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버스는 내부구조가 무척 독특하다. 버스에 올라타면 우리나라 지하철 개찰구와 비슷하게 생긴 회전대가 있다. 기둥에 붙은 체크기에 카드를 대고 밀어서 입장하거나 카드가 없는 여행자들은  버스 안에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차장에게 버스비를 지불하고 타야한다. 짐이 없을 때는 별 상관없지만 큰 배낭을 메고 있을 때는 배낭을 이 회전대 위로 들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통과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여행 후에 1960~70년대 히우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갱들의 이야기를 그린 '시티 오브 갓'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에서 선량했으나 연인이 갱들에게 당하자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갱이 되어버린 인물이 버스안에서 돈을 받는 차장이었다. 신이 축복한 듯한 아름다운 풍광과 기후를 가진 도시지만 신이 버린 듯 암울하고 미래가 없는 빈민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여행 당시의 히우가 생각나 마음이 우울해졌었다.


버스 내부에 있는 회전대. 버스비를 받는 차장도 찍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유럽에서 남미 사이의 시차와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 어제의 긴장감 등으로 아침이 한참 지나서야 숙소를 나올 수 있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코르코바두 산 정상의 거대 그리스도 상이다.


코르코바두산 정상으로 가는 트램을 타는 정류장


내가 히우에 도착했을 때는 8월말, 겨울의 끝이라 비수기였음에도 그리스도상을 보기위해 꽤 많은 관광객들이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정상으로 가는 트램에서 마을이 보였다. 트램을 타지않고 걸어서 갈 수도 있다는데 이 지역은 우범지역이라 매우 위험하다고 하니 트램 이용료가 비싸다 생각되더라도 절대 걸어서 가려고 하면 안된다. 여행에서 최우선은 안전이다.


트램이 산정상으로 가는 중에 브라질 악단이 나와서 통로에서 공연을 한다. 신나는 브라질풍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당연하게도 공연은 트램 이용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끝나고 공연료를 걷는다. 공연 중에 관광객을 불러내 춤을 추거나 노래를 시키기도 하는데 신이 나서 호응하게 되면 꼼짝없이 공연료를 지불해야 한다. 얼마되지 않는 돈인데 어떤가싶기도 하지만, 길거리 공연과 달리 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공연으로 관람료를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끝내 무시했다.


트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 그리스도상 뒤쪽으로 도착하게 된다. 시원하게 펼쳐진 대서양과 멀리 히우의 유명한 해변들이 보인다. 해변쪽으로는 높은 건물과 좋아보이는 리조트 풍의 건물도 있지만 산쪽으로는 빈민가로 보이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히우 지 자네이루의 랜드마크인 이 그리스도상은 이 곳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뉴스, 잡지 등등 수많은 매체를 통해 자주 알려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히우에 간다면 꼭 보리라 여행전부터 계획했던 곳이었으나, 실제로 보니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높이가 40m인 이 그리스도상은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700m 높이의 산 정상에 이처럼 커다란 상을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사실 당시에도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산정상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사랑과 축복을 내리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아래에서는 극도의 빈부격차와 살인과 폭력, 온갖 욕망으로 들끓는 도시가 되어버린게 아이러니했다.




이 곳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서 내려다보는 히우의 멋진 풍경이었다. 복잡한 해안선과 섬들이 펼쳐진 바다, 갑자기 우뚝 솟은 바위산들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 시드니, 히우 지 자네이루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홍콩, 하코다테 등등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항구들을 모두 비교해보더라도 나에게는 여기서 본 히우의 풍경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멀리 '빵 지 아수까르'가 내려다 보인다.




그리스도상을 내려 온 다음에 찾은 곳은 이빠네마 해변이었다. 히우에는 '코파카바나'와 '이빠네마'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이 둘 있다. 그 중에 이빠네마를 찾은 이유는 '이빠네마의 여인'이라는 유명한 보사노바 곡 때문이다. 제목은 모르더라도 들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 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일정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상을 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데다 이빠네마 해변이 생각보다 멀었기 때문에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이어서인지 해가 기울자 날씨가 꽤 차가워졌서, 해변에는 늘씬한 남미의 비키니 미녀는 커녕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선남선녀들로 들끓는 해변보다 해가 지는 한적한 해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실, 해변만으로 평가하자면 히우의 해변들은 그다지 좋지 않다. 파도도 세고, 모래도 곱고 부드럽지 않다. 유명한 휴양지의 해변과 비교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곳의 해변들은 휴양이 아니라 놀고, 먹고, 즐기는 그런 해변으로 유명한 것이다. 이 해변이 내 마음에 든 것도 '이빠네마의 여인'이라는 음악과 계절탓으로 한적했던 해변, 해질녘의 고즈넉함 때문일 것이다.




히우에서 저녁 7시 넘어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으로 금새 어두워진 거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숙소로 돌아오다 비교적 안전하고 번화해 보이는 거리에서 저렴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싸지는 않지만 양은 엄청났다. 양도 많고 음식도 어울리지 않는 것같은 여러가지 음식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맛있게 먹는데 부족함은 없지만 아직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양념된 면에 프라이드 치킨, 감자 튀김, 야채이 올라가 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저렴한 식당에서 파는 대부분의 음식이 커다란 접시에 면이나 찐 쌀을 담고, 그 위에 반찬이 되는 여러가지 음식들이 올려져 있다.


아마 남미에서의 첫 여행지가 이곳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훨씬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때는 분명 매력적으로 느끼면서도 위험에 대비해 날이 바짝 선 신경 때문에 오래 머무르질 못했다. 겨우 2박 3일 있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제대로 돌아다닌 것은 하루뿐이었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위험한 것이 가지는 매력 때문인지 나는 다시 이곳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풍광과 좋은 기후, 친절한 사람들의 도시이면서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위험한 도시, 신이 축복한 도시이면서 또한 신이 버린 도시... '시티 오브 갓'이라는 영화를 본 뒤로 이 도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튿해진다.

세비야에서 탄 버스는 여러 도시를 거쳐 어둑해질즈음 포르투갈의 리스보아(리스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잡은 숙소는 터미널에서 멀지않은 새로 개발된 상업지구의 오피스텔이었다. 구시가는 고풍스럽고 멋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서울의 테헤란로나 상암지구 같은 곳이라 미디어를 통해 본 리스보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숙소가 있었던 20층에서 어두워가는 바깥 경치를 보고 있으려니 내일 떠날 남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브라질의 히우 지 자네이루(리오 데 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 후, 남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빠짐없이 묻는 질문이 '안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남미에 대해 접하는 기사나 영화들의 대부분이 갱들의 살인, 마약, 매춘이나 경제적인 궁핍, 정치인들의 부패 같은 것들이다보니 이런 물음이 먼저 나오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든다. 나 또한 여행을 다녀온 여러사람들의 책이나 블로그를 봤음에도 이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미는 맘편히 여행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니다. 밤거리를 다닐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낮이라 하더라도 위험지구에 잘못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써야 한다. 미리 조심하고 준비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물론 아무리 준비하고 조심하더라도 불가항력으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살더라도 모든 일에 대비하고 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물게 발생하는 것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심하고 준비했을 때 문제없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는다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한다면 이런 점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남미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어려움을 뛰어넘는 매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브라질 '히우'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둑해질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여행 중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는 가능한 어두운 시간은 피하도록 교통편을 조정했었는데 하필이면 남미에 도착하는 첫 나라에서는 항공편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지하철로 갈아타야했는데 도무지 지하철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각 국가마다 지하철 시스템이 묘하게 달라서 처음 지하철을 탈 때는 항상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다. 날은 어두워가고 마음이 점점 급해지니 등에 맨 배낭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퇴근시간과 겹쳐 무척 붐비는 가운데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아보니 안전띠와 제복을 입고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겉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딱 떠오르는 인물이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 나오는 주인공인 흑인 영화배우와 비슷했다. 


머뭇머뭇 다가가서 여기에 가려는데 어떤 지하철을 타야하는지 물었다. 이 사람과 나 사이에 만국 공용어 '바디 랭퀴지' 말고는 어떤 언어도 통하지 않지만 또한 필요하지도 않다. 거대한 덩치와 다르게 무척이나 친절하게 열심히 설명해줬다. 자신의 지하철 노선도까지 꺼내 열심히 설명하더니 그 노선도를 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지하철이 도착하자 이걸 타야된다며 밀어넣다시피했다.


그 뒤로도 여러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가 브라질에서 가장 먼저 '소통'한 이 사람이 잊혀지지 않는다.


숙소는 지하철 역에서 조금 떨어진 현지인들의 생활지역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 받고나서 브라질 숙소의 또 하나의 절차인 현관 도어락 사용법 안내를 받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배는 채워야하기에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할만한 곳과 지금 나가도 괜찮은지를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게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브라질의 물가는 무척 비싸서 식재료를 제외하고는 유럽수준의 물가다. 식당의 음식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브라질에서의 첫 식사니 맘껏 먹어보자싶어 이것저것 시켜봤다. 그런데 이 음식 하나하나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한국인치고 먹는 양이 많은 편인데 이걸 어떻게 다 먹나 싶었다. 게다가  음식이 많이 짰다. 브라질 음식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브라질에서의 첫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비행기 안에서 찍은 한 장을 제외하고는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어지간히 긴장했었나보다. 내일은 여행 중에 기대했던 곳 중에 하나인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있는 거대 그리스도 상을 보러 간다. 자고 나면 긴장이 좀 풀리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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