단순하면서 클래식한 디자인은 좋다.



번화가 사거리 모퉁이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보니 간판이 'PUB'이었다. 그런데 그 위에는 음각으로 'BANK OF AUSTRALASIA'라고 새겨져 있다. (AUSTRALASIA는 호주와 뉴질랜드, 근처의 서남태평양 일대를 모두 포함해 부르는 이름이란다.) 옛 은행건물을 지금은 펍으로 쓰는 모양이었다. 이런 멋진 펍이라니 들어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에 생맥주를 따르는 노즐이 여러 개 붙은 전형적인 영국식 펍이었다. 파인트 잔에 좋아하는 기네스 생맥주를 시키니 아침부터 줄창 걸어 피곤한 몸에 괜히 생기가 돈다.


기네스의 부드럽고 진한 거품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마치 생크림 같다.


생감자를 바삭하게 튀겨낸 솜씨도 훌륭했다.



이 날 저녁 마무리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뜻 나는 기억으로 밤늦게까지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닌 것 같은데 이 날의 기억인지 다른 날인지 확실하지 않다. 정확한 것은 이 날 밤에도 다시 빈대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더 이상 거기서 머무는걸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간 머문 이 최악의 숙소 때문에 시드니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주의 여러 도시들은 각종 매체들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서 매년 높은 순위에 오른다. 호주의 동남부 해안가 도시들은 좋은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 주민들은 높은 소득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 인구 500만의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시다.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진 이 도시는 나폴리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도 아니고, 히우 지 자네이루처럼 남미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도시도 아니지만 어린시절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서 방문한 시드니는 옛날 상상하던 그 시드니는 아니었다. 시드니의 도심은 관광시설과 고층건물이 들어찬 대도시였지만 그뿐이었다. 


항구도시에 고층건물과 각종 놀이시설들이 들어찬 점에서 홍콩과 매우 비슷한 인상을 받았지만, 홍콩만큼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시드니가 여행하기에 좋지 않다거나 여행지로서 매력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때 나도 도시의 명소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단지 여행을 다니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는 이런 대도시에 흥미가 없어진 것 뿐이다. 시드니는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여행지로는 나무랄 것이 없는 곳이다.


여러가지 놀이시설을 묶어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런 시설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느껴진다.



시드니는 복잡한 해안선과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각종 페리나 여객선들이 쉴새없이 드나든다.


크루즈선 모양의 고급 리조트



항구 해안선을 따라 가게, 주택, 고급 리조트를 구경하며 하버 브릿지로 한참을 걸었다. 오페라하우스와 더불어 시드니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시드니 하버 브리지는 세계에서 4번째로 긴 아치교라고 한다. 1923년 착공하여 1932년 개통하였으며 대공황에서 노동자 계층을 구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매년 1월 1일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벌어진다고 한다. (위키백과 참조)  호주정부는 이 커다랗고 오래된 다리를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철골로 된 다리 아치부분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투어였다. 안전을 위해서 안전띠로 다리 난간과 여행자의 허리를 고리가 달린 줄로 연결하고 있었지만 아래에서 봐도 아찔할 정도였다. 다리의 역사와 아찔한 액티비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투어로 인기가 높은 것 같았지만 높은 물가로 가격이 꽤 비싼데다 고소공포까지 있어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블로그에 여러 번 했던 이야기했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어째서 우리 문화재 입장료를 자국인에게 더 높게 책정하는지, 우리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수단이 정녕 할인 쇼핑 밖에 없는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나라들이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이 매우 약하다. 이런 관광정책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정작 책과 글이 아니라 발로 하는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외유성 해외여행이나 연수가 아니라 본인들이 여행자가 되어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얼마전 인터넷 포털에서 '진짜 광광을 배우기 위해 한류관광공무원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 윤지민씨 인터뷰!'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기사가 아니라 인터넷 까페글이 메인 페이지에 뜬 것이다.) 글의 내용은 여기서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젊은 안정된 직장을 가졌던 윤지민씨가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사정이 무엇인지 등등은 모두 제쳐놓더라도 이런 사람이 몸소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우리나라의 관광정책에도 소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상머리에서 고민한다고 좋은 정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민으로 살아본적이 없는 고위층에게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기대할 수 없고, 현장에 나가지 않는 영업사원에게 좋은 영업실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은 너무나도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하려면 금수저만 가능하다며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여행중에 만난 장기여행자들 중에 금수저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사람이 하루 만원도 안되는 도미토리 침대에서 자고, 우리 버스요금보다 싼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긴 어렵다. 그런 사람이 이런 여행을 한다면 오히려 멋지고 훌륭한 일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을 벗어나 다른 시야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오래된 공장을 레스토랑, 펍, 가게 등으로 재개발한 듯하다. 세계의 여러 도시중에는 이렇게 건물과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훌륭하게 재개발한 예가 무척이나 많다.

무조건 싹 밀어버리고 거대한 고층건물로 바꿔버리는 우리의 재개발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좁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와 전통의 단절로 인해 그 이상의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하버 브리지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아치 꼭대기에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아예 할 생각도 말아야겠다.






드디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명소답게 오페라하우스 주변은 각종 펍과 레스토랑이 성업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페라하우스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는 예른 웃손이라는 이름없는 덴마크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1957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설계공모에서 설계 기준에도 맞지 않는 예비 드로잉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설계를 제출했음에도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 심사위원들의 지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을 현실에 옮겨 놓기 위한 능력이 부족했으며 공사비용 초과로 쫓겨나듯 호주를 떠나야했다. 그리고 1973년 오페라하우스의 완공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이 건물의 디자인은 예른 웃손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하며, 14개의 건물 외형을 모두 합하면 구의 형상이 된다고 한다. 이 건물은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위키백과 정리) 위키백과를 보기 전까지 이 오페라하우스의 외형이 조개껍질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인터넷의 다른 자료들에는 요트의 돛과 조가비 껍질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라지만 완공된지 채 35년이 안되는 건물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의아했다. 물론 이 건물이 가진 건축학적 가치를 내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유네스코가 역사가 짧아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없는 호주라는 나라에 뭔가 하나 마련해준 듯한 느낌이 든다. 작년 한국인의 대규모 징용과 비인간적인 학대가 있었던 일본의 군함도를 비롯한 전쟁 기반 시설들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명목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보고나서 유네스코 역시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기관일뿐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나서는 여행을 할때 만나게 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간판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내부에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딱히 특징적인 점은 없었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 공연장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비싸서 홀까지만 가고 내부 공연장은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다보니 유독 시드니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변명을 하자면, 그건 이곳을 여행한 시점, 장기 여행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원인이 있다. 장기 여행자로서의 여행은 생활의 일부로 수많은 선택을 해야한다. 어느 숙소가 가격대비 나은지,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될지, 내가 여기서 지불하는 가격이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지를 매일매일 결정해야 한다. 단기 여행이라면 비싼 비행기요금을 들여 어렵게 휴가를 내고 왔으니 일단 하고싶은 것은 모두 해보는게 낫다. 예상보다 더 들어간 비용은 휴가를 마치고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일을 더 하면 된다. 하지만, 장기 여행자가 전체적인 계획에서 자꾸 벗어나는 지출을 만들면 결국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돈을 아껴서 오랫동안 여행했음을 자랑하는 여행자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게 여행자로서 올바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지출을 계획하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노는 것이나 쉬는 것과 동일어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여행도 있지만) 여행은, 특히 장기여행은 일상생활의 밀도 높은 축약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루에 10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여행에서는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일상에서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도 돌이켜보게 된다. 그렇지만 일상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과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시드니는 물가가 높아서 장기 여행자로서 지출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인데다 나에게는 딱히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머니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호주보다 훨씬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는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 주머니가 열릴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형상화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렌지껍질보다는 확실히 조개나 가리비쪽이 더 닮은 것 같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멀리서 보는게 아름답다. 가까이서 보니 그저 독특하게 생긴 건축물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며 방금 든 생각, 오페라 하우스 근처 펍이나 레스토랑에 있던 많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멀리 보이는 커다란 크루즈에서 내린 사람들 아닐까.


해가 기울어 어스름해질 무렵 오페라 하우스를 떠났다. 새벽에 일어나 뉴질랜드에서 호주에 도착했고, 오후에는 내내 걸어다녀 피곤했음에도 그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숙소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숙소에 가서 저녁까지 만들어 먹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더러운 주방에서 음식을 해야 했던 기억은 하고 싶지가 않다.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호주에 와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친구들, 어학연수를 온 듯한 친구들, 무슨 이유로 온건지 아리송한, 낮에는 자고 밤에는 외출하는 친구들, 그 외 여러 사람들... 서로에게 인사를 하지도, 아는체 하지도 않으며, 오기 전에 상상한 것과 다른 환경에 조금은 좌절한 듯 생기를 잃은 눈동자... 내가 그 숙소를 회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랬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 최고조에 오른 파릇한 젊음들이 그곳에서 당황해하고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과 제대로 몇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이틀 뒤 숙소를 떠난 못난 사람이지만 다음에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 달라져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두컴컴한 새벽녁, 밤새 놀다지쳐 잠든 도미토리 여행자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보니 뿌옇게 밝아오다 해가 떠올랐다. 마지막 여행지로 떠나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독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싱숭생숭한 마음도 고픈 배는 어쩌지 못하는지 공항 푸드코드에서 일본 라면을 먹었다. 오클랜드는 여름에도 새벽녘에는 쌀쌀했기 때문에 뜨끈한 것이 먹고 싶었다.


늘 그렇듯이 뉴질랜드를 떠나는 날은 다른 날보다 화창하게 맑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들로 재미나게 구성한 뉴질랜드 항공사의 기내방송


미국 LA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올때, 오클랜드에서 시드니로 갈때 뉴질랜드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이 항공사의 기내방송이 무척 재미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장소이자 감독 '피터 잭슨'의 고국답게 기내방송에 '반지의 제왕'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제 연기했던 배우들은 아니고 간달프, 골룸, 레골라스 등으로 분장한 승무원들이 등장한다. 안전수칙, 비상상황 대처요령을 설명하는 기내방송은 어느 항공사나 비슷하기 때문에 탑승객들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기내방송은 등장인물들이 상황에 맞춰 연기를 하기 때문에 꽤 재미있다. (진짜 피터 잭슨인지 그와 비슷한 인물도 잠깐 등장한다.)


포털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뉴질랜드가 '반지의 제왕'의 무대로 알려진 뒤에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다고 한다. 여행하던 시기가 영화 '호빗' 첫편이 개봉할 무렵이었는데 그 뒤에 '호빗'을 이용해 다시 기내방송을 만들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의 기사제목이 '호빗이 기내방송... 영화 우려먹는 뉴질랜드 항공' 이었다. 남이 잘하는걸 배아파하는 꼴이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우려먹을 것이 있는지나 찾아봤을까,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내방송을 바꿀 생각이나 해봤는지 궁금하다.


여행하는 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우리나라 국적기를 뉴질랜드에서 보았다. 당시에는 반가워서 찍었는데 그뒤 땅콩회항 사건이 나고 그룹일가의 '갑질'이 불거지면서 기피 항공사가 되었다.

앞으로 대한항공을 탈 일은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곧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흰색 포말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보고있으니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비행기 창밖으로 나폴리, 히우 지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시드니가 보였다. 복잡한 해안선이 아름답게 펼쳐져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과 집들이 조금은 숨막히게 보였다.


구불구불한 만에 빽빽하게 들어찬 요트들을 보니 교통체증이라도 생길 것 같다.


하늘에서 본 오페라 하우스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다. 연말연초는 호주 사람들에게 최대의 휴가철이어서 시드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숙소들에 남는 침대가 없었다. 공항에 있는 여행자 인포메이션을 통해 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인포메이션에 앉은 여자 안내원은 불친절했다. (영어에 서투른 여행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비영어권 사람들끼리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관심어린 눈으로.상대의 표정을 읽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는 이런 친절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시드니에 도착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있었다. 어디선가 공항 직원이 나타나서 자기가 아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다행히 한국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연결되었고, 픽업을 나오기로 했다. (공항직원은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에게 소개비를 받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의 친절을 감사하며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첫인상이 무척 좋았다. 승합차에 사람들을 태워 데려가면서 시드니의 신년축하 불꽃놀이가 세계 3대 불꽃놀이라며 어제 도착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둥, 시드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다분히 정치색을 띈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되도록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 성향이 꽤나 맞았기에 호감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상태와 바가지 요금을 보고 그 호감도는 단번에 사라졌다. 그는 단지 여행자를 속여서 장사하는 속물 장사꾼일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여행자들을 매니저에게 인수인계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 이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일단 방을 보여주기 전에 입구에서 미리 방값을 지불하게 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다. 요금을 선불로 받기는 하더라도 방을 보여주고 여행자가 선택하도록 하는데 요금을 내고 방에 가던가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요금도 성수기라며 정확히 평소 요금의 두배를 요구했다. 이때 게스트하우스의 상태가 엉망임을 처음에 알아차리고 나왔어야했다. 성수기라 갈만한 숙소가 없을거라는 생각과 설마 한국인 주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를 운영하며 뒤통수를 치겠는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사흘치 요금을 지불하고 머무르기로 했다. (가격은 물가가 높기로 악명높은 스위스의 게스트하우스보다 훨씬 비쌌는데 시설은 관리하지 않는 공공화장실과 특급호텔 화장실만큼 차이가 났다.)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이름도 모른다. 이름이나 있는지, 등록은 된 숙소인지도 의심이 든다.) 이 숙소에 대해 길게 쓸 마음도 없다. 매트리스에는 구멍이 다섯군데쯤 나 있었고, 그 구멍으로는 끊어진 스프링이 튀어올라와 몸을 찔렀다. 다음날 이상하게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보니 스프링이었던 철사가 매트리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숙소는 전등도 제대로 없고 청소는 전혀 되지 않는지 카페트에는 온통 음식물 쏟은 자국과 여러가지 얼룩이 수없이 있었다.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것은 빈대가 많아서 몸 수십군데를 물린 것이다. 빈대에 물린건 두번째였는데, 빈대에 물렸다니 본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물린 것도 아님에도 병원에 연락해 의사를 불러준 아르헨티나의 숙소주인에 비해 이 한국인 숙소는 아무런 조치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빈대에 물리거나 죽은 빈대를 발견했던 몇몇 숙소들에 비해서도 이곳의 청소상태는 최악이었다. 


이틀 후, 선불로 지급한 사흘치 방값에서 하루치를 포기하고 나가면서 빈대에 물렸다고 하니 매니저는 '아, 그랬어요? 그러게 좀 더 비싼 방을 쓰지 그랬어요.' 란다. 기가찼다. 첫날 픽업을 했던 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의욕도 없어 보이는 (혹은 착취당하고 있는) 매니저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에 찍어 둔 숙소의 지저분한 사진(매트리스를 뚫고 튀어나온 스프링과 빈대들이 터진 핏자국)들이 있지만 여기에 올리면서 다시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


캄캄하고 지저분한 숙소에 머무르기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왔다. 습하고 깜깜한 숙소와 반대로 밖은 뜨겁고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해일가. 이 말만큼 중국인들의 현지화 능력(속된 말로 장사꾼 기질)을 잘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 같다.


숙소에서 시드니 항구쪽으로 걸으면 차이나타운이 나왔다. 중국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들이 사는 지역에 붉은색 문을 세워 그곳이 차이나타운임을 알린다.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차이나타운은 말그대로 커다란 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에는 굳이 자신들의 지역임을 알리고,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런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현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자신들끼리 무리지어 사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건 중국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어설픈 판단이었다. 중국인들만큼 현지 문화에 잘 녹아들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도 잘 계승하는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다수가 포함된 그 지역의 문화에 쉽게 융화되어 버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겉돌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중국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주위에 녹여 퍼뜨린다. 놀라울 정도로 현지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여러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쉽게 타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 게 식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 음식들은 엄청나게 비싸보이는 해산물부터 10달러 미만의 면요리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현지 호주인과 중국인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다양했다. 근처에는 한국음식점도 몇몇 군데 있었지만 현지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일단 음식을 파는 대상이 시드니에 있는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이나 한국에서 온 패키지 관광객으로 보였다.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한국 생맥주 피쳐와 치킨 한마리가 50달러 이상이었다.(도대체 왜 호주까지 와서 하이트 생맥주와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심지어 어떤 한국 식당에는 20달러 이하의 메뉴는 없다고 출입구에 붙여 놓고 있었다. 김치찌개나 순두부조차도 2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이었다.(당시 환율로는 2만 5천원, 많이 내린 지금 환율로도 17,000원이 넘는다.) 20달러면 호주인들에게도 한끼 식사로 큰 금액일 것이다.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도 아닌 일반 식당의 음식가격이 그정도이면 현지화가 될리가 없다. 한국음식은 그렇게 현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한국사람들을 위한 메뉴로 겉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당시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한답시고 해외 지하철 광고판에 김치와 불고기를 광고해서 해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국의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에서 비싸서 먹기도 힘든 음식을, 혹은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을 강남역 지하철 광고판에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식의 1/3가격에 팔고 있는 중국식당의 면요리. 가까이에 한국음식점이 있음에도 이곳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중국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중국의 음식과 문화를 배우게 된다.


호주의 토종 조류인듯한 새가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다. 꽤나 큰 새임에도 사람도 새도 서로를 신경쓰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를 패키지로 묶어 팔고 있었는데 이런 볼거리에 흥미가 없는 나에게 시드니는 매력없는 대도시일뿐이었다.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숙소를 나오면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시고,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에게 시드니는 그 도시만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밍숭맹숭한 대도시의 느낌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항구를 따라 난 길을 걸어서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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