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방콕에서 뒹굴면서 동네 마실나가듯 다녔던 곳들 중에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왓 아룬'과 '짜뚜짝' 시장이 기억에 남는다. 


방콕시내에 있는 많은 사원들 중에 내가 제일 맘에 들었던 곳은 새벽 사원이라는 뜻의 '왓 아룬'이다.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있으므로 선착장에서 표를 사고, 입장료로 50밧 정도 내고 입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왓 아룬이 맘에 들었던 이유는 다른 사원들보다 덜 북적거리는데다 사원 탑 위에 올라가서 볼 수 있는 강 건너편 방콕 시내 경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방콕 야경이나 전경으로 유명한 '시로코' 같은 유명한 스카이라운지보다 비싼 음식을 시키지 않아도, 사진 찍기위해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여기가 나에게는 훨씬 좋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


[왓 아룬에서 보는 태국 시내 전경]


다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나 신발이 불편한 여자들, 어린 아이들은 오르기 힘들 정도로 왓 아룬을 오르는 계단이 만만치가 않다.


[왓 아룬의 가파른 계단]



'짜뚜짝' 주말시장은 말 그대로 없는게 없는 태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수공예품이라면 전세계에서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이 빠지지 않는다면, 물건의 다양함과 점포수로 따지면 짜뚜짝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곳에서 느긋하고 럭셔리한 쇼핑을 생각한다면 절대 비추천이지만, 달달한 동남아식 커피에 땀을 식혀가며 수많은 저렴한 물건들을 뒤지는데 재미를 느끼는 여행자라면 꼭 가봐야하는 곳이다. 미처 챙겨오지 못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여기서 보충할 수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사용하는 가죽 허리띠와 동남아에서는 일상복으로, 다른 곳에서는 잠옷으로 입었던 꽃무늬 반바지를 샀었다.


[아쉽게도 짜뚜짝에서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어울리다보니 2주가 금방 지나고 여행을 떠나온 불안감도 옅어질 때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같이 어울리던 동생들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겠다고 푸켓으로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동남아 두번째 목적지로 캄보디아의 그 유명한 유적 '앙코르 와트'를 선택했다.




방콕을 첫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2006년 휴가를 보내면서 낯익은 도시여서 그때보다 배낭여행자로 느긋하게 이 도시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 결과로 너무 매력에 빠진 탓인지 난생 처음으로 2주간이나 무위도식하며 보내게 되었다.


첫 일주일 동안은 까오산의 저렴한 호텔에 머무르면서 혼자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태사랑에서 추천하는 현지인들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호텔비라고 해봐야 하루에 3만원 정도라 처음에는 크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1밧에 40원이라 지금 환율(1밧에 32원)보다 훨씬 비쌌는데도... 대엿세 지나서 1년동안 숙소비용으로 하루 3만원씩 쓰다보면 천만원이 넘는 돈이 들게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여기는 물가가 싼 곳이고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는 훨씬 큰 돈이 들텐데 말이다. 다음날 바로 까오산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홍익인간'으로 옮겼다.


[처음 며칠동안 머무른 까오산의 저렴한 호텔]


지금은 모르겠지만 2년전 '홍익인간'의 도미토리 숙박료는 8천원이었다. 잠자리나 세면은 조금 불편해도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여행자들끼리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 그 뒤로 열흘정도 거기서 묵고 있던 여러 동생들하고 친해져서 밤에는 태국의 여러 훌륭한 맥주들을, 낮에는 맛있는 까오산의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시원한 곳에서 동남아의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뒹굴거렸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며 지내더라도 숙박료와 식비, 맥주값을 합해 저렴한 호텔의 하루 숙박료도 들지 않았다.


방콕 근교의 가볼만한 곳으로는 불교 유적으로 유명한 아유타야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깐짜나부리가 있고, 그 외에 근교 해변으로는 후아힌과 파타야가 있다. 파타야는 베트남 전쟁때 미군의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보다는 밤문화가 워낙 발달한 곳이라 밤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2주간 방콕에 머무르면서 가본 곳은 아유타야 밖에 없다. 아유타야는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400년간 시암왕국의 수도였으나 버마의 침공으로 파괴된 도시이며, 복구되었거나 복구중인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방콕에서 현지 여행사나 게스트하우스를 통해서 점심식사가 포함된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아유타야의 불교유적들]


같은 불교국가이면서도 버마는 아유타야 침공시 불상과 사원들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불상들은 대부분 머리가 잘려있고, 잘린 머리를 나무가 휘감아 줄기에 박혀버린 것은 섬뜩하면서도 처절하게 보인다. 과도한 민족주의와 이기심은 현재에도 어디선가 목잘린 불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투어내내 이들이 만든 불교 문화와 유적에 감탄하는 마음보다는 씁쓸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아유타야의 불교유적을 보고나서 오후에는 코끼리 쇼를 하는 곳과 태국 왕가의 여름별궁이라는 방파인까지 둘러보았다. 방파인을 보는 투어와 보지 않는 투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방파인은 예쁘게 단장된 공원 이상의 느낌은 없으므로 오후의 무더운 더위를 이겨내며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물을 학대하는 볼거리는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


[방파인, 태국 왕가의 여름별궁... 그냥 예쁜 공원]


여행지로서 동남아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곳이다. 저렴한 물가와 넘치는 길거리 음식, 극도의 단맛을 보여주는 열대과일, 친절하고 인간적인 사람들...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배낭여행지이겠지만, 끝임없는 벌레의 공격과 후텁지근한 더위, 불편한 교통편, 조금은 비위생적인 환경을 못참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여행지일 수도 있다.


나에게 동남아는 자유롭고(저렴한 물가 덕분에 잘 곳, 먹을 것, 할 것들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많다), 선량한 (라오스) 사람들, 느긋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훌륭한 여행지였다. 비록 머문 두 달동안은 최소 20군데 이상 모기물린 자국을 달고 다녔지만...



동남아에 있었던 두 달 중에서 2주는 방콕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고 실제로는 나머지 한달 반동안 여행했다. 계획한 시간이 두 달이라 라오스의 빡세나 씨판돈, 태국의 치앙라이나 빠이를 가보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베트남은 무비자 입국이 15일이라는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후에 위쪽으로는 가보지 못했다. 나처럼 느릿느릿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동남아 4개국을 여행하기에 두 달은 터무니 없는 시간이었다.




[동남아 여행 경로]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자본주의 관점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며, 다른 나라들에게 미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는 나라이다. 침입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프랑스에 넘겼다고 하는데 태국 사람들은 서구열강의 침입을 받지 않았고,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미소의 나라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상업화와 유명 관광지로 정형화된 미소와 상술을 보여주는게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지로서 태국의 매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불교유적들, 아름다운 열대 바다, 송크란으로 대표되는 축제, 똠양, 팟타이, 쏨땀, 사테이 등등의 맛있는 요리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을 위한 화려한 밤문화...



[태국의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



캄보디아는 보고만 있어도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앙코르 와트/톰이라는 당시 세계 최대 사원과 도시를 건설한 강대국이었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크메르 루즈 준동,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세계 최빈국중 하나가 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지식인층(교수, 의사, 엔지니어 등등)이 대부분 학살당했다. 그 때문에 세계에서 젊은 인구층이 매우 높은 국가지만 그들을 이끌어줄 지도층이 부족하다고 한다.


수도인 프놈펜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무기력함이었으나 앙코르 와트에서 얼음에 재워둔 콜라를 팔던, 한국말을 곧잘하던 소년에게서 그나마 캄보디아의 희망이 보였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갖고 낮에는 콜라를 팔고 밤에는 호텔에서 일을 한다던 그 소년의 미래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베트남은 활기차다. 호치민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상인들로 온 도시가 시끌시끌하다. 불과 사십년 전에 큰 전쟁을 겪었던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그 전쟁에서 증명된 이 사람들의 인내와 영리함은 이제 돈 버는데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다른 국가의 화폐와 차이가 심한 화폐 단위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거스름돈을 속이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태국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에 맛있고 훌륭한 요리와 커피,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는 정겹다. 여기서는 만나는 현지인에게 수도 없이 듣는 말이 '싸바이 디'(안녕하세요)와 '꼽자이'(고맙습니다)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 사람들의 인사가 예의상하는 겉치레가 아니며, 그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뒤에 있는 순박함과 수줍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동남아 어디건 해야했던 '흥정'이 여기서는 없다. 당연히 잡을거라 생각하며 돌아섰는데 아무 말도 없을 때의 당혹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배가 풀렀구만...' 생각하고, 좀 더 열심히 물건을 팔지 않음을 게으르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가 생각한 적당한 가격을 이야기하고 고객이 돌아서면 잡지않는 것뿐이다. 다른 나라의 상인들처럼 일부러 비싸게 부르고 선심쓰듯 깎아주는 얄팍한 상술을 쓰지 않는 것이다.


친절을 받으면 수줍은 듯 고마움을 표하며 웃는 얼굴이, 그 친절에 보답하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다. 라오스는 푸르고 멋진 해변도 없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밤문화도,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멋진 자연도 없다. 하지만 라오스에는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산다.




같은 곳들을 다녀왔더라도 시간이 다르고, 만난 사람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100% 훌륭한 여행지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4개국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훌륭한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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