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파이히아를 떠나게 되었다. 가족단위 여행객이나 콘도나 리조트에서 장기로 머무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곳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매력적인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은 대부분 그렇듯이 그날도 날씨가 맑았다.


뉴질랜드나 호주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캐러밴을 몰고 여유로운 일정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다. 국토가 넓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은 오히려 대중교통이 그다지 잘 되어있지 않아서 다니기가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국가들은 현지인들이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질은 좀 떨어지더라도 곳곳에 버스가 다닌다. 교통편이 없다면 물가라도 저렴하니 택시를 이용해 볼 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직접 차를 몰지 않으면 가기 어려운 곳들, 갈 수 있더라도 불편한 곳들이 오히려 많다. 





이 날은 바람마저 불지 않아서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했다.


바닷가 근처에 있던 관광용 헬기. 마침 관광객을 싣고 이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이히아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버스는 나를 황아레이 외곽에 내려주고는 떠나버렸다. 게다가 이 도시는 생각보다 커서 배낭을 메고 숙소까지 걸어가기에는 무리였다. (지금까지 구글맵에 'Whangarei, 왕가레이'라고 나와서 그런 줄 알았는데 위키백과에는 '황아레이'라고 하고 있었다. 구글맵 지명은 잘못된게 종종 있어서 지금부터는 '황아레이'라고 하려고 한다.) 길가에 있는 여행사인지, 여행자센터인지 모를 곳에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숙소에 전화를 했고 숙소 주인이 이곳으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픽업은 한참 후에야 왔고, 온 사람은 사람좋게 생긴 백발 노인이었다. 이 노인이 운영하는 숙소는 자기 주택에 남는 방을 여행자에게 빌려주는 것이었다. 집이 꽤 넓어서 여행자들이 사용하는 주방과 거실이 따로 되어 있었고, 뉴질랜드의 흔한 목조주택이라 낡긴했어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현지인이 사는 주택에서 묵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황아레이에서는 특별히 하려는 일정도 없었고 뉴질랜드를 떠나기 전에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다. 숙소 정원에서 꽃과 고양이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분홍생 발바닥... 매력적인 고양이...



불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더니 잠이 오는지 점점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잠깐 다른 곳을 보다가 눈을 돌리니 어느새 꿀잠 중이다.


뉴질랜드의 흔하디 흔한 꽃, 수국



초여름이라 아직 포도가 익지 않은게 아쉽다. 정원은 꾸민듯 꾸미지 않은듯, 깔끔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가꿔져 있었다.





직전 여행지였던 멕시코의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막바지에 여행한 곳임에도 뉴질랜드에서 남아있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비싼 물가와 불편한 교통, 그다지 색다를 것 없는 문화가 한 몫했으리라 싶다. 그래도 황아레이에 묵었던 숙소는 꽤 기억에 남는다. 백발의 숙소 주인과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안주인(젊었을 땐 유명한 다이빙 전문가이자 수중 사진 촬영가라고 했다. 숙소 거실에 그녀가 찍었다는 수중생물 사진과 사진집이 여러 권 있었다.),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이든 리트리버(주인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다 주인이 상대해주지 않으면 다가와서 내 손에 자기 머리를 갖다댔다. 스다듬어주고 잠시 손이 멈추면 다시 머리를 손에 부빈다. 사람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리트리버라도 이 정도인 녀석은 처음이었다. 블로그 프로필 사진에 있는 녀석이 그 녀석이다.) 관리하지 않은 듯 잘 관리된 정원, 여러 마리의 고양이, 걸으면 삐걱대고 조금은 퀘퀘한 냄새가 나는 낡은 목조건물... 황아레이에서 머물렀던 이틀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숙소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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