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무비자 입국 기간을 착각한 뒤로 급히 정한 일정이 후에에서 라오스 사반나켓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원래 생각지 못한 경로였기에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 후에에서 사반나켓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정확히 언제 후에에서 버스에 탓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베트남에서 출국할 때 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공무원들이 웃돈(1달러)를 요구했고 나는 안주고 버텼다는 것이 생각난다. 공무원들은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그 뒷 사람들의 여권부터 처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기에 줘버릴 수 있었지만 공무원들의 비리는 일반 상인들의 속임수와는 다르게 매우 기분이 상했다. 베트남에서 갖게 된 좋은 기억들마저 이 사람들로 인해 안좋아져버렸다.


될대로 되라 하고 서있으니 범법 행위가 아닌지라 여권을 안내주고 위협해봐야 필요없겠다 싶었는지 맨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고는 여권을 던져준다.


라오스와 베트남은 교류가 많은지 국경 근처에 트럭들이 제법 많이 다닌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먹은 점심식사.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 여행자라면 먹을만하다.


베트남 출국하며 기분이 나빠져서인지 더 찍은 사진도 없다. 저녁이 한참 지나서 도착한 사반나켓은 이미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더 이상 버스를 탈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체력이 좋은 여행자들은 사반나켓에서 바로 라오스의 수도 위앙짠(비엔티엔)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더 이상 버스를 탓다가는 몸살로 며칠 누울듯하다.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고 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나반나켓에서 위앙짠으로 가는 버스는 밤에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반나켓 구경에 나섰다. 오전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다니는 것 같았던 이 자그마한 도시에 오후가 되니 길거리에 사람 소리조차 나지 않게 고요해졌다.


오전에는 그나마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보인다.


오후가 되면서 도시는 그야말로 적막...


아무리 인기척이 없는 도시라지만 문을 연 식당은 있겠지 싶어 찾은 레스토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세계 맥주 품평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 유명한 라오 맥주를 드디어 마셨다. 라오스의 라오 맥주가 유명하다는걸 여행하려고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맛은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밀맥주와 흑맥주를 좋아하는터라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재미있게도 사반나켓이라는 여기에 오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라오스의 조그만 도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클럽 샌드위치와 까르보나라가 우리나라의 웬만한 레스토랑의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특이한 환경탓인지, 저렴한 가격탓인지, 정말 요리가 훌륭한지 확실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을만큼 맛있게 먹었다.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 너무 흔하게 보다보니 귀엽기까지하다. 숙소 방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불을 끄고 조용히 있으면 '따따따..'하고 도마뱀이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기척이 없는 도시의 폐허에 분위기가 더 이상하다.




불교의 나라, 수없이 많은 불교사원이 있는 라오스에 카톨릭 성당이 이색적이다.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반나켓에서 발견한 극장. 문은 닫혀 있고,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없는 포스터들을 걸려있다. 예전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에 있었던 극장 같아서 눈길이 갔다.




드디어 밤이 되어 버스에 올랐다. 둘러볼 것 없는 작은 도시지만 낮동안 사반나켓의 그 고요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후에는 북쪽 하노이와 남쪽 호찌민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며 1800년 초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응우엔 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많기 때문에 여행자 거리에 있는 현지 여행사를 통해 이 건축물들을 돌아볼 수 있는 일일투어를 다녀올 수 있다.


먼저 여행사 버스를 타고 후에 외곽에 있는 응우엔 역대 왕조의 무덤들을 다녀오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 왕들인 민망, 뜨뜩, 카이딘 왕의 무덤을 간다.(황제라고 하지만 왕이나 황제나 자기들이 붙이기 나름이라서 그냥 왕이라고 통일) 다녀온지 2년이 훨씬 넘은데다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워 어디가 어느 왕의 무덤인지 모르겠다. 다만, 왕릉이라고 해서 봉분만 크게 만들어 놓은게 아니라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아래 카이딘 황제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카이딘 황제의 능에는 그의 동상과 당시 사진, 기념품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능은 다른 황제의 능과는 다르게 돌로 만들어진 신하들의 상과 유럽의 건축양식과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이어서 가이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과 비교했었는데 억지이긴 했지만 자신들의 건축물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큰 것으로 이해한다.



잠시 베트남 전통 무술을 공연하는 곳도 들른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멋지지만 중국 쿵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특별히 구매를 강요받지 않기 때문에 느긋하게 즐기고 박수치고 나서 약간의 공연료를 보태주면 된다. 원래 투어 프로그램에 없더라도 더위에 수고한 출연자들을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내어주자. 생각해보면 큰 돈이 아니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주요 황제의 능을 돌아보고 잠시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른다. 호이안에서도 그렇고 향을 만드는 곳이 많은데 색색의 향을 모아놓은 모양이 꽤 다채롭다. 향은 시나몬 가루를 섞어서 만드는지 냄새가 향긋한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꼭 사야하는 것은 아니니 즐겁게 돌아보면 그만이다.



다음으로 들르는 곳은 투어의 하이라이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황궁이다. 자금성을 모방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구조나 모양이 작은 자금성과 비슷하다. 위 사진의 넓게 파인 해자(자금성의 해자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를 건너 황궁으로 들어간다.


작은 해자를 다시 건너 내성으로 들어간다. 내성으로 들어가는 성문까지 자금성과 비슷하다. 내성 앞에는 며칠 뒤에 있을 축제를 위해 공연장을 짓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성 깊숙히 들어가면 역대 왕들의 위패가 모셔진, 우리나라의 종묘와 같은 곳이 나온다. 불과 150년 정도의 짧은 왕조였지만 13명이나 왕이 바뀐 것을 보면 몇몇 왕을 제외하면 왕권이 그리 강하진 못했던 것 같다. 재위 기간이 극히 짧았던 어린 왕의 위패를 보면 우리나라의 단종의 모습과 겹쳐졌다. 세계 어디나 비슷했던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모습이 여기 베트남에서도 드러난다.




성의 절반은 아직 황폐한채 복구되지 않은 모습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후에는 지리학상 중간에 위치한 관계로 심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미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때 파괴된 황궁은 봉건시대의 유산으로 복원에 관심을 두지 않아 한동안 방치되다가 최근에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투어의 마지막은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는 티엔무 사원이다. 사실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원보다는 돌아오는 배 위에서 본 후에의 풍경과 하루종일 무더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주던 바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봐왔던 동남아의 황톳빛 강물과는 다르게 후에의 강(흐엉 강이란다)은 우리가 봐 왔던 강물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의 강은 강수량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강폭이 매우 넓고 수량이 많았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풍요로운 기후지만 이들의 삶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동남아를 여행한 두 달동안 쓴 돈을 많지 않았다. 그리 아껴가며 여행하진 않았지만 물가가 매우 싼 덕이었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속지 않으려고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으며 다니기 보다는 적은 돈이라면 팁이라 생각하고 속아주는 편이 여행하기에 편하다. 여기서 한두달 동안 머리 아프게 아껴봐야 유럽에서 한두번 실수한다면 그게 더 큰 손실이될테니.


후에에서 파는 맥주

여행자마다 여행의 즐거움 혹은 가치를 두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나는 그것의 상당한 부분을 음식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찾는다면 극복할 힘이 생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도시도, 사람도 마음에 들게 된다. 후에에서 딱 그랬다.



호이안에서 후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직 현지인들도 도착하지 않은 이른 점심시간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들어온 여행자를 보고 젊은 식당 아주머니는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떠넣는 시늉을 하니 놀람, 경계를 띈 얼굴에 약간 미소가 번졌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어차피 시도하는 영어는 안통할 거라는 걸 여행 1달이 넘어서니 잘 알게 되었다. 나도 그렇고 마주하는 현지인도 바디 랭귀지가 편했다. 세계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 편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쓸데도 없는 영어를 뭐하러 배운단 말인가, 그 시간에 좀 더 행복할 궁리나 하는게 합리적이다.


조금 지저분한 테이블에 어둡고 좁은 식당이었지만 밥에 여러가지 반찬을 얹어서 따끈한 국까지 나왔다. 국은 마치 우리나라의 맑게 끓인 시금치 국하고 비슷하게 보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밥 값은 천원이 채 안되었던 것 같다. 여행자가 저렴한 가격에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맛도 나쁘지 않은 훌륭한 음식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달달한 베트남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하긴 그때는 매일 마시다시피 해서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매고 다녀도 생각보다 살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 커피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버스에 올라 다낭을 지난다. 다낭은 꽤나 현대적이고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인듯했다. 도시 근교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베트남의 주요 무역항으로 우리나라에서 다낭으로 직항이 있다고 본 기억이 난다.



호이안과 후에는 거리상으로 멀지 않지만 산과 고원이 많은 베트남에서 편한 길은 드물다. 산 중턱 휴게소에 내리고 보니 야자나무만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 어디쯤 휴게소에 온 듯한 모습이다.


도착한 후에는 춥고 축축했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으슬으슬 감기기운마저 돌았다. 터미널에서 예약한 숙소는 생각외로 너무 멀었고, 나쁘지 않은 시설이었지만 잠자리마저 차고 축축했다. 후에에 대한 첫인상이 나빠졌다. 첫인상이 나쁘건 말건 사진을 남길만한 마음의 여유마저도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식당을 찾아 길을 헤매고 다녔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관광객이 많은 식당에는 가지 않는고 현지인들이 많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간다는 나름의 노하우로 어두운 길에 현지인들이 와글와글한 식당을 만났다. 게다가 고기 굽는 냄새가 기막혀서 안들어가고는 못배길 정도였다.




후에에서 처음 본 맥주 Festival과 훼의 전통 음식이라는 몇 가지를 시켜 놓고는 큰 기대없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처음 나온 음식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오~ 이게 뭐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먹는지 또 바디랭퀴지를 시도했다. 가운데 있는 소스(동남아에서 우리나라 간장처럼 쓰이는 피쉬소스 같은게 아닌가 싶다)를 숟가락으로 떠서 종지 위에 붓고 그걸 떠먹는단다.


먹어보니 소스의 짭짤한 맛과 종지 위에 놓인 것의 바삭하고 달콤한 맛에 흰색의 무언가의 쫄깃함까지... '우와, 이거 완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올려진 것은 새우살을 말린 듯하고 아래 흰 것은 쌀을 갈아서 만든 죽같은 것을 굳힌 듯한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다음에는 밥 위에 양념한 치킨 바베큐 한 덩어리가 올려져 나왔다. 양념치킨하고 밥을 먹는건데 이것도 먹을만하다. 소고기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지만 지역별로 가장 편차가 덜한 고기가 닭이라서 처음 시도하는 고기 음식은 대체로 닭을 시키는 편이다. 그리고, 고깃국물에 야채가 든 따끈한 갈비탕 맛의 요리가 나왔다. 오호, 이것 또한 별미다. 더구나 가격이 말할 수 없이 착하다.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잘 먹었는데 이렇게 적게 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춥고 습한 날씨에 움츠러든 여행자의 어깨가 펴지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갑자기 후에가 좋아지려고 했다. 이래서 음식이 중요한가보다.


사진을 신경 써서 찍지 않는 내가, 더구나 다시 올 가능성도 별로 없는 식당 간판을 여러차례 찍었다. 비록 제대로 찍히진 않았지만 지금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만큼 이 식당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여행자의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꿔버린 훌륭한 음식을 내어주는 식당이었다.




세상에... 메뉴까지 찍어뒀다. 이건 경우는 여행을 통틀어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처음 나왔던 음식은 반 베오(Bahn Beo)이고 예상대로 피쉬소스에 새우살이 올라간 후에의 전통 음식이다. 후에를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이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다.


베트남에 무비자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후에에서는 길어야 2박 3일이었다. 그냥 숙소에서 쉬면서 보낼 수도 있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150여년간 응우엔 왕조의 수도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후에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기에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라오스로 넘어가는 버스까지 예약했다.) 이것은 후에의 맛있는 음식의 힘이다. 아마 제대로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면 춥고 쌀쌀한 첫인상만 가지고 라오스로 가버렸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의 힘은 생각외로 막강하다. 특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호이안 근교에 있는 참파 유적을 다녀오려면 현지 여행사를 통한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투어는 참파 유적과 기념품을 파는 한두개의 마을에 잠시 들리는 것으로 끝나는데 참파 유적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투어는 반나절 조금 더 지나 끝난다.(실제 참파 유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발굴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큰 규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 내려서 참파 유적으로 들어가는 다리


참 심플한 참파 유적 지도. 길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일거다.



참파 유적은 호이안 일대에 자리잡은 말레이 인(참파족)의 힌두문명 유적이다. 앙코르 와트와 규모나 세밀한 아름다움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같은 힌두문명 유적이라 그런지 벽면의 부조나 유적의 형태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다만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인지, 발굴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는지 상당부분이 발굴되지 못한 상태이며 발굴된 부분도 약간은 방치된 상태라 안타깝다.


현지 가이드는 생각보다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했으며 유적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서양 여행자들이 꽤 많았는데 관심없이 인증샷에 열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발굴되기 전에는 수백년 동안 무너진 유적의 잔해 위로 흙이 덮이고 열대의 무성한 식물들이 자라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유적들이 작은 동산처럼 남아있다.



곳곳에 발굴중인 유적들이 보이지만 그 속도가 매우 더딘 것 같다.


참파 유적을 둘러 본 뒤에는 배를 타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른다. 패키지 여행이나 투어가 싫은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고 당시에는 기분이 안좋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먼저, 이 투어에서는 물건 구매를 종용하거나 거짓말로 과대포장하지 않았다. 국내 저가 동남아 패키지 여행의 대부분이 보신식품, 보석류, 특산품을 팔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거짓말로 효용이나 가치를 과대포장한다. 여기서는 그냥 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데려다 놓고는 구경하고 돌아오라고만 한다.


그리고, 정 맘에 드는게 있다면 적당한(혹은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사면 현지인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 여행자는 자국에서 파는 비슷한 물건보다 싸게 살 수 있으니까 서로 좋은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기념품에 관심없는 여행자도 잠깐 시간을 내서 이들의 솜씨를 구경할 수 있다.


동남아의 강은 강폭이 매우 넓다. 우기에 내리는 비를 다 받아들이려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배는 나무로 만들었고, 엔진은 힘이 없어 털털 거린다. 속도는 느리지만 동남아의 강을 구경하기에는 쾌속선보다 운치있다. 게다가 놀랍게도 구명조끼도 잘 비치되어 있다.



배에서 내려 구경하고 오란다. 뭘 구경하고 오라는지도 모른채 그냥 내렸다.(이야기해줬는데 못들었는지도) 마을은 아주 조용하고 인기척도 거의 없어 이상했는데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고서야 뭘 보라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목공예품을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팔거나 도시에 납품하나보다. 불상이나 향로처럼 거대한 것부터 목기나 아이들 장난감 같은 조그만 것까지 매우 다양했고 솜씨도 훌륭했다.나야 사봐야 짐이니 구경만 할 뿐이다.


구경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TV에서 흔히 보던 동남아 물소가 매어져있었다. 한우처럼 순하게만 생기진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소들은 농사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매우 근육질이다. 동남아의 소고기가 질긴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동남아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훨씬 낫다.


호이안으로 돌아와서 어제 다 못한 고택 둘러보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식 다리에 다시 가서 밤에 흐릿하게 본 개와 원숭이 상을 다시 봤다.다리 구조도 그렇고 다리 양쪽을 지키는 동물의 석상을 놔둔 것도 특이하다.






원래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쭉 올라가면서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 들르고 베트남 북부를 통해 라오스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베트남에서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한 기간이 보름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입국은 해버렸으니 빨리 계획을 변경해야지 자책해봐야 필요없는 일이다. 


수십년을 살아온 생활 터전에서도 살다보면 계획에 어긋나는 일, 어쩔 수 없는 일들 투성인데 생전 처음와보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날마다 일어나지 않는게 다행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조사해도 현지 사정은 여행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냥 거기에 맞춰 계획을 바꾸는게 상책이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다보니 점점 이런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계획을 바꿔서 훼에서 베트남 국경을 넘어 사반나켓이라는 라오스의 작은 도시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버스도 있고, 인터넷엔 먼저 넘은 선배 여행자의 여행기도 올라와 있었다. 내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 먼저 했던 사람이 어떻게 했었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안심이 되었다. 새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변변한 여행책자도 없이 몸으로 부딪혔을 오래 전 여행자들이 존경스럽다.


내일은 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훼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도 다행스럽다.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했다. 여행이 점점 더 좋아졌다.

최근 대한항공 CF에 나오는 강가의 아름다운 도시 호이안은 처음 말레이인 참파족의 진출로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참파인은 훼, 호이안, 나짱 등에 도시를 세웠다.(호이안 근교에는 참파인이 건설한 힌두 문명의 도시 유적이 남아있다.) 당시에도 동남아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었다는데 16,7세기에는 중국 화교, 일본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인까지 무역을 하면서 매우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한 번영은 없듯이 근처의 다낭이 무역항으로 번성하면서 쇠퇴하여 결국 조그만 어촌 마을로 남게 되었는데 덕분에 베트남 전쟁의 포화에서 벗어나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고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위키백과 참고)


나짱에서 탄 야간 침대버스는 마찬가지로 12시간을 달려 새벽에 여행자들을 호이안 외곽 도로에 내려주었다. 앞서 가는 여행자들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갖가지 호텔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나타난다. 여기에 적당한 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호이안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이런 호텔들 수십개가 밀집되어 있는데 잘 고른다면 저렴한 호텔을 고를 수 있다.


호이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파인애플을 깎아서 파는 아가씨. 큰 칼로 돌려가며 깎는 솜씨가 예술이다.


관광지답게 길가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무척 많았다. 위의 사진과 같은 색색의 등을 파는 가게들이 특히나 많았는데 처음 낮에 봤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밤이 되고서야 이 전등을 파는 가게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호이안의 구시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시내로 통하는 골목길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장해야 한다.



구시내의 중심가로 나가면 바다와 연결된 조그만 강이 나오고 노란 벽면을 한 고택들이 줄지어 있다. 강변에 위치한 이 고택들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술집인데 여기에는 호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 음식을 파는 곳들이 많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은 꺼리는 편이지만 이 구시가 주변은 대부분이 그런 곳이라 선택의 여기가 없다. 다만 이럴땐 인터넷이나 책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호이안 지역 맥주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이안 전통 음식 몇 가지를 시켜 놓고 LARUE라는 맥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화이트로즈라는 별칭을 가진 만두류의 전통 음식


일본 소바에서 현지화된 호이안 전통 요리 까오라우


여기 최고 음식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다. 바삭한 튀김에 새콤달콤한 소스와 아삭한 야채와 새우가 올라가 있어 식감도 좋고 맛도 좋았다.








배를 채우고 호이안 전통 가옥 투어에 나선다. 매표소에서 받은 호이안 구시가지 지도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전통 가옥들이 표시되어 있어 찾기 쉽다. 한가하게 걸으며 운치있는 고택들을 둘러보며 다니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중국 화교들이 살았던 저택이다. 관운장의 사당이 있고, 향과 향냄새가 자욱하다. 중국 고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저택의 모습 그대로다.


호이안의 아름다움은 밤에 더욱 빛을 발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호이안은 길마다, 집마다 밝혀진 등불로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대도시처럼 사방이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휘황하다면 등불이 이처럼 예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새카맣게 어둡기 때문에 이 등들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고, 등불의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등을 파는 상점들이 수많은 등불을 켜놓고 유혹한다. 기념품에 전혀 관심 없는 나마저도 다음 여정이 길게 남아 있지 않았다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의 불빛과 강물에 투영된 빛이 아름답다. 홍콩이나 서울같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마음 한컨에서는 베트남 전통극인지 춤과 노래가 섞인 공연을 하고 있다. 소박한 무대에 아마추어의 공연이지만...


옛날 일본 상인들의 거주지역과 연결했다는 다리. 일본풍으로 지어졌으며 특이하게도 사진 반대편 난간쪽은 막혀서 사당처럼 사용되고 양쪽으로는 다리를 지키는 원숭이와 개의 석상이 있다.






호이안을 방문하려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짱에서 훼까지 가기 위해서 중간 어디쯤 쉴만한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여행에서 이런 계획하지 않았던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었을 때, 여행자는 그 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평생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 Recent posts